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연기로 새겨진 배우 김갑수
뼛속까지 연기로 새겨진 배우 김갑수
  • 이희승
  • 승인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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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평소에 빛나면 안된다, 작품 속에서 더 빛나야지”

【인터뷰365 이희승】이렇게 뼛속까지 배우일 수 있나 싶다. 대화를 나눠볼수록 ‘내츄럴 본 액터’라고 쓰고 ‘김갑수’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김갑수를 만난 건 영화 ‘공범’이 개봉된 다음날이었다. 촬영이 끝난 지 1년. 지각 개봉도 모자라 공소시효와 유괴라는 우울한 소재 때문인지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반전의 기적이 일어났다.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쓴 ‘그래비티’의 아성을 누르며 1위로 출발한 것. 누군가의 가족이자 이웃으로 살아가는 범인의 일상과 잔인한 현실을 그린 ‘공범’은 그 어느 작품보다 배우들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자칫 무거운 스릴러로 흘러갈 수 있었지만, 김갑수와 손예진의 호흡이 영화의 밀도를 살렸다. 모든 걸 희생해 키운 딸 다은(손예진)에게 비극적인 의심을 받는 순만 역할은 평면적인 듯 보이지만 후반부의 강력한 반전으로 결정적인 한방을 안긴다.
김갑수 역시 영화의 쾌조 출발에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필모그라피만 80여편.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오고가면서 극단의 대표이자 연기자 멘토로 지내는 일상 때문인지 대화 곳곳마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고뇌가 흘러 넘쳤다. 또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고생한 아내와 하나뿐인 딸에 대한 부정도 남달랐다.


우선 축하한다. 솔직히 다들 놀라는 분위기다. 1위로 개봉할 줄은 몰랐다.
출발이 좋으니 일단 기분이 좋다. 오히려 기대 안하고 온 분들이 재미있게 봤다는 게 주효한 것 같다. 스릴러라서 자극적이어야 하고 강해야 하고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공범’은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여서 그런 것 같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지독한 사랑’에서 젊고 지적인 역할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공범’의 순박한 아버지 역할은 뭐랄까, 배신감이 들 것 같다.
흥행만 놓고 봐서는 ‘지독한 사랑’은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주류 영화가 아니었고, 이명세 감독이야말로 지독한 감독이었지.(웃음)


그 영화의 팬이다.
시기적으로 안 맞는 영화였다는 거다. 여기서 지독하다는 게 나쁜 뜻이 아니라 이 감독이 보통이 아니란 건 유명하지 않나. ‘이렇게 몇 신만 더 찍다간 죽겠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를 들면 다섯 발자국 반을 걸어 차 문을 열어야 하는데, 네 발자국만 걷거나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안 된다. 디테일이 대단하다. 자기고집도 세고. 요즘 환경이라면 훨씬 더 크게 인정받는 감독이었을 텐데...여러모로 아쉽다.


그 즈음이 김갑수 영화인생이 막 피어오를 때다. ‘태백산맥(’1994) ‘금홍아 금홍아’(1995)를 시작으로 ‘장화, 홍련’(2003) ‘똥개’(2003)까지 조연부터 특별출연까지 꽤 많은 편수가 쌓였다.
정말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다. 연기를 통해 모든 걸 발산했기에 일상의 재미는 모르고 살았다. 아내가 많이 이해해줘서 가능했다.


(좌)그 자신이 극중 순만이 되어 찍었다는 김갑수. (우)영화 현장에서 국동석 감독, 손예진과 함께.


손예진과는 실제 부녀 사이처럼 절절 하더라. 커버린 딸이, 아내이자 아들 노릇을 하는 신들은 좀 먹먹했다.
함께 ‘연애시대’를 찍은 게 7년 전인데 그 때는 말이 부녀지간이지 같이 찍은 신이 별로 없었다. ‘공범’에서 처음으로 붙어 있다시피 했다. 예진이는 그 나이 또래 여배우 중에서 워낙 잘 하지 않나. 그래서 믿는 구석도 있었고.(웃음) 진짜 순만이 된 것처럼 찍었다. ‘공범’은 좋았던 게 배우인 내가 봐도 만족스럽게 깔끔하게 신들을 배치했다는 거다. 처음 시나리오하고는 좀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의 결과물이 훨씬 더 좋다.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력도 중요했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중요했는데 정말 잘 살려냈다.


