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 심재명에게 ‘한국영화의 오늘’을 묻다
제작자 심재명에게 ‘한국영화의 오늘’을 묻다
  • 조현진
  • 승인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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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본질 앞에 마주 선다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접속> <공동경비구역JSA> <태극기 휘날리며>등의 영화를 제작한 MK픽쳐스는 공히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사중 하나이다. 지난 2005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강제규와 명 프로듀서 심재명이 의기투합하여 출발한 MK픽쳐스는 상장사로써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리며 영화산업의 사이즈를 키우는 일을 선도했었다. 이전보다 많은 영화를 제작했고, 영화 컨텐츠에 대한 배급과 유통등 다양한 사업의 영역을 확장 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영화계는 ‘최악의 위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MK픽쳐스의 대주주였던 그들은 경영권을 매각했고 다시 MK픽쳐스는 영화제작사의 모습으로 회귀했다. 사무실도 마천루 같던 강남의 빌딩에서 사직동 주택가로 이전한 상태였다. 그 사직동에서 심재명을 만났다.

 

 

오랜만이다. 사무실이 예쁘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사무실은 이사한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

 

요즘은 어떤가?

어떻긴. 뭐. 맨날 똑같다.

 

밖에서 보면 늘 똑같지 않은데. 특히 당신과 회사가 늘 여러 실험을 해왔으니 MK픽쳐스를 주목하는 눈들도 많고.

영화 만드는 것은 똑같은 거지. 시장상황이나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반 프로덕션에서, 주식회사를 거쳐 우회상장해서 상장사로 갔다가 경영권팔고 다시 프로덕션으로 돌아온 거다. 물론 상장사 상태를 3년간 유지 했을때 가장 많은 영화가 나왔었고 배급같은 안하던 다른 일을 해봤다. 그래도 영화를 만든다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새로운 걸 경험하고 변화에 힘들긴 했지만 크게 보면 별다른 건 없다. 그러니까 외형은 바뀌어 왔지만 실제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영화계에 우회상장이나 외형을 키우는 노력들이 유행처럼 번졌던 현상에서 당신과 MK픽쳐스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시 이렇게 프로덕션으로 돌아온 것은 그 실험의 중단을 의미하는 건가?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그 사이에 상장했던 회사들이 변화를 겪고 있고. 특히 우리 회사 같은 경우 강제규 감독같은 유명한 분들이 계시니까 더 주목을 받았을 테지. 누가 그러더라. 영화를 만드는 일에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상장사의 CEO로써의 일은 실패한 거라고. 동감한다. 그 시기를 거치며 알게된 것은 우리 영화시장이 아직 헐리우드처럼 주식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올릴 수 있을 만큼의 큰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유통을 하는 회사들은 여전히 순항중이지만,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제작사 입장에서 상장회사란 덩치는 운영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는 현실을 경험한 셈이었다고 생각한다. MK픽쳐스는 원래 영화를 제작하는 컨텐츠 제작능력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그걸 바탕으로 커온 회사니까 지금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다시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럼 훨씬 일이 단순하고 명쾌해진 셈이겠다.

그렇다. 일의 양도 많이 줄었고, 분명히 고민의 폭도 줄었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만 분명히 하면 되니까. 그래서 다시 현장 프로듀서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다.

 

