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절의 상징 ‘안동유지’ 복원 중인 김진득
전통예절의 상징 ‘안동유지’ 복원 중인 김진득
  • 김우성
  • 승인 201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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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제작 세 겹 한지에 국산 생 들기름 1천 번 먹여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근처에만 가도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엄숙한 전통이 느껴지는 곳, 유교문화가 곳곳에 살아있는 경상북도 안동에 가면 유독 들기름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곳이 있다. 제사상 위에 펴놓는 좌면지를 복원 중인 김진득 씨의 작업실이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지가 황금빛 유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예부터 양반가에서는 조상을 받드는 마음에서 세 가지 흰색 상징물을 두었다. 제사상 위쪽 천장에 설치하는 역막(흰 천막), 아무런 글자가 없는 백병풍, 제기를 놓기 전에 상을 덮는 좌면지다. 갈수록 제사상이 간소화하면서 이 같은 제례용품들을 보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는 ‘안동유지’라는 독자적 상표의 좌면지를 옛 방식 그대로 복원해내고 있다.

그의 작업장에 들어서면 일단 고소하면서도 묵직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유지의 주재료인 들기름이 숙성된 냄새다. ‘유지’란 말 그대로 기름종이다. 일반 가정 제사상에 얇은 한지가 일회성으로 오르내리는 것에 반해, 세 겹을 겹친 한지에 기름을 먹여 숙성시킨 유지는 어지간해서 음식물이 스며들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유지의 진가는 묵을수록 빛을 발한다. 막 만들어냈을 때는 경쾌한 색감을 띠는데, 해를 넘길수록 빛깔이 더욱 무르익어 고와진다. 빛깔 좋은 유지 위에 정갈하게 차린 제기들을 올려놓으면 제사상이 더욱 경건해진다. 음식물이 묻어도 닦아내기만 하면 될 뿐이어서 관리여부에 따라 3대까지 사용할 수도 있다. ‘제사’라는 의식 안에 남겨진 후손들도 위로를 받고 화합하는 의미까지 담겨있음을 생각해볼 때, 이보다 요긴한 소품이 있을까.

안동유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현해 보이겠다던 그가 작업대 뒤에 병풍을 세우더니 미리 만들어진 유지로 주변을 빙 둘렀다. 단아한 한복으로 갈아입으며 서구식 복장도 모두 벗었다.

 

“종이 한 장이지만, 제사상에 펴놓을 때와 그렇지 않은 때는 제사 모시는 기분이 천지차이 입니다. 유지를 깔면 제사상이 신성해진다고 할까요. 괜히 옷차림이라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분위기가 엄숙해집니다. 제가 장손입니다만, 유지를 깔아 제사상을 차리고 가족들 얼굴을 한 번 보는 순간 제주로서의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평상시 밥상과 분명한 차이를 두게 하는 효과가 있지요.”

 

 

 

 

참기름 아닌 들기름 사용하는 건...

 

안동유지의 핵심은 한지다. 안동에는 예천 등지에서 재배한 100% 국산 닥나무를 원료로 하는 한지공장이 있다. 대형 한지공장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김 씨는 이곳에서 유지에 쓰일 한지를 특별 주문한다. 가로 1m50cm 세로 93cm가 한 상 크기다. 작은 크기의 한지도 주문하는데, 향을 놓는 상을 위한 용도다.

 

“보통 한지는 얇지 않습니까. 제가 주문하는 한지는 세 장을 압착한 것입니다. 이때 한지와 한지 사이에 공간이 뜨면 안 되는데 육안으로는 발견할 수가 없어요. 유지 제작에 들어가서 들기름을 바르고 숙성되었을 때에라야 하자가 보입니다. 불량률이 20% 가까이 되는데, 특별 주문이라 반품도 불가능해 안동유지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유지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안동유지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제작과정이 간단치 않다. 사전에 국산 들깨를 직접 짜서 들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몇 번의 정제과정을 거쳐 불순물도 없애야 한다.

 

“참기름이 아닌 들기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향이 오래 가고요. 또 옛 어른들이 제사 때 들기름으로 불을 켜면 조상들이 보인다고 하셨거든요. 조상들이 좋아할 거라는 은유적 표현이었던 거죠. 이러한 이유로 들기름을 사용하게 됐는데 들깨를 볶아서 짜면 볶지 않았을 때보다 양이 세 배가 더 나옵니다. 하지만 안동유지에 사용될 들기름은 볶지 않고 그대로 짜낸 생 들기름입니다. 안동유지 색상의 비결이지요.”

 

유지에 기름을 찍어 바를 때에는 반드시 솔잎을 사용하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지의 재료가 되는 한지가 두꺼운 탓에 유지 속까지 기름이 깊숙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뾰족한 바늘 형태의 솔이 효과적이었던 것. 김 씨가 사용 중인 솔은 엄동설한 눈이 많이 올 때 채취해두었던 것이다. 솔잎이 싱싱하고 길어 최상의 작업을 가능케 한다.

재료가 준비되면 한지 위에 5cm 간격으로 500 회 정도 들기름으로 찍는 초벌 찍기를 한다. 초벌이 완료된 유지는 진흙 숙성실에 들어가 3일 간 숙성과정을 거친다. 숙성을 할 때는 들기름이 고루 퍼지도록 둘둘 말아 보관한다.

