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현지인터뷰] 위트만발 ‘장고’ 타란티노감독
[일본현지인터뷰] 위트만발 ‘장고’ 타란티노감독
  • 이승우
  • 승인 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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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영웅을 흑인 영웅으로 바꾸고 노예제도 잔인함 고발”

【인터뷰365 이승우】여전히 할리우드의 악동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최근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이제 막 50대에 들어선 감독의 중후함보다는 여전히 숨기지 못하는 장난기 가득한 연출력이 눈에 띄는 영화다.
서부극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백인 영웅인 장고를 흑인으로 내세운 것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카메오로 나서서 웃음을 유발하는가하면, 촬영기간이 길어지자 자신의 그동안 번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찍고 싶은’ 감독으로서의 자존심도 그대로 유지했다.
1966년작 이탈리아 영화 ‘장고’를 토대로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2013년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좀 더 명확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노예제도의 불합리함과 잔인함으로 아내와 헤어진 장고가 복수를 위해 자유인으로 거듭나 악인들을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원작이 가진 모호한 내용을 보완하고, 유머와 멋진 패러디를 더해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위트 넘치는 수작으로 완성해 낸 것이다.
국내 개봉은 3월 예정이지만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는 호평과 더불어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각각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5개 부문(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촬영상, 음향편집상)후보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타란티노는 영화광인 홀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탈락되자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온갖 장르의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 작가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저수지의 개들’ 시나리오로 존재감을 알리며 B급영화, 홍콩느와르의 감성으로 할리우드 체제에 반란을 일으킨 그의 영화인생은 ‘펄프픽션’으로 정점을 찍고 ‘킬빌’ 등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국 취재단이 움찔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확고한 입장과 한국영화에 대한 세세한 코멘트를 남겼다. “코닥이 필름산업에서 철수하면 영화를 안 찍겠다” “뉴욕에서 최고의 비빔밥을 먹으려면 내 식당으로 와라. 난 10년전부터 한국 식당을 운영했다” “‘펄프픽션’을 전세계 최초로 개봉한 곳이 바로 한국이다” 등등.
유쾌했던 타란티노와의 도쿄 인터뷰 현장을 중계한다.


이번 영화 각본을 직접 썼고 복수가 메인 테마이다. 장고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내고자 했나.
내 영화 속에 되풀이되는 복수는 각자의 캐릭터로 봐줬으면 한다. 내 영화 속에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고 어떤 연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팀 로스의 경우 경찰인데 갱단에 잠입하기 위해 심지어 자기 보스에게 연기 레슨을 받기도 하고, ‘킬 빌’의 브라이드도 다른 사람인 척 한다. 최근작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멜라니 로랑이 연기했던 쇼산나 역시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기를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살기위해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복수는 대부분 장르 영화의 필수 요소다. 서부 영화 5편 중 3편이 복수를 다루고 있고, 쿵푸 영화 5편 중 4편 정도가 복수를 다룬다.
하지만 ‘킬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 복수영화라고 보지 않는다. 이번 영화도 복수가 일부분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장고의 여정은 복수의 여정이 아니라 로맨스의 여정이다.
장고의 목적은 아내를 농장에서 구하는 것인데, 일이 잘 안 풀려 백인 악당들을 물리치게 되는 스토리다. 러닝 타임이 2시간 50분이지만 원래는 4시간짜리다. 그런 고뇌를 어떻게 3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담겠나.(웃음) 조만간 조금 더 긴 버전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영화가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촬영기간이 긴 걸로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대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장고’의 오랜 팬이었고, 멋지게 완성되길 바랐다. 전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3주간 촬영이 오버됐을 때 사비를 털어 그 부분을 메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건 돈보다도 이 영화가 내가 원하는 대로, 최선의 영화로 완성되느냐였다. 다행히 전작들이 잘 돼서 벌어놓은 돈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잘 돼서 개인 투자금액을 다 채웠으면 한다.(웃음)


베우 중 크리스토프 왈츠는 현장에서 사고가 있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실제 손에 피를 흘리면서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이처럼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을 끌어내는 특별한 디렉션이 있나.
이번 영화는 특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크리스토프 왈츠는 심지어 촬영 전에 말 타는 연습을 하다 낙마사고를 당했다. 제이미 폭스의 경우에는 몸을 너무 열심히 만들어 팔에 무리가 와서 어깨 수술을 받기도 했다. 누가 보면 내가 배우들에게 뭔가를 시켜서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여러번 리허설을 한 식당 장면이었다. 전혀 문제될 게 없었는데 식탁을 내리치면서 조각이 깨져 손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 거다. 모두가 깜짝 놀랐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멈추지 않고 계속 연기를 하더라. 피가 나는데도 무시를 하고 연기한 그의 강렬함 때문인지 식당 신은 아주 만족스럽다. 촬영이 끝나고 치료를 받고 피가 없는 버전으로 다시 찍기도 했지만 결국 첫 부분이 영화에 실렸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크리스토프 왈츠가 이번 작품에서는 흑인 차별을 반대하는 착하고 정의로운 역할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유태인 사냥꾼이었던 왈츠가 이번에는 장고를 도와주는 유일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백인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렇게 설정을 한 것은 캐릭터 상이나 배우에게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는 도전일 거라 봤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유일한 좋은 인물이었던 이유는 백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닥터 킹을 미국인으로 설정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미국을 대신해 사죄하는 느낌이었을 거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미국의 입장에서 사죄하고 싶지 않았다.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에서 온 인물을 선한 사람으로 설정해서 미국의 노예제도에 굉장히 당혹하게 만들고자 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음악과 액션은 조화가 잘 될 때 최고의 장면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바로 그 한 장면을 위해 액션 신에 대한 구상을 치열하게 한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당시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백인 우월주의를 조롱하는 것 같다. 미국의 어두운 과거를 건드린다고 할까.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노예제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미디어나 문화에서 다른 국가들처럼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노예제도는 미국이 가진 원죄 중 하나다. 아직까지도 흑인과 백인은 이런 잘못된 부분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노예제도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고 미국의 잔혹사를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원작의 장고 역할을 한 프랑크 네로가 나와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작이라고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장고’를 리메이크할 생각이 없었다. 프랑크 네로가 출연한 ‘장고’가 너무 유명해서인지 이름만 가져다 사용한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40편이 넘더라. 그래서 ‘장고’와 전혀 상관없지만 장고가 등장하는 시리즈에 한 편을 보태게 되어 너무도 자랑스럽다.(웃음) 특히 프랑크 네로의 팬이라 이번 영화에 우정출연을 부탁했는데 흔쾌히 들어줘 뛸 듯이 기뻤다. 제이미 폭스와 프랑크 네로가 한 장면에 나오게 되어서 감독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유머는 당신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이 책임지고 있다.
처음에는 전혀 출연할 계획이 없었다. 너무 간단한 장면이라 제일 뒤에 남겨두었는데 촬영 일정이 지연되면서 원래 캐스팅된 배우가 못하게 되고, 대신할 배우도 자꾸 어긋나더라. 또한 자칫하다가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 아예 내가 하게 된 것이다.


