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는 음악의 산소다. 임진모와 유병열
밴드는 음악의 산소다. 임진모와 유병열
  • 조현진
  • 승인 200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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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인큐베이터로 변신한 우리나라 최고의 평론가와 연주자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임진모와 유병열. 락(Rock)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둘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임진모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평론가 중 하나이며, YB(윤도현밴드)의 기타리스트였고, 지금은 ‘이퍼블릭’을 이끌고 있는 유병열은 밴드 애호가들에겐 ‘국보급 기타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즉, 이 둘은 한국음악을 대표하는 ‘이론가’와 ‘연주자’인 셈이다. 그래서 도리어 ‘임진모와 유병열’이라는 이름을 함께 읽는 것이 누군가에겐 더 생경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인터뷰는 이 두 사람이 함께이다. 이 둘이 작년 가을부터 의기투합해 만들고 있는 ‘밴드 인큐베이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홍대 ‘KT&G 상상마당’ 5층 카페에 마주앉았다.



두 분이 함께 시작한 밴드 인큐베이팅이 어떤 건지부터 좀 설명해달라.

임진모(이하 ‘임’) 우선 주체는 우리 둘 만이 아니라 ‘KT&G 상상마당’을 빼 놓을 수 없다. 지난 해 가을 홍대에 KT&G가 ‘홍대 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상상마당’을 오픈하며 이 곳 문화의 특성을 대표 할 수 있는 ‘무엇’을 찾기 원했다. 그래서 나와 유병열씨가 밴드 인큐베이팅을 제안한 것이다.

유병열(이하 ‘유’) 그렇다. 이 홍대일대에는 유,무명 밴드가 300팀 정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무대에 서서 공연할 기회가 녹록치 않고, 또한 밴드의 생활 이란게 참 고달프다. 그래서 늘 누군가가 이들을 음악적으로도 좀 돕고, 무대에 서고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임진모 선생이 이걸 해보자고 하더군. 당연히 좋아라하고 참여한 거다.



그럼 인큐베이팅을 받는 밴드들은 어떻게 모집했고, 지금 몇 팀이나 지원하나?

유) 지난 9월에 공모로 뽑았는데 우린 한 30팀 정도 지원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런데 무려 120팀 정도가 참가해서 깜짝 놀랐다. 데모 테이프로 1차 심사를 해서 30팀 정도로 추린 후, 무대에 세워 심사해서 최종적으로 11개 팀을 뽑았다.

임) 아무래도 상상마당이 공연장을 가지고 있으니 밴드하는 친구들이 여기서 인큐베이팅을 받으면 무대에는 자주 설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뽑힌 11개 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큐베이팅 한다는 건가?


유) 밴드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는 합주를 할 수 있는 연습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실을 임대해서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고 있다. 물론 충분히 연습할 시간을 나눠주면서 말이다. 그 연습에 내가 코치로 참여하면서 음악적인 대화도 충분히 나눈다.

임) 그렇게 정기적으로 연습을 하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많이 이들에게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친구들만의 조인트 공연도 몇 번 있었고, 유명 프로밴드의 공연에 함께 세우기도 한다. 11개 모든 팀이 거의 2~3번 공연을 했다.

유) 그리고 앞으로 11팀 모두의 곡을 넣어 옴니버스 앨범을 낼 예정이다. 또한 처음엔 그 중 한 팀만 뽑아서 독집을 내주려고 했는데, 다들 성장속도도 빠르고, 음악적 색깔들도 다르고 해서 4팀에게 싱글앨범을 내주려는 계획도 있다. 늦어도 8월에는 이 앨범들이 나올거다. 그럼 진짜 프로밴드가 되는 셈이지.



그럼 향후 그 밴드들을 상업적으로 매니지먼트 할 생각인가?


