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재 26가지 발명한 농부 발명왕 김윤수
농기재 26가지 발명한 농부 발명왕 김윤수
  • 김두호
  • 승인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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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특허 윤농면포로 친환경 농업대상 수상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농업에 필요한 기계나 자재라면 농부의 손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만든다’는 신념으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발명에 몰두하며 산 농부 발명왕이 있다. 발명특허로 상품화된 농기계 6종을 포함해 실용신안, 특허출원 중인 것까지 26종의 발명품을 혼자의 힘으로 개발한 김윤수 사장(69 주식회사 윤농산업)의 발명시대는 1976년부터 시작됐다.


발명품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혁신적인 친환경 농업 자재인 자연분해성 면포와 그 면포를 이용한 벼농사용 종자 직파기계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실험연구로 농촌 오염물질의 주범이 되고 있는 썩지 않는 비닐 대신 사용 후 썩어서 퇴비가 되는 분해성 피복재인 면포의 발명이다. 그는 마침내 발명품을 직접 양산하기 위해 주식회사 윤농산업을 설립해 기업의 경영주가 되었고 자신이 발명한 면포를 ‘윤농면포’로, 그 발명품을 이용해 생산하는 친환경 쌀은 ‘윤농참쌀’로 이름을 달아 생산하고 있다.


34년 전 수박 참외산지로 이름난 고향 성주(경북)에서 수박밭의 보온용 덮개인 거적을 손으로 엮지 않고 기계로 제작하는 틀을 발명하면서 그의 인생은 비닐하우스를 연구실 삼아 발명에 몰두하는 농부발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소형 자전거 바퀴를 이용한 외발 손수레, 비닐하우스의 덮개 자동개폐기, 과일 자동선별기 등도 그의 히트 발명품들이다.

정부는 2005년에 제1회 친환경농업대상에서 우수기술상, 2009년 제8회 벤처기업창업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주며 지식농업을 실현한 대표적인 모델로 김윤수 사장을 선정했다. 그는 지금 캐나다까지 자신의 발명 농기자재를 가져가 영농지도를 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청하는 발명가의 손은 온기가 있었지만 흙을 만지며 산 탓인지 손바닥의 감촉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당신의 직업은 농업보다 발명가 쪽의 비중이 더 크게 보인다.

내 손을 보라. 흙손이다. 나는 평생 흙에서 살아온 농부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구나 재료가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내가 고안하고 제작한 농기계나 자재는 모두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찾아낸 것들이다. 발명은 여전히 부업이다.


26종에 이른다는 발명품 가운데 실용화 된 농기재는 어떤 것들인가?

짚으로 거적을 짜는 기계에서 외발손수레, 밀감선별기, 비닐하우스자동개폐기, 종자직파기, 소형이동농약살포기, 천연기능성 윤농면포 등이 있다. 그 중에 지금은 제주도 군산 칠곡 충주 등지에 재배단지를 두고 내가 만든 종자직파기와 면포를 이용해 윤농참쌀 등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종자직포기와 윤농면포는 어떤 용도와 기능의 발명품인가?

씨앗이나 새싹을 심을 때 농촌에서는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비닐을 덮는다. 또 작물이 자라는 땅에서 잡초를 제거하려면 주로 인체에 해롭고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사용한다. 모두가 공해가 되는 물질이다. 비닐은 썩지 않는다. 사용하고 버려진 비닐뭉치들이 농촌을 어지럽히는 쓰레기가 되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윤농면포는 비닐 대신에 땅을 덮는 일종의 자연분해성 피복재이고 복합성직파기는 그것을 깔면서 동시에 씨앗을 파종하는 농기계이다.


자연분해성이라면 썩는 물질을 뜻하는데 재료가 무엇인가?

재료를 찾아내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초기에는 풀이나 볏짚을 원료로 접착제를 사용해 만들어보았으나 실패했다. 다시 축산물 등 온갖 것을 다 가져와 실험을 하던 중에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재료들을 찾아냈다. 가축과 다시마 등 해산물에서 접착성 원료를 추출해 내고 목화가 원료인 솜으로 기능성 피복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즘 국내에서 목화재배를 하지 않아 원료구입이 쉽지 않을 텐데.

