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장사익’으로 떠오른 지리산 가수 고명숙
‘여자 장사익’으로 떠오른 지리산 가수 고명숙
  • 김두호
  • 승인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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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만근 무거운 것은 내 마음이었거늘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지리산의 젖줄 같은 섬진강변 구례에 ‘지리산 가수’ 고명숙(46)이 사시장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주로 지리산 자락의 도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와 모임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곳 사람들은 그를 ‘지리산 가수’로 호칭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불혹에 자신도 모르게 떠밀려 가수 아닌 소리꾼이 된 장사익과 공통점이 많아 ‘여자 장사익’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


장사익처럼 그녀의 노래도 고음으로 이어지면 금방 목에서 피가 나올 것같이 처연하게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통기타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른다. 트로트도 부르지만 대부분 노랫말이 아름답고 리듬이 감미로운 포크송이 많다. <귀향>과 <산사의 하루>를 타이틀곡으로 한 자신의 데뷔 앨범도 있다.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 나는 구름이 되고 싶다 / 나는 산하 속에 안기어 / 나는 노래가 되고 싶다’는 글을 그는 데뷔 앨범 복판에 곱게 한복을 입고 지리산 갈대밭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 옆에 적어두고 있다. 목젖에 멍울이 생기도록 이곳저곳에서 노랠 부르고 돌아가는 그의 집은 노송과 묵은 느티나무 그늘 밑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토담집이다. 그는 그 집에 살며 섬진강 마을의 소리꾼이 되어 지리산 자락을 돌며 노래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고 있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가면 봄이면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화개장터도 멀지 않다. 10년쯤 탄다는 털털거리는 그녀의 소형차를 타고 화개장터에서 녹차를 마시며 <한계령>을 듣고 있으면 지친 삶의 무거운 어깨가 새털처럼 가볍게 내려앉는 행복감에 젖게 한다. 기자가 구례로 인터뷰를 간 날도 그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인 ‘지리산만인보’행사에서 노랠 불렀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온 도법스님과 지리산만인보 회원들의 만남의 시간이 시작됐다.



최근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도 음악회를 가졌다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음악회를 가진 사람은 내가 처음일 거 같다.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모임에서 초청했다. 노래를 듣는 분들이 그곳에서 기다려 죽을힘을 다해 5시간을 올라갔다. 거기 노래가 아니면 무엇을 준다해도 등산을 포기했을 거다.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고명숙을 ‘지리산 가수’로 부른다. 주로 지리산자락의 도시나 동네에서 활동하기 때문인가?

하하하. 지금은 강원도 가수도 하고 부산 가수도 되었다가 서울에 가서 부를 때도 있다. 얼마전에는 김천 직지사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밀양에서는 이름 있는 가수들과 2만명이 모여 있는 무대에도 올랐다. 주로 구례에서만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 그렇게들 불렀다.



언제부터 노랠 부르기 시작했는가?

나에게 노래는 수심을 쓸어내고 고통과 외로움으로 차있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최상의 반려자였다. 내 목안에서 나오는 노래는 먼저 나를 즐겁게 했고 그렇게 부르다보니 듣는 분들의 마음도 즐겁게 했다. 그래서 보통 가수와 달리 나의 시작은 정확하지 않다. 그저 젊을 때 어린 남매를 키우며 집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살 때부터다. 20년도 넘었을 것같다.


집나간 남편이라면?

내가 살던 고향은 지리산이 아니라 새재가 보이는 문경이다. 철없을 때 우연히 한 남자와 눈이 맞아 구례로 시집왔다. 가족이 반대해 그냥 집을 나왔으니 나혼자 시집온 셈이다. 우리의 인연은 묘했고 아름다웠다. 남편과 살며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게 잠깐이다. 남편이 분가해 농장을 하다가 사업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었다. 그길로 집나간 남편은 8년간 소식이 없었다.


지금은?

어느 날 빈손으로 나타났지만 건강해서 좋았고 성실하게 다시 재기해 지금은 행복하다. 건설사업으로 돈도 잘 번다. 자식들과 서울에서 산다. 나는 이미 노래에 빠져 서울에 살 수가 없었다. 8개월만에 구례로 다시 내려와 빈 집을 얻어 살며 활동하고 있다. 노래에 빠진 게 아니라 지금은 내 인생 전부가 노래로 변해 있다.


