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촬영 중 ‘수애 감기’에 걸린 장혁
영화촬영 중 ‘수애 감기’에 걸린 장혁
  • 이희승
  • 승인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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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지만 수애와 진한 로맨스 연기한 느낌”

【인터뷰365 이희승】장혁과의 만남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수다스럽지만 진중한 남자’.

예매율 1위를 지켜오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감기’로 인해 각종 토크쇼와 예능에 출연하고 있는 장혁을 만났다. 본명은 정용준. 그를 만나러 가는 질문지에는 있었지만 왜 예명을 장혁으로 했는지는 끝까지 물어보지 못했다. 소문(?)대로 그는 지치지 않는 ‘말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수다라고 하기에 그가 말하는 단어와 비유의 향연은 기대 이상으로 탁월했다. ‘반항아 이미지’로 성공적인 데뷔해 청춘의 아이콘으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었던 장혁이 맞나 싶었다.

정신없이 성공에 취해 있던 20대 후반엔 병역비리가 터졌고, 제대로 된 군복무 후에는 오래 사귄 여자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는 생소했던 ‘연상부인에 속도위반’이란 꼬리표를 달았지만 그것조차 자신만의 치밀한 계산이었단다. 이쯤 되면 사고는 사고대로 치면서도 늘 A를 받는 반장을 보는 듯한 얄미움이 치솟는다. 하지만 말을 나눠 볼수록 장혁과 정용준 사이의 간극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작품성 있는 드라마에만 ‘골라 출연한다’ 싶을 만큼 장혁의 필모그라피는 화려하다. ‘고맙습니다’나 ‘추노’ ‘뿌리깊은 나무’ 등등, 이쯤 되면 장혁만큼 성공적인 연기자가 어디 있나 싶기 때문. 영화에서의 성적은 이제 ‘감기’로 인해 흥행배우로 거듭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치사율 100%인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가 뒤덮인 도시의 구조대원 ‘지구’다. 자신의 예명과 마찬가지로 외자인 캐릭터를 맡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가 끝나면 전 캐릭터와 칼같이 이별해요. 그래야 또 새로운 연기를 하죠.”

개봉 전부터 예매율이 남다르다.

그것보다 먼저 묻고 싶다. ‘감기’ 어땠나.

김성수 감독님만의 색채는 없다는 느낌은 들더라.

나는 감독님 때문에 출연했다. 스태프들도 그래서 모인 사람도 많았다. 캐릭터상으로 좀 영웅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멋은 있는데 구조대원 같지는 않았다. 난 완성작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운 점은 없지만 편집된 부분이 많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쯤하면 대놓고 감독을 디스하는 건가?(웃음)

‘감기’는 재난영화라기보단 체험을 주기 위한 영화에 가깝다. 나는 ‘감기’가 김성수 감독님의 전작 ‘무사’와 무척 비슷하다고 봤다. 고려시대 무사의 이야기에서 배경만 현대이고, 바이러스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기’는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군상을 다룬 영화다. 누군가는 극중 대통령, 혹은 엄마의 입장에서 볼 테니까.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다.

듣고 보니 비슷하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촬영을 하면서 무서웠다. 다큐멘터리로 봤던 걸 실제로 체험하게 되니 아무리 연기라도 굉장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2003년 사스가 있었고, 최근에는 신종플루가 유행이었지 않나. 그때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됐을 댄데, 어떤 소문, 루머 등이 정말 많이 와 닿았다. 그런 경험들이 ‘감기’의 내 캐릭터를 완성했다.

지구라는 역할은 뼛속부터 구조대원인 것 같다.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인데도 ‘치료될 수 있겠지?’라며 끊임없이 희망을 거는 남자다. 사실 미르(박민하)가 없다면 아마 사람들이 가는 대로 가는 남자였을 거다. 지구의 대사 중에 ‘남들이 나올 때 나는 들어간다’는 게 있다. 몇 개월 동안 소방학교 가서 실제 대원들이 테스트받는 건 모두 다 했다. 훈련보다도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와 닿고 좋았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감기’에서 감기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구조하는 구조대원을 연기한 장혁과 수애

앞서 말한 대로 여러가지 인간 군상이 나오는 점은 ‘감기’를 보는 재미더라.

영웅적인 심리는 어느 사람에게나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알고. 시나리오 자체에 ‘에이, 정말 말도 안돼’라는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의 경우 구조대원들과 실제로 어울리면서 왜 소방대원이 되려는지를 물어봤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캐릭터가 되어야 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소방대원이니까 그런 ‘척’을 안해도 되지 않나. 그런 척도 안 느껴지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전형적인 연기를 빼려니 그게 너무 힘들었다. 만약 김밥을 예로 든다면, 많은 사람들이 ‘김’하고 ‘밥’이 들어가는 게 전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름이 김밥이니 그건 당연한 거고, 소시지랑 시금치가 들어가는 게 전형적인 거다. ‘감기’에서 구조대원 역할을 하면서 그런 속재료들을 빼버리려고 무척 노력했다.

꽤 멋진 말이다.

(이)범수형이 말해 준 거다.(웃음) 당연한 캐릭터를 당연히 연기하라는. ‘감기’의 경우 다큐멘터리로 갈 것이냐 영화적인 걸로 풀어낼 것이냐를 확실히 해야 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조만간 감독 데뷔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단코 나는 감독의 그릇은 아니다. 배우의 그릇이다. 연출을 잘한다고 훌륭한 감독은 아니다. 얼마나 사람을 그릇에 담느냐가 관건이란 걸 깨달았거든. 배우를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그런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성격 자체가 어디서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감독은 특히 머리로 승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웃음)

요즘엔 할리우드 진출과 감독 겸업이 배우들 사이에서 유행 아닌가.