첫 숙성을 마치면 초벌 찍기 간격의 빈 공간에 또 500 회의 기름을 먹이는 두벌 찍기를 한다. 이를 다시 3일 간 숙성시킨다. 두 번째 숙성까지 마친 유지는 기름이 적게 먹은 부분을 검사하여 보완한 후 최종적으로 일주일 간 숙성한다.

보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만들어진 유지를 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완성된 안동유지는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4년에 걸쳐 들기름이 한지에 스며드는 자연 숙성을 해야 한다. 자연 숙성을 하는 동안 들기름 향은 보존되고 점차 황금빛으로 변해 가장 아름다운 색상으로 제사상에 올라간다.

 

 

 

 

“저도 처음에는 만들어놓은 유지가 잘 된 건지 아닌지 구분이 쉽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전체 색이 노르스름하게 먹은 유지를 보는데 대번에 ‘잘 나왔네’하고 느껴지더라고요. 몇 번을 숙성했는데도 들기름이 고르게 먹지 않은 것도 이제는 쉽게 찾아내어 파기합니다.”

 

선친 어깨 너머 배운 제작법으로 복원

 

제사 유지는 우리만의 소중한 문화이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중국에서는 제사 때 유지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탁자에 음식을 올린다.

우리나라 제사진행 절차와 순서는 왕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부 사대부 집안이나 부잣집에서 전수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을 그려 기록하기도 하고 글로도 전해 오지만, 유독 제사 유지에 대해서는 사료 보존이 전무한 상황이다. 경복궁 민속박물관에 ‘안동 권씨 문중에서 쓰던 제사 유지’가 제사 설찬도로 보존되고 있는 정도다. 옛 문헌으로는 ‘이조 영조왕 가례도감’에 선대왕들을 위한 제사를 위해 일종의 조달청과 같은 기능을 하던 장흥고에서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옛날에는 한지가 귀해서 왕실의 제사에만 유지가 사용됐으나, 닥나무로 한지 만드는 기술이 좋아지면서 안동지역의 일부 사대부 집안 제사에 쓰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다.

김진득 씨는 선친으로부터 유지 비법을 전수받았다. 정확히는, 어깨 너머로 배워두었던 기억으로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복원했다.

 

“아버님이 4~5년마다 한 번씩 유지를 만드셨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님이 만드시는 것을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지요. 당시 문종이가 귀해서 실습은 못해보고 옆에 밀가루 포대에 들기름을 칠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장남으로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만들어두셨던 유지가 몇 장 없었어요. 직계 제사 때 사용할 양으로는 문제가 없었는데 안동김씨 문중에서 아버님의 유지를 찾는 거예요. 혹시 만드시다가 남은 유지라도 없느냐면서 말이죠. 어떻게든 아버님의 유지를 복원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계기였습니다.”

 

낙관을 찍는 작업마저 쉽지 않았다. 기름종이다 보니 인주는 물론이거니와 시중의 어떤 재료로 찍어 봐도 흉하게 번지기만 했다. 직접 제작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실마리는 의외의 방법에서 풀렸고, 안동유지의 명성을 높이는 비법 중 하나가 되었다.

 

 

 

 

아들 부부가 복원작업 계승해 뿌듯

 

김 씨의 본업은 농부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유지 주문량이 일정 수준 모였을 때 비로소 날을 잡아 제작에 들어간다. 가격이 다소 비싸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작업비와 인건비 정도다. 큰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유지제작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나름의 목표가 있어서다.

 

“안동유지가 유명해지는 걸 바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저 유지가 젊은이들 사이에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게 숙원이지요. 특급호텔 등에서 식탁보 대신 유지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외국인들이나 비즈니스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 이게 뭐지?’하면서 자연스레 이야깃거리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김 씨의 자녀들은 안동유지 제작법을 계승하기 위해 열심이다. 직장에 다니는 장남이 요즘 안동유지 제작을 배우고 있으며 며느리도 작업을 돕고 있다. 유지가 구겨지지 않게 사각 보관함에서 원통형 보관함으로 바꾸게 된 것도 며느리의 제안이었다.

 

“원통형으로 바꿨더니 받는 분들이 모두 만족하시네요. 역시 젊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감각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아들 부부 없으면 주문량을 못 맞춰요. 하루에 15장 이상을 만들지 못하는데 지난 설에 주문이 하도 많아 며칠 동안 새벽까지 작업을 했어요. 그때 며느리가 도우면서 ‘아버님보다 잘 만드니 이제 일당 주셔야 합니다’ 하면서 웃는데 어찌 그리 예쁘던지요.”(웃음)

 

김 씨는 최근 안동유지에 표준화된 차림형식을 그려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집안마다 차림이 다르지만, 기왕 인터넷에 표준상차림이 돌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더욱 손쉽게 유지를 사용하게 하려는 아이디어다.

 

 

 

 

들기름에 적신 뾰족한 솔잎이 김 씨의 손으로 섬세하게 한지에 닿던 모습은, 자식들의 헤진 옷을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바느질에 비할만했다. 김 씨가 어떤 심정으로 유지를 만들어가는 지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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