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로 꿩을 잡는 사냥꾼, 무형문화재 박정오
매로 꿩을 잡는 사냥꾼, 무형문화재 박정오
  • 김우성
  • 승인 200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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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명맥을 이어온 ‘사냥꾼’을 만나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예부터 꿩고기가 귀한 탓에 대신 닭고기를 떡국에 쓰면서 생겨 난 속담이다. 설이 되어도 매사냥꾼 ‘봉받이(꿩을 잡기 위해 길들인 매를 날려 보내는 사람)’ 박정오(67)씨는 떡국에 사용할 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전라도 민요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후여 후여...”라는 까투리타령의 가사 그대로 엽총 대신 자신이 직접 기르는 매로 꿩 사냥을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민요의 고장답게 전북 진안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팔뚝 위에는 매서운 발톱과 눈매의 큼직한 송골매가 긴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꿩을 보면 가차 없이 낚아챌 듯한 무서운 몸짓이었다. 가까이 다가서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30여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매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는 한갓 노리개에 지나지 않을 만큼 매를 다루는 솜씨가 느긋했다.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기르듯 방안에서 매와 숙식을 함께 하며 가족처럼 돌보는 탓에 매도 주인을 알아보고 순종하는 까닭이다. 현재 그의 집에는 ‘보라매’ 한 마리와 송골매인 ‘산지리(山陳)’ 한 마리가 각각 사육되고 있다. 매사냥꾼 세계에서는 부화한 지 채 1년이 안 되는 새끼 매를 보라매라 하고 1년이 넘은 매를 가리켜 산지리라고 한다. ‘송골매’는 사냥용 매를 칭하는 말이다. 그가 꿩을 잡으러 나갈 때 쓰는 송골매는 길이 들어있는 3년생 산지리를 주로 이용한다.




한 번 사냥을 나가면 보통 몇 마리의 꿩을 잡는가. 잡목이 우거진 산에서 꿩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사냥의 성공률이 우선 궁금하다.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많을 때는 하루 종일 10마리 이상도 가능하다. 진안은 고원지대인 데다 산이 많고 해서 예전부터 야생 꿩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꿩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발견하면 산지리가 거의 놓치지 않고 낚아챈다. 굳이 성공률로 말한다면 80~90% 정도는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즘은 우리 지역이 수렵 허가지역으로 되어 있어 각지에서 엽사들이 몰려와 예년에 비해 잡는 재미가 덜하다. 그러나 꿩 사냥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협동으로 하기 때문에 한 번 나가면 실패할 확률은 적다.



그에 따르면 예부터 길들인 매로 꿩을 사냥하는 것은 먹고 살만한 한량들의 놀이에 속했다고 한다. 매사냥꾼인 봉받이 외에도 꿩이 어디 있는지 작대기를 두드리며 찾아내는 ‘털이꾼(몰이꾼)’과 꿩과 매가 날아간 방향을 알려주는 ‘매꾼’ 등 적어도 4~8명을 고용해 협동으로 사냥을 하기 때문에 아무나 사냥을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귀족 스포츠였던 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때부터 ‘응방’이라는 매사냥 전담 관청을 둘 만큼 왕족을 비롯한 상류계층에서 매사냥을 즐긴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냥에 쓰이는 매는 어떻게 구하는가. 살아있는 매를 잡아야 할 텐데 매는 철새인 데다 희귀조류여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이 아닌가.

