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우표전시회 주제별 우취분야 아시아인 최초 대금메달 수상 김기훈
세계우표전시회 주제별 우취분야 아시아인 최초 대금메달 수상 김기훈
  • 유성희
  • 승인 201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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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수집 한 만큼 공부 했으면 하버드에 갔을 것”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김기훈(27) 씨는 지난 5월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우표전시회(World Stamp Exhibition) 주제별(thematic) 우취분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대금메달(Large Gold Mdeal)을 수상했다. 우취는 우표를 수집 연구하는 취미를 가리킨다. 세계우표전시회는 세계우취연맹(FIP)이 주최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우표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라는 영예도 안았다. 우취 분야에는 우표의 발행순으로 수집하는 ‘전통 우취’와 우편 역사에 관련된 주제로 만든 ‘우편사’, 자신이 주제를 선택해 수집하는 ‘주제별 우취’로 나뉜다. 김 씨 외에 한국인으로는 4명의 대금메달 수상자가 있는데 모두 전통 우취 분야 수상자다.

많은 자본이 투자된 작품도 중요하지만 주제별로 자기 한 분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성과가 주어지는 게 ‘주제별 우취’ 분야이다. 이번 세계우표전시회에서의 주제별 우취의 면면을 보면, ‘경작-농업의 기원부터 현재까지’(이스라엘) ‘태양에 대한 찬양’(프랑스) ‘자동차에 대한 모든 것’(오스트리아) ‘어린이’(독일) ‘고래의 꼬리’(영국) ‘애견의 시대’(스위스) ‘바이킹’(스웨덴) ‘소독’(중국) 등 다양한 주제들이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씨의 우취 주제는 ‘맛의 역사’이다. ‘미식가의 식탁’이란 제목에서 발전된 ‘맛의 역사’는 ‘맛의 기원’ ‘맛의 정착’ ‘맛의 계급’ ‘맛의 정복과 전쟁’ ‘맛의 혁명’ ‘맛을 위한 지침서’로 맛에 관련된 6개의 장으로, 하나의 메뉴판으로 만들어 표현했다.

우취작품은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전시회에서 심사위원들의 지적을 받으면 보충하고 덧입혀서 발전을 하게 된다. 김씨는 ‘맛의 역사’로 대금메달을 수상하기까지 2003년 세계우표전시회부터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심사위원들의 큰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96점(100점 만점)을 받았다. 김씨의 점수는 아시아인으로는 가장 높은 점수다.

우표 수집은 13살 때부터 시작했고, 요리는 고등학생 때 특기로 배우게 됐다. ‘우표’와 ‘요리’가 만나 ‘맛의 역사’가 탄생된 셈이다. 김씨는 현재 중국에 머물며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중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우표 수집을 비롯한 중국의 문화를 비롯한 음식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 대신 요리학교를 선택해 자신의 진로를 일찍 선택했기에, 좌절했던 시기가 없느냐고 물으니 ‘다이어트에 실패했을 때’라고 한다.

 

 

대금메달 수상을 확인하는 순간 기분이 어땠나?

이번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연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그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작품에 수상리본이 걸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표 수집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이런 큰 상을 수상하게 되어 보람이 크다. 앞으로는 왕중왕전인 그랑프리(대금메달을 다른 해에 3회 이상 수상)에 도전해 보고 싶다. 어머니는 우표 수집 한 만큼 공부했으면 하버드에 갔을 거라고 농담을 하시기도 한다.(웃음)

 

이번 세계우표전시회를 위해 언제부터 준비한건가?

‘맛의 역사’를 주제로 작품 구상을 시작한 건 2003년부터다.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자료를 선별해서 작품을 만들게 된다. 우표는 작품의 틀수를 기본으로 하는데 기본적으로 우표전시회는 한 틀에 16장, 12장 혹은 8장의 종이규격이 다른 장수로 이루어진다. ‘맛의 역사’는 총 8틀로 64장의 우표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열리는 대한민국우표전시회에서는 성인부문에 5틀이 기본이고 5틀에서 3등급이상을 수상하면 3틀을 추가하여 높은 상에 도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작품이 9등급에서 1등급의 상을 받기까지는 10년~20여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맛의 역사’를 주제로 6개의 테마를 구성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설명 좀 해달라.

맛의 역사는 총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은 인류의 가장 기초적인 ‘맛의 기원’에 대해 연구했다. 대표적으로 모든 인류의 근원적 맛인 모유, 그리고 선사시대의 초기 인류의 음식을 우표로 표현했는데, 선사시대 때 인류가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당시의 화석인류의 턱뼈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여 턱뼈의 진화라는 항을 만들어 우표로 표현했다. 당시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던 매머드와 현재에도 그런 풍습이 남아있는 아프리카의 원시부족의 식문화를 비교, 연구해 보았다.

 

두 번째 장은 ‘맛의 정착’으로, 농업을 시작하면서 풍요로워진 식탁을 우표로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계절에 관한 신화와, 소를 이용하게 된 우경(牛耕)의 시작, 날씨의 변화와 농작물의 수확에 대한 관계, 그리고 나아가, 정착생활로 이루어진 식문화의 발전을 다루었다.

