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는 돌직구 영화”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는 돌직구 영화” 봉준호 감독
  • 이희승
  • 승인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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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스는 안을 보고 송강호는 밖을 봤다”

【인터뷰365 이희승】봉준호 감독의 별명은 ‘봉테일’이다. 매 신마다 그냥 지나쳐도 될법한 디테일을 꼼꼼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함께 한 배우도 스태프들도 모두가 동의했지만 적어도 본인 자신은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괴롭다”고 토로한다. ‘살인의 추억’ 때 자신도 모르는 해석서가 나돌았을 때 “나도 놀랄 내용이 50% 이상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오는 8월 1일 개봉예정인 ‘설국열차’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개봉 10일 전부터 예매율 1위를 차지하고, 한국 최고의 제작비인 4백 몇십억 원부터 167개국에 선판매됐으며 개봉 전 이미 ‘최초’ 혹은 ‘최고’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그저 즐겨 달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왼쪽 팔에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했다는 비둘기 문신처럼, 평화롭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모습을 보고 싶은 감독으로서의 진심이 묻어났다.
‘설국열차’ 언론시사회 이틀 후 별도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 봉 감독과 마주 앉았다.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108kg까지 나갔다더니, 지금도 앞에 아이스크림이 놓여있다.
요즘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주문했다.(웃음) 메뚜기도 한철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 끽해야 3년에 한 번인데 이 정도 인터뷰쯤이야. 지금은 99kg까지 줄였다. ‘설국열차’ 촬영장이 체코이다보니 모든 식사가 기름졌다. 우리식으로는 ‘밥차’가 거기서는 케이터링으로 지급되는데 대부분 기름지다보니 체중이 늘지 않을 수 없었다. 10개월 정도 체류하면서 물컹한 지방만 늘었다.


굳이 촬영지를 체코로 한 이유가 있나.
우여곡절이 많다. 나라고 왜 한국에서 찍고 싶지 않았겠나. ‘기차는 길다’는 말처럼 세트장이 기차 50칸 정도는 들어서야 했다. 한 칸이 25미터 정도 되는데, 국내엔 없고 미국은 있어도 너무 비쌌다. 체코나 동유럽의 경우 독특한 중저예산 영화가 많이 촬영되는 곳이고, 할리우드에서도 ‘설국열차’는 인디SF영화라고 불릴 정도라 그곳에서의 촬영이 가장 적합했다.


완성된 배경은 화려했지만 현장은 남달랐다고.
홍경표 촬영감독이 “사북 막장에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봉고차가 세트장으로 우리들을 태우고 가는데 무슨 인력시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마더’의 경우 전라도 음식에 이산저산 옮겨 다녀 천국이었는데 말이지.(웃음) 우리끼리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광부들 같다고 웃었을 정도다. 이렇게 세트 촬영을 많이 한 적도 처음이었다.


그래도 철도 장면은 실감나더라.
정말 만족한다. 짐벌이라는 특수장치를 이용해 세트를 실제로 기울이거나 움직여서 촬영하는데 기차칸이 흔들리는 장면이 실감났다. 카메라로만 하면 한계가 있는데 기차에서만 있는 움직임이 잘 살았다. 영화가 잘 되면 테마파트에 대한 기대까지 하고 있다. ‘설국열차’ 의 영문명인 ‘Snowpiercer’라고 하면 잘 될 것 같다.


‘설국열차’에 출연하는 쟁쟁한 외국 배우들. 봉 감독은 특히 틸다 스윈튼이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기차의 모든 객실이 나오지 않는다. 감독으로서 그 부분을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했나.
원작에서는 1001칸이다. 영화는 100칸으로 봤다. 실제 세트는 26칸 정도? 길이로는 500m였지만 공터 같은 곳에서 한 줄로 세워 놓고 찍고 싶은 욕구가 종종 들었다. 진심으로 영상위원회나 지차체의 후원을 받아 홈그라운드의 혜택을 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영화에서도 풀샷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단 한 번도 꼬리칸과 맨 앞칸이 한 샷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상상하고 찍었다.


아직 개봉 전인데 해외에서의 반응이 상당하다. ‘플란다스의 개’의 실패 이후 상상도 못할 현실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설사 실패해도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미국 스태프들이 미친 듯이 이메일을 보내오더라. 국내 시사회에 버라이어티지 기자가 반응을 썼는데 그게 이슈가 된 셈이다. 사실 나는 실패했던 영화에 대한 느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영화를 지금은 없어진 명동 중앙극장에서 보는데 너무 무안해서 그냥 나왔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었는데도 얼음물을 볼 옆에다 대며 낯 뜨거움을 식혔을 정도다. 벌써 13년 전 이야기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마더’를 만들었다. 할리우드의 특수팀과 호흡하고, 일본 자본의 투자를 받아 봤으며, 일본 영화 ‘도쿄’를 찍으며 생판 모르는 곳에서도 작업을 해봤다. 원동력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머뭇거리지 않고 그냥 하게 됐던 게 지금까지 온 것 같다.