있는 곳에서 잘하자 주의다. 일단 영어가 유창하질 않으니까. 사실 기회는 있었다. ‘그린 호넷’이라고.

주걸륜이 한 바로 그 역할?

러브콜은 왔지만 내가 할 자신이 없었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운이 좋아 가서 하긴 싫었달까. ‘해외 진출 못합니다’ ‘안해요’가 아니다. 나중에 상황이나 준비가 더 잘 되면 못 갈 이유는 없지만 내 베이스는 한국이라는 거다. 여기서 충실해야지 뭔가를 해도 하는 거라고 본다. 여기 찔끔 저가 찔끔하기 싫다. 작품의 완벽함보다는 내가 연기를 하는데 어색하는 게 싫어서인데 성격이 꼼꼼하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두 아들에게는 어떤가.

배우를 시킬 생각이 있냐는 질문이라면 내 꿈이 원래 선생님이나 직장인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6시에 퇴근하고 싶어서. 아버지가 현대건설에 있으면서 사우디에 나가 계셨다. 1년에 만나는 게 보름도 안됐으니까. 그러다 한국에 들어오셔서는 지방에 나가 계시느라 또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18살부터 아버지랑 한 집에 살게 됐는데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 그런데 내가 연기를 하다보니 현장에 많이 있어서 아버지가 나에게 한 것과 같은 똑같은 부재가 반복됐다.

그래서 아이들은 배우를 안 시킬 건가.

배우가 되려고 한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적극적으로는 지원은 안할 거다. 특히 어렸을 때는. 내 기억에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이미 연기에 너무 빠져 그 또래의 느낌이 없다. 아내가 춤을 전공하고, 난 배우라서 그런지 두 아들 모두 표현력이 남다르다. 몸의 움직임도 또래보다 좀 예술적이긴 하다.(웃음)

“군대 2년 말고는 내가 한 것이라고는 연기, 또 촬영장 말고는 가는 곳이 없었다.”

여태껏 한 연기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역할이 있나.

난 촬영이 끝나면 바로 그 캐릭터를 보내 버리는 타입이라...(웃음) 굳이 꼽자면 ‘불한당’은 보내기 힘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연기가 가능할까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 역할이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노, 포기, 애원, 슬픔 등을 다 연기해야 했거든. 시청률 10%도 안 나와서 현장을 즐긴 점도 있다. 그때 함께 연기한 동료들이 이다해와 김정태였다. 셋이서 ‘시청률도 안 나오는데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했더니 현장이 정말 재미있더라. 지금은 나이도 들고 뭔가 좀 놓고 가려는 느낌이 있다. 쥐어짜거나 던지는 연기보다는 누군가를 받쳐주고 듣는 연기를 더 하고 싶다.

윤계상씨가 그룹 ‘g.o.d’를 관두고 연기를 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장혁을 꼽았었다.

그때 숙소를 같이 썼다. 가수인데도 항상 내 연기를 받아주고 리액션을 해줬다. 머릿속에 연기밖에 없었을 때였다. 내가 ‘열혈남아’라는 책을 썼는데 70% 이상이 다 연기 현장의 이야기다. 군대 2년 말고는 내가 한 것이라고는 연기, 또 촬영장 말고는 가는 곳이 없었다. 책을 쓰면서 ‘모델’이라는 드라마로 96년도에 데뷔하고 ‘짱’ ‘햇빛속으로’를 연속으로 들어가고 영화 ‘ 화산고’를 들어간 뒤 일주일만 쉬고 모두 작품을 연달아 했더라. 다른 배우들처럼 한달 이상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거의 미쳐 있었다고 봐야지.

그러다가 군대 문제 터졌지 않나. 사실 군대 버라이어티인 ‘진짜 사나이’의 출연도 의외다. 다시는 가기 싫을 것 같은데.

내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20대 후반에 그 일이 생기고 나서 내가 밟아온 길들이 사라진 걸 느꼈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되고 지금 되돌아보니 그 이후 걸어온 발자국들이 인상적이지 않다. 솔직히 ‘진짜 사나이’ 촬영은 아주 힘들다. 그 부대의 특성 훈련을 압축해서 경험해야 하니까. 하지만 1주 빡세게 고생하면 3주간은 힐링되는 느낌이다.

아내가 출연을 반대하지 않나.

같은 예체능 계열이라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웃음)

그렇다면 상대 여배우에 관해서도 노코멘트?

당연하다. 나는 꼭 다시 호흡 맞추고 싶은 배우가 두 명 있다. 수애와는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고, 공효진과도 꼭 하고 싶다. 공효진은 당시 공중파로 나가기엔 문제가 있었던 나를 다시 불러줬다. 수애의 경우 차갑고 말수 적을 거란 느낌과 전혀 다른 성실하고 노력하는 배우란 걸 ‘감기’찍으면서 알았다. 재난영화를 찍었지만 수애하고는 진한 로맨스를 연기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둘 모두 감독에게 캐릭터가 아닌 그냥 ‘장혁’과 ‘수애’로 연기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성향이 같아서 인지 정말 죽이 잘 맞았다.

‘감기’를 같이 찍어서가 아니고?

아니다. 수애의 경우에는 등장 자체만으로 롯데월드에서 신밧드의 모험을 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두운 동굴이 지나 밝은 세상을 맞이하는 느낌. 마동석, 유해진 등과 함께 모여 풍요로운 이야길 많이 나누다가도 수애가 가면 서로 얼굴도 안 봤다. 서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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