조금 고약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MK픽쳐스는 지난 몇 년간 활발하던 모습과 달리 올해는 <극락도 살인사건>이후에 극장에서 만난 영화가 없다. 그리고 충무로 전체가 그렇지만 MK픽쳐스도 예전처럼 도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글쎄? 난 좀 다른 견해다. 물론 우리의 경우 상장사의 틀을 유지하면서 일년에 최소한 4~6편정도의 영화를 만들고 소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기에 제작관리에서 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보다는 강제규, 허진호, 봉준호 같은 감독들이 혜성처럼 등장하고, 좋은 영화가 쏟아지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90년대 후반에 비해 시장환경이 달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만 갑자기 기획력이 떨어졌다거나 좋은 영화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 산업의 파이가 커지면서 빈틈이 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제작자들의 영화도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걸 활발하다 아니다로 말하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영화산업이 변화하는 현상을 보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한국영화산업 전반적으로 보면 요 근래, 특히 금년 들어서 많이 위축되고 위험해 보인다고들 하는데 그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우리영화계에 위기가 아닌 시절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문제가 많다. 거품도 많이 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아까 이야기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말한 지 이제 딱 10년 되었다. 그 10년이 끝나고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시점 아닐까? 큰집 살던 사람이 작은집으로 줄여야 하고, 차의 크기를 줄여야 하듯 아무것도 없던 때보다 힘이 들겠지만 이젠 그 거품들을 빼야 하는 시즌이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제작의 방식, 제작의 마인드들을 좀 더 처절하게 바꾸어야 겠지. 작년에 108편의 한국영화가 시장에 나왔는데 그걸 소화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선 국내시장만으로는 벅찬 숫자다. 생각보다 해외시장 판로가 여의치 않아지기 시작했는데 버블자본이 들어온거고... 그러다보니 위기감을 느끼는 거다. 지금은 많이들 말하지만 다시 시작점, 다시 초심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지난 10년간의 르네상스는 결과는 영화의 힘이 자본의 구조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봐야 하나?

자본의 성격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많은 자본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지지 않아도 되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메인스트림 보다는 옆구리에 지방이 많이 꼈고, 그 지방이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자본이 너무 늘어나면서 역기능이 생긴 거겠지. 10년을 돌아보면 자본과 영화가 좀 아쉬운 영향력을 주고 받지 않았나 하고 평가한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전망하나?

나는 한국영화 종사자들의 수준이나 인프라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고, 충무로가 다른 나라보다 영화를 잘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2,3년은 힘들 테지만. 영화로써 새로운 진검승부를 해야 할때다.

 

영화계 전반 상황에 대해 한가지 만 더 묻자. 스탭들의 노조가 생기면서 현장의 변화는 있나? 제작자 입장에선 어떻게 보나?

당연히 계약의 내용에 충실하고 철저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을 것이고, 이젠 마냥 필름을 돌리고 시간을 쓸 수 없다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에 나도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제작비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니까. 우리의 경우는 이미 이번 노사합의안처럼 완벽한 ‘일일 노동시간 계산’ 같은 건 아니지만 정확한 일정관리, 프로덕션 과정 중 시간을 넘겼을 때 오버된 시간에 대한 임금 지급등을 몇 년전 부터 지속적으로 해왔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제작의 방식이나 스타일이 달라진 것이 아직 체감되진 않는다. 완벽한 프로덕션 계획을 세우고 비용과 일정에 대해서 제작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제작자들 사이에서 공고해졌다.

 

 

 

 

 

심재명은 80년 후반에 서울극장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 이후 극동스크린 기획실장으로 <사의 찬미>에 참여하였고, <결혼이야기>를 마케팅하고 ‘명기획’, ‘명필름’등의 회사를 세우며 90년 초반부터 한국영화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프로듀서다. 삼성의 자본으로 <코르셋>을 제작했고, 일신창업투자의 금융자본으로 만든 <접속>은 그녀를 프로듀서 세대의 대표주자로 이끌어 올렸다. 그 이후 심재명이 이끄는 ‘명필름’은 <해피엔드><공동경비구역JSA>등의 작품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젊은 프로듀서들이 선도하는 한국영화계의 프로덕션 구조를 확립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을 <프로듀서 1세대>라고 말하는데.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1세대는 ‘신씨네’의 신철사장님 같은 분이고, 굳이 나누자면 나는 ‘프로듀서 1.5세대’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능력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런 좋은 선배들이 앞에서 길을 잘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신씨네가 영화제작에 관한 새로운 능력을 보여주고, <은행나무침대>로 금융자본을 열어 놓아준 이후에, 나는 일신창투를 만나서 <접속>을 함께 할 수 있었듯 그런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난 잘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인 이은 감독, 동생인 심보경 프로듀서등 내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가족회사 시스템’의 덕도 많이 본것 같고.

