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다 찍은 후에 비로소 사랑 느껴” 배우 이선균
“<파주> 다 찍은 후에 비로소 사랑 느껴” 배우 이선균
  • 이승우
  • 승인 200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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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무명 시절로 다져진 진중한 연기력 / 이승우



[인터뷰365 이승우] 배우 이선균의 출발은 시트콤이었다. 졸업만 하면 ‘배우’가 되어 있을 것 같았던 한국종합예술 연극학과 1기로 첫 발을 내디뎠던 그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하지만 지쳐도 내색하지 않았다. 일이 없으면 쉬었고, 또 다른 기회를 준비했다. 그래서일까. 코믹하고 양아치스러운 단역들을 거쳐 드라마 속 ‘훈남’으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앞뒤 재지 않고 부딪힌 흔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의 애정은 언제나 영화로 향해 있었다. 독기를 품고 내달려온 세월보다는 단지 ‘연기’가 좋아 참고 버텼던 그의 설렘은 언제나 스크린으로 분출됐기 때문이다.

변심한 애인(사과), 베트남 참전군인(알포인트), 해결사(손님은 왕이다), 증권사 CEO(로맨틱 아일랜드)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오고 갔던 그의 진심은 최신작 ‘파주’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수상 이후 해외 언론을 통해 극찬을 받은 ‘파주’에서 맡은 그가 맡은 중식 역할은 ‘언니 없는 집에서 함께 사는 형부와 처제’라는 오묘한 관계를 이끌어가는 중심 키워드다.

‘질투는 나의 힘’이후 7년만의 메가폰을 잡은 박찬옥 감독과 끝까지 ‘왜?’라는 질문으로 치열하게 싸웠던 이선균을 영화 개봉과 함께 만나봤다.



‘파주’는 배우의 힘은 느껴지지만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분명 쉽지 않은 영화다. 처음엔 완성작을 보고 ‘이게 무슨 처제와의 사랑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감정이 억눌리는 장면이 많고. 게다가 십 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으니까. 그게 좀 걸리긴 한다. 내가 맡은 중식은 굉장히 큰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죄의식도 많고 꼬인 사람이니까.


겉으로만 보면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일상적인 인생을 사는 인물’이긴 하다.

처제였던 은모(서우)가 떠나기 전까진 사랑하는지 가족으로 책임으로 대하는지 잘 모른다. 그녀가 인도로 떠나고 나서 비로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 복잡한 캐릭터다. 은모가 떠나있던 3년에 대한 시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사 중에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라는 말을 할 때도 연기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극중 투쟁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들 때 내가 잡고 있던 어떤 끈을 놓는 신인데 시나리오보다는 더 밝게 나왔다. 중식은 처제한테 떠넘기기 싫은 비밀을 간직한, 한마디로 종교적으로 큰 사랑을 한 인물이다. 연기하는 나조차도 맨 마지막 엔딩을 찍고 나서야 그때서야 은모가 여자로 다가왔다.


연기하면서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파주’는 긴 이야기의 사랑을 하지만 함축된 게 많아서 어려운 영화다. 분명 처음엔 형부의 감정으로 연기를 했지만 마지막에서야 감정이 바뀐 걸 깨달았다. 자기가 감옥에 간 뒤 은모가 형부를 좋아하게 된 감정을 깨닫고 인도로 떠나버리지 않나. 그녀가 돌아오기 3년까지는 생략되어 있고. 친절하지 않은 영화가 ‘파주’다. 해석을 다 관객에게 맡겨 놨다.


어쩌면 그 부분이 ‘파주’의 선택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여자인 박 감독하고는 복잡 미묘하게 부딪힐 수도 있었겠다.

너무나 함축되는 게 많고 중간에 시간적으로 점프가 많이 되니까 그런 빈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았다. ‘언제부터 형부를 좋아하게 된 거지?’, ‘왜 하필 파주예요?’라는 기본적인 질문까지 포함해 많은 걸 물어봤다. 처음엔 대학 때처럼 부조리극 공연하는 줄 알았다. 감독님도 명확하게 이야기를 안 하시고.(웃음) 내가 뭔가를 찾아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둘이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냐?’고 물었을 때 둘이 차를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딱 그 정도만 알려주시더라.



마케팅은 ‘금지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자매와의 애증, 도시개발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다뤄진다. 또 이런 금지된 사랑은 이미 연극 ‘이’를 통해 오만석과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지 않나.

맞다. 읽으면서도 그런 금지된 관계 때문에 고민하거나 주저하진 않았다. 이야기 자체가 도발적인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심리적인 도발이 들어갈 뿐이다. 한 남자랑 여자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는 관계니까. 두 사람 사이에 몇 년 동안 떨쳐 버리지 못한 감정이 안개처럼 계속 머물러 있다.