임) 아니. 우리도 KT&G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일이 아니다. KT&G는 이 밴드 인큐베이팅을 ‘사회공헌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처음에 홍대에 상상마당이 생겼을 때 이 주변의 문화인들이 좀 시끄러웠었다. 대기업이 홍대에 들어와서 힘을 앞세워 문화의 변화를 줄까봐 걱정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KT&G가 그런 욕심이 없다는 것을 이제 홍대 사람들은 다 안다. 즉, 기업이 양로원, 고아원을 돕듯이 상상마당은 문화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력을 느꼈기에 나와 유병열씨도 흔쾌히 참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KT&G의 시도가 성공적 결실을 나타내고 다른 기업에게도 이런 문화적 사회공헌이 확장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유) 나 역시 이 인큐베이팅을 ‘공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게 있다면 이 친구들이 홍대 밖으로 나가서도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는 것 정도다. 좋은 곡을 만들어서 알려지기 시작하면 큰 프로덕션에서 관심을 가질거고 그렇게되면 자연스레 그들은 메인스트림으로 나가게 되겠지.

임) 그래서 인큐베이팅이란 표현을 쓰는 거다.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 스스로가 자신의 공급자가 되고 우리는 지원자인 셈이다. 매니지먼트나 디벨로핑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밴드의 탄생’을 지원하는 거다. 그들의 음악을 이래라 저래라 간섭 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이 ‘학교 갈 나이가 될 때 까지’ 먹이고 입히고 보호해주는 거지.



무대에 서고, 음반을 내는 것만큼이나 나는 그 친구들이 ‘임진모와 유병열’이란 음악계의 상징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 대중음악계는 지금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위기라고 하지만 특히나 지금 한국에는 락(Rock)이 없다. 왜 없어진 거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론가와 연주자로써 대답해달라.


임) 아픈 지적이지만 맞는 말이다. 내가 볼 때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밴드가 미디어에 노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점점 미디어가 일방적이 되면서 방송에 시청률이 잘 나올 친구들만 나온다. 당연히 밴드 5명의 분노가 아니라 ‘원더걸스’ 5명의 발랄함이 더 시청률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제작자들이 밴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수가 나오면 얼굴은 보이고 소리는 들리는데 음악은 부재하게 되는 거지. 음악이 없으니 누가 앨범을 사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문제가 물려 있는 셈이고 그렇게 서서히 음악계가 질식사 하고 있는 중이라는 위기를 느낀다.

유) 일반대중이 락이 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70~80년대에도 <산울림>과 <송골매> 같은 밴드들이 존재하며 관객들과 소통했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는 지금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때만도 못한 셈이다. 기획사나 제작사 또한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가의 사고로 바뀌었기 때문에 좀 강하게 말하면 ‘음악판이 아니라 증권판’처럼 변질되고 있는거지.

임) 얼마 전 유병열씨와 ‘왜 우리가 밴드를 지원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홍대 근방에 인디밴드가 많아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음악이 너무 반복적, 과잉 상업적인 형태로 자리 잡으며 젊은 창작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유명한 가수들의 앨범 10개를 놓고 보면 그 안에 세션으로 참여한 연주자의 이름이 모두 똑같다. 즉 연주자의 교체나 변화가 십수년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비틀즈’나 ‘레드 재플린’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음악은 산소가 없다고 진단한다. 밴드는 산소다.


‘밴드는 산소다.’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관객도 문제다. 비디오 세대로 넘어가면서 음악적인 관심이 너무 없어졌다. 그러니까 이런 인큐베이팅을 통해 밴드만 무대에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밴드음악을 듣는 훈련’을 시키고 싶은 것이다.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게 우리가 밴드 인큐베이팅을 하는 목적이고 의미다. 뭔가 세상을 뒤집을 스타밴드 하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계에 밴드가 공급되어지고 사람들이 그 밴드를 볼 수 있는 것. 이 목표로 이 일을 하는 거다.


그럼 지금 인큐베이팅을 받는 친구들이 정말 우리 음악계의 산소가 될 수 있을까?


유) 이제 6개월 가까이 봐왔는데 모두 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각 팀들만의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잘하는 연주자도 있고, 밴드로 뭉쳤을 때 잘하는 팀도 있다. 물론 1년으로 밴드가 완성되어진다는 것은 무리지만 이 친구들이 음악적인 무엇을 느끼고, 자기 음악을 객관화하며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친구들이 아주 긍정적이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밤을 새며 연습하는 친구들도 있고. 즉, 열정이다. 이 열정이 산소가 되어주기를 희망하는 거지.