남편과 묘하고 아름다웠다는 인연은 어떤 인연인가?

부산의 어느 길가에서 지나가는 한 남자를 보는 순간 전기가 왔다. 생전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냥 ‘저 남자다’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 시선이 한번 마주치고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집안 오빠를 만나러 간 장소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노래로 한을 씻어내던 때로 다시 얘기를 돌려보자.

보리밥집도 하고 전통 찻집도 운영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내가 머무는 곳에서 기타를 치며 틈틈이 손님들에게 노랠 불러주었다. 그게 내 노래의 시작이었고 음악인생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다가 작은 모임에서 시군단위의 문화제나 각종 축제무대까지 올랐고 남원 순천 여수 고흥 강진까지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앨범을 낸 것은 언제인가?

정식으로 내가 내 노래를 부르며 앨범을 제작한 것은 2004년이다. 그해 3월 구례에서 열린 산수유꽃축제가요제에 심사위원으로 오신 작사가 장경수 선생께서 대상을 받은 나에게 당신은 노래를 부르며 살 팔자인데 왜 신곡을 내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나는 사투리 액센트가 너무 강해 가수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 분은 노래에 무슨 사투리를 쓰느냐며 데뷔를 적극 권했다. 한 달 뒤 지리산곡우제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분은 지금 노랠 안하면 평생 지리산 산속 음지에서 울고 살 거라고 미운말씀까지 마구하셨다.


그래서 양지로 나온 것인가?

그런 셈이다. 나를 위해 첫곡으로 <꽃신>(장경수 작사 / 이호섭 작곡)을 보내주셨다. 그 분은 가수가 되려면 남을 울려줄 수 있어야한다는 말을 귀담아 듣게 했다. 그런데 우리 찻집 창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그 노랠 불렀더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손님들도 함께 울더라.




어떤 노래인가?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로 답했다) 하늘가에 앉아 울 엄마 웃는다. 웃어도 눈물 흐른다. 하늘나라 천사가 되어 우리 아빠를 부르나. 얼어붙은 땅에 있는... 어허야 어여라 허여. 꽃신을 사온다더니.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고. 내 가슴에 묻어두리.


지리산 소리꾼 고명숙은 대답 대신 틈틈이 노래를 불렀다. 적막한 밤 지리산의 거친 겨울바람이 토담집 한지창틀에서 울음으로 바뀌는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할 때 친구 두 분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섬진강 시인 이형순 여사와 무용가 심여옥 여사였다. 모두가 지리산 공기를 마시고 섬진강 맑은 물에 추억을 담아놓고 사는 토박이 문화예술인들이다.

지리산자락에는 사계절 쉬지 않고 축제가 열린다. 지리산 가수가 주관하는 산사음악회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사찰행사로 빈번하게 열리고 2년전부터 달빛음악회, 오래된 전통행사인 조태일문학관 축제 등 문학 음악 춤이 어우러진 행사가 지리산 계곡을 끼고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언제부터인가 축제자리에 이형순 시인은 자작시를 낭송하고 심여옥 무용가는 고명숙의 노래가락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합동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형순 시인은 고명숙을 두고 말했다.

“처음 고명숙 가수를 보았을 때가 아주 인상에 남는다. 그가 개량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기타를 치며 <홀로 가는 길> <청산에 살으리랏다>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목소리에서 깊은 느낌이 묻어나와 감동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노래를 듣고 난후 내가 먼저 우리 지금부터 친구하자고 요청했다.”



당신이 발표한 노래나 즐겨 부르는 다른 노래들이 모두 삶과 자연을 소재로 한 따뜻한 가사들이다. 시를 노랫말로 옮긴 것도 있지만 노랫말이 모두 시구처럼 느껴진다.

느낌이 가고 정감이 있고 아름답게 세상을 표현한 노래가 좋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생각보다 열심히 정성껏 부르는 사람이다. 아마도 가사가 좋아서 사람들은 내 노래를 ‘흙의 소리’ ‘땅의 울림’이라고 듣기 좋게 평을 해준다. 엉뚱하지만 나는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깨닫고 싶고 또 듣는 사람에게도 생각을 던져주고 싶어 한다.



