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수상회’ 윤여정 “죽기 전에 배우라는 직업의 감사함을 알게 돼 다행이다”
[인터뷰] ‘장수상회’ 윤여정 “죽기 전에 배우라는 직업의 감사함을 알게 돼 다행이다”
  • 김보희
  • 승인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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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장수상회'에서 꽃집 여인 임금님 역을 맡았다.


【인터뷰365 김보희】영화 ‘돈의 맛’에서 기지개를 펴며 “잘 잤다”라고 말하는 배우 윤여정(67)의 연기는 웃음을 유발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웠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소심한 시어머니 연기를 하며 울고 웃는 윤여정의 모습은 소녀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윤여정은 “근사하게 포장해 말을 하는 것을 잘 못한다”며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첫 인상은 다소 까칠하다고 생각됐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점점 가식 없이 솔직하게 임하는 윤여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50년이라는 세월이 넘게 연기하고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매력 때문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 데뷔해, ‘화녀’로 1971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어 ‘충녀’(1972) 명자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결혼으로 연기활동을 중단했다, 10년 후 연예계로 돌아와 1986년 ‘사랑과 야망’에서 조연으로 컴백해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람난 가족’ ‘하녀’ ‘돈의 맛’ ‘여배우들’ ‘하하하’ ‘자유의 언덕’을 비롯해 드라마 ‘꼭지’ ‘호텔리어’ ‘그들이 사는 세상’ ‘참 좋은 시절’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대중을 울리고 웃겼다.
올해 윤여정은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를 통해 영화로 돌아왔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이전의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봄꽃처럼 여리여리한 소녀 감성을 지닌 70대 여인 하지만 이름만은 강렬한 ‘임금님’ 역을 맡았다.

‘장수상회’는 어떤 영화인지 직접 설명한다면.
어린 시절에 만나 평범하게 살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온 식구들이 나서는 따뜻한 영화다. 그런데 황혼의 로맨스라는 점이 부각됐다. 내 생각에 박근형 선생님과 내가 로맨스를 했다고 하면 ‘이상한 영화 아니야’라고 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철없을 때 만난 두 사람이 마지막 인생을 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영화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놀이기구는 중간에 자꾸 스톱을 하면 고장 난다고 해서 계속 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돌면 10분 정도 도는 것을 4번 탔다. 극중에서 박근형 선생님은 너무 힘들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좋다고 깔깔대며 웃어야했다. 진짜 죽겠더라.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은 없었나.
배우를 오래 해서 그런지 ‘이 감정은 힘들다’라고 말할 군번은 아닌 것 같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촬영할 때 나는 박근형 선생님이 연기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순간의 착잡함을 티가 나지 않는 정도 선에서 연기했는데 다 편집됐더라. 반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그래도 영화 초반에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성칠(박근형)과 함께 할 때 금님(윤여정)도 재밌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매순간 ‘이것은 미션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은 진짜 데이트하는 심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촬영 전 강제규 감독을 미리 만나 편하게 대해달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50대까지는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부딪히는 감독이 있었다. 그런데 60살이 넘으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감독은 임권택 감독님밖에 없더라. 현장에서 감독이 나를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늘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을 만나 ‘내가 당신 도구로 임하는 것이니까, 도구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디렉션을 주고 그러는 것에 어려워하지 마라’라고 이야기 한다. 연기를 오래했다는 것은 나쁜 점이 더 많다. 타성에 박힌 연기에 빠질 수도 있고 낡고 노쇠한 연기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신인이 연기를 잘 하는 것을 보면 예쁘면서도 무섭기도 하다. 누가 낡은 연기를 하고 싶겠나. 그런데 나에게 감독이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하며 나를 고쳐주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영화에서 임금님 연기는 윤여정의 모습은 평상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캐릭터를 연구할 때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대입해서 시작한다. 남들은 캐릭터 연구를 전문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방법은 잘 모른다. 사실 과거에는 열등의식이 많았다. 미녀도 아니고, 목소리가 예쁘지도 않은데다가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교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와는 다르고 싶었다. 나는 나이고 싶었다. 영화 속 ‘Be yourself’(자기 자신이 되라)라는 대사처럼 나를 통해 캐릭터를 살폈다. 아마 모든 캐릭터가 나로 시작됐기 때문에 내가 묻어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성칠(박근형)이 죽음을 준비 하는 모습이 나온다. 본인에게는 어떤가.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닌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으면 죽는 과정이 있어야 또 다음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살지 않나. 나 역시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일을 하는 여자인데, 앞으로 일을 못하게 됐을 경우 나는 무엇이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라는 것을 굉장히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말할 수 없지만 내 스스로 준비하는 부분도 있다.

50년이 넘게 배우 생활을 이어온 윤여정은 대중이 가장 어려운 존재라고 털어놨다.

연기는 할수록 더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정말 알고 하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예전 천둥벌거숭이 같을 때는 남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칭찬하면 ‘나 진짜 연기를 잘 하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안다. 대중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고 그래서 좀 많이 불편하다.

연기를 하며 잘 모르겠다는 감정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
69년을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체험을 하며 잘 모르겠는 감정은 없다. 모르는 감정보다는 내가 꺼려하는 캐릭터가 있으면 감독과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서 베드신. 임 감독은 ‘이런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고, 나는 나를 납득시켜야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이 든 남자들도 돈이 많으면 젊은 여자와 놀지 않나, 반대로 돈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와 놀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걸로 해석해 연기를 했다. 그동안 못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내가 굉장히 깐깐한 여자라고 하는데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다.

