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 '1987' 배우 김윤석 "의미있는 이야기라면 악역 마다할 이유없어"
[인터뷰]영화 '1987' 배우 김윤석 "의미있는 이야기라면 악역 마다할 이유없어"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01.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7' 개봉 9일만에 300만 관객 돌파...해외 개봉 '희소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 지시 '박처장'역..."전 세계 누비는 영화가 되었으면"
배우 김윤석은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처장을 맡았다. 그는 "내 배역을 누군가는 맡아야 이 영화가 만들어질 거고, 금상첨화로 이처럼 의미있는 이야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처장. 누가 맡더라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역할이다. 실존 인물이기에 부담감과 책임감은 더 컸을터. 그러나 배우 김윤석은 장준환 감독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선 그 누군가는 맡았어야 할 역할이었고, 의미있는 이야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1년 후, 1987년 1월부터 6월 항쟁까지 가슴뛰는 6개월을 담은 영화 '1987'은 관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1987년 1월, 스물 두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4일 개봉 9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북미,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거뒀다. 

2017년 끝과 2018년 출발을 영화 '1987'과 함께해 행복하다는 김윤석. 최근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영화 '1987'의 생명력이 오래오래 이어져서 전 세계를 누비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2018년 소망을 전했다.

배우 김윤석

-영화 '1987'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됐는데

(김윤석은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이후 장준환 감독과의 두번째 호흡이다. 김윤석은 시나리오 초고 단계부터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다.)

장준환 감독과 워낙 친하기도 했지만, 악역을 중심으로 선한 역할이 부딪히는 구조라 악역의 비중이 높기도 높았다. 그래서 저한테 먼저 시나리오를 보여준 것 같다. 감독님은 가장 어렵고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역할만 나한테 주더라.(웃음)

-영화 참여 계기는

시나리오 초고를 봤을때 완성단계는 아니었다. 사건을 묶어놓은 스케치 수준이었다. 의아했던게 장준환 감독님의 기존 영화 스타일과는 달랐다. 장 감독님이 전작인 '지구를 지켜라!'(2003)나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시는 분 아닌가. 논픽션의 실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길래 "감독님 스타일이 아닌데요?"라고 말했더니 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말하더라.

-어떤 점이

우연과 필연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놀랍다고. 그때 누구 한명의 행동이 없었다면 국민 아무도 모르지 않았을까. 처음 우연히 누군가가 말을 내뱉었고, 그 사실을 알게된 기자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고,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틱하다면서. 그러면서 30년간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희한한 일이라며 잘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더라. 초고를 보고 몇 달 후 완성본을 봤는데 굉장히 완성도가 높았다.

영화 '1987' 장면컷
영화 '1987' 장면컷

-유족분들의 반응은

영화 제작전 감독님과 함께 지난해 1월 부산에서 진행된 고(故) 박종철 열사 기일 기념행사에 참석해 유족분들을 뵈었다. 인사드리고 영화화 얘기를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고마웠다. 고 박종철 열사가 제 고등학교 2년 선배님이시기도 하다. 유족분들께 "제가 가장 강력한 악역을 맡게됐다. 이 역을 해야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유족분들도 영화를 보셨는데, 일단 합격점은 받은 것 같다.

-역할에 대한 고민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훌륭했다. 그리고 존경하는 감독 작품이고. 내 배역을 누군가는 맡아야 이 영화가 만들어질 거고, 금상첨화로 이처럼 의미있는 이야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악역을 할 수 밖에 없고, 부탁할 수 밖에 없는 감독의 입장도 있었을 테니까.

영화 '1987' 장면컷

-실화에 대한 부담감은

가장 중요한건 이 이야기를 얼마나 완성도 있는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느냐였다. 굉장한 부담이었다. 슬픈 이야기고, 소중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만약 완성도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볼 낯이 없으니까. 유족분들한테도, 그 당시 함께 했던 분들에게도 실례를 범하는거다. 오직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감독님은 촬영 내내 거의 밤잠도 못잘 정도였다. 

-박처장이란 캐릭터는

박처장은 시대의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박처장의 목표는 권력의 유지다. 조직을 유지해야 권력의 힘도 생기는 거니까. 권력에 빌붙어서 발버둥치는 모습일 뿐이다. 박처장이 한 일에는 정당성이 없다.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애쓰다 무너진 인간의 모습을 극렬하게 보여주는게 가장 중요했다.

(영화 속 대공수사업무를 총괄하는 박처장은 당시 공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수사에 있어서 고문 등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는 집요한 수사력과 카리스마로 간첩 및 용공사건을 전담하는 대공수사의 대부가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를 지시하고,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간첩단 사건을 기획하기도 한다. 영화 속 김윤석은 부하들을 마치 아버지처럼 품다가도 목적에 위배되는 대상을 향해서는 가차없이 응징을 가하는 분노와 이성을 오가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박처장이 되기 위해

영화 '타짜-신의손'(2014)에서의 아귀 역이나, '황해'(2010)에서의 살인청부업자 면가 역할의 경우 개성과 스타일을 녹아있는 악당의 모습인데 반해, 박처장은 당시 권력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감독님은 악당이 아닌 당시 권력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담아내길 원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 설득하고, 자백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 등에 대한 완성도 있는 디테일이 중요했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된 것 같다.

