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이어 ‘파파로티’, 명불허전 배우 한석규
‘베를린’ 이어 ‘파파로티’, 명불허전 배우 한석규
  • 이승우
  • 승인 2013.03.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대에 너무 빨리 많은 걸 얻어… 언젠가 내리막이 올 거란 생각에 늘 불안했다.”

【인터뷰365 이승우】질문을 하면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이 돌아왔다. ”글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왜 그럴까요?.”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인터뷰만큼은 되도록 피해왔던 한석규와의 인터뷰는 ‘취재’가 아니었다. 언제나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걸맞은 대답을 원하는 취재방식을 ‘대화’로 바꿔 놓는 노련한 배우가 바로 그였음을 인터뷰 말미에야 깨달았다.
인터뷰 내내 사람 좋은 웃음은 기본으로 생각보다 넉살도 많았다. 도리어 얼마 전 출연해 화제가 된 ‘힐링캠프’속 모습은 일종의 연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도를 넘는 솔직함이 인터뷰 내내 흘렀다. 어느 남자 배우가 왜 65kg을 유지하는지, 입에 착 붙는 욕이 왜 친근함을 유발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랴.
한국영화의 황금기인 1990년대 후반 모든 시나리오가 한석규에게 갔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나 이동통신 광고의 최장수 모델도 언제나 그였다. 오랜 기간 연애한 아내와 2남2녀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가정적으로나 작품적으로도 별다른 부침없이 꾸준한 배우가 그다.
충무로 시나리오가 모두 몰려왔던 그 시절 그때는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지독한 슬럼프에 시달렸다는 한석규를, 자신과 너무 닮아 끌렸다는 ‘파파로티’ 속 상진을 안주 삼아 마주앉았다. 한석규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배우 중 하나다. 둘 사이에 술은 없었지만 그의 매력은 상대방을 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를 피해 온 배우 중에 하나였다. 흥행작인 ‘베를린’ 때도 안했잖나.
그렇다더라. 왜 그랬을까? 난 단지 내가 한 말을 글로 나중에 접했을 때 너무 무안해서 그랬던 것뿐인데. 배우는 말로 하는 직업이 아니잖나. 연기로 보여주면 되는 건데 굳이 왜 나서나 싶었던 것도 있고. 그런데 이번엔 내가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 이번 영화 ‘파파로티’는 내가 할 몫이 컸다. 영화사인 KM컬쳐의 박무승 대표와는 ‘이중간첩’때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주연배우인 (이)제훈이가 군대를 간 상황에서 내가 못할게 뭔가 싶었다.

-장르가 다른 영화 2편이 개봉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97년도엔 3편이 개봉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제훈이가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앞부분을 몰아서 찍어야 했다. 나도 ‘베를린’ 촬영이 있었고, 둘이 겹치는 신을 먼저 찍어야 하니까 아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파파로티’의 개봉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장이 그만큼 변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장소(소공동 웨스틴 조선 호텔)는 나의 거의 마지막 인터뷰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그때 그 사람들’할 때 빌린 곳이다. 이렇게 인연이 돌고 도는 게 영화의 재미인 것 같다.

-‘파파로티’에서 피아노 치는 장면이 사실적이다. 연기라고 하기엔 깜짝 놀랄 정도로.
피아노가 상체만 찍어도 되는 거라 촬영상 커버하기 쉬운 악기라고 하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피아노를 못 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없었다. 원래 못 쳤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거든. 전체적으로 다른 사람이 치고 목 부분만 CG처리 해서 갖다 붙일 수도 있다더라. 그래서 집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많이 봤다. 정작 피아노를 치는 분들은 내 연기를 보고 웃을 걸?내가 너무 과하게 막 치는 연기를 하니까.(웃음) 사실 반주자는 거의 움직임 없이 정자세로 치는 분들이 많더라고.

-특히 집안에서 처음 장호(이제훈)과 집에서 반주를 하는 장면은 실제로 연기하는 것 같았다.
그 신은 감정적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개똥이라고 생각했던 애가 사실은 천재란 걸 발견했으니까. 질투에 꽉찬 살리에르의 표정이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찍었다. 특히 상진의 그런 느낌이 무척 공감 가서 연기 할 때 특히 신경 썼다.

