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박중훈이 말하는 감독 박중훈
톱스타 박중훈이 말하는 감독 박중훈
  • 이희승
  • 승인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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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힘들고 감독은 어렵다”

【인터뷰365 이희승】영화 ‘톱스타’는 배우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에게 ‘톱’이 아닌 시기가 얼마나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그가 ‘깜보’로 데뷔하기 전? 아니면 용산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부로 활동했을 때 정도?
박중훈의 20,30대는 그야말로 인기와 부를 거머쥔 ‘황금의 시대’였다. 그가 가장 잘 나가는 스타들만 찍는다는 맥주와 청바지 CF의 장기 모델이었다는 건 아직까지도 광고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배우라면 한 템포 쉬어갈 40대도 알찼다. 개인적 슬럼프야 있었어도 숱한 선후배들이 자문을 구하는 영화계의 대들보였다. 스스로 말하길 “가만히 있으면 안성기급으로 굳힐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박중훈이 한국 최초의 시리즈 영화 ‘투캅스’의 주인공이자 영화전산망이 체계화되기 전부터 단관 관객으로만 87만 명을 동원한 배우라는 건 기록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게임의 법칙’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내 깡패같은 애인’까지 최근작으로 갈수록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배우 박중훈의 모습은 지금 잠시 잊자. 그는 이제 자신의 연출작 ‘톱스타’를 들고 다시 출발점에 섰다. 자신이 속해 있던 영화계가 바로 소재의 중심이다. 스스로 톱스타였기에 알 수 있는 ‘스타계’의 어두운 내면이 그려져 있다.
데뷔 28년차, 주연배우로만 40편.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갈 수 있었던 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 나선 박중훈이다.


가장 궁금한 건, 영화배우였으니 감독 할 때 조금이라도 혜택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영화에 등장하는 시상식 장면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극중 청룡영화상의 경우 아직 시나리오도 안 나왔을 때 진행해서 개인 돈이 들었다. 시상식 기간에 안 찍으면 더 억 소리 나게 들 테니, 무리를 해서라도 그때 찍고 싶었다. 500만원 정도 들었는데, SBS와 주최측인 스포츠조선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배우라서 혜택받기보다는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진행했다. 방송 자료를 사기도 했다. 남우주연상 후보 5명이 나오는 장면은 몇 초 밖에 안됐지만 구입해서 장원준(김민준)을 끼워 넣어CG로 작업했다. 깡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영화가 안 들어갔으면 어쩌려고.
내 말이.(웃음) 배우들이 리무진에서 내리는 거랑 김혜수, 이범수가 시상식 멘트하는 건 죄다 새로 찍었다.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얼마나 걸렸나.
1년. 시나리오를 쓰는 법도 몰랐던 내가 1년간이나 창작에 몰두했으니 얼마나 뼈를 깎았겠나. 아침에 눈뜨면 눈앞에 벽이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앉으면 쓰겠는데, 앉기까지가 너무 힘들고. 첫 글자부터 안 써지니 미치겠더라. 내가 많이 경험한 거고 잘 아는 분야인 만큼 극으로 만들어 놔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배우 김민준, 엄태웅, 소이현이 합을 맞춘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 ‘톱스타’


영화 대사 중 와 닿는 게 많았다. ‘유명세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배우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같은.
이 영화가 갖는 장점과 반대로 가장 경계했어야 했던 점이 바로 그런 디테일이었다. 배우 출신 감독이 배우 이야기를 녹여낼 때는 자칫하면 자의식이 너무 강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충고를 많이 듣기도 했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객관성을 상실하는 것만큼 추한 게 없다. 이 얘기와 연관되는 얘기가 있는데, 좀 길다.


그래도 듣고 싶다.
에디슨이 영화를 찍는 기계를 발견한 뒤 그걸 대여해 줬는데, 그 가격이 거의 고리대금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 조건도 너무 까다로웠다. 그 기계로 찍는 영화 중 사람이 몇 분 이상 나오면 안 된다는 것. 에디슨이 정말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게 그 부분이다. 사람이 많이 나오면 기계보다 주인공이 권력을 갖게 되는 걸 미리 안 거다. 에디슨이 너무 간섭을 많이 하니까 날씨 좋고 빨리 찍을 수 있는 서쪽으로 도망갔는데 하필 내린 역이 할리우드여서 지금의 영화 탄생지가 된 거다. 실내 신을 비행기 격납고에서 찍었는데 그게 지금 모든 메이저 영화사의 스튜디오 원형이 된 거다.