매를 함부로 생포해 사육하는 것은 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육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 경우는 매사냥 보유자로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매를 받을 때는(매사냥꾼들은 매를 ‘잡는다’는 표현 대신 ‘받는다’고 한다. 귀한 매를 인격체로 깍듯하게 예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물을 이용해 받는다. 막대기를 V자형으로 설치 한 뒤 그물을 쳐 매를 유인한다. 매의 먹잇감으로는 살아있는 집비둘기를 이용한다. 매는 시력이 좋기 때문에 인근 상공에 매가 나타나면 쏜살같이 달려든다. 재수 좋은 날은 가자마자 매를 받는 때가 있다. 그러나 운이 없으면 위장막 속에서 밤낮 보름을 기다려도 허탕을 치는 수가 있다. 고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매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를 생포하는 것과 매를 길들이는 일이다. 그가 매를 함부로 생포하는 것은 아니다. 사육 중인 두 마리 매 가운데 한 마리가 죽거나 달아나는 등 없어졌을 때 예비용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 5마리까지 매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생포한 매는 사냥에 쓸 만한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날려 보낸다고 한다. 그게 과거부터 내려오는 매사냥꾼의 수칙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매를 생포해 길들이는 데는 보통 한 달 가량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거의 밤잠을 설치며 매와 동고동락을 함께 한다. 처음 매를 받고 나면 사흘 정도 일부러 먹이를 주지 않고 굶기는 것이 원칙이다. 허기진 상태에서 먹이를 줌으로써 주인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채게 한다. 동물의 먹이 본능을 이용해 복종심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다. 쥐가 흔하던 시절에는 지방성분이 적은 생쥐를 먹이로 주었으나 쥐가 귀해지면서 그야말로 매가 좋아하는 꿩 대신 생닭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사냥용 매는 돼지고기처럼 기름기가 많은 먹이를 주지 않는다. 매의 생명인 눈이 멀어지기 때문이란다.


박씨는 매사냥에 필요한 기능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사냥용 그물을 비롯해 송골매를 추적하는 데 필수적인 ‘시치미’와 방울도 직접 제작한다. 새의 깃털로 만드는 ‘시치미’는 방울을 매달아 매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 이용되는 것은 물론 거기에 이름을 적어 매의 주인임을 밝히는 데도 유용하다. ‘시치미’는 매의 꼬리 깃털 12개 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중앙의 깃털 2개에 묶어 매단다.




매가 꿩 사냥을 하는 도중에 야성이 발동하여 달아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도망가는 수가 있지만 일행인 ‘매꾼’들과 같이 추적하면 된다. 그리고 집에서 인공사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멀리 산속으로 달아나지 않고 대부분 가까운 민가 근처로 숨어드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과 달리 매사냥이 흔하던 옛날에는 자기 집으로 날아든 매의 시치미를 잡아떼고 자기 것으로 우기는 수가 많았다고 들었다. 우리가 흔히 대화중에 오가는 ‘시치미를 잡아떼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재미있는 어원이 아닌가.


꿩을 잡은 경험이 많은 만큼 꿩 요리도 잘 할 것 같은데...

고기가 귀한 시절인 옛날에는 꿩 한 마리로 가마솥에 꿩국을 한 솥 끓이는 경우도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동네잔치를 할 정도였다. 요즘은 꿩 사육농가가 많아 꿩고기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지만 야생 꿩은 여전히 귀하다. 사료를 먹고 자란 꿩과 달리 야생은 독특한 맛이 있다. 꿩고기를 이용한 요리는 육회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설에 먹는 꿩 떡국이 가장 보람 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한다.




진안에서도 박씨가 살고 있는 백운면은 꿩의 서식지로 알맞은 곳이어서 전통적으로 매사냥꾼을 배출한 고장으로 유명하다. 매사냥의 기능보유자였던 작고한 전영춘, 김용기 씨가 그들이다. 그의 매사냥도 김씨로부터 배운 것이다. 엽총을 이용한 현대의 수렵방식에 밀려 자칫 맥이 끊어지기 쉬운 전통 수렵문화인 매사냥을 보존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능을 아들 신은(41) 씨에게 전수하고 있다. 매사냥을 배우려는 희망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전수자로 택한 것이다.


매사냥은 단순히 꿩이나 토끼 같은 야생조수를 포획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맹금류인 매를 활용해 협동심을 기르며 공동으로 즐기는 사냥놀이라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아의 기개와 멋이 담긴 전통 수렵문화로서의 보존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까투리타령>의 민요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까투리 한 마리 부두둥 허니 매방울이 떨렁 우여우여 허허 까투리사냥을 나간다.” 그러나 일정관계로 까투리사냥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틈틈이 매의 깃털을 쓰다듬고 있는 박씨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그것은 전통문화의 맥을 대대로 잇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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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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