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복 만들기 30년 맞은 박술녀 디자이너
[인터뷰]한복 만들기 30년 맞은 박술녀 디자이너
  • 김두호
  • 승인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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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손재주와 정성이 이룬 명품 한복

30년 동안 애오라지 한복만 만들어온 박술녀 디자이너.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서울 강남구 청담동 42번지 ‘박술녀 한복집’을 들어서면 한쪽 벽면은 한복을 입은 국내외 유명 인사들과 함께 찍은 주인의 기념사진 수백 장이 모자이크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다들 메인 상호 앞에 ‘한복을 잘 만드는 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박술녀한복집’의 박술녀(58) 한복 디자이너가 만들어 준 한복차림이다.


즐거운 표정의 기념사진을 남긴 인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외 문화예술계 인사와 영화배우, TV탤런트에서 전직 대통령 부인들까지 망라되어 있다. 외국인 중에는 미국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제이슨 므라즈를 포함해 영국 가수 픽시 로트, 미카, 폴 포츠(오페라) 등과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 잉럭 친나왓 태국총리도 한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올해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집을 시작한 지 만 30년을 맞이했다. 서울 군자동에 33㎡(10여평)짜리 작은 한복집을 차려 놓고 우리 옷 만들기 바느질을 시작해 2005년 서울 강남 한복판의 청담동에 사옥을 짓고 명품 한복집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그녀의 삶은 오르지 ‘한복 잘 만드는 집’의 명(名)과 실(實)이 어긋나지 않게 정성을 바쳐 일하는데 매달려 살았다.


한복이 행사나 명절에 입는 기념의상 정도로 활용 가치가 줄어들었지만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에게는 우리의 한복이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고 자태가 돋보이는 의상이라는 자긍심이 굳건하게 살아있다. 그는 해외에서도 한복 패션쇼를 열어가며 한류문화 속의 한복 보급 운동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

지난 해 문화산업 분야의 융합에 목적을 두고 제정된 제1회 한국 CPI상 패션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셨지요?
정부 기관이나 신문사와 여러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받은 공로상이나 대상 수상 횟수가 15회쯤 되는 것 같아요. 그 상은 내가 잘났다고 주는 상이라기보다 우리의 전통 한복문화에 대한 격려와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복을 만들면서 늘 우리옷의 지킴이라는 생각, 의무감을 가슴에 안고 삽니다.

체격이 건장하시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말씀도 시원시원하신 분인데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이루어지는 바느질 세상에서 평생 일하게 된 데는 특별한 유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닮아 내가 덩치가 커요. 그런데 매사에 아주 섬세하고 바느질 손재주가 뛰어난 분이었고 아버지도 짚신에서 멍석이며 소쿠리 초가지붕 엮는 솜씨가 남보다 뛰어났으니 부모님 손재주를 물려받은 겁니다.

박술녀 한복집에는 그가 한복을 해준 수많은 스타와 저명인사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성장기를 농촌에서 보내셨군요.
충청도 서천군 마서면 산내리 57번지가 출생지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의 7남매 집안에서 자랐어요. 마을 앞으로 금강이 흘러가고 뒷산에는 봄이 오면 진달래꽃이 붉게 물드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너무 가난하게 산 기억밖에 없어요. 늘 배가 고팠어요. 차가운 바람결에 뒤뜰의 대나무 숲에서 잎사귀들이 부르르 떨며 우는 소리를 잠자리에서 서럽게 듣던 기억이 되살아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져요.

대숲의 바람소리를 두고 작가들이 서정적으로 묘사한 문장들이 많아요. 느낌이 갑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자연의 음악 같고 낭만이지만 가난한 어린 소녀의 귀에는 함께 서럽게 울어주는 자연의 울음소리였지요.

얼마나 가난했기에...
농토가 변변찮았던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서 장터에 팔아 쌀을 사오셨지만 있는 재산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씩씩한 어머니가 억척으로 살며 10가족을 먹여 살렸지요.

일곱 자녀에 부모님하고 또 한 분은?
시각장애인이신 외할머니가 함께 사셨지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먹고 살려면 개구리 잡는 기술이라도 한 가지씩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전문성 있는 기술을 가져야 장래가 있다는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우리 옷 만들기를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하게 된 건가요?
그때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만큼 철이 들지도 않았어요. 그냥 어머니의 한복에 대한 바느질 솜씨가 지극하고 정성이 대단했다는 정도의 모습을 눈여겨봤던 거 같아요. 옛날에는 베틀로 무명이나 명주 옷감을 집에서 만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옷감을 장터에서 사와 부인들이 직접 가족의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아버지의 모시옷을 멋지게 만들어 입히는 모습도 보았고 어머니가 잔치집이나 외출할 때 직접 만들어 입은 고운 한복 맵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언니가 시집 갈 때 버선까지 만들어주셨는데 자수에도 실력이 대단하셨지요.

