[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2년 전 '좀비'영화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초능력' 이야기를 들고 왔다. 

영화 개봉에 앞서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진 연 감독은 영화 '부산행'의 '천만 신화'는 "운"이라며 겸손해했다. 좀비를 소재로 한 '부산행(2016)'은 연 감독의 첫 실사 영화로, 개봉당시 1156만명을 동원한 그해 최고 히트작이었다. 

그는 "운이 가져다 준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만 감독'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그가 중압감을 훌훌 털고 시작한 작품이 '염력'이다.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염력'은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초능력'이란 소재에 코미디, 여기에 사회적 메시지까지 버무려 놓은 영화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와 스토리 조합에 주변의 걱정과 우려도 컸다. 그 역시 쉽지 않은 도전작이었을터. 

그러나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작품마다 사회 고발성 메시지를 담아온 연 감독은 '염력'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의 장기를 펼쳐보였다. 전면에 코미디란 장르를 내세웠지만,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철거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폐부를 건드리는 '연상호 표' 영화기도 하다. 

연 감독은 "이 영화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며 "개개인이 설사 패배했다 하더라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과 실화를 넘나드는 영화 감독으로서, 그리고 최근엔 첫 그래픽 노블도 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 4살된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영락없는 '딸바보'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쏟아지는 해외 러브콜도 "영어를 못해서" 마다하고 있다며 껄껄 웃는 그는 "존경받는 거장보다 적당한 조롱과 적당한 존중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①] '부산행'연상호 감독, '천만감독' 중압감 벗고 '염력'으로 돌아오다  <이어서>

◆'연상호 세계관'으로 사회 부조리를 담아내다

-'염력'도 그렇고 그동안 작품들을 보면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담아왔다.

'지옥'(2003)이란 단편이 제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사회성이 강하다는 평이 있긴 하지만 그 당시 난 사회의식이 높지도 않았고, 전형적인 사회파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돼지의 왕'을 하면서 사회적인 내용을 담게 된 것 같다. 앞으로는 이런 기조가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장르성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작품마다 사회 고발성 메시지를 담아온 연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연상호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연 감독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학교에 빗댄 '돼지의 왕'으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 감독 주간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수몰예정지역을 배경으로 한 '사이비'로 스페인 히혼 국제 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그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은 첫만 영화에 등극과 동시에 칸 국제 영화제 심야 상영작으로 초청받으며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부산행'의 경우 기차 아비규환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상을 반영했다. 인터뷰① 참고)

-기존 작품에 비해 '부산행'이나 '염력'의 경우 희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데.

지금이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딸이 생기고, 함께 있다보면 요즘 딸과 함께 많은 애니메이션을 접하는데, 나도 보다가 감동을 받는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아버지가 만드는걸 보여주는게 좋겠다 싶더라. 

딸이 사춘기가 될 때 내 작품이 다시 어두워지거나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 어리니.(웃음) 아무래도 아기를 키우는 환경에 작품 분위기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불편한 소재를 다루는 이유는

내가 라면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영화를 요리로 본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유명 호텔의 요리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진짜 맛을 내는 요리사가 되고 싶기도 하지 않을까. 물론 난 아직 깜냥이 되지 못하지만.(웃음)

개인적으로 '짜파게티'란 라면을 좋아하는데, 이 개발자가 처음 짜장면 같은 라면을 만든다고 했을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주변에서 왜 그런 라면을 만들려고 하냐는 환영받지 못하는 시선 속에서 연구 끝에 결과물을 내놓았겠지. 그러나 결국 짜장면을 닮는 것에는 실패했다. 짜장면 맛도 아닌, 그렇다고 라면 맛도 아니니까. 그러나 동시에 성공한거다. 완전히 새로운걸 만들어내지 않았나. 짜파게티는 짜파게티만의 맛이 있으니까.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적당히 조롱도 당하고 적당히 존중도 받고 싶다. 난 노동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감독이 되고 싶다, 존경받는 거장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은 없다.

부산행이 잘 된 이유는 운이 많이 작용해서다. 운이 가져다 준 결과에 집착을 하면 할수록 작업이 많이 힘들어지는 것 같더라.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을 보면은 굉장히 특이하다. 어린이용 영화를 만들기도하고 B급 동시개봉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최근엔 그래픽노블 '얼굴'도 발간했다.

('얼굴'은 압축 성장의 신화를 한창 써 내려가던 1970년대 대한민국,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는 시선 속에서 억압받고 잊혀져 간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연상호 애니메이션 특유의 암울한 현실과 신랄한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부산행'을 끝나고 시작했다. 원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독립영화로도 만들어지기 힘든 스토리다. 굉장히 제 취향의 이야기다. 그래도 책으로 나와서 좋다.

-다방면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최종 지향점은 무엇인가.

지향점이라는건 없다. 영화 감독이란 직업만 보더라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투자를 받아야하고 배우들도 있어야 하니까. 50대가 넘어 활동하는 영화감독은 아주 극소수고, 또 성적이 안좋으면 은퇴가 빨라질 수 있는 직업군이라 내가 언제까지 이일을 할 수 있을까, 몇작품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거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요즘 딸한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도 생겼다. 그림책 작가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되려나 이런 생각도 해본다.(웃음)

◆"'부산행 2' 계획 없어...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어"

-생각해놓은 차기작이 있나

몇개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긴 하다. 가족 관련 얘기도 있고, 전혀 관련 없는 내용도 있고. 그러나 투자를 받아야 영화 제작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웃음)

-부산행 2편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여전하다. 계획은

저는 없다. 부산행이 이렇게 잘될 꺼라고 개봉 전에 미리 예상 했으면 시리즈로 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었을 텐데, 엔딩과 함께 이야기가 닫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영화 제목이 '부산행'이지 않나. 그러면 또 부산을 가야 하고, 기차도 등장해야 하나 생각이 든다. 스토리도 고민이다. 1편의 어린 수안이를 주인공으로 해야하나, 그럼 수안이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웃음)

부산행의 이야기를 이어서 할 자신은 별로 없다. 혹여 나중에 정말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보겠지만. 좀비영화는 한 번 더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아이디어가 몇개 있긴 하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

-그럼 '염력 2'의 계획은

염력은 2편을 만드는건 아무래도 '부산행'에 비해 수월할 것 같다. 메인 주인공들이 남아있지 않나. 그 전엔 우선 관객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야겠지.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은

한가지 욕심이 생겼다. 4살된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더라. 아마 투자가 쉽지 않겠지만, 내겐 큰 도전일 듯 싶다. 아이가 쑥쑥 크는데, 고민을 너무 오래 하면 이미 딸이 자라서 보지 않을 영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감독님도 처음엔 어린 딸한테 보여주고 싶어 시작했는데, 완성했을 때는 이미 대학생이 됐다고 하더라.

-해외에서의 러브콜은

많이 오는 건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얘기가 많이 오긴하는데, 제 '깜냥'이 거기까지는 안된다. 시나리오를 몇 편 받아보긴 했는데, 제가 할 만한 이야기는 없더라.

-앞으로도 해외 진출 생각은

없다. 일단 영어를 못한다.(웃음) 미국 쪽 분들과 미팅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앉아있는 시간이 괴로웠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는 통역의 도움을 받지만, 오고가는 농담까지 다 통역이 할 수 없다 보니 나 혼자 동떨어져 고립된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이 영화 촬영 현장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깜깜하다. 아마 미국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줬던 분들이 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전혀 계획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