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공작이 된 팝페라 가수 제이 피콕
무대 위의 공작이 된 팝페라 가수 제이 피콕
  • 김두호
  • 승인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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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페라는 환상을 추구하는 음악이다”

【인터뷰365 김두호】오페라와 팝 뮤직, 전통 성악과 대중음악을 아우르는 팝페라 가수가 예술인 축제행사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한 해를 빛낸 영화인과 연극인을 선정한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12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 행사에서 개막공연을 팝페라 가수 제이 피콕(제클린 피콕 / 한국명 김의옥)이 장식했다. 화려한 의상, 분장과 감미로운 노래로 참석 영화 연극인들의 갈채를 받은 그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돌아온 다양한 경력의 팝페라 아티스트이다.
팝페라는 1980년대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떨친 한국계 키메라(한국명 김홍희)가 원조 가수였지만 딸의 납치사건으로 무대를 떠난 후 후속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 피콕의 등장은 지금도 팝페라 음악인이 국내에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이름이 특이하다. 피콕(Peacock)은 공작새를 뜻하는데.
그렇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공작새 한 쌍을 키웠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깃털로 치장된 공작은 신비주의를 동경하는 어린 소녀에게 환상적인 꿈을 안겨주었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공작이었다. 예명을 생각하면서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 마리의 공작이 되고 싶어서 새 이름 피콕을 그대로 사용했다.

캐나다에서 음악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다가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에 있는 4년제 음악학교인 로열 콘서버터리 오브 뮤직(Royal Conservatory of Music)에서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교회 음악활동을 해와 새삼스럽지 않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미국의 줄리아드보다 입학이 어렵다고 소문난 곳인데 워낙 학생을 소수로 뽑는다. 졸업 후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저명한 아티스트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성악도 팝도 아닌 장르인데 팝페라를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음악성 때문인가?
캐나다나 미국은 클래식보다 대중음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음악인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었고 나의 음악적 기량이 성악도 가능하고 팝도 가능해 쉽게 택한 것이다.

그동안 공연 이력은?
캐나다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에서 초청 공연을 많이 했다. 10년간 살다가 2009년 귀국해 지난해 예술의 전당과 금호아트홀 등에서 공연했다. 2011년에 내가 노랫말을 만든 를 타이틀곡으로 한 앨범을 발표했다. 나는 현란한 기교보다 진실성 있는 감정과 자연스러운 톤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신의 목소리는 파워가 있고 맑고 경쾌하게 느껴졌다. 특히 고음일 때 저음보다 오히려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음악적 특성에 대해 말해 달라.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벨칸토 창법을 살려내고 있다. 팝페라 싱어는 클래식과 팝의 영역을 마음대로 오가는 크로스 오버 영역을 구축해야 하는데 양쪽 모두 잘해야 가능하다. 성대와 발성에서 타고난 게 있어서인지 나는 오래도록 소리를 질러도 후유증이 없고 목청이 변하지 않는다. 창법이 나나무스꾸리와 안드레아 보첼리에 가깝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데 나 역시 그 분들을 본받고 싶어 한다. 편안하고 감미롭게 감정을 담아내는 가수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팝페라 가수라면 키메라에게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키메라를 잘 아는가?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학창시절 그의 화려한 공연 활동을 보고 매력을 느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래도 팝페라 가수라면 화려한 분장부터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원조가 되는 인물이 아닌가?

대학 전공학과가 영어였다면 음악 못지않게 어학도 좋아했던 것 같다.
통역 일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 영어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학교에서 만점 수준을 유지할 만큼 잘했다. 졸업 후 동시통역 활동도 했다. 어학에는 취미가 있어서 일본어와 이탈리아어까지 하게 됐다.

아버지가 통역사였는가?
아버지(김성준 /1980년 타계)는 해방직후 미군정청 사령관이었던 하지 중장의 통역관이셨다. 동경대 의대를 나오셔서 처음에는 의사로 활동하다가 통역관으로도 근무하셨다. 6.25 전쟁 때는 군의관으로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의 지원사업을 하셨고, 스웨덴 국왕의 형인 오만 목사와 마산에 국제극동선교센터를 세우기도 하셨다.

