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애니메이션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관동대지진 애니메이션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 이희승
  • 승인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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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니메이션은 꿈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단”

【인터뷰365 이희승】백발의 소년을 보는 듯했다. 72살의 나이에도 수동 클래식카를 직접 몰 정도로 정정했다. 최근 몇 년간 제작에만 몰두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신작을 내놨다. 직접 기획과 각본, 연출을 맡아 5년 만에 내놓은 지브리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개봉 첫 주 150억엔이 넘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일본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상태다.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 이바리키에 있는 하야오의 작업실에 한국 취재진이 방문한 26일 오전에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스튜디오 관계자들까지 짐짓 들뜬 분위기였다. 하지만 노장 감독은 부끄러울 때마다 짓는다는 아이 같은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일어서서 질문하는 기자에게는 서서 답을 하고, 더운 실내 공기에도 재킷을 벗지 않았다. 같이 자리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편안한 슬리퍼에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전 세계의 취재진들이 앞다투어 방문하지만 이번처럼 자신의 아틀리에를 공개해 취재진을 맞이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 했다. 그가 한국 취재단에게 사진까지 보내 부탁한 것은 ‘마당 입구에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나무뿌리를 밟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었다.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는 실존인물인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다. 관동대지진과 세계대전의 바람이 불어 닥친 당시 일본을 배경으로 10년간의 비극적인 현실을 살았던 두 남녀의 애틋한 감정을 담았다.
이날 취재진은 영화 관련 이야기만큼이나 영화 외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극우인사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 한․일간 얽혀 있는 현안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숙명적인 것이었다. 영화 외적인 질문이 나와도 표정의 온화함은 바뀌지 않았지만 딱 한번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지브리는 왜 3D영화를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바람이 분다’를 보니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가 생각난다. 극중 지로도 그렇고 전쟁은 곧 파멸의 길이라고 본다. 캐릭터를 구성하는 조건이 있나.
돼지라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붉은 돼지’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바람이 분다’는 실제 인물로 작품을 만들었으니 차이점은 분명 있다. 작품을 만들 때는 하나의 주제를 먼저 정하는데 ‘바람이 분다’의 경우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단죄가 될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웃집 토토로’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방안에서 내 작품을 보는 꼴이 됐다. 결국 내 의도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좋은 결과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영화 속에 관동 대지진이 실감나게 등장한다. 3.11 지진의 영향이 있는 건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재 일본의 사회상도 많이 연상되는데.
그 콘티를 그리고 나서 실제로 3.11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이 아틀리에 2층에 있었다. 지진의 여파가 점점 심해졌기에 나 역시 ‘이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태프 중 ‘더 이상 못 만들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도 그 생각이 맞았다고 본다. 나는 재난 영화를 만들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관동 대지진은 일본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가 당시 9살이었는데, 그 전의 일본은 굉장히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지진 후 모든 게 타버리면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실존인물을 소재로 만든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과거 ‘창조적인 시간은 10년이면 충분하다’는 발언을 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애니메이션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꿈이다. 올해로 애니메이터가 된 지 50년이 넘었다. 현재 애니메이션은 꿈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단이 됐다고도 생각한다. 때문에 없어져도 되는 애니메이션도 탄생했다. 나의 그 발언은 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이 돼서 뭔가를 다 안 듯한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창조적 10년이 끝났다고 표현했다.


극중 주인공이 만든 비행기에 한국인 징용자들이 타서 한국 개봉 때 논란이 될 수 있다.
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비행기는 막상 전쟁용으로 쓰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제로센으로 알려진 비행기는 구식이어서 당시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많은 압박을 받았지만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인물이었다. 단지 전쟁이 끝나서도 그 회사에 계속 몸담았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안고 살아야 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전쟁에 가담했던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는 좋은 아버지였던 것처럼 무조건 그 시대에 살았다고 해서 나쁘게 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업고 가야 하는 건 운명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당신의 위안부 발언과 헌법에 대한 의견이 큰 화제다.(하야오는 최근 스튜디오 지브리의 소책자 '열풍'(熱風)에 아베 정부가 혼잡한 틈을 악용해 즉흥적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건 당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선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한 것뿐이다. 아직도 그 생각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지금 세계가 크게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위험해질 수도 있다. 지브리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실린 내용이 인터넷에서 화제인 것 같은데 나는 정작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
1989년에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같은 시기에 소련도 붕괴됐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일본인은 역사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사과했어야 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게 수치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일본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만 이야기한다. 영화에 대해서도 언제부턴가 흥행수입이 얼마인가에만 주목하지 않나. 이 같은 상황이 나는 매우 슬프다. 스포츠 선수들의 상금이 얼마인지, 사람들이 얼마를 버는지는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였던 시대도 있었는데...


소재적 특성상 기계적인 사운드가 많이 들어가야 했지만 극중 프로펠러나 지진 소리가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들었다. 전작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한 이유가 있나.
(이 부분에서는 스즈키 토시오에게 대답을 미뤘다.) 세계적으로 영상뿐 아니라 소리에 대한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다. 5.1채널에서 8.1까지 점차 세밀한 소리까지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까? 이렇게 정밀해지기만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고민을 할 때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간의 소리로 모든 소리들을 내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더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
할리우드나 여러 곳에서 애니메이션이 3D로 제작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브리는 여전히 2D를 추구하고 있는데 3D 애니메이션을 만들 의향은 없나?
(단호히) 없다.


‘바람이 분다’는 그동안 배우등 유명인을 성우로 썼던 것과 다르다. 감독을 성우로 기용할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나와 30년지기다. 그동안은 전문 성우나 배우들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신선함이 떨어졌다. 이에 영화를 더 사실적으로 살리고 싶어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게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정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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