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지막 구식 이발사’ 이우서씨
‘나는 마지막 구식 이발사’ 이우서씨
  • 김우성
  • 승인 200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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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 남짓 대학로 굴다리이발관에서 40년을 보낸 이발사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대학로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네 곳곳이 갤러리로 진화한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벽화가 그려진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굴다리 이발관’이라는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번화한 대학로와는 달리 골목길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이발소 문을 열자 안에는 아무도 없고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온다. 두평 남짓 될까? 굴다리 이발관의 주인 이우서(75) 씨는 이 작은 공간에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리라. 적당한 열기를 내뿜는 난로 옆에서 여유롭게 몸을 녹이고 있으니 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웠던 그가 돌아왔다. “허허, 기자 양반이신가보구먼”



줄곧 혼자서 근무하셨던 건가요?

전에는 직원이 4명이나 되었어요. 머리 감는 사람도 따로 두었고. 그러던 것이 IMF 이후에 종업원을 한 명씩 줄여가면서 지금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발소는 치울 때가 되었지. 하루에 손님 한두 명으로 뭘.. 허허. 이 앞에 충신동만 해도 최근에 이발소가 3개나 없어졌어요. 손님은 없는데 월세 내가면서 가게 운영들이 되었겠어요? 자연스럽게 치우는 겁니다. 나 역시 옛날 말로 ‘담뱃값’이나 겨우 벌어들이고 있지만 그나마 내 가게이니까 유지를 하는 거죠.



예전에 남자들 머리 깎을 때는 무조건 ‘이발소’였지 않았습니까. 까까머리 학생들도 많았을 것이고요.

아무렴. 그 전에는 이발소 아니면 못했지. 가게 밖에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 빼앗겼어. 미장원에 빼앗기고, 복지관에 빼앗기고. 40세 미만 남자들은 아주머니들이 인솔해서 다 미장원으로 데리고 가요. 아이들까지. 요즘은 6,000원을 받는데 저 아래 복지관 생기면서부터는 무료로 깎아주니까 이발하러 오던 노인들 발길마저 끊겼습니다. 일주일에 3일은 손님이 아예 없어요.


많이 서운하시겠어요.

서운하기야 한정 없이 서운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복지관의 경우) 앞으로 ‘복지’가 앞서가잖아. 또 우리 손자들만 봐도 그래. 이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데 머리가 하도 길어서 내가 물었어요. “너희들 학교에서 머리 단정하게 하라고 지시 안하더냐.” 그랬더니 하는 말이 “지시하긴 해도 그냥 그러고 말아요.” 이러는 겁니다. 요즘에 선생들이 강압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때가 아닌가봅디다.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그게 민주주의 아니오. 하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단골로 보이는 노년의 손님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자리에 기대어 앉은 손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로 반말을 한다. “밑에 기계 대야지?”. 손님도 대답한다. “대야지”. 이발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천천히 주고받는 그들의 소소한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빠져들게 된다. 잠시 후 가게 안의 연탄난로가 아릿하게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난로 위 찜통에 면도 거품이 데워졌다. 손님이 나가고 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아까 그 분도 수염만 아니면 미장원에 갔을 겁니다. 우리는 짧은 머리를 잘 깎는 거고 긴 머리는 아무래도 미장원이 낫겠지. 이발은 머리 중간에 빗을 대기 때문에 쉬운 기술이고 이발사들의 진짜 기술은 수염(면도)입니다."



기술자들이 없어져가는 셈이네요.

세상이 너무 발달해 버렸어요. 옷 좋은 거 입고, 안경 좋은 거 쓰고, 수돗물이며 전기며 다 들어오고, 모든 것이 풍부해서 좋기는 한데 우리 같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자들은 설 땅이 점점 없어져. 벌어먹을 게 있어야지. 그래도 어쩌겠어요. 사람이 밥 먹고 사는 것도 수천 가지가 넘지 않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TV에서 미국 방송이니 뭐니 보면 ‘아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는구나.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싶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다 잊어 버렸지요. 지금은 여기 살지 않지만 오랜만에 들러서 인사하고 가는 옛 손님들이 있으면 반갑고요. 손님들 오면 그저 잘 들어주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인간에 대한 박사가 되었지. 하하. ‘저런 장면에서는 내가 숙이면 되겠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주장만 세우면 못 써. 남 얘기도 귀담아 들어보고 대화가 많아야 합니다. 부부지간도 마찬가지예요.


쉬는 날은 없으신가요?

손님이 있든 없든 365일 무조건 나옵니다. 아침 7시 30분 되면 문 열고, 밤 9시 되면 집으로 가고. 내가 노인정을 안가니까 여기가 일터이자 휴식처예요. 여기 있으면 노는 것이 일입니다. 시간이 일이라는 거지.



무척 정정해 보이십니다. 계속 하실 거죠?
술, 담배를 안 한지 30년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병이라도 걸렸겠지. 지금은 일부러 병원도 찾아다니고 그래요. 내가 일흔다섯이니까 앞으로 3, 4년이나 더 하겠소. 하지만 여기 동네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있어야 돼. 그나저나 오늘 찍은 사진 좀 내가 받아볼 수 있겠소? 다른 게 아니라 자료로 보관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저번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막 촬영을 해가더니 그게 TV에 나왔나봐. 전화통에 불이 났어요. ‘지금도 살아있냐’, ‘이발소 아직 그대로냐’ 다들 묻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발하러 많이들 다녀갔어요. 영등포에서도 오고, 멀리 강원도에서도 왔어요. 이번에도 신문에 나가면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며) 이렇게 뽑아다가 주면 더 좋고.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 일어서려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전화 속 상대방에게 아무 때라도 오라며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다. 어디서 오는 손님이냐고 물으니 경기도 안산에서 온다고 했다. 차비가 더 들겠다고 하니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글쎄 차비는 빼줘야 하는데. 하하. 다들 그냥 심(心)적으로 오는 거지. 사람 아는 것이 재산이라고 하잖소. 돈이면 부자인 줄 알아도 천만에요. 자손이 많아야, 사람이 많아야 진짜 부자입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그는 한 자리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기술적인 발전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자가 미용실에 드나드는 건 이제 더 이상 남세스러운 일이 아닐뿐더러 거리에선 찰랑찰랑 긴 머리의 남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TV드라마 속 세트에서나 이발관을 만날게 될지도 모른다. 그 시절 까만 교복을 입고 이발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을 학생들은 언젠가 손주를 품에 안고 TV를 보며 굴다리 이발관과 대학로의 마지막 이발사를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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