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터뷰] 입소문 장기흥행 중인 ‘잉투기’ 엄태화 감독
[잉여인터뷰] 입소문 장기흥행 중인 ‘잉투기’ 엄태화 감독
  • 김다인
  • 승인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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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5주째 2만 관객 관람, IPTV 방영 시작

'잉투기' 엄태화 감독

【인터뷰365 김다인】올해 영화계의 독특하고 젊은 컨셉 중 하나가 ‘잉여’다.


80만원을 들고 유럽으로 떠난 청춘들의 다큐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인터넷 세계에만 존재하던 인물들을 현실로 불러 세운 ‘잉투기’ 등이 모두 ‘잉여’를 내세우고 있다.


‘잉여’라는 단어는 소설적 역사도 지니고 있다. 1958년 손창섭이 발표한 소설 ‘잉여인간’이 그것이다. 제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한국전쟁 후 자존감 없이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그렸다.


이 시대 청춘들이 스스로 ‘잉여’임을 자처한다는 것은 전쟁 후 암담한 상황과 비견될 것은 아니지만, 사회 속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다. 하지만 소설 속 잉여인간이 암담하고 우울하다면 지금의 ‘잉여’들은 백수와는 또다른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자 한다는 점에서 훨씬 건설적이다.

엄태화 감독은 단편영화 '숲'으로 제11회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잉투기’는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홍익대 광고디자인과 졸업 후 CF쪽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영화 쪽으로 발걸음을 옯겼다.

인터뷰365에서는 이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감독과는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에는 11월 14일 개봉 이후 입소문만으로 2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IPTV를 통해 안방까지 상륙한 ‘잉투기’ 엄태화 감독을 알아본다.

입소문만으로 2만명이 관람한 영화 '잉투기'


‘잉투기’라는 제목부터 풀이가 필요하다. 'ING+투기' 그러니까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조어로 ‘잉여라 불리는 키보드 파이터들의 세상을 행한 격투기’로 해설되어 있다. 무엇보다 키보드 파이터들을 세상으로 불러낸다는 발상부터 독특하다.

엄태화 감독; 평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모호한 소재들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넷 세계도 판타지와 비슷하다. 인터넷 세계에서 소통하던 사람들이 현실로 나와 몸을 부딪힌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인터넷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현실이라는 링 위로 불러들여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영화 중 ‘칡콩팥’ 태식(엄태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던 '젖존슨'에게 현실계에서 급습을 당한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영상이 인터넷으로 고스란히 퍼져 나가자 태식은 복수를 하기 위해 격투기 소녀 영자를 만난다. 영자(류혜영)는 격투기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인터넷 먹방 일인자다. 여기에 겉보기는 부족함이 없지만 속은 텅 빈 쭈니쭈니 희준(권율)이 가세한다.
영화가 장기 흥행하면서 등장 배우들에게도 새삼 시선이 가고 있는 중이다. 캐릭터 캐스팅이라 할 정도로 극중 배역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엄태화 감독;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한번 작업한 배우들과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류혜영은 영화 속 영자와 99% 싱크로율을 보여 바로 캐스팅 했고, 희준 역은 제일 고민되는 캐릭터였는데 권율을 만나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칡콩팥은 동생 태구가 맡았는데 워낙 함께 작업을 많이 했고 집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눠 편하게 작업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형 엄태화는 연출을, 동생 엄태구는 태식을 연기했다. 형제가 함께 작업한다는 점에서 류승완-승범 형제에 비유되기도 한다.

엄태화 감독; 남자 형제 둘이서 함께 작업한다는 점에서 두 분께 비유되는 것 같은데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 비교해 주시는 것만도 감사하다. 앞으로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동생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영화를 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떨어져 지냈다. 태구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영화 현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찌질한 칡콩팥 캐릭터와 비주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굉장히 쓸데없이 진지하고 열심히 취미를 하는 분들이라 어느 정도 엄태구와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 캐스팅하게 됐다.

영화 촬영장(왼쪽)을 떠나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오른쪽)하느라 바쁜 엄 감독.

‘굉장히 쓸데없이 진지하다’는 표현대로 키보드 파이터들은 인터넷상에서는 열심이며 과감하고 행동적이다. 영화를 만든 엄 감독도 그 무리 중 하나는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엄태화 감독; 주로 눈팅을 하는 편이다. 잉투기라는 대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전반적으로 참여자들이 쓸데없이 열심이었다. 그래서 그런 불필요한 진지함을 태식 캐릭터에 담아보고자 했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는 하지 않지만 종종 들어가는 커뮤니티가 있기는 하다.

어느 시대건 그 시대 청춘들은 기성세대의 반대편에 벽을 세우고 대치하는 것 같다. 지금 기성세대가 된 사람들도 청춘시절에는 날이 시퍼렇게 서있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지금의 청춘들은 청춘이니까 아픈 것을 넘어 청춘이니까 슬퍼 보인다.

엄태화 감독; 영화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끝부분에 나오는 ‘관심병 종자’ 관련 이야기다. 인터넷 댓글을 달거나 방송을 하는 것은 관심 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이면에는 외로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뭔가 외로운 정서가 남기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바보들의 행진’ ‘400번의 구타’ 등을 가장 열심히 봤다.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희화화 하려 한 것이 아니라 힘든 청춘들에게 같이 힘든 모습을 보여 위로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은 처음이 있다, ‘잉투기’는 인터넷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현실에서는 괴리감을 느끼는 많은 키보드 청춘들에게 일종의 존재감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새롭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 독립영화의 또 한 챕터가 탄생했다”며 엄 감독의 어깨를 다독이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잉투기’의 장기 흥행 돌입, IPTV 방영 등이 이어지면서 엄 감독은 라디오 출연 등으로 현실에서의 파이팅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그는 잉여가 아니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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