그런 지식들이 ‘톱스타’에 활용된 건가. 영화에 대한 권력은 결국 배우에게서 나온다?
앞서 말한 대사 이야길 더 하자면 감독들이 “배우를 살아있는 피사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과거에 나는 그 말을 듣고 술자리에서 버럭 성질을 내기도 했다. 감독들이 배우에 대한 존경심 없을 때 그런 말을 많이 한다. 거기에 착안해서 ‘배우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대사를 쓰게 됐다.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가장 먼저 보여준 사람은 누군가.
아무래도 제작사 사장이었다. 다음이 후배 시나리오 작가와 ‘내 깡패 같은 애인’의 김광식 감독 순이었다. 그런데 그 순서가 의미 없는 게 최종 원고는 15고까지 나왔다. 지금의 완성도가 10이라면 초고는 3정도밖에 안 됐다. 나는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곤죽이 되도록 깨졌다.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 또 장난 아니더라.(웃음)


영화에 와인이 2초 정도 나오는데 워낙 와인 마니아니까 얼마나 골라서 넣었을까 싶었다.
그걸 눈치 챘나. ‘무똥 로스췰드’다. 빈티지마다 가격이 다른데 영화 속에 나온 건 300만원 정도. 장원준은 엄청난 스타다. 자신의 매니저였던 태식(엄태웅)을 친구로 맞이하기 위해서 대접하는 거니까 그 정도는 가볍게 마실 거라고 봤다.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사실 아는 지인한테 빈 병을 구해 포도주스를 넣은 것이다. 무똥 로스췰드는 나도 여태까지 딱 두 번 얻어먹어 봤다.(웃음) ‘톱스타’에서는 전부 와인을 먹는데, 사치 중의 최고 사치가 보석이나 돈이 아닌 와인이라더라. 되팔 수 없고 모두 마셔서 소비되니까. 그들의 화려함을 와인으로 표현해봤다.


박중훈의 ‘미친 인맥’을 입증하듯 ‘톱스타’에는 톱스타의 카메오가 많다. 배우 안성기, 가수 엄정화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사석에서는 영화 개봉 다음날 이민 갈 거라고 농담했지 않나. 이제 개봉했는데, 이 신만큼은 다시 찍고 싶다는 게 있나. 단 한 신만 재촬영한다면.
(한참을 생각한 뒤) 28년간 영화를 해왔지만 다시 돌아가면 잘 할 자신은 있지만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건 내 인생에 있어서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는 거다.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서인지 감독으로서 다시 찍으라고 한다면 더 잘 찍을 것 같다가도, 내 능력으로선 최대한 찍은 거라...(웃음) 제작비 30억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연예계를 찍으려면 아무래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굳이 한 신만 꼽는다면 나이트클럽 내 룸 장면은 다시 찍고 싶다. 아방궁이나 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에 나오는 화려한 쇼룸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기존의 유흥주점의 룸에서 찍은 게 좀 아쉽다.


극중 원준의 별장이라던지, 태식 아버지의 요양원 등은 모두 고급으로 나왔던데.
초반에 배우와 매니저인 두 사람이 야구하는 장면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멀리 강이 보이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조금만 카메라를 돌리면 바로 공사장과 찻길이 보이는 곳이었다.(웃음) 극중 태식이 CF를 찍은 곳도 한적한 바닷가지만 바로 화면 뒤는 여관이며 횟집이 많았다.


배우에서 감독이 되니, 출연 배우들에게서 보이는 색다른 점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배우나 스태프는 다들 감독만 쳐다보니까 내가 그들을 봐야 하는 게 좀 낯설었다. 변호사를 쭉 해왔는데 처음 판사석에 선 느낌이랄까. 배우 생활을 아주 오래 한 편이고 최측근에서 감독을 많이 봐와서인지 ‘소통능력’에 대해서는 들어가기 전부터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리더가 팀하고 소통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화내는 거다. 동시에 가장 효과가 없는 방법이기도 하고.
단언컨대 이번 영화에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그걸 보듬어 줘야 한다. 아니면 분산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정서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데 늘 신경썼다.


배우로서 보낸 20대를 되돌아보면 욱하기도 하고 스타로서 욱하기도 했을 텐데.
인내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웃음) 스타라는 권력도 있었고. 성격 자체가 자기성찰을 하거나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거다. 그 당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거란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톱스타’를 찍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시선은 ‘감독이 영화계 선배에다 에너지도 남들보다 많은 편이고, 첫 영화에 시나리오도 직접 썼으니 오죽할까’였다. 그래서 더욱 조심했다. 화를 안냈다고 내가 주장하더라도, 눈빛이나 기운 같은 건 티가 나니까 그것까지 제어했다고는 못하겠지만, 많이 삭히려고 노력했다.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겸손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
한 번에 이거다! 하고 온 건 아니다. 마흔 살 정도 됐을 땐가. 영화 ‘천군’을 찍을 당시 배우로서 바닥은 아닌데 그렇다고 핫하지도 않은 순간이 느껴졌다. 결혼한 지는 십수 년이고, 애들은 컸지. 뭔가 자각 같은 게 탁 하고 온 거다. 젊었을 때는 성취하기 위해 살아왔는데 막상 이루고 보니 그제야 옆이 보인달까. 행복할 줄 알고 달려왔지만 막상 성취 자체가 행복을 주는 건 아니더라. 야성은 주어지는 것, 지성은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할 때 30때부터는 야성의 매력이 점점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그 공간을 딴 걸로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에너지를 뿜으며 살아온 걸 잘 알기에 고의든 미필적고의든 간에 나 때문에 불편한 사람에 대해 조심하게 됐다.