당신의 노래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럴 것이다. 그들 품안에 안겨 살다보니 산과 강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친구처럼 정이 들었다. 아침 일찍 내가 잘 가는 화개장터 찻집으로 달려가 빈속에 야생녹차 한잔을 맛있게 마신 뒤 취한 적이 있다. 느닷없이 외로워지고 남자 생각이 나더라. 자연의 신선한 피가 들어와 나를 흥분시킨 것이다. 노래는 빈속에서 불러야 좋은 목소리가 나온다.


당신은 노래로 인생을 바꾸고 팔자도 바꾼 것처럼 생각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 꽃다운 나이에 어린 두 자식의 손을 잡고 바람부는 벌판에 버려졌을 때 노래가 없었다면 강물에 뛰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시집와서 곧 남편은 군대에 갔다. 그것까지 혼자된 게 10년이 넘는다. 어느 해 친정아버지가 스무살에 제멋대로 남자를 따라 전라도로 간 딸이 보고 싶어 찾아오셨다. 사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든지 힘들어 못살겠거든 집으로 오거라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셨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인데 돌아간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다.


패러글라이딩 선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인가?

선수까지 간 적은 없고 구례지역 동호인들과 한때 미친 듯이 즐긴 적이 있다. 국립공원에서 불법이지만 각오하고 노고단에서 새처럼 날아 들판까지 40분을 활공한 일이 있었다. 내려오니 단속요원이 기다리고 있더라. 벌금을 냈다. 패러글라이딩은 죽기를 각오하고 뛰어내리면 쉽게 훨훨 날아가는데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면 출발에 실패할 때가 많았다. 한 때 아주 즐겼던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일주일 가운데 일요일 하루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겨보자는 생각에서 15kg짜리 낙하산을 둘러메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저수지를 찾아 수상스키를 해보기도 했다.




노래의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겨볼 생각은 없는가?

들꽃은 들에 피어있어야 아름다운 것 아닌가? 나는 내 설자리를 안다. 내 인생을 잘 모를 때 점집도 수없이 찾아다녔다. 돈 5천원만 있으면 점 보러 갔는데 그중에 42살이 되면 사람들에게 박수 받으며 산다고 했던 역술인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한겨울에 물속에서 울고 있는 작은새 신세라든가. 생각해보니 좀 맞은 것도 같다. 그후 한번도 그런 곳에 안갔다. 어느 철학교수 강연에서 들은 말이 있다. 인생은 끌려가면 안되고 끌고 가야한다는 말이 옳은 말이다.


세워 둔 특별한 계획이나 소원이 있다면?

지리산과 섬진강을 주제로 한 내 노래를 내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싶어서 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기를 품에 안고 부르는 자장가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소원이 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고명숙 가수가 통기타 하나를 곁에 두고 사는 시골집 흰벽에는 이 집을 다녀간 듯 박남준 시인의 자작시 <상처 받는 사람에게 쑥부쟁이 꽃잎을>이 붓으로 운치 있게 벽보로 쓰여 있다.


쑥부쟁이 그 목긴 꽃그늘이

바람결에 사이어 가는 강 길을 따라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랑을 보냈는가.

짐승처럼 웅크린 채

한 사내가 울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에 비하면

오늘의 상처는 턱없이 가벼우리다.

쑥부쟁이 꽃 그 여린 꽃잎

가만가만 풀어보내.

사내의 물결쳐 가는 뒷등을

잔잔히 껴 안는다.


지리산 가수 고명숙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인생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세 곡 쯤 부르고 “나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죽을 것만 같아요. 내 노래를 들어주는 분들 곁에서 눈을 감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고생하며 찾아낸 삶의 지혜를 풀어 놓기도 한다. 그는 최근 사천예하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특강 강사로 초청받아 또하나의 일거리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5분도 말을 못할 것 같았으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하자 저절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와 2시간동안 감동적인 반응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의 데뷔곡 중에서 <산사의 하루>의 가사 뒷 절을 소개한다.




산사로 오르는 길

낙엽은 내 발목 잡고 놀자하고

산사의 목탁소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뜻을 전하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뭐 그리 힘들겠는가.

천근 만근 무거운 것은 내 마음이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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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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