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연극을 희극으로 푸는 연극무대의 명배우 이인철
인생과 연극을 희극으로 푸는 연극무대의 명배우 이인철
  • 서영석
  • 승인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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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연극 보려고 개그맨들까지 단체관람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어느덧 이순을 바라보는 중견 연극인 이인철은 대학로를 대표적인 연극의 메카로 바꾼 주역 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가고 한참 뒤 서울시가 대학로라는 이름을 살려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연극인들이 모여들어 대학로 연극시대의 판을 열고 장을 세웠다.

이인철은 1974년 8월에 연극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2010년 8월은 만 36주년을 맞이하는, 그에게 아주 의미 있고 특별한 달이었다. 그의 연극인생이 연극의 거리로 변모해온 대학로의 유래이며 역사로 볼 수 있다.


그는 거의 공백기 없이 연기를 해왔다.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최근 산울림 대표 임영웅 연출의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의 출연까지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 가장 많은 배우로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그가 쉴 틈이 없었던 것은 탁월한 연기력 때문이다. 때로는 개그맨을 압도하는 희극연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또 눈물을 훔치게 하는 멜로연기와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다양한 팔색조의 연기를 해온 그를 두고 ‘만능배우’ ‘만년배우’라는 호칭도 따른다.


여전히 이인철의 연극에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이유가 사람들은 그의 연기력에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좋은 연기는 무대를 전쟁터로 생각하며 사는 치열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인기의 이면에 가려진 일화의 대부분이 일을 위해 힘들게 땀 흘려 사는 이야기들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고 그럴 때 주로 술로 뒤풀이를 하는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듯, 인터뷰 약속을 한 날도 하오까지 하루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속을 푼다며 매운 짬뽕을 국물만 마신 뒤 젓가락을 놓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정이 그렇게 바쁩니까?

정신이 없어요. 공연에 연습에.. 하루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숨이 가쁘답니다. 어른들 말씀에 세월의 체감 속도가 나이가 들수록 더 빨라진다더니 정말 실감을 합니다. 10대 때는 시속 20km, 30대는 60km, 60대는 120km로 느껴지는 것이 맞아요. 이제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세월의 빠름을 절감합니다.


그래 어쩌다 연극을 시작했습니까? ‘타고난 배우’라고들 하지만 과정이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원래는 음악을 했어요. 중ㆍ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다가 해병군악대를 지원하면서 직업 음악인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었지요. 제대 후 야간 업소에서 연주활동을 했어요. 그 때는 음악인들의 활동장소가 주로 밤무대였습니다.

데뷔한 때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1974년 8월입니다. 연극을 하는 선배의 연습장에 구경을 갔는데 주인공 배우가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고요. 답답해하던 선배가 엉뚱하게 나를 부르며 “야, 네가 한번 해 봐” 해서 졸지에 연극에 입문하게 되었어요. <유산소동>이라는 단막극 코미디물이었는데 평소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잘 웃기는 자질이 있어 작품과 맞아 떨어졌나 봐요. 그 작품으로 배우로서 이름도 알려지고 인기도 조금 얻었죠. 그러자 방송국에서 코미디 제의가 들어왔어요. 쥐뿔도 모르면서 제법 연극 예술인으로서 자긍심이 생겨 처음에는 코미디를 무시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산울림 작품을 하셨지요?

얼마 전 산울림소극장에서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에 출연해 지방공연과 앵콜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쳤어요. 명문극단들과 거의 작품을 했는데 유독 산울림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습니다. 지금은 국립극장에서 뮤지컬 를 공연하고 있고요. 이 공연이 끝나면 소극장뮤지컬 <목포의 눈물>(가제)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은 어떤 작품입니까?

임영웅 대표의 ‘극단 산울림’은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해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많은 화제작을 남긴 국내의 대표적인 극단입니다. 윤대성 작가와 임영웅 산울림 대표가 연출한 이 작품은 프로듀서 친구가 자살을 하면서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런 애틋한 작품이 마음에 듭니다.

특히 극단 산울림이 2010 산울림소극장 개관 25주년을 맞아 사회의식과 시대정신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기획 제작한 작품으로 여러 면에서 의미를 제시했습니다. 이미 고령화 시대를 맞은 한국 노년층의 슬픈 자화상을 시적인 언어와 섬세하고 희극적인 터치로 그려내면서 새로운 인생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드라마를 통해 참회와 계도성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한 연극이었어요.