원래 성격은 대중적으로 비춰지는 모습보다 훨씬 짓궂고 개구쟁이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뭐 하나 결정할 때 고민 많고 신중을 기하는 걸로 봐서는 중식하고도 비슷한 것 같다.

중식은 너무 우울하고 불쌍한 남자다. 엔딩 다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중식은 감옥에서 나온 후 절로 들어가거나 종교적인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웃음) 개인적인 감정이나 욕심을 내면 뭔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생이다. 그래서 약자의 입장에서 서야 될 것 같고 그래서 계속 투쟁하는 캐릭터다. 그런 면에서는 나랑 굉장히 다른 인물이다.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중 가장 무겁고 아픔이 있는 인물이고.


다양한 인물을 거쳐 왔지만 그 역할의 교집합은 ‘진중함’으로 뭉쳐진다. 단순히 내면의 상처라기보다는 나름 진지함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았지 않나.

솔직히 촬영을 하다 보면 남들보다 생각이 많은 것 같긴 같다. 한 신에 ‘왜?’ 이런 질문을 많이 하고 ‘너무 가짜 같지 않아요?’ 이런 말도 던지고. 그런 고민 자체가 진중한 역할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드라마 ‘트리플’ 찍을 때 많이 들었던 ‘말랑말랑한 연기’도 사실 굉장히 따져서 연기한 거다. 같이 일하는 누군가는 짜증나겠지만 내 안의 고민이 많이 드러내고, 이유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빠른 시간 안에도 감독님들하고 더 친해지려는 이유가 더 따지기 때문이다.(웃음) 신인 때도 ‘배우가 말을 너무 안 듣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데뷔 초 방송국 생리가 너무 안 맞아서 다시는 안 한다더니, 대중적인 인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드라마를 통해서 얻었다.

시트콤을 찍을 때 했던 말들이다. 촬영 현장은 너무 빠른데 그걸 재빨리 캐치해 내는 호흡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연기도 굉장히 오버해야 하고.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운 좋게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흡사 경품에 당첨되듯이.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잘 되는 때라도 1년에 한 편은 꼭 영화를 하자고 다짐했고, 그런 결심이 여러 단편 영화나 단역이라도 하게 된 것 같다. 홍상수 감독님의 ‘밤과 낮’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무슨 계획표 짜듯이 드라마 두 개에 영화 한편 이런 것보다는, 그냥 마음 한편에 언제나 드라마 보다는 배우 쪽에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틈틈이 영화적인 욕심을 채우다가 ‘파주’까지 오게 된 거다.


평소 한예종 1기 출신으로 선배가 없다는 부담감이 더 크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 왔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위치는 되지 않았나.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건 없고 추천만 해줘서 고민이 크다. 아무리 친하고 아끼는 후배라도 “오디션 봐라”는 말만 해준다. 동기 중에 훌륭한 배우들이 많고 내가 뛰어나지도 않았는데, 여기까지 활동을 해온 건 정말 운이 좋은 것뿐이다. 내가 1기니까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되어야지’가 아니라 ‘하면 되는구나’ 정도? 대신 이 얘긴 매일 한다. “큰 거 기다리지 말라”고. 나도 단역부터 시작했지만 한예종 졸업하면 그냥 배우가 되어 있는 줄 알았다. 현장에 나오니까 그게 아니었던 거지. 그걸 깨고 싶어서 뭐든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네가 하는 걸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본다고. 그걸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눈여겨보고 연락을 해 올 거라고. 나 역시 매 작품이 오디션이라 생각한다. 매 작품이 연계가 돼서 다음 작품이 결정되는 거니까. 왜 주연을 맡으면 다들 까칠해지고 예민한지를 알게 되겠더라. 영화의 평가와 흥행이 다음 영화에 영화를 미치니까. 솔직히 조연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연은 연속해서 안되면 다음 투자가 좀 힘들어진다.


꽤 살벌하지만 현실적인 충고다.

그게 현실이더라. 나 역시도 그런 거에 최대한 영향을 안 받고 싶으니까. 매번 잘 될 수는 없더라도 배우 때문에 투자가 안되거나 하지 않게 스스로에게 철저하고 싶은 거다. 솔직히 그래야 상처 안 받을 것 같고.




여태까지의 작품에서는 단독으로 뭔가를 리드하진 않았다. 하지만 ‘파주’에서의 역할은 철저히 누군가를 이끌어 가는 존재다. 연기적으로는 색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파주’를 못 보겠다. 과거 회상 신이나 영화 초반의 모습들은 걱정이 안되는데, 현재 중식의 모습은 걱정이 많았다. 은모의 경우 교복으로 시대 반영이 되지만 중식은 외모나 현실이 그다지 변하질 않으니 그걸 표현해 내는 게 배우로서 숙제였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선균의 첫 베드신이라는 점에서 개봉 초에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손님은 왕이다’에서 카섹스신이 있지 않았나.