‘돈의 맛’ 같은 파격적인 캐릭터가 다시 제안이 온다면.
설마 또 시킬까?(웃음) 그래도 나를 설득시킨다면 또 할 수도 있다. 그게 연기인 것이지 나보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내가 그 인물이라면 이렇게 살아보지 않을까 생각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 실제와는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한다. 우선 돈도 그렇게 많이 없다.

연기하는 원동력이 돈이라고 표현했다. “배우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없을 때다”
고급으로 말하면 절실할 때 연기가 제일 잘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 절실한 게 돈 아닌가. 반대로 직장에서 돈을 안 준다고 하면 일을 하겠나.

신인이 연기를 잘하면 무섭다고 했는데, 요즘 무서운 배우가 있다면.
김수현이 요즘 무섭다. 그 친구의 연기를 쭉 봐왔는데 40대쯤에 가능한 연기를 하고 있더라. 앞으로가 기대되는 친구다.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어렵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대중이 가장 소중하다. 그런데 대중이 다 옮지만은 않다. 대중에 의해 무의미하게 추켜세워졌다가 또 무의미하게 매도되기도 한다. 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대중들은 무섭게 돌팔매질을 하고, 호의와 악의가 동시에 온다. 그래서 나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고 싶지 않다. 흥망성쇠를 다 겪어봤기 때문에 그냥 이 업계에서 ‘저 배우에게 역할을 맡으면 열심히 끝까지 잘 해내는 배우다’ 정도로 인식되고 싶다.

그렇다면 인기 없는 배우가 되고 싶나.
내 말은 무서운 인기를 말한다. ‘어디 나오시는 분이세요. 잘 모르겠는데’라고 못 알아본다면 또 상처를 받는다. 누군지 알아보는 정도. 예전에는 내가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거나 피하셨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세련되셔서 ‘윤여정씨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정말 감사하다. 다만 곧 사귈 것처럼 적극적으로 다가오시는 분들도 있어 놀랄 때도 있다.

아무래도 ‘꽃보다 누나’ 등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런 것 같다. ‘꽃누나’ 방영을 할 때 백화점에 갔는데 쇼핑 오신 아줌마분들께서 ‘어머 잘봤어요’라며 반가워서 막 때리더라. 깜짝 놀랐다. 이 이야기를 나영석 PD에게 했더니 “예능은 진짜 윤여정의 모습을 보여주니 대중들은 친근감 있게 느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게 나영석 PD의 능력인 것 같다.
지금 어떻게 돌을 던지겠나. 승승장구하는데. 그래서 나 PD에게 빨리 망해라고 말했다. 흥망성쇠로 빨리 망해야 다시 일어선다. 근데 안 망한다. 나 PD 본인도 걱정하더라. 앞으로 ‘꽃누나2’ 제안이 온다면 안 나갈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어떻게 나영석 PD를 거절하겠나.(웃음)

배우들끼리 속칭 ‘드라마용 배우’ ‘영화용 배우’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는 연기에 있어서 어떤가.
지금 대한민국 드라마는 140분짜리 영화 한 편에 해당하는 분량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일주일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한다면 작가와 감독은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바쁜데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잘할 만한 용역자를 뽑아 찍어 내는 형식이다. 하지만 TV 연기는 정말로 아무나 못한다. 80여명의 스태프가 나의 연기를 바라보고 내 하나의 연기에 따라 돈이 달라지는 순간에 배우는 대단한 순발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화나 연극 쪽에서 깔보는 식의 눈길이 있다. 나는 같은 필드에서 서로 깔보고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연극, 영화, 드라마 모두 기본은 같다. 연극을 잘하면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잘한다. 드라마에서 연기를 못하면 연극도 못하고 영화도 못한다.

본인은 영화와 드라마 중 어떤 게 잘 맞나.
영화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여유롭다. 이런 말 하면 드라마 감독들이 안 써 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요즘 ‘영화배우 오신다’고 놀린다. 다만 나는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편은 아니다. 결과보다는 작업을 하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예측할 수 없기도 하며 결과는 그 다음이다. 물론 즐겁게 연기를 하고 결과까지 좋으면 정말 좋겠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연기를 하는 동안 행복했으면 나는 만족한다.

매년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를 각각 한 편씩 하고 있다.
다행히 그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은 영화 ‘계춘할망’이라는 작품을 제주도에서 찍고 있다. ‘장수상회’를 찍으면서도 행복했다. 그래서 열심히 홍보도 하고 잘해내야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쯤 92세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작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인연이 돼서 현재 열심히 촬영 중이다.

50년 연기를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예전에 한 연출가 선생님께서 배우가 하도 속을 썪이니까 ‘배우가 뭔 줄 알아’라고 하며 사람 인(人)자에 아닐 비(非)와 사람 인에 슬플 우(憂)가 붙어있는 배우(俳優) 한자를 보고 사람도 아닌 것들이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고 하셨다. 명언이었다.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는 골칫덩이였던 것이다. 그건 그 감독의 생각이었고... 나에게 배우는 특별한 이념 없이 그냥 감사한 직업이다. 내 인생에 우연히 찾아왔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어떤 직업이 69세까지 이렇게 할 수 있겠나. CEO라고 하더라고 퇴임할 나이다. 중간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배우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때는 사회적인 풍토가 여배우가 결혼을 하면 활동 중단이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다시 배우를 하게 됐고 정말 감사하게도 이어오고 있다. 죽기 전에 내 직업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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