-연기를 하면서 그런 배우를 만난 적이 있나. 살리에르의 질투가 이해될 정도로 부러운.
이번 영화에서는 오달수와 조진웅이 그랬다. 사실 연기라는 게 정도가 없는 거다. (연기하는)인물이 틀리면 한 가지 캐릭터도 다른 사람이 되듯이 이번엔 ‘파파로티’에서 이들이 없으면 어떻게 연기를 했을까 걱정될 정도로 감사했다. 그만큼 질투날 정도로 각자의 캐릭터를 잘 살리더라. 전에는 다른 걸 해 볼 수 있는 캐릭터에 끌렸는데 요즘엔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더 잘 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2013년 한석규의 영화 ‘베를린’과 ‘파파로티’

-그렇다면 한석규가 제일 잘하는 연기는 뭔가.
악인인지 선한 인물인지 모르는 그런 캐릭터를 맡으면 잘 할 것 같다. 한 단어로 규정짓지 못하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나는 후배들에게 항상 ‘연기를 왜 하냐?’고 물어본다. 오죽하면 진웅이는 내가 14번까지 물어봤다고 하더라. 그건 답을 들으려고 물어보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묻는 거지. 현장에서 대기하면서 왜 배우가 됐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진짜 한 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로 구질구질한 것도, 버라이어티한 것도 넘쳐 난다. 내 사연이 제일 재미없다.

-배우가 되려다 다쳐서 성우로 유턴한 것 말인가?
그렇다. 중고등학교 떄 합창반을 했기에 성악가를 어렴풋이 꿈꿨는데, 결국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허리가 다쳐서 ‘몸을 쓰는 직접을 가져야 되는데 허리가 이러니까 포기하자’란 생각에 성우 시험을 본 거지. 그러다 방송사 탤런트 공채 시험에 덜컥 돼서 배우가 된 거다. 정말 평범한 스토리다.

-사실 극중 상진은 음악에 대한 열정도 제자에 대한 애정도 없는 인물이다. 거친 욕을 입에 달고,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인데 자신과 ‘닮아서 끌렸다’라고 말한다.
나도 내 성격을 모른다. 되묻고 싶다. 스스로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낚시 좋아하고, 사람 많은 곳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정도는 설명이 되지만 그게 성격은 아니잖나. 나한테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이층의 악당’같은 성격이 모두 있기에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렵지만 ‘파파로티’의 상진은 나랑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 사실 원래 음대를 가고 싶어했기에 한때 꿈이 접힌 인물로 살았다. 그런데 결국엔 배우로 살고 있지 않나.
예전에 큰 형하고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은 분이 2명이라고 하더라. 초등학교 때 한 분. 고등학교 때 선생님 한 분.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 좋은 선생님, 멘토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컸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성악도도 꿈꿔봐서인지 이런 소재를 풀어냈다는 게 좋았다. 내가 보기에 상진은 복잡다단한 캐릭터다. 오늘이 내일이고, 모레도 오늘 같은 그런 선생인데 제자를 통해 꿈을 이룬다는 게 좋았다.

-극중 콩쿠르 장면에서는 다치기도 했다고 들었다.
지각한 장호에게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심사위원에게 애원하는 장면이었다. 심사가 끝나가는데 자꾸 제자를 한번만 무대에 올려달라고 하니 안전요원이 출동한 거지. 끌려나가는 장면에서 상대방 머리가 치아에 부딪히면서 한 개가 완전히 뒤로 젖혀졌다. 근데 그 장면이 제훈이가 곧 군대를 가서 그날 찍어야 하는 중요한 신이거든. 대기하는 스태프는 많고 도저히 뒤로 미룰 상황이 아니어서 응급처치만 하고 재촬영에 들어갔다. 그 정도 다치는 건 일도 아니다. (송)강호는 ‘초록물고기’ 때 (문)성근 형님에게 한 대씩 맞는 장면을 찍다가 진짜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그 자리에서 맞추고 또 찍고 그랬다.

