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방황하는 칼날’을 쥔 딸바보 아빠 이성민
[인터뷰]‘방황하는 칼날’을 쥔 딸바보 아빠 이성민
  • 김보희
  • 승인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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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 닥치면 나도 아빠로 행동할 것”

이성민이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피해자에 대한 관리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경찰 억관 역을 맡아 우리 사회의 이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터뷰365 김보희】튀지 않지만 어떤 역할에도 강한 배우가 있다. 꽃미남도 마초맨도 아니지만 볼수록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이성민(46)이 그렇다.

이성민은 학창시절부터 극단에서 활동, 연기를 시작한지 어언 20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그는 2001년 단편영화 ‘블랙&화이트’를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문, ‘말아톤’ ‘부당거래’ 등 흥행작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드라마 ‘파스타’로 얼굴을 알리더니,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카리스마 최인혁 교수 역을 맡아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현재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변호인’ 기자부터 ‘미스코리아’ 순정파 깡패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통해 형사로 변신했다.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성폭행하려다가 죽인 소년들에게 직접 복수하는 아버지(정재영)가 주인공인 영화로, 이성민은 법에 대한 딜레마를 느끼는 형사 장억관 역을 맡았다. 이야기 중심은 정재영이지만, 영화의 ‘방황하는 칼날’을 쥔 자는 이성민이다.

실제로 이성민은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이다. 그래서 더 영화가 특별하고 아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딸을 가진 아버지이자, 형사의 딜레마를 연기해야 했던 이성민을 만나 ‘방황하는 칼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시사회 당시 감독이 몰래 준 디렉션 때문에 ‘아역배우를 진짜로 때렸다’고 말한 것 같은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특별한 건 아니고, 극중 세탁소 집 아들을 심문하는 장면 촬영 중에 벌어진 일이다. 상대역이 모른다고 하다가 겁먹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이 나 몰래 ‘개겨라’라는 디렉션을 줬더라. 그래서 그 상대역이 거의 두식이 급으로 개겼다. 상대의 성격이 바뀌니까 나도 그 질량에 따라 화난 억관으로 연기해 결국 손이 나갔다. 하지만 ‘컷’이 안 났고, 놀란 그 친구도 연기를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편집됐다. 억관의 캐릭터가 소년에게 폭행을 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 그만큼 몰입해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다. 장억관 역에 몰입했으면 다른 것을 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몰입 못한 거는 아닌데 확 올라왔다. 연기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뜻하지 않게 현실에 집중하게 되는. 멘탈에 집중이 아닌 작용 반작용. 무의식 연기의 리액션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방황하는 칼날’에서 제일 방황했던 장면이 때리는 신이었나.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매 순간 방황했던 것 같다. 제일 방황한 것은 상현(정재영)과 전화 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살인범이자 피해자의 전화인데 친절하게 받아야 할지 부드럽게 받아야 할지 몰라 그냥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감독이 깜짝 놀라더라. 이후 ‘어떻게 달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디렉션을 줘서 여러 버전을 찍었다. 완성본에는 버럭 소리를 지른 장면이 나왔다. 그 외에도 딸 시신 확인 하는 장면이 힘들고... 그런 순간이 많았다.

형사 역인데, 심통난 사람처럼 연기를 한다.
앞서 ‘체포왕’ ‘하울링’에서도 형사 역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나쁜 짓한 사람을 잡는 직업을 가진’에서 출발해 ‘처벌에 대한 기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형사라는 차별점이 있다. 억관의 입장에서 피해자에 대한 회의와 처벌 수위 등 그런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고,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계속 생기는 형사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순리대로 하자는 생각에 그냥 복잡한 생각을 멍하니 하는 표정을 많이 지었다. 사실 제가 가만히 있거나 아무 말도 안하면 뚱하고 화난 줄 안다. 그런 것들이 영화에 많이 나왔다.

극중 정재영과 호흡이 중요한 것 같은데. 현장은 어땠나.
정재영 씨가 굉장히 재밌는 분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말을 많이 안했다. 특히 감정신이 있는 날이면 서로 등 돌리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극한 상황에서 맞딱뜨려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재영 씨는 현장에 오면 엄청나게 집중한다, 그러다가 촬영이 끝나면 다시 수다를 시작했다.
반면, 나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오해를 샀다. 게다가 술까지 안 먹고 그러니까. 지금은 내 성격을 아는 스태프들이 많아 편해졌다. 그래도 아직까진 재밌는 역할을 하다가 ‘컷’ 소리가 나면 구석에서 멍하니 뚱하게 앉아있으면 오해를 사긴 한다. 그때마다 저를 아는 스태프들이 ‘원래 저러니까 신경 쓰지마’라고 해명을 해준다.(웃음)

이성민은 이번 작품에서 정재영과 촬영 전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감정조절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아버지라면, 배우가 아닌 아버지로 이성민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배우가 아닌 아버지 상현의 입장이라면, 나 역시도 딸이 유린당하는 장면을 보고 킥킥대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다면 상현처럼 무지하게 팼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처럼 얼굴도 모르는 범인을 쫓아 강릉을 헤매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극중 상현이 눈밭을 헤매고 얼음물을 처벅처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 멋있는 아빠구나’ 생각했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던지 아니면 차를 가지고 갔을 것이다.