 

사실 당신에게 가진 가장 큰 궁금함 중에 하나가 이 가족회사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충무로라는 곳이 언제나 변화무쌍한 곳이고, MK픽쳐스는 그 복판에 서 있었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가족회사라는 구조가 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난 사실 그다지 모험적인 성격이 못된다. 도리어 이은 감독이 아주 모험적이지. 그렇다고 해서 무대뽀적이란 말이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꼼꼼히 준비해서 모험을 즐기는 타입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경우 세 사람의 머리를 마주대고 나온 결과물이었다.

 

 

MK픽쳐스는 올해 3편의 영화를 직접 만들었고, 2편의 영화에 더 참여했었다. 그중에는 올 초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극락도 살인사건>이 있었고, <작은연못><소년은 울지않는다.><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등을 직접 제작했다. MK픽쳐스는 심보경이 독립해 차린 ‘보경사’의 영화 <걸 스카우트>에도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임순례 감독이 만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 개봉하나?

1월에 할 거다. 올해 초에 <극락도 살인사건>을 배급했고, 연극 연출하던 이상우감독이 만든 <작은 연못>, 배형준 감독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촬영과 후반작업을 다 끝냈는데 회사가 배급업을 중단하면서 쌓여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심보경대표가 독립해서 만든 보경사와 <걸 스카우트>라는 영화를 공동제작했고. 연말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부터 차례로 붙일거다. 그럼 내년에 4~5편의 영화가 MK의 이름으로 소개된다. 기획중인 작품 중에 내년에 개봉할게 있고.

 

그럼 여전히 매년 5~6편을 만들어 갈 생각인가?

앞으론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고, 이월된 작품이 2편 있으니까 내년에는 발표할 영화가 많지만 원칙적으로 1년에 2~3편 정도를 개봉시킬 생각이다.

 

심재명처럼 되고 싶은 젊은 친구들이 많을텐데... 당신의 영화인생을 스케치해줘라.

나는 63년생이고, <주말의 명화>세대다. 지금은 모두가 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땐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부터 주말의 명화를 통해 영화를 접했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때는 영화가 좋았지만 뭐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잡(Job)을 가진다는 상상은 못했고. 대학교 때 프랑스문화원에 씨네크럽이라고 하는 일주일에 한번 영화보는 동아리에 가입해서 영화보고 그랬다. 내가 다니던 동덕여대엔 영화서클도 없어서 다른 학교 영화행사에 아웃사이더로 참여하고 그런 정도 였다. 영화를 좋아해서 대학 2학년때 부터 당시의 유일한 영화잡지였던 <스크린>지에 학생기자로 일했다. 공짜로 영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하하. 대학졸업하고 스크린 기자 응시했다가 떨어지고 출판사 갔다가 서울극장에 카피라이터 공채로 뽑혀서 간거다. 영화,광고,미술 등 일에 관심이 많았다.

 

 

 

 

광고적 마인드로 영화일을 시작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거다. 그때 서울극장 기획실에선 이황림 감독님, 이준익 감독님 같은 분들이 광고 담당자를 거쳤었고, 명보극장에는 신철 대표님, 단성사에는 <친구> <말아톤>을 제작하게 되는 석명홍 사장님등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학 나온 인력들이 충무로에 거의 없었을 때니까 이 분들과 자주 어울리고, 마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은 다 대단한 분들이 되었지. 그러면서 한 스탭, 한 스탭 밟아온거다. 집에 돈이 많이 있어서 제작자가 된게 아니고. 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거다. 그러다보니 다음목표 다음목표가 생긴 거지. 광고를 하다보니 영화현장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고, 마케팅일을 하다 보니 제작이 재밌을 거 같았고... 그런식이다.

 

스스로를 수동적이라고 말하지만 당신의 행보는 도전적이다.

그런 건 아니고, 거짓말 안하고, 사기 안치고, 능력 과신 안하고...그냥 황소처럼 온것일 뿐이다.

 

요즘 영화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많다. 감독이나 배우만이 아니라, 제작자나 프로듀서로의 관심도 늘었고. 그런 꿈을 가진 젊은 친구들에게 해줄 어드바이스는?

