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아하고 독창적인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 허우 샤오시엔 감독
[인터뷰] 우아하고 독창적인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 허우 샤오시엔 감독
  • 김다인
  • 승인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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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생애 첫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을 연출했다.

【인터뷰365 김다인】‘무협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영화’ ‘숨막히는 우아함’ 등의 찬사를 받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섭은낭’이 국내 관객들과 만날 날이 다가왔다.

지난해 제68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영화 ‘자객 섭은낭’은 기존의 무협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그 다름이 경이적일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지만, 그 다름을 빚어낸 허우 샤오시엔의 독창적인 시각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이후 영화의 국내 개봉에 맞춰 다시 한국에 온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이 영화가 “대학교 때 본 소설을 소재로 한 것”이라며 “그때부터 마음에 들어 영화로 만들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가 올해 69세이니 거의 50년 동안 묵혀왔던 꿈의 실현인 셈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게 그 꿈을 어떻게 ‘자객 섭은낭’에서 펼쳤는지를 들어봤다.

8년 만에 컴백작으로 첫 번째 무협영화를 만든 이유는
긴 여정 끝에 나온 결과다. 1950년대 대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학교 도서관에 무협소설이 많았다. 그게 좋아서 많이 읽었다. 외국 판타지소설의 번역본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쥘 베른의 소설들이 기억난다. 어린 나이의 난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러한 장르를 언젠가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내 현실주의자적 기질 때문에 하지 못했다.

‘자객 섭은낭’에는 무술 액션 장면이 있지만 다른 무협영화와는 다르다
검사들이 날아다니며 빠르게 도는 액션은 내 취향이 아니며 제대로 해낼 자신도 없다. 배우들의 두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게 좋다. 영화 속 결투 장면은 대체적으로 무술 액션의 전통을 따르긴 하지만 극의 중심은 아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등 여러 감독들이 만든 일본 사무라이 영화 제작진의 독특한 마인드에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그들의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무라이로서의 삶에 완벽하게 빙의하는 것이지 한번 찍고 일회적으로 끝나는 액션 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 배경을 9세기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고교시절, 대학시절부터 당나라의 여러 전기들을 즐겨 읽어왔고 오래전부터 영화화를 꿈꿨다. ‘자객 섭은낭’은 그중 하나인 ‘섭은낭 고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 시대의 문학작품들은 일상의 디테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현실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긴 시간을 들여 그 시대에 대한 많은 기록과 해설들을 읽었고, 나 자신을 그 시대 사람들의 밥 먹는 방식, 옷 입는 장식 등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 썼다.

(흑백 화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여검객 섭은낭(서기)이 단칼에 상대의 목을 끊는 장면으로 그의 검 솜씨에 이견을 달 수 없게 한다. 이후 스승으로부터 예전에 정혼자였던 전계안(장첸)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하산하면서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영화 초반부가 흑백 화면이다가 컬러로 넘어간다
영화의 프롤로그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과거를 상기시키기 위해 오래된 흑백영화들의 작업방식을 참고했다. 메인 스토리라인을 순차적으로 풀어 나가기 시작하며 컬러로 바꾸었다. 이야기가 현재 시점으로 옮겨왔다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다.

(영화 중 가성공주가 칠현금을 타며 처음 읊는 ‘고독한 푸른 난새’ 이야기는 영화 내내 언급된다. 3년 동안 울지 않던 새가 거울을 앞에 놓자 울다가 춤추다가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 ‘고독한 난새’ 이야기 역시 당 시대 문학작품에서 인용한 것인가
맞다. 중국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당 시대 문학작품에서 그 이야기의 여러 버전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에는 클로즈업 샷이 거의 없다
난 롱샷 영화들을 선호한다. 인물들 뒤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주변 오브제와 배경까지 보이는 넓은 시퀀스 샷이 좋다. 넓은 시퀀스 샷은 영화를 더 깊이있게 한다. 촬영하는 동안 나는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는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나로서는 감독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스탭들도 배우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한다.

영화 중간 화면 비율도 바뀐다
디지털로 촬영해서 화면 비율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마치 만화에서 컷의 크기가 바뀌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예를 들어 가성공주가 칠현금을 타는 장면은 악기가 길어서 화면 비율을 가로로 길게 했다.

'자객섭은낭'에는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출연한다.

여성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있나
당나라 소설들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들의 지위가 높다. 여성 자객도 많다. 게다가 난 여성들 편이다. 여성들의 심리는 남성들보다 정교하고 흥미진진하다. 섭은낭도 전계안을 죽이라는 명령과 그로부터 느끼는 감정들 사이에서 가슴 깊이 고민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인상적인데, 촬영지는 어디인가
촬영은 대부분 중국 후베이지역 몽골지구에서 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고산지대 호수 등 원시적인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을 택했다. 결투장면은 대만의 숲에서, 세트 장면도 대만에서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당나라 건축물 외부는 일본에 당시 건축물이 남아 있어 일본 로케이션으로 해결했다.

섭은낭을 연기한 서기는 ‘밀레니엄 맘보’(2011), ‘쓰리 타임즈’(2005)에서, 전계안을 연기한 장첸은 ‘쓰리 타임즈’에서 함께 작업했다. 두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두 사람 모두 좋은 배우들이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사생활에 있어서도 두 배우 모두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존경하는 성격이다. 이번에 처음 함께 작업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순진무구하고 깨끗해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배우다. 스탭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섭은낭이 신라를 거쳐 당나라로 간다고 했는데, 특별히 신라를 언급한 까닭은
역사적 배경으로 봤을 때 일본에선 대개 신라를 거쳐 당나라로 가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설정했다.

이 영화를 볼 한국 관객에게
예전에 보던 무협영화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화면 속 움직임과 고요함을 그대로 바라볼 것이고 누군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그 속에 함께 휩쓸려 갈 것이다. 난 그 두 가지 타입의 관객 모두 존재하길 바란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말대로 ‘자객 섭은낭’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관람평이 나올 수 있는 영화다. 협객이 날고 검이 허공을 가르는 기존의 무협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계안이 머무는 궁에 잠입해 처마 위에서 또는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사이로 전계안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섭은낭의 시선이 어느덧 관객 자신의 시선이 됐을 때, 중간중간 삽입되는 유장한 자연과 새소리 바람소리가 섭은낭이 듣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들릴 때, 영화는 무협영화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할 것이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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