 

세 번째는 ‘맛의 계급’이다. 농경문화의 발전으로 부의 축적과 사회계급의 등장으로 인한 맛의 변화를 다루었다. 권력과 부를 누리는 귀족들의 화려한 식탁, 그리고 유명했던 그들의 음식이야기를 다루었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 시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 대공의 수석 요리사로 유명했는데,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포크와 나이프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전해지게 된 사건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권력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네 번째는 ‘맛의 정복과 전쟁’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던 후추와 금,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넘어오게 된 농작물 등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착으로 인한 맛의 이동, 다양한 측면에서 네 번째 장을 다루었다.

 

다섯 번째는 ‘맛의 혁명’이다. 단순히 배부르기 위해 먹는 시대가 지나가고, 경제발전과 교통의 발전으로 세계인의 식탁은 점차 안전하고 깨끗한 음식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바탕으로 잘 먹고 잘 사는 현대인들의 소망을 담았다.

 

여섯 번째는 ‘맛을 위한 지침서’로, 맛과 관련된 미식가들, 위생, 소화(消化)와 관련된 이야기를 우리 생활 속의 중요한 상식으로 다루었다.

 

 

 

 

 

 

 

 

 

 

주제를 ‘맛’(음식)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공부했는데, 요리학교에 진학하면서 식문화를 토대로 우표를 연구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처음에는 ‘미식가의 식탁’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좀 더 전체적인 맥락에서 식문화를 연구해보자는 생각에 ‘맛의 역사’로 바꾸게 된 것이다.

 

‘맛의 역사’에 들어간 우표 자료만도 시가 4억5천만 원이라고 들었다. 지금까지 모은 우표는 얼마나 되나?

우표수집에 있어 수량보다 중요한 건 ‘얼마만큼의 좋은 자료를 수집가가 이해를 하고, 정리하여 감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요리나 음식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수집했고, 문화와 관련된 것까지 하면 10만점 정도 된다.

 

우표를 이만큼 수집하는데 돈은 얼마나 들었나?

소득의 90%를 우표 수집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집한 우표를 필요한 사람에게 되팔기도 하고. 중국에서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동안의 내 이력(수상이력)으로 부르는 게 값이기도 하다.

 

소장하고 있는 우표 중 가장 비싼 우표 가격은 얼마 정도인가?

우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우취가들은 가격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우표가 지닌 가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물론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우표도 있다.

 

가장 아끼는 우표가 있다면?

희귀한 우표를 이야기 하자면 1870년에 프랑스에서 발행된 농업의 여신 세레스우표이다. 프랑스 우표 중에 초기우표에서 떼떼베슈(Tete-beche)라는 우표는 100장 전지 중에 우표 한 장만 거꾸로 인쇄된 우표가 있는데 이것은 잔존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매우 희귀한 우표이다.

 

어떤 경로로 우표를 수집한 건가?

외국 우취가들과 펜팔도 하고 국제 규정에 맞는 우표수집 방법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에 눈을 떠서 옥션과 외국의 이베이(Ebay) 같은 경매 사이트에서 물품을 거래하면서, 물품의 유통과 자본의 흐름을 일찍 배울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런 나를 배려해 주셔서 거래하는 물품을 보낼 수 있도록 점심시간에 외출증을 한 묶음 끊어주기도 하셨다.(웃음) 학생 신분이라 돈을 번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때인데 이렇듯 나를 생각해주신 주위 분들의 도움이 컸다.

 

세계우표전시회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60-70대였고, 또 심사위원을 맡은 프랑스의 지메네스 베르나드는 대부분의 우표수집가들이 20년 걸릴 일을 젊은 청년이 해내 놀랍다고까지 했다. 빠른 시간 안에 우표를 수집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표를 수집해 왔는데 좋은 우표를 수집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 좋은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익히며 나만의 현장학습을 줄곧 해왔다. 항공료까지 지불하며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군 제대를 하고, 미국 워싱턴을 시작으로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그리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국의 방콕, 중국의 뤄양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 오는 배움의 여정은 참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들이었다. 그 가운데 많은 인연들과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어떤 심사평을 들었는지 궁금하다.

심사가 끝나면, 다른 분야의 심사위원들을 초청해 크로스체크(Cross-Check)를 하며 하루 정도의 조정기간을 거친다. 우표의 진위여부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든 사람의 우표에 대한 지식과 주제 등을 광범위하게 다시 평가하는데, 외국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해준 얘기가 “당신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작품의 주제가 ‘맛의 역사’였으니 이보다 좋은 평가가 어디 있겠나.(웃음)

 

희귀우표 부분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우표 작품에는 희귀성 점수가 30점이 부여되는데, 그만큼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나만의 희귀한 우표가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작품에 핵이 되는 아이템이 한 페이지 당 하나씩은 있어야 되고, 이것은 희귀성 점수에 곧바로 직결되는 것이다. 희귀한 우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외국 여러 나라의 언어와 수집 구조, 전문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표 수집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뉴욕에 있었을 때, 우표를 구하러 고서적상에 들렀다가 동해가 '한국해'로 표현된 지도를 구입하고 돌아온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 경험이었다. 'Sea of Japan'이 아니라, 'Sea of Korea'라고 표기된 17세기 영국 지도를 발견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무언가를 느꼈다. 우표를 통해 이곳저곳 훑어보게 되니 다른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에 토대가 된 것이 사실이다.