방직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힘들어졌지만 과거에는 방직공장에서 나오는 폐솜은 오히려 한트럭에 3만원씩의 처분료를 받아가며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버려진 침구 속의 이불솜도 원료가 된다. 사실 지금은 원료구입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그러나 면포는 사용 후 그대로 두면 저절로 퇴비가 되고 또 면포를 이용한 벼농사는 천수답 정도의 우량만 유지되어도 재배가 가능해 농촌의 장래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넣고 있다.


발명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발명품마다 동기가 있다. 윤농면포의 개발사업은 내가 경북 상주 낙동강변에서 5만여 평방미터의 대단위 땅콩농장을 할 때였다. 사용 후 버릴 곳이 마땅찮은 비닐 쓰레기로 인해 지방 공무원들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발명을 시작한 곳도 그곳인가?

아니다. 내가 처음 만든 농기계는 볏짚으로 거적을 짜는 기계였다. 1976년 고향인 경북 성주에서 농협에 근무하며 농사를 지을 때였다. 성주는 수박 참외 등 특수작물의 명산지다. 비닐하우스에서 비닐 덮개며 거적을 대량으로 활용하는 농촌이다. 작물의 보온용으로 쓰이는 거적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에는 피고름이 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손을 쓰지 않고 기계로 거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만세를 부를 만했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내 농협 월급이 8천3백원일 때 1대를 만들어 파는 순이익금이 7만원씩 떨어졌다. 한 4년 쯤 정신없이 만들었지만 공급물량을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발명에 자신감을 갖게 해준 계기로 보인다.

그런 셈이다. 그 후 좁은 논밭길이나 온실에서 운반 수단이 지게를 사용하는 것인데 내가 딸딸이로 이름 붙인 외발 손수레를 만들어 냈다. 어린이용 자전거 바퀴를 이용해서 만든 딸딸이도 히트 했다. 그러나 내손이 공장 기계구실을 했지 생산시설을 갖지 못했다. 금방 큰 공장들이 비슷한 제품들을 쏟아냈지만 한동안 내 발명품이 농가의 사랑을 받았다.


다음 발명품은?

보온 덮개 자동개폐기였다. 농가에서 혁명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660 평방미터쯤 되는 비닐하우스 한 동을 두 사람이 손으로 개폐하는데 보통 20분이 걸린다. 자동개폐기는 혼자서 10동을 10분정도면 해결했으니 노동력과 시간 단축 효과를 보고 그런 말이 나왔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발명과 관련해서 주문이 들어왔다. 감귤을 선별하는 기계는 지금 첨단기계가 쓰이지만 내가 만든 것이 원조에 속한다. 감자를 캐는 굴착기도 만들었고 별도로 약초를 캐는 기계도 만들었다. 감귤 선별기는 내가 만든 사과선별기를 보고 제주도에서 감귤농장을 하는 분이 찾아와 주문해서 개발한 것이었다.


왜 발명품을 특허로 보호를 받아내 생산시설을 갖추려 하지 않았는가?

돈을 벌면 또 새로운 기계 만드는데 마구 쏟아 넣었다. 만들다가 실패해 큰돈을 일순간에 날리기도 했다. 나는 과거 사업에 대한 관심이 없고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내가 만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했지만 금방 그보다 더 발전시킨 기계들이 등장한다. 나도 내가 만든 것에 집착 않고 다시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렸다. 이제는 윤농면포 같은 것을 특허로 지켜가며 생산시설도 마련했다.



과거 농협에 근무했다는데 발명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은 혼자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인가 아니면 전공 교육을 받은 것인가?

부농에서 태어났지만 형제가 많고 다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군복무를 마치고 곧장 서울에서 철공기술을 비롯한 전문 기술학원에서 기계 제작에 대한 기초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농협에 취직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 영농지도와 농산물 판매 담당을 하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많은 발명품을 오르지 혼자 연구하고 제작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안 간다. 일손을 돕는 조수 한사람도 곁에 두지 않았다는 것인가?

내 지난날은 낮에 농사짓고 밤에 기계 만드는 일로 하루 20시간씩을 움직였다. 비닐하우스가 연구실이고 공장이었다. 들판에서 혼자 주로 생활해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생활을 했다. 목표가 정해지면 작업 내용이 기계를 혼자서 조립해 보고 실험하는 과정이어서 굳이 조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혼자서 만들어 낸 발명품이 성공했을 때마다 맛보는 기분도 상상이 간다.