출연 배우도 저와 함께 권성덕, 손봉숙, 이호성 등 연극계의 백전노장들입니다.


스스로는 연기력에 대한 돋보이는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연기 잘하는 남다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연기는 배우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크면 결함도 큰 것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면에 뛰어난 연기자로 인정받기는 힘들어요. 제 경우는 작품을 선택하면 배역인물의 성격과 이미지 창출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철저히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출연 작품을 돌아보면 성공적인 연기를 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산울림 공연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에서도 친구의 자살에 대한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감정 표출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다른 친구(PD 친구와 절친한 방송작가)와 PD 부인의 불륜이 들통 나는 장면에서 사회적 통념과 연기자 개인의 연기 패턴을 어느 정도 반영할 지 많은 갈등을 겪었어요. 개인적 연기관으로 코미디 등 재미있는 연기를 하려면 다소 오버(과장)해야 살아난다는 생각을 주로 하다보니 그런 고민이 따르기도 합니다.


악극과 뮤지컬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궁금합니다.

악극의 특징은 과장 연기라 생각합니다. 대사의 감정 폭이 커야 관객의 아픈 부분을 긁어줄 수 있어요. 악극의 생명은 눈물과 코믹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한 부분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전체가 흔들려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 구분이 어려워집니다. 아쉬운 점은 노래 역시 가장 분위기에 적합한 선곡을 하지만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다 보니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친숙한 노래들을 쓰다보니 공감대 형성에는 보탬이 되지요. 뮤지컬은 한마디로 감정입니다. 작가와 작곡자의 상상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상당한 수준이 요구됩니다. 간혹 배우의 높이에 키 변조를 하는데 난 절대 반대입니다. 작곡가가 높은 음이든 낮은 음을 작곡했을 때 그 부분에서 그러한 감정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배우의 키에 맞춰 음을 조절하면 이상한 뮤지컬이 되어버립니다. 작곡가의 마인드를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되니까요.


출연했던 뮤지컬 중에 스스로 대표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아가씨와 건달들>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뮤지컬이고 앙상블 또한 뛰어난 수작이지요. 탤런트로도 활약했던 김용만 씨와 콤비를 이루어 멋진 공연을 이끌어냈다는 개인적 소감입니다.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겪었던 애환들 가운데 금방 떠오르는 일화라면 어떤 것들입니까?

1984년 결혼하던 해, <구름가고 푸른하늘>(김영무 작) 공연을 했지요. 먹고 살기 힘들 때를 시대 배경으로 아역부터 청년까지의 연기를 한 작품이었는데 그해 동아연극상을 받을 작품이지만 출품을 안 한 것이 아쉽다는 평론가의 칼럼을 읽을 기억이 납니다. 그 연극의 대사 중에 “산은 왜 산? 돈은 왜 돈?”이라는 말이 나와요. 바로 ‘돈’과 관련된 넋두리를 하다가 갑자기 내 처지와 내 아내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펑하고 쏟아져 혼이 났습니다.

또 1988년 작품으로 <굿 닥터>가 있습니다. 10대에서 70대까지 1인 8역을 한 코미디물이었는데 어느 교수가 나의 공연을 본 후 분장실로 찾아와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하더니 결국 동아연극상을 받았어요. 또 이 공연을 통해 연기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요. 공연이 재미있다고 소문이 나자 방송국 코미디언들이 단체관람을 왔어요. 당시 잘나가던 김형곤이 너무 웃긴다면서 나를 코미디 프로그램 에 출연하도록 추천을 했어요.