어릴 때 집안에 공작새를 키웠다고 해서 어떤 가정인지 궁금했다. 가족 얘기를 좀 더 해 달라.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아버지의 고향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고향집 이웃동네인 거제군 장목면 장목리다. 어머니(박영순 / 86)는 7남 2녀를 낳으셨는데 내가 막내라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크리스천 집안이라 오빠 두 분이 목사가 되셨고 한 분은 러시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외가 집안도 기독교인들인데 외할아버지는 주기철 목사님과 마산 문창교회를 설립한 초대 장로셨다.

제이 피콕은 앞으로 태권도를 소재로 한 팝페라를 뮤지컬화할 꿈을 가지고 있다


노랫말을 직접 작사했다는 앨범 는 어떤 내용을 담은 음악인가?
팝페라지만 발라드 스타일로 친 대중가요 쪽에 비중을 둔 음악이다. 노랫말도 서로 사랑했다가 떠나야하는 애절한 심경을 담았다.

작가들은 체험에서 작품소재를 얻는 경우가 많다. 실례지만 노랫말이 혹시 자신이 실제 겪었던 경험담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인이 사생활을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상상에 맡긴다. 나는 지금 독신이다.

팝페라 아티스트가 되기 전 특수 분야의 국제 비즈니스에 관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재산을 모으는 것과 거리가 멀다. 틈틈이 사업도 해왔다. 헬리콥터에서 매장물 탐지기 등 특수물자 중개사업을 했다. 그런 사업을 로비스트 활동으로 보기도 하지만 매우 합법적인 국제 상거래 절차를 거쳐 비즈니스를 한다. 그러나 거래 관례상 공개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사업 얘기보다 주로 음악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싶다.

당신은 팝페라 아티스트이면서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을 준다.
비밀스러운 것은 없다. 내 나라가 좋아서 돌아왔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서의 생활은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게 만든다. 생각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복잡한 일이 너무 많다. 캐나다나 미국에 살면 남의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제 멋에 취해 살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나의 활동도 꿈은 글로벌 공연에 있다. 넓은 곳을 향해 마음껏 달려가고 싶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 쪽으로 진출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도 팝페라 음악 마니아들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팝페라는 새롭게 시도하고 개척해야할 과제가 많은 분야로 생각된다.
가수는 음악을 통해 삶의 고뇌와 즐거움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팝페라라고 해서 어렵고 힘든 음악은 아니다. 팝페라는 환상을 추구하는 판타지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어떤 노래를 부르던 듣는 이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기에 신비감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준비 중인 신곡이나 밝히지 않은 새로운 인생 계획을 듣고 싶다.
우리 가족의 유전인자에 무예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나도 정적인 것보다 액티브한 취미를 즐기며 살았다. 한때 용감한 국제적인 수사관이나 첩보원이 되고 싶었다. 부드러운 산보다 거친 암벽 등산을 좋아하고 태권도도 좋아해 검은 띠를 맨지 오래된다. 아버지도 문무를 겸비한 분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한말 병조판서를 지내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음악에 태권도를 풀어 넣어 태권도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과 패션을 접목한 종합예술 차원의 팝페라 공연 무대를 보여주려고 한다. 태권도를 소재로 한 팝페라를 뮤지컬화 해 해외 순회 공연을 할 계획인데 어떻게 보면 태권도를 댄싱으로 리메이크한 무대가 될 것이다.

언제쯤 공연무대에 올릴 생각인가.
내년 초로 잡고 있다.

이번 아름다운예술인상 개막 공연에 입은 녹색 의상이 독특하게 보였다.
김정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무대의상과 한복의 전통미를 살리고 공작의 색조를 반영한 디장인으로 느껴진다.

한러예술교류위원회와 세계문화예술교류협회의 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
명칭 그대로 국제 예술교류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다. 민간 외교활동이 부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단체활동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끝으로 다방면에 열정을 가지고 파워우먼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는 잠언이나 길잡이로 삼고 있는 경구(警句)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물질주의에 푹 빠져 있는 이 시대의 사회 분위기에 저항감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 사회가 점점 인간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나는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너무 좋아한다. 바닷가에서 자연의 품을 느끼며 자란 탓인지 생활 속에서나 나의 음악활동 등 일 상에서 끊임없이 자연을 생각한다. 꾸미지 않고 기교부리지 않고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틈날 때 북한산 삼성산 관악산을 오르며 실제 자연의 품안에 몸을 던질 때가 가장 행복하다. 캐나다에서도 바다와 산이 아름다운 밴쿠버에서 살 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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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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