영화에서는 손예진이 딸인데, 실제 딸은 어떤가.
부모가 둘 다 연기를 해서인지 자신의 감각을 펼쳐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연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음악을 비롯해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스스로는 “아빠, 난 연기는 안 맞고, 쉽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름이 ‘아리’다. 내가 워낙 촌스러워서 정말 신경 써서 지었다. 순수 한국말로 ‘앎’이라는 뜻이다. 예전 글씨로 ‘이응’에 점이 찍히는 건데 출생신고 할 때는 그런 글자로는 안 된다기에 ‘아리’가 됐다. 딸이 있어서 예진이랑 호흡이 남다른 것도 있었다.


이 영화 출연을 결정짓게 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이건 연기자로서 연기를 할 만한 요소가 많구나’를 가장 많이 느꼈다. ‘사건의 실제 범죄자가 안 잡히고 살아있다면 그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게 재미있었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아빠가 사실은 별 세 개 출신의 범죄자에, 무엇보다 예진이가 먼저 캐스팅 되어 있었거든.(웃음) 신인 감독이 한다는 사실에도 끌렸다. 기존 감독들은 색깔들이 있으니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신인이라면 어떻게 만들려고 할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엔딩을 보면 과연 그 눈빛 연기는 누가 대신할까 싶다. 그 한 신만으로도 충분히 누가 범인이고 아닌지가 다 나타나지 않나.
순만 역할은 나 말고 다른 배우가 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그걸 또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뭔가를 계속 생각하는 작품이 좋다. 후배들에게도 이런 트레이닝을 항상 시킨다. 분석하고 추리하는 것.


‘공범’의 한 장면


데뷔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최초의 고졸 연극배우였다.
그 당시 연극은 소위 예술이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배우지도 못한 놈이 알지도 못하고 덤빈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식과 인간을 표현하는 것 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고 내가 아무리 주장해 봐도, 고등학교 졸업이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또 얼마나 어려웠는지. 하루 한 끼를 라면으로 때웠다. 그 당시에 가장 싼 빵이 바게트였는데 그 딱딱한 걸 사서 여러 끼니를 견뎠다.


커튼을 이불 삼아 덮었다고 들었다.
연습실에서 자야 되는데 너무 추우니까 그걸 떼서 덮고 아침에 다시 다는 거다.(웃음) 그때 내 몸무게가 54kg이었다. 청바지를 하나 사면 몇 년을 입고 다녔을 때다. 한번 사서 그걸 몸에 맞게 줄이는 게 중요한 행사였다. 길이나 허리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고생하니까 고작 바지 한 벌 사서 몇 번을 재고 또 쟀는지... 그래서 지금, 그 당시 못해 본 것을 더 해보는 것 같다.


바이크를 타거나 SNS를 활발히 하는 것들? 한창 즐기던 색소폰과 사진도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엔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건 깡패였지만 지금은 멋있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웃음) 내가 나이에 안 맞는 일을 한다고 화제가 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나의 이런 삶을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거든. 연기자로서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첫 번째이다. 내가 하는 것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되는 것들이 아니다. 사진은 감각을 보는 눈을 잃고 싶지 않고, 악기는 템포나 리듬을 기억하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잘해서 어디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닌데. 요즘엔 그런 것들이 치매에 좋다고도 하더라.
나는 다시 인생이 주어진다면 역사 연구나 고고학 같은 걸 하고 싶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삶! 그러고 보니 또 영화네.(웃음)