강인하면서 섬세한 성격과 손재주를 따님이 그대로 이어받은 건데 전통 한복의 바느질 기술이나 디자인 감각을 제대로 인정받고 발휘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경복궁 앞 동네에서 제자들을 양성한 이리자 선생으로부터 처녀시절 한복 디자인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배웠어요.

배우 최불암과 함께(사진 왼쪽), 박술녀 디자이너는 고 육영수 여사가 한복이 가장 잘 어울렸다며 오래된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사진을 꺼내 보였다.(오른쪽)

서울의 어느 고급 호텔 식당이 서비스에 신경이 쓰인다고 한복 손님을 거부해 말썽이 된 적이 있습니다. 활동하기에 불편한 의상으로 지금은 명절에나 입는 의상이 되었어요. 그로인해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개량 한복이 등장해 입고 다니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한복 패션은 발전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전통 한복의상의 변형이나 개조 패션에는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잊지 않습니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의 맥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의상에는 우리 조상의 숭고한 얼이 함께 깃들어 있어요. 제대로 만들어 입은 한복은 참으로 우아하고 정갈하고 품격이 있습니다. 비록 결혼이나 명절의 기념복장이 되었다 해도 한복 맵시의 기본 원칙은 지켜야 옳고 변형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남자는 두루마기에서 당의, 조끼, 마고자, 저고리, 바지, 버선까지 고유 복장을 다하면 활동이 둔할 수밖에 없지만 옷감 선택과 한복의 기본 틀을 지키면서 다소의 실용 디자인으로 결함을 줄일 수 있어요.

수많은 명사들의 한복을 주문받아 만드셨는데 한복에 얽힌 일화도 많겠군요. 특별히 한복이 어울리는 인물을 꼽는다면 어떤 분부터 꼽을 수 있습니까?
일단 한복을 입으면 여자들은 기품이 있고 고결해 보입니다. 특히 제가 주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육영수 여사의 한복차림이 참 보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도 해외순방길에 곧잘 한복 맵시를 보여주었는데 차림 모습이 단아하고 곱고 예쁘잖아요.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양장보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은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로부터 청와대 입주 전 한복 주문을 받고 사저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마침 저녁으로 국수를 준비하던 권 여사가 아들에게 외식을 시키고 준비한 아드님 저녁을 나에게 대접해 그분의 소탈한 인정을 느낀 때가 있었지요.

신성일과 엄앵란, 최불암 노주현 정혜선 박정수 선우용녀 김수미 양미경 김남주 김희선 이휘재 권상우 등등 직접 만들어 주신 한복을 입은 저 많은 연예인들 중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연예인은 다 아름답지요. 얼굴이 예쁘면 한복차림도 더 아름답게 돋보입니다. 옷이 날개라고 하는데 연예인들이 고운 한복을 입으면 자태가 날아갈 듯이 보입니다.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을 만들면서 우리옷 지킴이라는 의무감을 늘 가슴에 안고 산다.

한복집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콕 집어 자랑한다면 어느 때입니까?
국제회의에 참석차 서울에 체류 중인 정상들의 한복을 맞춰 줄 때 뿌듯한 한복 바느질 인생의 자부심을 느꼈지요. 묵고 있는 서울 강남의 인터컨티넨탈호텔로 가서 삼엄한 경비망을 헤치고 당당하게 들어가 대통령과 수상 어른들의 몸 치수를 재고 54벌을 납품했어요.

참, 성공한 뒤 그 서럽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엔 언제 가보셨어요?
하하하. 가끔 자식들 데리고 찾아갔지요. 사시장철 그 푸르고 강폭이 넓고 깊던 금강은 과거보다 좁고 얕아보였어요. 또 강변의 무성하던 갈대밭도 없어지고 알고 있는 고향 사람도 점점 떠나고 낯선 곳이 되어버렸어요. 가까이 있으면 그래도 다시 그곳에 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너무 멀어요.

가족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남편(이원세 61)은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은퇴하셨고 아주 씩씩하게 자라 군복무 중인 아들(이종오 25) 하나, 친구 같은 딸(이종은 21) 하나가 있어요. 딸은 감각이 처지는 엄마에게 젊은 세대의 정신을 불어넣어주는 친구가 되어주고 있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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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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