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명량’ 최민식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못 지나간다, 혼날까봐”
[인터뷰] ‘명량’ 최민식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못 지나간다, 혼날까봐”
  • 김보희
  • 승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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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 최민식은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묵직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인터뷰365 김보희】 광화문 사거리에서 굳건하게 서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영화로 돌아왔다.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는 마음으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을 가진 왜군과 맞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세계 해전사에 남을 명장이 이순신 장군이다.
그 이순신 장군이 영화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52)의 혼과 몸을 빌어 명량대첩 당시의 이야기를 한다.
항간에서는 최민식=이순신이라는 등식이 성립될까. 갸웃했다. 그는 영화 ‘올드보이’ 이후 ‘친절한 금자씨’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에서 세다 못해 무지막지한 역할을 소화해내던 배우였기 때문에, 자기를 죽이고 나라를 살린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와 선 뜻 매치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는 우려일 뿐이었다. 최민식은 ‘명량’에서 필생의 배역을 만나 필생의 연기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위해 삼청동에서 만난 최민식은 아직도 이순신 장군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명량’ 인터뷰에 바쁘겠다. 소감이 어떤가.
좋다. 요즘 인터뷰는 감사문 쓰는 느낌이다. 영화 작업을 다 끝내고 정리정돈을 하는 것 같다.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배우는 스스로에게 말하거나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과 술자리에서 털어놔야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런 부분에서 맨정신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감사하기도 하다. 요즘은 인터뷰가 영화의 제일 마지막 작업 같다. 수군통제사 역할에서 제대했으니까, 예비군 신분으로 임하고 있다.

제대한 느낌이 든다는 건가.
농담반 진담반. 다른 의미에서 전쟁을 치른 느낌이다. 이번에도 징글징글 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세상에 온 사방이 컴퓨터 그래픽이라는데 촬영장 온 사방이 블루 매트를 병풍처럼 쳐 놓고 연기를 하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떤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고...나도 처음 경험해봤다. 또 짐볼이라는 장비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배 30미터짜리 올려놓고 150명이 넘는 인원이 다 올라가 흔들어대면서 찍었는데,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영화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게 없으면 해전 신을 찍을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바다에 나가서 찍는 것은 안전상에 위험이 있기에. 물론 심한 액션이 없이 배가 떠 있는 장면은 바다에 나가서 찍거나 바다의 모습을 찍어 합성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작에서 최민식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명량’에서는 참고 더 누르는 연기를 펼쳤다. 힘든 점은 없었나.
그런 테크니컬한 부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연기하는 사람 배우이고, 악기를 가지고 표현하는 사람은 연주자다. 그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각양각색의 악기로 표현한다. 미술을 하는 사람은 유화 물감이나 파스텔 등으로 여러 가지 색감을 낸다. 나도 똑같다. 그때 그때 연주법과 소리가 다르다. 이번에는 이런 연주법을 택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캐릭터가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가정 하에 이런 소리를 내고 움직임을 냈고, 전작 ‘올드보이’ 같은 경우에서는 또 그에 맞는 색깔을 입고 연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번 ‘명량’의 캐릭터를 색깔이나 소리에 비유하자면 어떤 것에 가까운가.
글쎄. ‘명량’의 캐릭터를 꼭 짚어 단정 지어서 색깔을 표현하기는 그렇고. 폭풍전야 느낌.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다. 마그마가 끓고 있는데 산이 덜덜 떨리는 징조, 화산이 대폭발 하기 전에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는 대폭발의 전야 느낌. 근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의 속을 관객들도 모르게 하면 안 되니까 극중 아들을 통해서 그나마 전했다.