원래 대본에는 있었지만 성현아씨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냐고 얘기해서 안 찍었다.(웃음) 영화에는 옷만 추스르는 장면이 나왔으니 생애 첫 노출은 ‘파주’인 셈이다.


꽤 사실적인 뒷태가 나왔는데 아내(배우 전혜진)가 질투했을 것 같다.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아직 못 봤고 그런 부분에 둘 다 관여 안 한다. 챙겨보지도 않고 보라고 강요하는 편도 아니다. 사실 베드신에 대해 굉장히 걱정이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랄까?


예를 들면 어떤?

요즘 남자 배우들이 워낙 몸이 좋지 않나. 촬영 당시 살집이 좀 있는 상태라서 촬영을 좀 뒤로 미뤄주면 배에 왕(王)자는 아니어도 최대한 슬림하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촬영 2화차에 집어넣었더라고. 그게 굉장히 걸렸다. 개인적으로는 성적 자극을 보여주는 게 아닌 감정신으로 봤는데 감독님은 되려 살집 있는 게 더 좋다고 해서 그냥 간 거다.

또 아내로 나온 심이영씨가 너무 태연하게 노출을 하길래 나도 거기에 맞춰 찍었다. 그런데 ‘컷’소리가 나고 나서 이영씨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 사실 굉장히 힘든 걸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한 거였다. 그 긴장감이 느껴지니까 바로 일어서서 살을 뗄 수가 없었다. 초반에 그렇게 찍고 나니 다음 신에 집중하게 된 것도 있고. 부끄럽지만 그런 경험이 되게 좋았다.


올초 동료 배우이자 아내인 전혜진과의 결혼도 화제였다. 또 함께 연기했던 여배우(고은아, 이수경, 문소리) 등의 활약도 남다른 해였고. 상대 배우들과 좀 터놓고 편하게 지내는 편인가.

사실 ‘잔혹한 출근’때 열애설이 터져서 마케팅적으로 이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인터넷 보고 둘이 사귀는 게 알려진 걸 알았을 정도였다. 내가 말 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여태까지 함께 출연한 여배우들은 캐스팅 당시 모두 나보다 인지도가 훨씬 높은 인기 배우들이었다.(웃음) 그래서 쉽게 연락을 하거나 친분을 쌓진 못했다.


‘파주’에서의 서우는 어땠나. 감정적으로 둘이 붙는 신이 많던데.

‘미쓰 홍당무’를 보고 당찬 신인이 뭔지를 알게 해준 당사자다. ‘파주’때 처음 촬영해 보도 정신 차려야겠단 생각이 절로 들더라.(웃음)


‘파주’에서 생각보다 잘 나온 신이 있다면 알려달라.

마지막 신. 극중 선배랑 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하는데 그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좋았다. 나를 잡는 신이 아닌 대연이 형 잡을 때 보이는 내 표정 연기. 그 장면 좀 멋지게 나왔더라.(웃음) 그 장면도 사실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신이었다. 제천교도소에 직접 내려가서 찍었는데, 그 중요한 장면을 찍으려니 시간이 딱 한 시간 남았더라. 사실 거기서 교도소 내부 촬영을 다 마쳤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다른 촬영에 너무 시간을 보낸 거다.(웃음) 곧 있으면 나가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신이고, 감정은 무거워지고 나중엔 감독님한테 막 짜증을 냈었다. 약간 급하게 찍었던 장면인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나왔다.




요즘 배우로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1년에 한 두 번은 배우를 해도 되는지를 고민하곤 한다. 내가 ‘파주’에 집중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매일 술 마시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에 철거민으로 나오는 분들과 저녁 약속이 잡혔다. 영화 속에는 짧게 나오지만 모두 연극배우 출신인 분들이다. 처음엔 실제 철거민들을 인터뷰 하는 자린 줄 알았는데, 같이 호흡을 맞출 사이였고 우리끼리 ‘떼샷’이라고 부르는 한꺼번에 나오는 신을 즉석에서 연기를 해보게 됐다. 근데...(잠시 침묵) 그 한 분 한 분이 연기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이 장난이 아니더라. 난 그 전날 너무 피곤해서 안 가려다 우연히 들렀고 즉흥적으로 주제가 주어져서 연기를 했는데, 흡사 그때의 내 모습은 그 분들을 말리러 온 신인 경찰 같아서 너무 창피했다. 그 분들의 연기에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그분들은 그 짧은 신을 위해 열정을 다 하는데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한 달반을 술에 절어 다운되어 있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금주하고 바로 정신 차렸다. 연기적인 부족함은 매 순간마다 느끼는 것 같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난 뭐지?’라는 느낌도 들고.


조만간 재기 발랄한 영화로 만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다음 작품은 한국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역할이 남자답고, 마초 같은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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