실존 인물을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외모에도 신경썼다. 사실 박처장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 오래전 신문사에 남아있는 사진 몇장이더라. 분장선생님과 의논해서 일부로 이마에 M자를 파서 앞 이마를 일부러 드러냈다. 죽을 때까지 앞으로 이런 헤어스타일은 안할꺼다.(웃음) 마우스피스도 착용했고, 실제 인물이 거구여서 두꺼운 어깨패드를 넣었다. 보이지 않지만 스태프들의 공이 절절히 녹아있다. 배우들 만큼이나 스태프들의 의미있는 노고를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배우 김윤석

-고교시절 고 박종철 열사에 대한 기억은

기억은 없다. 당시 학년에 따라 층이 다른데, 윗 층에는 선배님들이 무서워서 감히 올라갈 엄두도 못냈다.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님이셨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87년을 실제 겪었던 세대인데

그당시 대학생이었다. 복장이나 최류탄, 구호를 외치던 손동작, '마이마이'나 타이거 운동화, 당시 유행했던 잠자리 안경 모두 새록새록 기억나더라. 대학생 시절에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어도 최소 두 세번이라도 집회에 참가하는 분위기였다. 손이 부족하다 싶으면 대자보도 같이 써줬다. 운동권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수는 없었던 때 같다.

영화를 보러오신 분 중에는 당시 6월 항쟁에 참가했던 분도 있겠고, 그 시대를 거쳐 촛불 집회까지 나갔던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관통했던 나이대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이 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영화 속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란 대사는

난 헤드라인으로 적혀진 신문을 본 세대다. 이걸 30년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말 자체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 넌센스 같다. 당시 이 말이 먹힐 줄 알고 대외적으로 발표를 했다는게. 영화에서도 기자들을 모아놓고 발표를 할때 본인 스스로가 납득이 아니니까 매끄럽게 말이 안나오고 이상한 추임새를 보이는 거다. 희한한 시대의 넌센스를 보여줬던 장면 같다. 이 소재로 1980년대 연극으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정치 풍자극이 유행이었다.

영화 '1987' 장면컷
영화 '1987' 장면컷. 영화 속에서 박처장이 기자들에게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한 대학생 박종철의 사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하는 장면.

-기억에 남은 대사는

영화 속 제 부하들이 늘 저에게 "받들겠습니다"란 말을 한다. 박처장의 부하이자 대공형사인 조반장역을 맡은 (박)희순씨가 그 말을 두세번 말하는데, 하면서 서로 많이 웃었다. 촬영 끝나고 밥먹으러 가자고 하면 우리끼리 서로 "받들겠습니다" 장난치면서 웃곤 했다.

그 당시엔 실제로 그런말을 썼다더라.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박처장만 양복을 입고 나온다. 상명하복, 수직적인 조직체계였던 거다. 암울했던 시대다. 

-젊은 층 관객들이 바라본 '1987'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본인의 기준에서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30년 전 6월 항쟁이 있었고, 그 때 희생된 분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훨씬 전의 이야기인데, 천만관객이 넘지 않았나. 그런 힘들이 우리가 겪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젊은 층들이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 박처장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은

(영화에는 설경구, 김의성, 문성근, 우현, 조우진, 오달수, 고창석, 김종수, 유승목 등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짧은 등장이지만, 선한역에서 악한역에 이르기까지 인상 깊은 연기로 영화에 힘을 더했다.) 

차라리 길게 오래 찍으면 편한데, 만들어놓은 리듬과 분위기에 동참해서 연기하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감독님이 조율하는 리듬과 톤에 완벽하게 적응하더라.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구하나 카메오 같은 느낌이 안들고 온전히 각 인물에 녹아들더라. 대사나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몰입을 해준 배우들이 한 둘이 아니다. 조우진씨도 그렇고. 내 역할과 마주치지 않은 다른 배우들이 나온 장면을 시사회때 처음 봤는데 정말 훈훈함을 느꼈다. 

대공 형사 역할 같은 경우도 다들 잘 나가는 연극 배우 분들이다. 또 대공처장의 뒤를 봐주는 인기부장역할의 문성근선배님이나, 사건은폐책임자인 치안본부장을 맡은 우현 형 모두 어두운 역할을 흔쾌히 맡으셨다. 대공형사 역할의 희순씨도 마찬가지고. 누군가는 해야할 역할인데 알려져 있는 배우 분들이 맡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영화 '1987' 장면컷
영화 '1987' 촬영 당시 모니터링 중인 배우 우현과 김윤석. 극 속 우현은 박종철고문치사건 은폐 책임자인 경찰총수 치안본부장을 맡았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배우란 직업을 안했다면

배우를 안했으면 지금보다 20㎏은 몸무게가 늘지 않았을까 싶다. 잘 안움직였을 것 같다.(웃음)
영화를 찍으면서 일이 휴식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함께 공동작업을 하는게 젊게 사는 비결 같다. 에너지가 넘쳐야 연기도 할 수 있으니까.

-배우로서 나이듦에 대해

옛날 티비에서 하는 '제5공화국'같은 시대극을 볼 때 선생님들이 나오시지 않나. 그걸 대입해서 보면 내가 지금 그 역할들을 하고 있더라. '남한산성'(2017)이나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이제 그 역할을 할 나이가 된 거다. '1987'에서도 내 나이대에 맞는 역할이 그리 많지 않더라.(웃음)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잘 해야겠구나, 좋은 작품을 갖는 혜안을 가져야겠구나 생각한다.

-2018년의 소망은

2017년의 끝과 2018년의 새해를 1987과 함께 해서 좋다. 지금도 세계를 누비는 '부산행' 처럼 이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다. 감독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내가 아닌 감독님이 이 영화로 세계일주를 다녔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처음부터 함께 했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 힘을 쏟아 완성한 작품이란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다들 안쓰러울 정도로 몸이 상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이 영화의 생명력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