그동안 이순신을 다룬 작품은 많았다. ‘명량’에서 어떤 모습의 이순신을 보여주고 싶었나.
영화에서는 묘사가 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고독했을까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아들은 질문만 냅다 해대고, 어머니 임종도 못 지키고. 그런 면에서 굉장히 내면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할 수 있었겠나. 부하들이 있지만 그들 앞에서 절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됐을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고립되고 썩어문드러져 있을까.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어머니 위패를 보며 ‘어머니 저 어떻게 해야 해요, 답을 주세요’라고 했을 것 같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약주를 즐기셨다는 표현이 있으니까 아들과 이야기 장면에서 술이 좀 취해 인간적인 회한과 죄책감을 털어놓는 장면이 더 들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흐트러짐이 없이 그려졌다. 그런 부분에서는 ‘명량’은 딱 할 말만 하는 것 같다.
난 부하들을 아끼고 챙기고 속상해하는 (장군의 감정)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해전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의 2시간을 지키기 위해 표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최민식은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순신 장군의 감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순신을 표현해내는데 감정이 굉장히 힘들고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난중일기’를 읽고 이순신의 업적을 알아가면서 든 느낌이 ‘진짜 이게 사람이야’라는 기분이었다. 옥황상제가 조선을 구하라라고 명하고 신선이 조선을 구한 것 같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캐릭터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왕이 죽이려 했음에도 그는 절대적 충성을 했다. 나라에서 나를 죽이려 하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실천에 옮겼다. 이게 허구가 아닌 명백한 사실이고, 이런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절망적이었다. 실제로 어땠을까는 숙제로 남는 거다. 그냥 나는 흉내만 냈을 뿐이다. 스스로도 ‘내가 지금 제대로 표현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미치게 답답했다. 나는 이순신을 연기한 거고, 김한민 감독은 CG등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이 안되는 게 미치겠더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이순신 장군과 소주 한잔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정말 딱 10분만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왜 싸우셨나?’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셨나. 나라의 왕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뺏으려 했고, 백성들은 제 살길을 챙기는데 급급한데도. 충을 지키고 백성을 아끼는 그 속내를 진짜 알고 싶었다.
물론 ‘난중일기’에서 묘사되고 있지만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상상을 하게 만들어버리더라. 장군의 신념과 업적이, 그냥 나는 연기만 하면 된다라는 자유로움을 빼앗아버리고 진짜라면 어땠을까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알 길이 없었다. 필름도 없고 사진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난중일기’ 기록이 전부였고, 후손들이 평한 기록도 있지만 그건 100% 신뢰할 수 없었다. 정말 답답한 심경에 유치하지만 달러 빚을 내서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터뷰 장소가 삼청동이다. 오는 길에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보았을 것이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그 길로 안 왔다. 맞을까봐 못 지나간다. 우스갯소리로 매니저가 ‘광화문으로 돌아갈까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안돼, 나 장군님께 혼나’라고 했다.
이런 경험은 나 스스로도 놀랍다. ‘왜 이러지’라는 기분이 든다. 연기 몇 년 생활한 게 아니잖아. ‘취화선’ 때도 이렇지 않았잖아. 그 정도로 내가 (이순신 장군에게) 매력을 느꼈다. 매력이라는 표현이 경박스럽지만, 정말 매력적인 분인 것 같다. 같은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속은 원통하고 분했을 텐데, 본분을 지킨 것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말이 본분이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겨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지금의 인격과 가치관을 총동원해도 이해가 안됐다. 그래서 더 알 수 없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만약 최민식이 이순신이라면 12척 대 330척이라는 전투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딱 극중 오상구처럼 도망쳤을 것 같다. 오상구는 잡히지만, 난 잡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도망갔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 앞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도망을 치던지 육군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을 것 같다. 나도 그 범주에서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개봉 전부터 ‘명량’에서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찾는 관객들의 시선들도 있다. 그러한 부분은 어떠한가.
건강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실이 답답한 부분도 있고. 사실 영화를 보고 주변에서 지나친 애국주의가 아니냐, 애국심을 강요한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한 쪽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굳이 말하자면, 논란이 일어나는 게 더 좋다. 결과적으로는 그 논란과 토론의 귀결점은 현실이다. 또 상업영화를 통해서 잊고 있었던 가치 애국심, 조국, 희생, 극복, 충성. 우리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단어들. 방구석에 처박았던 그 단어를 다시 끄집어내서 보는 기분. 그런 영화가 ‘명량’인 것 같다.
우려되는 점은 있다. 영화 관객층이 대부분 20대이고, 미디어를 많이 접하며 자라서 템포가 빠르다. 그러나 ‘명량’은 정통사극으로 템포가 빠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루해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영화라는 점에서, 교과서를 통해서 본 명량해전이 실제로는 이랬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봤으면 좋겠다.

연기경력 3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간 현장의 분위기도 바뀌고 연기하는 톤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최민식은 데뷔 초와 지금 어떤 것이 달라졌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음. 생각해보니 조금 유연해진 것 같다. 속된 말로 전에는 딱딱한 야구공 같았다면, 짬뽕공(테니스공을 벗기면 탱탱볼 같은 말캉말캉 공) 같아졌다. 그렇다고 타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거나 인간, 상황을 보는 것에 대해 좀 여유가 생겼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

후속작 ‘루시’는 미국 제작진과 촬영했다. 의사소통 문제 등은 어땠나.
긴장할 것도 없고 편했다. 불편한 게 있다면 서로 대화가 안 된다는 점이지만, 말이 짧은 영화니까. 그래도 먹을 것 잘 나오고. 여태 습관이 그래서 그런지 푼수처럼 같이 이야기도 하려고 하고 친해지려고 하니 그 사람들도 다가오더라.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극복한 인물이다. 최민식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나.
술 마신다. 주량이 센 편은 아니다. 난 술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음주와 수다인 것 같다. 대체로 술 상대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그냥 데리고 간다.(웃음)
개인 최민식은 평범하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분을 연기한다는 게 현실과의 괴리감도 느껴지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이순신 장군 앞에 섰을 때 말할 수 없는 초라함이 느껴진다. 또 존경하고 만나보고 싶다. 망상까지도 생길 정도로 굉장히 괴로웠지만 의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본질이’와도 이야기했다. (아! 김한민 감독의 별명이 본질이다. 이유는 현장에서 ‘이 대사의 본질은’ ‘이 장면의 본질은’ 하도 본질 본질 해서 본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영화 개봉도 하고 정리가 되면 이순신 장군이 계신 현충원 묘소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다. 영화가 개봉하고 논란이 일든 뭐든, 그건 그거대로 굴러가는 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인사를 드리면) 진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김보희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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