지옥에서 천국 땅을 찾아낸 기분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걸 알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덤볐다.


캐나다에도 발명품과 기술을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농면포와 직파기계 등 내 발명품과 영농기술이 동포교수를 통해 캐나다로 전해져 지난해 4월에는 캐나다 주정부의 초청으로 몬트리올 북쪽에 있는 원주민 농경지에서 영농기술 시범 지도를 해주고 왔다. 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포기한 농토를 점검해보니 부드러운 모래 위에 표면이 단단하게 굳은 땅이었다. 나는 가져간 내 발명품인 종자직파기계와 면포를 이용해 표면을 갈아엎어 영농이 가능한 기술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모두 그곳 전문가들이 분석해보고 포기해 버린 땅이었다면서 감동했다. 그들의 농기계라는 것이 트렉터가 고작이었다. 비닐하우스도 직접 용접봉을 사용해 파이프를 세워 지워주고 고장이 나서 버려진 농기계까지 고쳐주고 왔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주정부에서 보낸 추장을 비롯한 농업인 9명이 견학차 한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왜관에 있는 공장을 둘러보고 면포를 수입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희망적이고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공장은 어는 정도의 규모로 가동되는가?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에 2천여 평방미터의 땅에 공장 건평은 그 절반쯤 된다. 작년 1월에 생산설비를 갖추어 가동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도 돈을 벌지 못하고 투자를 계속 하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업이어서 정부 관련기관을 통해 융자지원을 받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그러면서 보고 느낀 것은 공직사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녹색 성장이다, 친환경 사업이다 하는 것은 아직 구호가 앞서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발명품의 가치나 필요성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정부가 주는 친환경농업대상이나 벤처기업 우수상도 받았으니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기술지원 관련기관이나 농업관련 진흥기관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어떤 공직자는 제초제를 쓰지 않게 하는 친환경 제품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왜 그런 힘든 사업을 하느냐”고 말해 그 자리에서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부은 일이 있다. 부모가 땀 흘려 번 돈으로 고시방에서 공부나 열심히 해 공직자가 된 사람 중에는 농업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이동해 성공한 나라가 되고 식량문제도 걱정 밖으로 밀려나 농업관련 사업들이 관심을 모으기 힘들 수 있다. 결국 발명품에 대한 관련기관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인가?

나는 쌀 농사를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지 못한다. 언젠가 너의 자손이 밥을 못먹고 굶는 날이 올 것이라는 악담을 한다. 정부의 혜택을 못받은 것은 아니다. 2006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의 연구지원금도 받은 일이 있고 작년부터는 농수산식품부 기술계획평가원의 신기술연구과제 공모에 선정되어 친환경 농법 관련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다.


발명품을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은 어디인가? 생산량은?

제주도와 왜관에서는 직접 짓고 군산과 충주에서는 기술을 제공해 위탁 재배하고 있다. 모두 25만 평방미터에 연간 쌀 1600가마니를 생산하고 있다. 맛과 영양가에서 일반미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찹쌀국수와 찹쌀떡도 개발했다.


지금도 만들고 있는 기계나 농자재가 있는가?

음식 쓰레기를 연료화 하는 발명품을 특허출원해 두고 있다. 그러나 윤농산업을 설립한 뒤부터 과거처럼 발명에 매달려 살지 못하고 있다. 돈 욕심은 없다. 언제나 보리밥 한 덩이에 물 말아 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기운이 벌떡 솟는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쉬지 않고 발명 작업은 계속할 생각이다. 나의 발명 작업은 돈벌이보다 농사를 짓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달라.



내조한 부인 등 가족을 소개할 수 있는가?

아내는 내가 못말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 말없이 삼남매 자식을 잘 키워주었다. 아들 하나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현재 안동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있고 딸 둘은 음악과 미술을 전공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못다 한 말을 들려 달라.

이제 곧 칠순으로 넘어선다. 그 동안 내가 가진 것들, 차지하고 얻은 것들을 사회에 내놓아야할 나이에 이른 것 같다. 음식쓰레기를 연료화 하는 기계장치를 실용화 하면 생각해야할 일이 많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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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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