감독 데뷔작을 드디어 관객 앞에 내놓은 박중훈. 배우 데뷔작 ‘깜보’ 때보다 더 떨린다.


사실 그게 배우 박중훈의 매력이긴 했었다.
돌로 예를 들면 20대는 잡으면 꺼칠하고 뾰족한 화강암 같고, 지금은 이끼 낀 차돌 같다. 화강암은 쥐기는 힘들고, 뭘 격파할 수준은 아니다. 그에 비해 차돌은 잡으면 뭉실뭉실한데 단단한 거라도 부술 수 있다. 나이 들어서 이끼 낀 돌 같은 부드러움을 갖춰야 된다고 본다.
나이를 들면서 보니 세월이 간다고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더라. 욕심 더 많아질 수도 있고, 나이를 본능으로 느끼면 또 그게 되게 매력 없어지거든. 건강하다는 전제 하에 늙는 건 축복이다. 그거 아나? 사람의 IQ는 50대 때 제일 좋단다. 잘 잊는 건 너무 정보가 많아서 그런 거고. 5060일 때 어른들이 슬기로워지는 건 그만큼 뭔가를 경험한 순간을 잘 기억하는거지.


배우로선 느끼지 못한 감독으로서의 희열이 궁금하다.
배우는 관객에게 감정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감독은 생각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감정을 정성스럽게 보여줬는데 거기 동의를 얻을 때의 짜릿함이란! 배우, 감독 다 어렵고 힘든데 배우는 좀 더 ‘힘든 게’ 강하고, 감독은 ‘어려운 게’ 더 많은 것 같다.


감독으로서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스트레스는 책임감에서 온다. 수십 억짜리 영화를 위해 귀한 투자금을 받아 몇백 명의 사람들이 뭉쳐서 결과물이 나온 것이잖나. 작품적인 평가나 흥행 결과가 상식적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피해를 주는 거니, 요즘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스무 살 때 ‘깜보’ 개봉하기 전보다 더 떨린다.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많이 이야기 했지만 김민준은 1순위 캐스팅이다. 근데 하자고 해놓고 시나리오가 지지부진해지는 바람에 촬영 시기가 계속 늦춰졌다. 그 사이에 당분간 연기 안하겠다고 해서 그거 바꾸느라고 엄청 고생했다. 원래 감기도 안 걸리는 체질인데 십수 년 만에 몸살에 시달릴 정도로.


원래 엄태웅 역할은 20대 배우였다고.
20대 배우들에게 엄청 거절당했다. 좀 젊고 순해 보이는 이미지를 원했거든. 그래서 좀 나이대를 올려보자고 결정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엄태웅이었다. 그런 면에선 (엄)태웅이가 0순위였던 거다. 동성이 봐도 멋있는 사람이 있는데 김민준이 나에게 그랬다. 극중 태식 역할은 나중에 광폭해지기 때문에 선하면서도 뭔가 결핍이 있는 역할에 태웅이만한 사람이 없어서 너무 만족한다.


소이현의 경우 재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내가 여배우를 잘 몰라서 쉽게 떠올리진 못했다. 주변에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보라고 하더라. 캐스팅 제안을 하기 전에 영화사에서 스무 명이 투표를 했는데 그 중에 19명이 찬성을 했다. 미술팀장 혼자 반대했다.(웃음) 만나보니 성격 좋고 매력 있었다. 부담은 안 주면서 존재감 있는 ‘톱스타’의 보물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본인 개런티 5천만 원을 반납했다고 들었는데 감독 개런티가 원래 이렇게 적나.
돈벌이로 보면 배우 할 때보다 정말 적다. 그리고 내 개런티를 묻은 건 영화의 퀄리티를 더 높이면 그게 더 좋은 거지 뭐가 더 필요한가 싶었기 때문이다. 손익분기점? 200만 명 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영화사나 투자사에서 돈을 좀 챙겼구나 하려면 250만 명은 되어야 한다. 많이들 봐주시면 고맙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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