틸다 스윈튼부터 에드 해리스 등 유명 배우가 줄줄이 출연한다. 주인공인 크리스 에반스의 경우 ‘어벤져스’나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배우다. 합리적인 개런티로 출연했다고 들었다.
틸다 스윈튼이나 에드 해리스 같은 경우는 워낙 내 영화를 좋아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캐스팅까지 순조로웠고. 크리스 에반스는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끼리 ‘캡틴 아메리카가 온다고? 와우~’ 했었다. 솔직히 같은 CAA에이전트 소속이라 쉽게 이뤄진 것도 있다. 오죽했으면 워낙 몸값 높은 그가 한 토크쇼에 출연해 “작지만 좋은 영화를 찍고 있다”고 우리 영화를 표현했을까.(웃음) 제작비 400억 원대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감독과 배우로서는 아주 편한 사이였고, 대신 서로의 변호사들은 치열하게 계산을 하며 자판을 튕긴 걸로 알고 있다. 그가 맡은 크리스라는 역할은 혁명을 꿈꾸지만 섬세한 면이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에게 근육만 좀 감춰 달라고 했다. 지방만 있는 내 몸과는 달리 모든 부분이 돌처럼 딱딱했다.


개인적으로 ‘설국열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가.
마지막에 송강호와 크리스 에반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반란과 혁명을 꿈꾸지만 현재에 머무르고 있는 커티스란 캐릭터와 미래 비전을 말하는 남궁민수의 교차치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극중 통역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아의 방주 같은 기차니까 영어가 주이지만 언어는 다양할 거라고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이야말로 SF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설국열차’는 노아의 방주면서 바벨탑이나 다름없기에 그 부분에 착안해서 언어가 갈라지고, 그걸 통역하는 기계가 있을 거란 설정에서 들어간 장면이다. 요즘은 앱에서 실제적으로도 그런 게 나오기도 하더라.


흡사 데칼코마니 같은 송강호의 극중 모습과 봉 감독의 연출 현장 모습.


부녀지간으로 나오는 송강호와 고아성의 관계가 ‘괴물’과 겹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시나리오 전에 섭외하고 믿고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에 버금가는 캐스팅은 없다고 본다. 영화 ‘마더’도 김혜자 선생님이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두고 쓴 시나리오다. 만약 출연을 안 하셨다면 영화를 엎었을 거다. 같은 맥락이다. 감독으로서 두 사람은 무궁무진한 영감 덩어리기도 하고.


송강호 역시 내 최고의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라고 말한 적 있다.
박찬욱 감독님 앞에서는 ‘박쥐’, 이창동 감독님 앞에서는 ‘밀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웃음) 나는 내 영화가 그 배우의 최고작이었으면 하는 ‘어린’ 마음이 있다. (송)강호형이 그런 마음을 알고 하는 말이다. 요나 역할의 고아성은 기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피와 살인 같은 말도 안되는 현실이 당연한 캐릭터다. 한 번도 땅을 밟아 본 적이 없고, 사람이 죽어도 눈깜짝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배두나부터 고아성까지 캐스팅하는 여배우들의 기준은 무엇인가.
왜 김태희 같은 전통미녀가 아니냐고?(웃음) 캐릭터 자체가 엉뚱하거나 삐딱선을 타는 캐릭터가 많아서 예쁜 여배우들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마더’ 때 원빈의 팬들이 하네다 공항에 어마어마하게 모였는데 그걸 보고 속으로 겁났다. ‘바보로 나오는데 어쩌지’ 하고. ‘아저씨’를 보고서야 저런 멋있는 배우를 내가 왜 써먹지 못했나 후회했다. 나는 외모보다는 다른 걸 우선적으로 보는 것 같다.


기차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계급사회를 보면 ‘설국열차’를 단순히 영화가 아닌 정치적 해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연히, 노골적으로 그렇게 보일 거라고 봤다. SF 안에서의 정치적 영화라고 보면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떤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나. 그걸 박살내거나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꼬리칸을 탈출해도 어차피 기차 안이다. 남궁민수는 그 밖을 본 거고. 시스템에 안주하라고 하는 극중 절대자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말에 99%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 인간들의 솔직한 모습이다. 그게 정치적이라면 정치적인 거겠지. 개인적으로는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메이슨 총리가 가장 애착이 간다. 옛말에 거지가 완장 찬 꼴이라는 말처럼 그는 속물적이고 과시적인 인간의 전형이다. 극중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옷차림부터 코트를 돌리는 몸짓과 손가락 하나까지가 꽤 의미심장하다.

봉준호 감독은 “아직도 실패했던 영화에 대한 느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팔에는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새겼다는 비둘기 문신이 날고 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싫다더니, 꽤 디테일한 설정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핵심적인 건 배열하지만 전혀 아닌 소품까지 해석하려 들어서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싫어하는 거다. 그 별명을 의식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난 돌직구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설국열차’가 바로 그런 영화다.


그렇다면 가장 듣기 행복한 말은 뭔가.
화장실 가는 순간에 휘발되는 영화들이 있다. 아들의 손잡고 가는 여름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들은 두뇌 순환 차원에서 봐줘야 하지만 적어도 내 영화는 보고 나서도 계속 잔상이 남는 영화였으면 한다. 내 아들? 미술 한다고 한다. 감독 말고.(웃음) 이야기가 샜지만 음....언론 시사회 후에 누가 트위터에 ‘‘설국열차’를 보고나니 어느 순간 퇴근길에 전철 맨 앞칸으로 가고 있더라‘고 올린 걸 봤다. 그런 말이 가장 듣고 싶다.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167번 개봉해야 하는데 모든 걸 즐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다 잘되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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