극장은 지난해에 접은 걸로 알고 있다.
대학로에서 7, 8년 했다. 운영은 아내가 했다. 아내는 연극을 하면서 만난 한 살 차이 동료였고 결혼하면서 연극을 그만뒀다. 하지만 나중에 극단도 갖게 되고 운영도 하게 됐으니 좋아하더라.
극장으로 돈 벌기는 힘들더라. 좋은 작품 올리기도 힘들고, 배우들도 고생이 많았다. 소극장이라해도 창작 작품 하나 올리려면 몇 천만 원씩 들어가고, 또 그만큼 수익이 나야 다음 작품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순환이 안된다. 그래서 내가 끝없이 일하지 않으면 운영이 안됐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밖에서 벌어다 주면 그걸로 운영을 해줬거든. 그래서 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일상이었다. 지금은 일단 극장은 접고 극단만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일상에 대해 말해 보자. 단오나 우수는 잘 있나? 개 이름이 이렇게 심오할 수가.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한 관심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딸이 너무 좋아하는 거다. 이제는 그놈들이 가족이 되니까 여행도 길게 못 간다. 개 이름이 심오(?)하게 된 것은 천성적으로 내가 외국 이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도 초창기에는 할 수 없이 번역극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창작극만 하고 있다. 극단을 맡고 나서부터는 단 한 번도 외국 작품을 올리지 않았다.


김갑수에게는 영화 속 딸 손예진보다 더 사랑하는 딸 아리가 있다.


연극에서 영화와 TV로 넘어온 1세대 배우로서 고충이 남달랐을 것 같다. 드라마 ‘찬란한 여명’을 통해 삭발 보상비를 받은 최초의 배우였다. 일부러라도 선례를 확고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집을 부렸다기보다는 그 당시는 힘든 결정에 따른 확실한 보상이 따르던 시기였다. 차기작이 결정되어 있는데, 삭발을 하라고 하니까 매일 머리를 밀어야 했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역할이라며 그만큼의 대우를 해준 거지.
나는 연기할 때 정말 행복하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디서든 그 순간만 빠져나오면 일상인데, 굳이 연기를 할 때 지금의 현실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후배들에게도 그 말을 항상 해준다. 순간에 집중하라고. 굳이 장르를 가려 이야길 하자면 드라마는 순발력을 가지는 것, 영화는 기다리면서 자기감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까 현장에서의 단점을 장점화 시키라고 해준다.


그럼 어느 장르에서건 멜로 연기를 하는 김갑수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지독한 사랑’은 에로틱 멜로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그런 작품에 대한 매력은 없으니 기대하지 마시라.(웃음) 뭔가 고민을 가진 중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코믹이나 망가지는 것도 해봤고, 시트콤도 해봤는데 뭘 못하겠나. 요즘엔 다양한 역할을 위해 소식을 한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것 엄청 좋아했는데 지금은 채소가 가득 들어간 샌드위치 정도만 먹는다.


차기작인 드라마 ‘감격시대’는 언제 들어가나.
24부작이라 한창 촬영 중인데 나는 다음달 정도나 되어야 들어갈 것 같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아주 나쁜 놈이다. 악역의 끝을 보여줄 거다. 주인공인 김현중을 괴롭히는 역이라 걱정이 많다.(웃음)


젊은 배우들과의 막역한 인맥도 화제다.
어린 친구들은 같이 작품 하면서 알게 된다. 내가 그들과 잘 지내는 이유는 잔소리를 안해서인 것 같다. 그들 나름으로 얼마나 잘 하고 싶겠나. 그 마음을 잘 안다. 그 부분을 잘 도와줘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 못하는 게 있다면.
성실함을 잃어버리는 것? 잠시 반짝하지 말고 진심으로 오래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잠시 생각하더니) 박유천이나 이아유, 조권, 가인, 윤두준같이 노래하는 친구들이 더 열심히 하더라. 연기라는 게 결국 보여지는 거잖나. 화려함만 보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것이 다가 아닌 걸 깨닫게 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훗날 스스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연기로 승부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주문을 외우고 다녔으면 좋겠다. 배우는 평상시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더 빛나야 된다는 걸 기억한다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


연기가 아닌 다른 경로로 주목을 받는 후배들이 많아지지 않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를 들어 레드카펫 패션이나 과감한 발언들을 하는.
예전보다는 훨씬 기회가 많아지고 다양해지긴 했지만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니까 주의해야지. 연기자라면 연기로 승부해야 하는데 자칫 엉뚱한 것을 먼저 알리게 되면 그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자기 PR시대라고는 하지만, 내가 예전부터 연기를 해 와서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배우라는 직업은 남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눈도장을 찍어도 본인이 연기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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