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 서정적 리듬으로 풀어낸 ‘달래이야기’ 연출가 조현산
전쟁의 아픔 서정적 리듬으로 풀어낸 ‘달래이야기’ 연출가 조현산
  • 김우성
  • 승인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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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명품 인형극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전쟁의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방송에서는 일찌감치 기획드라마가 방영 중이고 해외에서도 기념식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인형극 ‘달래 이야기’는 동족상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인 여자아이(인형)가 등장함에도,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장면을 배제한다. 무대에는 파스텔 색감의 이불이 너풀거리고, 한 마리 물고기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어우러져 하늘을 날아다닌다. 한낮의 햇살 마냥 무대 바닥으로 스며드는 조명도 따뜻하다. 이같이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리듬은 종착에 이르러 관객들의 가슴을 한껏 저민다.

‘달래 이야기’에는 대사가 없다. 관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느껴지는 달래의 몸짓으로 객석과 소통할 뿐이다.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연기자들은 때로 직접 표정을 지어보이며 1인칭과 3인칭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전쟁이 지나가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은 마임과 애니메이션 기법 등 다양한 변주를 통해 표현된다. 인형극이라 하여 아이들 손을 이끌고 의무감에 극장을 찾았을 관객들은 긴 여운에 취해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달래 이야기’는 얼마 전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을 지칭)의 본고장인 체코에 초청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내에서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던 이 공연은 전세계 유수의 인형극이 참가하는 스페인 토로사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올 여름에는 인형극 사상 최초로 전일본 투어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공연을 기획했고 연기까지 하는 <예술무대 산> 조현산(42) 대표는 1990년부터 꼭 20년 간 외길을 걸어온 끝에 명품공연을 탄생시켰다. 충분히 상업적으로 포장할 법도 한데, 큰 무대보다는 전국 각지의 오지까지 찾아다니며 ‘소리 없이’ 달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좋다고.

그가 청춘을 바쳤던 대학로에서 만나 무대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획 의도를 묻자, 관절인형과 혼연일체과 되던 카리스마는 간데없고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떤 분들은 왜 하필 시대에 안 맞게 전쟁이냐고 하셨어요. 연세 많은 분들이나 겪었던 것 아니냐고, 자기 살아있는 동안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않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지구상에서 전쟁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아요. 전쟁이라는 게 꼭 총을 쏴야하는 게 아니라 ‘커다란 갈등’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갈등 사이에 놓인 힘없는 사람들만 희생당해야 하는 현실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공연 중 그림자로 잠깐 등장한 탱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안 가더군요. 의도된 건가요.

그 탱크 모양자체는 북한군 탱크를 기반으로 제작한 건데 아군과 적군을 표현하지 않으려 했던 건 맞아요. 전쟁을 이용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전쟁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앞서 전쟁이 커다란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됐어요. 주인공 달래가 여자아이인 것도 힘없는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진달래의 달래를 뜻해요.(웃음) 예전에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이름을 만들어 부르기도 하셨잖아요. 진달래는 봄에 길에서 흔히 피어나는 꽃인데, 전쟁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오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죠.


인형의 미세한 움직임이 상상 이상이던데 인형연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해 주시죠.

인형은 내 몸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연기자(인형)를 만들어내는 데에 기술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요. 공연이 기획되어 배우가 먼저 시연하면, 연습 이전에 실제 인형으로 그 연기가 가능한 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대에 올릴 연기가 결정되면 수천 번 이상 반복해서 훈련을 하지요.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기술적인 부분은 잊어버려요.


