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수 떠놓고 국악기 만드는 장인 최태귀
정한수 떠놓고 국악기 만드는 장인 최태귀
  • 김두호
  • 승인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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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은 오동나무 찾아 천리 발품

【인터뷰365 김두호】가야금과 거문고 등 전통 국악기 제작 분야에서 천년의 맥을 이어가는 최태귀 장인(匠人 57)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365의 ‘그때 그 인터뷰’에 소개된 김광주 전통 악기장(1984년 79세로 타계 /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제자 3명 중의 한사람이다. 선대부터 대대로 심산유곡을 헤매면서 찾아낸 오동나무로 악기를 만드는데 일생을 바친 김광주 악기장(樂器匠)은 유업을 이을 아들 대신에 처조카 되는 17살 소년 최태귀를 공방으로 불러들여 제작 기술을 배우게 했다.

최태귀 장인이 그 동안 자신의 두 손으로 만들어 국악 연주인들에게 전달한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등 전통악기는 2천400여점을 헤아린다. 제작에 들어가면 정한수를 떠놓고 금욕생활을 한다. 구도정신으로 오르지 두문불출 제작에 몰입하는 옛 장인들의 공방제례를 지금도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그는 새해 1월 30일 대한민국민족문화협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는 제5회 한민족문화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기자가 1981년 그의 스승이며 고모부 되는 김광주 무형문화재를 만나 인터뷰하던 당시 공방에 일하던 젊은 날의 최태귀 장인을 스쳐가는 인연으로 만난 때가 32년 전이다. 근황이 궁금했던 그의 스승은 고인이 된 지 오래됐고 이제 긴 세월에 잊어버린 제자가 나타나 인터뷰이로 기자 앞에 다가선 것이다. 소년티를 막 벗어나 보였던 어린 청년 최태귀 장인도 곧 이순으로 접어든다.

인생은 흘러가도 기술은 남아

서울 숭인동 산중턱에 있던 김광주 선생의 국악기 공방을 방문했던 때가 1981년 봄이었다. 당시 인터뷰 기사는 서울신문이 발행한 선데이서울에 보도했었다. 지금 제자인 당신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 감회가 특별하다.
그 옛날 선생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왔던 당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내가 그때 기자의 인터뷰 인물이 되다니... 나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

무형문화재로 평생토록 국악기를 제작하며 살았던 김광주 선생의 그 후 소식을 전해 달라.
김광주 선생은 나에게는 스승이면서 고모부님이 되신다. 내가 17살 때 그 분의 공방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따님만 두 분을 두시고 아들이 없어서 아마도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당신이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고 3년 후인 1984년 서울 구이동 댁에서 별세하셨다. 술로 인해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술을 드셨다.

대체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분들이 술을 가까이 하는 경우가 많다.
정이 많은 분이다. 정이 많은 분이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는가? 병원에서 간암 판정을 내렸지만 술을 멀리하지 못하셨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내 손을 꼭 잡고 이런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셨다. “인생은 뜬구름 같아서 흘러가지만 기술은 남는 것이니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이었다.

17살 때부터 모시고 살았다면 아버지와 같은 분이겠다.
내 인생의 전반기는 그 분의 그늘 밑에서 먹고 살았고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힘들 때 꿈속에서 나타나 내손을 잡아주신다. 그럼 일이 잘 풀린다. 나는 살면서 그 동안 곡절이 많았다.

김광주 선생의 공방에서 당신과 함께 일하던 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선생님 밑에 세 사람이 있었다. 고흥곤 씨는 군복무 후 선생님 곁으로 돌아와 함께 일하다가 나중에 서울 양재동에 공방을 마련해 독립했고, 최세춘 씨는 그 때 그 숭인동 공방을 떠나지 않고 일을 했다.

인생에 곡절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경기도 여주에 정착해 공방을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젊을 때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힘들게 살았다. 서울 보문동에도 살다가 경기도 양평에도 살았고. 1985년에 결혼해서 양평에 살 때인 1995년 아내를 잃었다. 내 인생 최악의 위기였고 악몽이었다. 아기를 출산한 지 5일 만에 아기를 집에 두고 산후치료차 병원을 다녀오던 중 타고 오던 버스가 절벽에 추락했다. 24명 사망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그로부터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실의에 빠져 방황했다. 인생은 허무했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손을 잡게 된 것은?
아내가 떠난 지 5개월 만에 양평에서 서울 상봉동으로 이사하고 또 1년 뒤 경기도 하남시로 옮겨 가면서 비로소 정신을 차려 일을 시작했다. 가야금이든 거문고든 전통악기의 제작 작업은 모두가 수작업이다. 깎고 다듬고 잇고 맞추는 손 작업은 시작부터 완성품까지 어떻게 보면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과는 오르지 공들인 만큼, 정성을 쏟은 만큼 나타난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면서 나의 작품이 여기저기서 상을 받았고 나의 기술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나오면서 주문이 이어졌다.


악기 제작 작업중인 최태귀 장인.

