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에서 안무가로 성공한 재독 동포 허용순
발레리나에서 안무가로 성공한 재독 동포 허용순
  • 김정호
  • 승인 200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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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과 함께 유럽 발레무대 빛낸 큰 별 / 김정호



[인터뷰365 김정호] 뒤셀도르프 발레단을 이끌어 가는 지도위원이면서 안무가인 허용순(44)은 성공한 수석 발레리나 출신으로,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과 함께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유럽 발레 유학 1세대 출신이다. 1980년 모로코 왕립학교로 유학을 떠나면서 시작된 허용순 발레리나의 꿈은 1983년 좁고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에 입단하면서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에서 손꼽는 발레의 명가인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과 바젤 발레단을 거쳐 뒤셀도르프발레단으로 화려한 스카우트의 전력을 쌓으며 발레리나가 누릴 수 있는 인기 조명을 고루 받아가며 활동했다. 2001년 <그녀는 노래한다>라는 작품으로 공식 안무가로 데뷔한 이후 지금은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세계적인 발레단의 주목을 받고 공연 아티스트들의 호평을 받아내는 안무가로 성장해 있다.

2009년을 마감하면서 허용순 안무가는 두 개의 작품을 준비해 고국 무대에 올리고 독일로 돌아갔다. 같은 시기에 발레 유학을 함께한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티 단장과 함께 한 <웨이브 오브 이모션스>(Wave of emotions)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 작으로 선보인 <이것이 당신의 인생이다>였다. 허용순 안무가가 고국 무대에 선보이고 간 작품들의 화려하고 감미로운 여운을 다시 한 번 느껴가며 바쁜 스케줄 틈새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을 정리했다.



고국무대에서 공연한 소감이 어떤가.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이상이어서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작품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고 기쁨이다.


선화예고에 재학 중이던 80년대 초반 모나코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무용계에선 상상조차 힘들었던 조기유학이었는데 유럽에 정착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그때만 해도 여자가 유학 간다고 하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분위기였다. 유학 간다고 했을 때도 주위에서 다들 만류하더라.(웃음)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부모님이 적극 응원하고 지원해주셨다. 어머니는 50년간 미용사로 일하셨다. 두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 처음 갔을 당시엔 무용계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다. 원래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몹시 외로움을 탔던 게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유럽에도 한국의 실력 있는 후배들이 많이 진출해있다. 그들을 보면 뿌듯하다.


당신은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유수의 발레단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안무가로 꼽힌다. 안무가로 활동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사실 처음 안무를 기획하고 지도한 것은 1988년 <허 기타로>(Hue Kitaro)라는 작품이었다. '허 기타로'(Hue Kitaro)는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가 기타로의 음악을 사용한 이인무였는데 '허'는 내 이름 '허용순'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후 줄곧 발레리나로 공연활동에 전념하다가 13년이 지난 2001년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노래한다>(Elle chante)를 통해 공식적으로 안무데뷔를 했다. 애초에 안무가로 진로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격이 길었던 것 같다.



안무가로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 작업에도 능력과 특기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수석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변신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

평소 음악 자체를 무척 좋아하고 무용수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안무를 하게 된 것 같다. 안무도 공연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같은 일의 연장선에 있다. 원래는 발레마스터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안무가가 되어서 더 만족스럽다. 안무가로 활동하면 발레마스터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윌리엄 포사이드, 닐스 크리스트, 마츠 에크, 우베 숄츠, 하인츠 슈푀얼리, 나초 두아토, 유리 바모스, 리스토퍼 부르스, 쥬딧트 제이미슨, 로이 토비아스, 폴 테일러 등 세계적인 안무가들을 만났고 그들과 작업을 함께 했다. 그분들의 다양한 창의성과 예술적인 감각들이 주로 모던 발레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일에서 하나의 토양이 됐다.


안무를 준비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발레 공연은 안무가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연출된다. 이번에는 스토리부터 먼저 생각해 그것을 중심으로 짜지 않고 음악을 앞머리로 가져와 시작했다. 파도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감정이 격랑 칠 때도 생기지만 조용할 때도 생긴다는 점에 유념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음악처럼 감정의 다양함을 연결하면 그것이 파도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안무가 유럽무대에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를 안무의 독창성으로 볼 수도 있다. 스스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나는 안무를 짤 때 무용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번 모국 공연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평생 무용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고도 보겠지만, 이번에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가짐은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춤을 추고 나서 “내가 이걸 했다”라고 자부심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열정과 감정이 객석으로 전달된다. 관객도 함께 느끼게 된다. 나는 독단적인 것은 싫어한다. 내가 구상하지만 무용수와 충분히 상의하고 의견을 반영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A단체를 위해 만든 것을, B단체에서 다시 올리면 그곳의 무용수를 보고 거기에 맞게 바꾼다.


이번에 모국에 돌아와 과천시민회관 무대에 올린 <웨이브 오브 이모션스>(Wave of emotions)는 어떤 작품인가?

보통 안무를 짤 때 스토리를 가지고 풀어 나가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동작과 움직임에 초점을 두었다. 내용은 쌍둥이로 태어난 두 여성의 각자 다른 욕망을 무용으로 풀어낸 것이다. 쌍둥이는 같이 태어나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욕망도 서로 다르다. 그것을 아름다운 몸짓과 율동의 발레로 전달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겉으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직장인남성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분노와 욕망도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여성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파워 넘치도록 이끌어내 격정적인 감정을 분출함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웨이브 오브 이모션스>의 무미건조해 보이는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떤 의미인가.
음악을 듣는 순간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때의 바다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조금씩 파도가 일렁이고, 폭풍을 만나면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인간의 내면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잘 들어맞았다.




한국인의 유럽 발레 유학 1세대로 꼽힌다. 일찍부터 발레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던 건가.

아니다. 어렸을 적에 발레가 아니라 한국무용을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우리 무용을 배우다가 중학교 다닐 때에서야 선생님의 추천으로 발레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춤이라는 공통점에서 생각하면 서로 통하는 면이 있었다. 적응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뒤셀도르프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바젤에 있을 때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준 예술감독 유리 바모슈를 만났고, 그를 따라 뒤셀도르프 발레단으로 옮겼다. 뒤셀도르프는 나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보금자리, 정든 집과 같은 곳이다. 지도위원을 하기 전 수석무용수로 마지막 정열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가족처럼 지낸 선배 동료 후배들이 있는 곳이고 학교에 출강도 하고 있다. 또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화였던 결혼도 여기서 올렸고(남편은 그의 오랜 동료였던 외르크 지몬이다) 사랑하는 아이도 낳았으니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이다.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발레단과 작업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먹는 걸로 비유하자면 다른 반찬을 고루 먹는 것과 같다. 반찬을 고루 먹어야 몸에도 유익하고 생활도 즐거워진다. 외국인 안무가가 한국 무용단에서 작업하는 것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외국 발레단에게 나의 의미도 그런 것이었다고 본다. 발레도 교감을 나누고 교류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아침 8시 30분에 학교나 발레단으로 출근하지만 점심식사는 집에서 한다. 내가 준비한 요리로 아이와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가면 6시까지 강의를 하고 또 안무 구상을 한다. 언제나 머릿속에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일이 있기 때문에 새벽까지 일하는 데 익숙해 있다.



끝으로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혀달라.

일단 2010년 1월에 터키 앙카라 내셔널 발레단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다. 이어서 미국 툴사 발레단과 비틀즈 음악으로 만든 작품을 올릴 계획이다. 2010년 11월에는 독일에서 <카르멘> 전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5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다. 쉬지 않고 일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고 언제나 행복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들은 항상 희망과 꿈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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