임) 맞다. 나는 인큐베이팅을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를 락이 사라져 버린 나라. ‘Land without Rock' 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었다. 언더그라운드에는 락이 있지만 오버그라운드에는 락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표현 안 쓴다. 유병열씨 말대로 인큐베이팅 받는 친구들을 보며 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는 것을 보고 확인하게 되었다. 모두들 놀라울 만큼 노력한다.



그 열정만으로 가능할까? 사실 예전의 밴드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스피릿’을 요즘 친구들에선 찾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임) 나도 얼마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다니까. 애들이 폼 잡으려고 음악 하는구나싶고, 절실하게 들리는 음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옛날 신중현 선생봐라. 그 다닥다닥 붙어있는 신당동 집에서 어떻게 엠프놓고 기타를 치냐? 동네난리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음악 하던 분들 때문에 이 땅에 락이 생긴거다. 조용필도 마찬가지다. 지금 아이들은 재주는 있는데 절실함이 없다. TV와 제작자 욕하지만 너희들은 스피릿과 소울이 아니라 스타일로 음악한다.’ 이런 소리를 했었는데 지금 밴드 인큐베이팅을 통해 새 희망을 보는 중이다. 어쩌면 정말 락을 할 수 있는 연주자나 밴드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유) 사실이다. 처음 뽑았을 땐 이 친구들도 ‘밴드입네’하며 폼들 무지하게 잡더라. 그런데 내 시각으로 볼 땐 기본도 안 된거다. 못 믿겠지만 ‘레드 제플린’을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 지금 아이들은 레드 제플린 들으면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놀랄 뿐이다. 요즘은 락이라고 하면 펑크로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하드 락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해지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 아니면 듣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심한 경우 헤비메틀 역사의 시작을 ‘메탈리카’로 알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모습이 좋다.

임)인큐베이팅 받을 팀을 고르며 음악을 듣는데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이 영리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영리만 하다는 거였지. 음악에 영리한 장치와 아이디어는 많은데 기본이 없이 아이디어로만 음악을 할려고 한다는 문제를 본거다. 펑크음악을 한다고 해도 펑크만 알고하면 제대로 된 펑크가 나오겠는가? 물론 지금의 사회적 환경이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가 나올 수 있는 스피릿의 시대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친구들에게 ‘음악은 이렇게 해야 해.’ 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밴드라면 반드시 새로운 시대의 어법과 문법을 만들 용기는 있어야 한다. 환경은 지금도 좋다. 환경이 좋은 밴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밴드가 새 환경을 만드는 거다.


정리가 된다. 끊임없이 밴드를 탄생시켜서 학교 갈 때까지는 키워주는 역할. 그럼 이 인큐베이팅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군.


임) 그렇다. 매년 할 계획이고 KT&G 상상마당의 문화적 사회공헌의 대표 아이템으로 커나가기를 희망한다. 한 10년 하면 100개 이상의 밴드가 태어날 거고 그럼 확률 상 살아남는 밴드가 많겠지.

유) 그렇게만 된다면 이 밴드들이 다 형제가 되고 잘 나가는 밴드가 다른 밴드를 이끄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것이 소실점에 다다른 밴드음악을 시작점으로 돌려놓는 일인 거고.



우리나라 음악계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하신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유병열 씨는 요즘 무대에서 보기 어렵다. 현역 은퇴하고 선생님만 하시려는 건가?


유) 무슨 소리. 하하. 여전히 ‘이퍼블릭’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는 20일 날 YB(윤도현밴드)와 여기 상상마당에서 조인트 공연도 한다. 난 최소 60살까지는 무대에 설 거다. 그러러면 나도 연주라로써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인큐베이팅 받는 친구들에게서 아이디어와 도전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이론가 임진모와 연주자 유병열을 앞세운 KT&G 상상마당의 실험인 밴드 인큐베이팅. 물론 이 기획을 통해 유명한 밴드가 나올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임진모가 말 한대로 우리 대중음악계의 ‘산소탱크’역할은 분명히 기대할 만 하다. ‘락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Land without Rock, Korea.’ 그 길었던 시간은 분명히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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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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