중학생 딸이 있어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영화를 찍으면서 의식적으로 더 상상을 안했다. 내가 상현 역할을 했다면, 내 기억 내 정서 내 역사 속에서 끌어냈을 것 같지만 우리 아이가 개입한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또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때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묘한 아련함이 생기더라. 그래서 상현의 심정이 더 공감이 됐다. 분노, 복수가 아니라 딸에 대한 미안함.
이 영화에서 아빠가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퇴근만 했다면 모든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도 농담으로 ‘야근만 안 했어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야근’이라는 것이 묘한 상징이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하는 것 같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복수에 대한 딜레마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결손가정 청소년들의 아픔과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부터 가해자까지 공통점은 모두 결손가정에 놓인 아이들이다. 엔딩에서 상현의 행동은 청소년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반성이 상징적으로 담겼다고 생각한다.

아빠 이성민은 어떤 사람인가.
많이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는 아빠다.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한다. 앞으로 (딸이) 자라면서 어른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으면 좋겠고, 두려워하지 않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이제 막 사춘기면 아빠의 역할이 힘이 들지 않나.
힘들다. 터무니없는 논리로 받아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트랜스포머’를 예로 들며 “너는 에일리언이 변종되는 시기다. 너에게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고 뇌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엄청 짜증 거다. 아빠도 겪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며 논리로 접근한다, “이해하지만 먼저 겪고 왔으니 아빠 말이 설득력 있지 않니. 미안하다 공부를 자꾸 하라고 해서. 나도 여드름이 있었다. 곧 없어질 거다,,” 등등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내 역시도 그전에는 소리치며 다그치는 부분이 컸는데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나서 딸아이와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더라.

‘방황하는 칼날’은 문제제기 영화다. 학부모로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사회구조 교육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기에 놓인 애들에게 입시지옥이라고 소리치는 것은 폐경, 갱년기,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성인들에게 가서 빚 독촉을 하는 것과 같다. 변혁기에 들어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여행이나 부모들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도 중요하지만 힐링, 원칙을 지키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청소년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토론하는 수업이 있다면 더 유익할 것 같은데 19금 영화라서 아쉽다.

실제로 배우 생활에서 방황하는 칼날을 겪어본 적 있나.
‘칼날’은 없었고, ‘방황하는’ 시기는 있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관심 있었던 것이 연기였다. 그래서 10대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데, 20대 중반에 그만둘까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하고 부딪치고 상대하는 것이 힘들고 무서웠다. 연극이라는 게 사람과 호흡이 중요한데 그게 무서워서 결국 다시는 안해야지 생각으로 본가로 내려갔다. 그렇게 반대하던 부모님이 막상 내려가니까 ‘왜 왔냐’라며 연극을 계속하라고 하더라. 이후 6개월 정도를 쉬었는데 할 줄 아는 게 연기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게 됐고, 거기서 만난 미장이 분이 기술을 배우라고 해서 진짜 배우려고 했었다. 그거 배웠으면 이 자리에 내가 없었겠지만, 경제적 어려움보다도 연기에 대한 열망이 더 강했다.

남자들에게 물어보면 굉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카리스마라서 더 무섭고 정이 간다고 한다. 본인의 매력을 말해 달라.
(당황) 매력? 나는 TV나 스크린에 나오는 내 모습을 잘 못 본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세 번을 봤다. 다행히 영화는 불 끄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간 드라마는 절대 안 본다. 모니터는 딱 한번 할 뿐이다. 내 약점과 핸드캡, 콤플렉스가 들키는 것 같다. 특히 어쩌다 광고 나오면 이상하게 못 보겠더라. 그것 때문에 명절에 가족들과 대판 싸운 적도 있다.

부끄러워서 대답을 회피하는 건가. 아니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나.
음. 평범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정재영 씨와 한 적이 있는데 둘이 비슷한 점은 ‘촌스러움’ 같다. 지금 폼 잡고 있는 것은 허상이다. 실제 삶에서는 정말 평범하다. 그러나 배우는 현실과 작품 속에서는 어느 정도 폼도 재며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까.
체력이 닿을 데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 특히 액션. 영화 ‘군도’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액션스쿨에 가서 말도 배워 보고, 대본을 보며 액션을 상상했다. 체력으로 연기를 한 것은 20대 말고는 없었는데, 흔히 땀이라는 물리적인 땀이 가지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고 ‘군도’를 찍으며 느꼈다. 액션을 늦게 경험한 만큼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해보고 싶다.

마지막 돌직구로 묻겠다. ‘방황하는 칼날’ 딸 잃은 아버지의 복수는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 어쨌든 범죄다. 근데 그래도 그 순간에 닥치면 나는 할 것 같다. 딸 가진 아빠로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무한하지 않나, 특히 연약한 딸일 때는 그런 마음이 아빠로서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들을 낳을 생각은.
아들 낳을 생각은 없다. 나이도 있으니.

김보희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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