벼락 맞은 벽오동이 명품소재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악기 제작에서 특징적인 기본 기술은 어떤 것인가?
악기는 동서고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도구로 등장한 것이고 제작 목표도 그 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데 있다. 오동나무를 소재로 만드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제작을 하면서 수시로 손마디로 똑똑 두드려 소리를 들어가며 만든다. 악기로 변신해 가는 나무통의 공명을 측정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만드는 사람과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다르지만 만드는 사람이 먼저 소리의 진동과 여운, 음폭과 파장 등 악기가 될 수 있는 소리의 기본 음질을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같은 형태의 악기를 만들어도 어딘가는 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나무의 결이 다를 수도 있고.
세상에 비슷한 것은 있어도 똑같은 것은 없다. 백사장 모래도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다르다. 한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이 서로 다르듯이 같은 사람이 같은 소재로 만든 악기지만 똑 같을 수가 없고 서로 다르다. 그래서 나는 만드는 악기마다 임자도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악기는 모양이 아무리 좋아도 소리가 시원찮으면 실패작이다. 악기소리는 어떤 음에도 탁하고 흩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소리가 맑은 물과 같아야지 먼지 한 점이라도 떠 있는 느낌을 준다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타고난 나무의 결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해도 기계나 손길로 고쳐 잡지 못한다. 그래서 결이 좋은 나무를 만나야 우선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제작공정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전통적으로 삼고 있는 기본 규격은 가야금이 145cm, 거문고는 165cm의 크기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어서 규격을 표준수치로 정해 놓고 만들지는 않는다. 소리를 양성(陽性), 중성, 음성(陰性)으로 분류하면 거문고는 양성, 다소 강하고 거친 성격의 수컷에 비유할 수 있고 가야금은 반대로 음성, 가냘픈 암컷으로 볼 수 있다. 나무들도 암수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곧게 쭉 뻗은 나무는 수컷이 많고 가지가 많고 퍼져 있는 나무는 암컷들이다. 스승은 늘 말씀하셨다. 나무마다 몸의 결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고.

나무의 결은 어떻게 판독하고 구분할 수 있는가?
나무의 겉 피부 쪽은 숨구멍이 크고 결이 약하지만 속나무는 숨구멍이 작고 조밀해 결이 야무지고 단단하다. 그래서 쇠고기를 소의 부위별로 나누어 사용하듯이 악기 재료가 된 나무도 용도에 따라 부위별로 나누어 활용한다. 나무의 전신을 두고 볼 때 수분이 적고 결이 야무진 가지가 최고지만 가지를 악기 재료로 쓰는 나무 정도는 100년이나 200년 이상 묵은 나무들이다.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통악기 목재로 활용하는 오동나무를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내에서도 미리 오동나무가 있는 곳의 주인에게 부탁을 해두기 때문에 체취하면 연락이 온다. 소문난 대형 오동나무 중에는 주민들이 동신(洞神)으로 보호해 활용하기가 어렵지만 전국 산속을 뒤지면 재료가 될만한 자연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질이 좋은 오동나무 소재는 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 전남 지역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다. 충청도에도 북도보다 남도 쪽에 많다.

최고의 명품 소재라면 어떤 나무인가?
벼락 맞아 번갯불에 그슬려 명이 끊어진 벽오동이 환상적인 소재라고 하지만 진품을 쉽게 구할 수가 없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성장한 석상 오동나무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소리가 청아하고 나무결이 단단해 악기로 명품이 될 수 있다.

인장이나 부적도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어야 특별하다는 말이 있다. 벼락 맞아 죽은 나무가 악기 소재로도 좋다는 이유는 애매하고 불분명하다.
아마도 본래 단단한 나무인데 벼락을 맞아 더한층 물기가 빠지고 이상적으로 단단해 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태귀 장인이 혼을 담아 만든 명품 거문고, 산조가야금 그리고 소아쟁과 대아쟁

12금에 천지의 기운을 담는다

전통 국악기의 장인들은 대다수 주문을 받아 악기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체로 그렇게 일을 시작한다. 주문을 받아 제작에 들어가면 나의 경우는 머릿속에는 악기의 주인이 떠오른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주문자와 악기가 서로 성격이 맞고 연분이 통하게 만들어 화합이 되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긴다. 1년 12개월을 상징하는 12금 가야금의 울림판은 언제나 옛 장인의 제작 의도대로 천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 된다

바이올린의 명품인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7∼18세기에 제작된 서양악기지만 오래된 것일수록 더 진가를 인정받는다. 그런 점에서 오르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전통악기도 제작에 임하는 장인의 남다른 기술과 정신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작품 작업을 시작하면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놓고 심신을 일에 집중시키고 가라앉힌다. 부처님 앞에서 수도자가 정갈한 심신을 유지하고 기도를 시작하는 각오나 자세로 보면 된다. 언행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모두 스승으로부터 본받은 것들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악기에 혼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장인에 따라 악기의 주문 판매가격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장 비싸게 받는 악기의 주문 가격은 얼마가 되는가?
재료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최고품은 하나에 2천만 원까지 받는다. 나의 악기 제작에 쓰는 목재는 채취 후 많은 시간을 두고 장소를 옮겨가며 건조과정을 거친다. 유리관 속에 목재를 넣어 건조시키는 방법도 이용하고 있다. 내 나름으로 연구해 성과를 얻은 방법이다. 나는 악기 제작공정에 빛을 매우 유효적절하게 활용한다. 악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나를 제작하려면 500회이상, 1000번까지 손길이 간다.

그동안 당신이 만든 악기의 숫자를 알 수 있는가?
한 때는 10여명의 제자를 두고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좋은 작품을 만들 때는 하나 제작에 혼자서 다섯 달까지 매달려 일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 달에 10여개 제작한다. 지금까지 통틀어 2천4백여 개 이상의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 등 각종 악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고유 악기의 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람을 꼽는다면 어떤 이야기부터 하고 싶은가?
장인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분이라도 자신의 기술을 완전한 것으로 만족을 느낄 수 없다. 느낀다면 오만이다. 오만은 발전이 없는 게으름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지켜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일이니 손에 잡히는 일이 늘 즐겁고 행복하다. 가정적으로도 불행하고 절망했던 때가 있었지만 성장한 세 자식 중 큰 딸 윤화(27)는 이화여대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했고 맏아들 윤석(24)이도 아쟁 연주를 전공해 국악인이 되어 나의 공방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 행복하다. 막내 윤호(17)는 고교생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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