(기술적인 부분을 잊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자)

사람이 무대에서 연기할 때 나의 고개가 어디로 움직일 지, 손가락이 어디로 움직일 지 의식하지 않잖아요. 인형연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인형도 직접 제작하는 건가요. 인형제작 교본이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직접 제작하고요.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연기자(인형)만 존재할 수 있듯이 공연에 맞춰 수없이 수정을 해가며 만들어집니다. 거의 완성을 해놓고도 원하던 대로 나오지 않으면 파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을 보고 있으면 정말 사람처럼 느껴져요. 공연 끝나면 관처럼 생긴 보관함에 넣어주는데, 꼭 잠이 드는 것 같고. 옆에 앉아 있을 때도 심심하지 않지요.(웃음)





인형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그냥 인형극이 좋았어요. 다른 건 전혀 눈에 안 들어오고 인형극만 좋더라고요.(웃음) 제가 인형극을 처음 시작할 때는 국내 인형극 토양 자체가 척박했지요. 지금도 인형극 학과라는 건 없잖아요. 외국엔 인형극으로 유명한 학교들이 많은데 한 번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비주얼아트시어터에서 인형극을 공부한 사람들이 저희 공연을 보고 신기해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우리 유전자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호흡이 그들에게는 생경하면서 신비했던 것 같아요. 비주얼아트시어터에서 워크샵을 부탁하여 내년에 계획을 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하면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해외에서 공연할 때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해외 관객들은 확실히 아주 직접적이었어요. 오키나와에서 공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오키나와 자체가 전쟁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지녔잖아요. 공연 보면서 많이들 우셨고 일부러 찾아와서 잘 봤다며 인사하시고 그랬죠. 또 스페인이나 프랑스같은 서양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게 반응해 주시더라고요. 특히 프랑스 공연 때 막이 내린 후 박수가 점점 작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어요. 그래서 원래 없던 커튼콜도 생겼지요.


스페인 인형극축제에서 큰 상도 받았다고요?

스페인 토로사 페스티벌에서였어요. 캐나다 퀘백과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많은 팀들이 참가했었는데 퀘백은 거작도 많이 만들고 인형극으로 워낙 유명했어요. 가든파티가 열린 뒷풀이 장소에서 시상식을 겸했는데 심사위원이 7명의 어린이들이었어요.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죠. 그렇게 3등 2등 발표해 가면서 우리는 그저 바비큐 익어가는 거 보면서 시상식을 즐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리고 우리가 1등이라는 거예요. 우리이야기를 우리식으로 담아냈는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니까 신기하고 뭉클했어요.


일본 투어는 어떻게 가게된 건가요.

오키나와에서 우리 공연을 본 일본인형극 관계자가 초청했어요. 해외공연이라고 하면 보통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투어로는 처음일 거예요. 투어 일정에 페스티벌 참여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일정이 극장에서 열리는 기획공연이지요.


일본 투어를 주선한 이는 오끼나와 키지무나 페스타(Okinawa Kijimuna Festa) 히사쉬 시모야마 예술감독이다. 일본 아시테지(Assitej -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아동청소년연극협회 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는 그는 공연팀의 숙박, 일비, 개런티 일체를 지원해주면서까지 일본 전역에 ‘달래 이야기’를 알리려는 중이다.


3D영화 시대가 왔어도 인형극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밝히자면요?

저희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인형극이야말로 진짜 3D라고 해요. 하하. 어느 시인분께서 달래이야기를 보시더니 공연이 시 같다고 하셨는데... 인형극 자체가 시적 압축이 있어요. 머리로 애써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가족 소개 좀 해주시죠.

미술감독이자 달래를 함께 연기했던 사람이 배우자이고 중학생 딸이 있어요.


아내분과 함께 작업해서 좋은 점이 많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게 비슷하다는 게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예요. 이를테면 다른 공연을 보고난 후 ‘이거 참 좋았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 아내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다든가 하는 식이지요. 일의 외형도 중요하지만 ‘왜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반면 가족이라 더 힘든 점도 있어요. 연습할 때 하나의 인형을 두고 둘이서 연기(조종)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완벽한 인형연기가 나올 때까지 거치게 되는 각고의 과정 속에서 연기자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거든요. 그런 때에 틀리기라도 하면 가족이라 더 편하게 속마음을 내비치면서 마음 상할 수도 있지요.


따님도 자연스레 인형극에 관심을 갖겠는데요.

딸아이는 저희 부부에게 최고의 관객이지요.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다 말하거든요. 하하. 다른 건 몰라도 집에 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인형을 잘 만들기는 해요. (열쇠고리를 꺼내며) 이것도 자기가 만들어서 주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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