 

태국의 공주를 만났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2007년 태국에서 아시아우표전시회를 할 때 태국 공주님께서 우연히 전시장을 찾으셨다. 태국 공주님은 태국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정신적 상징인데 사실 이 분이 태국에서 유명한 우표수집가로 태국의 상징인 쌀에 관련된 우표를 수집하셨다. 내 작품인 ‘맛의 역사’를 소개했는데 깊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다. 덤으로 내가 직접 그린 사군자 그림을 선물로 드렸는데, 자기 왕실에 잘 걸겠다고 하셨다. 내가 태국에 있는 동안, 매일 전시장으로 태국 전통 도시락이 배달되었는데, 공주님의 선물이더라.(웃음)

 

 

세계우표전시회는 세계 각국의 우취인이 제작, 소장한 우표작품들을 세계우취연맹(FIP)과 조직위의 규정에 의거 전시, 심사하는 대회다. 세계우표전시회를 개최할 만한 나라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근대 우정이 1840년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우표를 수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가진 국가가 그리 많지 않지 때문이다. 1931년에 창설된 ‘세계우취연맹(FIP)’은 세계적인 민간조직체로, 우리나라는 1975년 3월 22일에 한국우취연합이 가입되었다. 세계우표전시회는 그 나라의 기념이 되는 해에 첫 개최를 하고, 그로부터 10년 주기로 전시회를 연다. 우리나라에서는 년도의 끝자리 수가 4가 되는 해에 세계우표전시회를 개최한다.

우표전시회의 메달은 1등급인 대금메달(Large Gold), 2등급인 금메달(Gold), 3등급인 대금은메달(Large Vermeil), 4등급인 금은메달(Vermeil), 5등급인 대은메달(Large Silver), 6등급인 은메달(Silver), 7등급인 은동메달(Silver Bronze), 8등급인 동메달(Bronze), 9등급인 참가(Diploma)로 이루어져 있다.

 

 

우표 수집에 있어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일본이 전통우취의 강국이고, 우리나라는 전통우취와 주제별 우취가 고루 발전했다. 그러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역시 막대한 자본으로 세계 우취 무대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우표 수집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첫째, 우표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는 것과 같다.

둘째, 그 나라의 우표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셋째, 우표는 디자인의 꽃이며, 개인적 심미안(審美眼)의 도구이다.

 

 

 

 

13살부터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우표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우표를 수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집에 있던 오래된 보물 상자를 고물상 아저씨한테 팔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안의 물건도 물건이지만, 그 상자가 조선시대 어새(御璽)를 보관하던 어새함(御璽函)이었다. 구한말 집안의 통정대부를 지내셨던 고조부께서 남기신 유물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팔아버렸으니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 그 때 물건이 가지고 있는 세월의 흔적과 기록, 그리고 가치에 대한 눈을 뜰 수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작은 우표책을 주셨는데, 먼지 가득 쌓여있던 다락방 한 귀퉁이에 보관돼 있던 우표들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시간여행에 빠져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셨던 시대를 작은 우표 한 장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단지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위대한 수집가가 아니라, 그것이 왜 보물인지 알고 연구하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사명을 갖는 것이 진정한 수집가(문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표 수집을 하는데 있어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향교 훈장님으로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할아버지를 통해 서예나 그림 엽전 등 옛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중국요리 학교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수험생 때 고려대 고고인류학과에 1차 합격하고 면접을 봤는데 뭔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성의껏 응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별로 아쉬움이 없더라.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요리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열심히 면접을 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2차에서는 미끄러졌다.(웃음) 사실 한국에서는 대학 간판이 중요하지 않나. 나는 그러한 간판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님께서는 한국에서의 대학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꿈을 개척하는 아들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

집안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개방적이었고, 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믿음을 많이 보여주셨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중국에 배낭여행을 떠나던 날 부모님께서 ‘네가 가는 곳마다 꿈이 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용기를 갖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공부하라는 말씀은 많이 안하셨다. 다만 종종 살 빼라는 말씀은 하신다.(웃음)

 

중국 베이징에서 문화원을 운영한다던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주중한국대사관 외교관 부인회, 북경주재 주부를 대상으로 내가 지니고 있는 문화지식 전반부를 강의한다. 중국요리, 중국 품차, 수묵화, 우표 수집, 중국음악 등이 내 강의 내용이다.

 

중국엔 어떻게 가게 됐나?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자문화권의 교육을 받다보니, ‘중국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 나간 외국이 중국이었는데, 대국(大國)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외국에서의 생활이 외롭지는 않은가?

나는 이상하게 가는 곳이 다 우리 집처럼 편하더라.(웃음) 적응을 잘 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는 곳마다 재미를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말해달라.

개인 문화센터 혹은 개인 테마레스토랑, 궁극적으로는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 우표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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