당시 심형래가 최고의 코미디 스타였는데 내가 보기엔 별로 웃기지 않더라고요. 속으로 ‘내가 코미디 프로에 나가면 방송국 돈 다 내 돈이다’라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방송국에 들어서자 다른 코미디언들이 외부사람을 쓴다며 불만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러니 담당 PD가, “정식으로 뽑으면 될 거 아냐?”하면서 특채시험 자리를 만들었어요. 수험표에는 마지막 번호였는데 마침 지방공연이 있어서 가장 먼저 시험을 보는데 심사위원 PD가 “앉아서 보세요”라며 대접을 했지만 나는 수험생이 어떻게 앉아서 면접을 보느냐며 극구 사양을 했어요. 또다른 심사위원이 “왜 코미디를 하려 합니까?”라고 묻기에 나는 즉각 “코미디 연기를 할 때 가장 편합니다. 스스로가 코미디 기질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능력발휘가 쉽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코미디언 실장을 하던 김정식이 그래도 시험이니 노래라도 하나 부르라고 하더군요. 노래 부르기는 그렇고 해서 대신 재밌는 콩트 하나로 시험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내용의 콩트입니까?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친구하고 막걸리 시합을 했는데 열다섯 주전자를 마시고 내가 이겼다. (당시는 방에 요강이 있던 시절) 그 뒤 집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요강을 잡았는데 그게 옆에서 주무시던 어머니 얼굴이었다. (이때 판토마임으로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보는 연기를 질펀하게 했다) 다음날 어머니 말씀, ‘꿈에 샤워를 하는데 물줄기가 한줄기만 나와 고개를 흔들어 겨우 샤워를 했다고...’ ” 시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합격했어요. 당시 같이 뽑혔던 친구들이 백재현, 송은이 씨였었지요. 동기입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좀더 소개해 주시지요.

미국 공연 갔을 때의 이야긴데 다들 너무 재미있어 하기에 소개합니다. 공연단이 들었던 룸에 화장실 변기가 고장이 났는데 누구도 프런트에 나서서 영어로 수리를 해달라고 못하더라고요. 내가 프런트에 전화를 했어요. “Hello, 야 임마, My Room toillet water overeat, 푸악~~~, OK?” 공연단 중에 영문학 교수도 있었는데 그 간단한 영어조차 구사가 안 되더라고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허실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또 프랑스 공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요. 공연단 한 명이 배탈이 났어요. 프랑스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또 그 사람은 알약을 못 먹는 사람이라 마시는 약이 필요했어요. 내가 약국으로 갔지요. 아무나 보고 물었습니다, “야, 임마, Can you speak English?” 그랬더니 다른 쪽의 키가 큰 약사를 가리키더군요. 내가, “Hey, tallman, come here, 빨리 빨리, 임마!” 그 약사를 보고 마임을 했어요, 배가 아프다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약을 지어주는데 알약이더라고요. 순간 물약을 뭐라고 하나... “야 임마, No, water mixed, OK?”하고 나오는 대로 말하자 “OK!” 하더니 물약으로 바꿔주더라고요. 그런 사건을 계기로 세계연극대회에서 사회를 보는 영광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주당이자 애주가로도 유명한데 술로 인한 일들도 많았을 텐데요?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책으로 쓴다면 100권도 더 쓸 자신이 있습니다. 미국 공연을 갔을 때 같은 방을 썼던 이승철(현 경기도립극단 지도위원)이란 배우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꺼냈어요. 둘이 방에서 팩에 든 소주(40개 들이)를 마시다 보니 달랑 하나가 남더라고요. 고국에서 가져온 술을 첫날 다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건 내일 먹자하고는 양주를 사다 마신 기억이 있고요.

장충체육관에서 악극 <아씨>를 공연할 당시 공연을 마치면 거의 매일 족발집에서 술잔을 들었지요. 배우들이 가끔 그러하듯 공연이 끝나면 으레 술 한 잔하고 귀가를 해야 공연을 한 것 같거든요. 거의 한 달을 족발집으로 향하니 어느 연주자가 제발 족발 그만 먹으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더군요. 개인적 취향은 배우이다 보니 양이 많아 배가 나오는 맥주보다 소주가 좋습니다. 안주는 특별히 가리는 것은 없지만 많이 먹지도 않고요.


지금은 대본도 컴퓨터로 받아서 읽는다는데 가끔 술자리에서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면 그 얘기로 좌중을 웃긴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입니까?

사실 컴맹입니다. 요즘은 대본을 거의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성장한 아이들이 대신 해주니까 직접 만지지 않아도 걱정은 없지만 과거에는 고생을 좀 했어요. 그때 얘기를 풀어 놓으면 그게 코미디입니다.