액션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배우들도 전에 없는 이미지들을 잘 이끌어내는 것 같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킬빌’ 시리즈 우마 서먼의 경우 대중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음악과 액션은 조화가 잘 될 때 최고의 장면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액션 신에 대한 구상을 치열하게 한다. 대사와 캐릭터는 당장 화면에 보이지만 액션과 음악은 그 장면이 지나간 후에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일단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휩쓸려가고 나중에 회상하면서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야 잘 만든 영화 같다. 내 자랑 같지만, 영화 속 음악 만드는 재주는 좀 타고난 편이다.(웃음) 영화상 가장 좋은 순간은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니까.
디카프리오나 서먼은 최고의 배우들이다. 그들을 좋아하지만 사실 내 캐릭터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옷처럼 딱 맞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들과 소통하고, 또 그런 과정이 굉장히 즐겁다.
종종 받는 질문이 어떤 배우와 일하고 싶으냐는 건데 앞으로 같이 하고 싶은 배우는 조니 뎁이다. 일단 그를 캐스팅하려면 그에 걸맞은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나 스타성보다는 캐릭터를 얼마나 잘 살리냐가 우선이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3D, 아이맥스 등 기술에 의존하는 영화들이 많은데 의외로 고전으로 돌아간 모습이 흥미롭다. 특히 이번 영화는 OST가 뛰어나다.
난 솔직히 3D 영화가 지겹다. 때때로 3D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3D와 2D 영화 중 고르라고 한다면 2D 영화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몇몇 영화는 꼭 3D로 봐야 한다. ‘삼총사’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만든 폴 W.S. 앤더슨 감독 작품이 그렇다.
만약 코닥이 필름을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적어도 앞으로 10년간 그럴 일은 없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영화 제작편수가 최고인 인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필름이 사라진다면? 내 대답은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이다.


타란티노의 ‘한국 사랑’은 여전하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으뜸으로 꼽으며 뉴욕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쯤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신이 2004년 칸영화제에서 극찬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할리우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토커’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굉장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난 박찬욱 감독의 팬이다. 또 봉준호 감독도 굉장히 좋아한다. 두 감독 모두 재능이 넘친다고 생각한다. ‘라스트 스탠드’ 역시 아직 보지 못했는데, 김지운 감독이 어떻게 만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떨릴 정도다. 특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반해버렸다. 이런 재능 있는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와서 어떻게 할리우드 식의 영화를 만드는지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상당히 재미있는 점은 아시아에서는 6~7년마다 한 번씩 한 국가가 선두에 나서서 새로운 영화의 장을 만드는데 지금은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과 ‘공동경비구역 JSA’는 내가 지난 20년간 본 영화들 중 1,2위에 올라있다. 지난 20년 간 가장 멋진 신을 꼽으라면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이다.

(예상된 기자회견 시간을 넘겨 영화사측에서 행사를 종료하려고 하자 타란티노 감독이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이 시간은 내 시간이니까 할 말은 해야겠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펄프픽션’은 전 세계 어디서도 아닌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했다. 사전 반응을 살펴보기에 앞서 관객들 수준이 궁금해 서울의 한 극장에 몰래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본 영화가 짐 캐리 주연의 ‘마스크’였는데 온 가족이 영화관에서 즐겁게 웃고 즐기다 가더라. 정말 감명 받았다.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꼽는 최고로 즐거운 추억 중 하나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난 11년 전부터 한국 가정식을 파는 식당을 운영 중이다. 옛날에 ‘또순이’라는 한식당의 음식에 반해서 투자를 하려 했는데 단순히 돈이 아닌 가족 같은 믿음을 쌓아야 일 진행이 되는 걸 보고 감명 받은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그곳의 아들이나 다름없다. 지금 하고 있는 한식당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도하’라는 곳이다. 미국 여행 중에 최고의 비빔밥을 먹고 싶다면 그곳으로 오길 바란다.(웃음)

이승우 기자 swlee@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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