80년대 초반에 이장호, 배창호,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가 무시할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내가 감히 한국영화를 만들 꿈을 못 꾸었을 거다. 그 분들이 롤 모델이 된 거지. <고래사냥> <성공시대>같은 ‘황기성사단’의 영화들도 나에게 충격이었다. 이렇게 세련되고 말 되는 한국영화가 있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렇듯 영화를 하고 싶다면 자신의 롤 모델을 찾으면 좋겠다. 영화를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게 필수고, 연출적 역량보다는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프로듀서에 도전해야겠지. 좋은 감독과, 좋은 프로듀서가 영화산업의 핵심적인 양날의 칼이다. 우리 영화의 르네상스도 차승재, 신철 대표 같은 분들이 이끈 것이고. 이제 한국영화는 예전보다 분명히 좋은 인프라를 가지게 되었다. 요즘 충무로에서 'PD님'하고 외치면 수 십명이 돌아 볼 정도로 프로듀서가 많다고 한다. 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있고, 능력있는 PD가 많을수록 영화산업의 허리가 튼튼해지는 것이니까. 단지 단박에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라는 충고를 하고 싶고.

 

그렇다면 지금의 프로듀서 심재명은 뭘 고민하나?

명필름 초창기에 만든 <접속><해피엔드><공동경비구역 JSA>같은 대부분의 영화들이 흥행을 잘 했었다. 그땐 나 스스로도 사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단 했었다. 투자자들 손해보면 안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명필름 영화들이 다 흥행만을 노린 단순한 상업영화는 아니었다. 그것이 상업적인 코드가 강한 나와 다른 이은 대표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경계’가 MK픽쳐스의 포지션 같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흥행적이지 않다는 소재로 흥행하고 싶은 것’ 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돈 안되는 영화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하.

 

하하. 쉽게 들리지만 제작자가 아니면 이해 못할 고민이 분명한 것 같다. 개인적으론 어떤 영화 좋아하나?

글쎄.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그런 질문의 대답은 쉽지 않다. 어느 장르나, 한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이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이안’이라고 지을까 할 정도로. 내가볼 때 그 사람은 진짜 장인이다. 상업적인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 보이면서도 매우 상업적인 영화를 결과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에서 나는 늘 영화제작자가 가져야 하는 정답을 발견하는 것 같다.

 

 

 

 

 

흔한 질문이지만, 그녀에게 지금껏 만든 작품 중 아쉬운 작품은 어떤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심재명은 흥행적으로도, 작품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한 작품들이 아쉽다고 대답했다. 프로듀서로써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특히 그런 영화가 신인감독과의 작업이었을 경우, 그 아쉬움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당신에게 ‘한국영화의 오늘’을 묻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

글쎄, 어려운 주제고, 내가 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말은 나나 다른 제작자들에게 영화 만드는 일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 성실히 만들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들은바와 생각하는 것이 많아지니까 사실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경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스스로를 개발하고 리플레시하고 긴장해야 하는데 젊을 때처럼 불처럼 미쳐서 할 수도 없고. 결론은 태도와 정신 모두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그런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며, 어려움이다. 잘 할 거고, 잘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영화인들이 지금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럼 한국영화 미래는 괜찮은 거 아닐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상(理想)인 ‘상상력’과 현실인 ‘자본’이 만나서 실체를 만드는 예술이다. 두 영역 모두가 건강했을 때 영화는 산업적으로 생명력을 발휘한다. 프로듀서는 이 두 영역의 매개체이자 통로가 된다. 그래서 프로듀서를 통해 상상력과 자본의 컨디션은 체크될 수 있고 더 나가 그 결론이 영화의 현 주소가 된다. 모두들 한국영화가 위기라고 말하는 지금 심재명의 대답은 ‘성실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말한 현 상황의 돌파구였다. 이 단순한 원칙으로 그녀는 프로듀서로 돌아왔다. 심재명이 돌아왔다는 것은 한국영화가 다시 본질적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심재명을 계속 주목하기로 했다. 그것이 한국영화계의 오늘과 내일을 지켜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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