처음 컴퓨터를 사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어요. 당연 제조회사의 AS센터에 전화를 했지요. 그랬더니 직원이 드라이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해요. 무슨 드라이버를 말하느냐? 드라이버하고 컴퓨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지만 직원은 계속해서 드라이버 운운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일자냐, 십자드라이버냐 하고 물었더니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하더군요. 서로 엉뚱한 얘기만을 나누다가 직원이 그럼 윈도우 문제가 아니냐고 물어요. 답답하더라고요, 난 컴퓨터 고장을 말하는데 그 직원은 창문 얘기를 하니 화가 나서 우리 집 창문하고 컴퓨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막 따진 적이 있습니다. 하하하.

또 어처구니없는 일은 누가 대본을 메일로 보낸다 하여 딸아이에게 부탁을 했지요. 메일이 잘 안되기에 물었더니 창이 많이 깔려있으면 컴퓨터 속도가 늦다며 정리하라더군요. 딸아이가 메인 창 정리를 하면서, “아빠, 한글 파일은 어떻게 해?”, “요즘 한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지워!” 했더니 도무지 대본이 뜨질 않더라고요. 참 내...


결혼하기 전 연애 시절도 일화가 많다고 소문나 있습니다.

연애 에피소드... 지금 젊은 친구들하고는 세대가 워낙 차이 나다 보니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술 먹고 데이트하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보수적 윤리관이나 경제력, 당시의 교통상황 등은 많이 차이가 있을 겁니다. 통금이 있던 때라 시간이 늦어 같이 밤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지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했지만 결혼 전까지 절대 손(?)을 대지 않았어요. 당시 생각으로는 정말 사랑했기에 아껴주고 싶었어요. 물론 한창 피 끓는 나이에 참기가 어려웠지만 집사람과는 결혼 때까지 순결을 서로 지켜주었다는 비장함에서 지금 생각해도 우리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연극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면 어떤 면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관객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통할 때입니다. 무대와 객석이 같이 웃고 울고 즐긴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최상의 기쁨이지요. 이번 공연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의 경우처럼 연로한 부부가 서로에게, 딸이 나이 드신 아버지를 모시고 보면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당신들의 내면의 아픔에 가슴 저미며 맑은 눈물을 보일 때 배우로써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부끄러운 미소로 부모의 손을 꼭 잡고 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서정시에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평생을 배우로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은 없을 거고요. 일에 대한 정력과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노력을 해서 좋은 배우로 남을 각오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이순재, 신구 등 훌륭한 선배들처럼 나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연기에 전념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연극배우로 알려진 자신의 이야기 중에 잘못 알려진 얘기나 아직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직업상의 내면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남들은 내게 연극을 쉽게 한다고 하는데 그 이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난 한 편의 공연을 위해 대본을 수 백, 수천 번을 탐독합니다. 우선은 작품분석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지요. 가령, 축구의 예를 들어 선수들이 전부 골을 넣기에만 집착을 한다면 그 팀은 삼류를 면하지 못할 겁니다. 당연 골게터는 골을 노리고, 뒤에서 어시스트 하는 선수와 후방의 수문장과 수비들이 상대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팀이 훌륭한 팀이듯이 연극배우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이 장면에서 내가 골을 넣는 부분인지 또는 어시스트 역인지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 하나의 공연도 훌륭하게 마무리되겠지요. 장면 장면에서 자신(배우)의 위치(역할) 선정이 연기의 기초가 됩니다. 또 요즘의 배우들이 간과하는 화술의 문제 역시 배우의 연기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연극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평가를 절하도 절상도 하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고 기초(발음, 호흡)에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요즘은 세태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조급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배우는 연륜이 쌓여야합니다. 마라톤을 100M 달리기로 전력질주 한다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배우는 박자 감각이 뛰어나야합니다. 박자에 맞는 대사와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개인적인 연기술이지만 심장 박동수에 맞는 대사가 가장 편한 대사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는 걸어가면서 발에 맞추어 대사를 하다가 숙달되면 뛰면서도 연습하기도 하지요. 대본을 많이 읽고 빨리 외우는 것도 좋은 배우로서 기본요건입니다. 자다가도 대사가 줄줄 나와야 무대에서 자신 있게 연기를 할 수 있지요. 성격 구축 역시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수 있어요. 자신이 맞은 역할이 골게터인지 수비수인지 정확하게 구분하여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좋은 연기자로서 기본은 갖추었다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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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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