-사실 수십 년간 현장에 있으면서 그런 상황(스케줄 상 강행해야 하는)이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수십 년은 아니다. 이제 막 20년이 넘었을 뿐이다.(웃음) 정말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현장이 너무 틀리다. 예전, 극장에서 손님 줄 세운다고 일부러 입장 안 시키고 영화 문 안 열어준 세대의 마지막 배우가 나다. 단성사랑 서울극장 같은 곳에서 그런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영화가 과연 언제까지 소비될까?’란 생각도 가끔 한다. 기술적인 걸로는 이제 극장이 없어질 것 같다. 하지만 연극, 연기는 관객들 앞에서 하는 거니까 영원히 존재할 거다. 필름으로 보는 연기는 없어질 것 같다. 핸드폰에서 쏴서 개인 극장처럼 보는 시대도 도래할 거란 생각도 들고, 별 생각이 다 든다. 과연 50년 혹은 100년 후에도 집단으로 영화를 보게 될까?

-영화배우로서 할 고민 중 가장 심각해 보인다.
너무 빨리 30대 초반에 많은 걸 얻었고, 필요 이상의 인기 속에 있었다. 그때도 이미 슬럼프였고, 언젠가 나에게 내리막길이 올 거란 생각에 불안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내 그런 불안감속에서 사는 거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건 미래를 고민하는 거다. 연기가 나에게 큰 기쁨을 주듯 그만큼 시련도 줄 거라 생각했다. 이런 고민은 비록 나만의 고민은 아닐 거다.


영화계에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던 한석규. 그는 그 이유를 “내가 한 말을 글로 나중에 접했을 때 너무 무안해서 그랬던 것뿐이다.. 배우는 말로 하는 직업이 아니잖나”라고 해명한다.


-이 영화를 자녀들이 봤나.
아직 못 봤다. 하지만 분명 좋아할 영화긴 하다. 막내가 7살이다. ‘베를린’의 하정우가 그러더라. 연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당연히 배우가 되는 건 줄 알았다고. 배우라는 직업은 인생을 걸어볼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매력 있고 좋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배우로서) 꿈을 계속 꾸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배우로서 끌리는 캐릭터가 있나.
한때는 리어왕에 끌렸다. 알 파치노가 왜 세익스피어 광인 줄 알겠더라. 요즘엔 영조에 광심이 간다.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일물이다. 리어왕은 게임조차 안된다. 한 15년 후쯤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이 하고 싶은 여배우는 너무 많은데 일단 김혜수와는 어떤 작품이든 하고 싶고, 심은하는 지금도 아까운 배우다. 그런데 연락 안 한지 꽤 됐다. 이제 정치가의 아내로 행복하게 사니까.(웃음)

-데뷔 후에도 전혀 늙지 않는 것 같다.
허리 수술 덕(?)이다. 군대서 얻은 허리 고질병이 2002년에 한번 더 도지는 바람에 수술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쭉 65kg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서 더 나가거나 빠지면 몸이 아프더라. 내 몸의 배터리가 언제 방전되는지를 잘 아는 게 늙지 않는 비결이다. 결혼도 하고 나이도 먹고 내 맘대로 안 되는걸 느끼는 요즘이 그래서 좋다.
요즘엔 내가 느끼고 싶어서 연기를 한다. 여전히 신인감독들하고의 작업이 고프고, ‘새로운 한국영화’가 나오길 고대한다. 그래서 그 당시 획기적인 영화로 불렸던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특히 이번 ‘파파로티’가 10대들과 기성 세대들에게 결정적 계기가 될 만한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 내가 말할 주제는 아니지만 지금의 10대가 겪는 고민과 방탕함은 모두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나는 관객들의 모든 역량을 다음 세대들의 교육에 쏟아야 된다고 본다. 그렇기 위해서라면 나부터 잘 해야지. 그래서 현장에서 ‘찰진 욕’을 자주 한다. 내가 먼저 “야 이 XX놈들아 좀 잘하자”하면 내가 먼저 다가가는 프러포즈라고 생각하고 후배들도 덥석 다가와 편해진다. 영화가 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거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이승우 기자 swlee@interview365.com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