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로 국악의 신명 전파하는 홍천 ‘마리소리골’ 작곡가 이병욱
기타로 국악의 신명 전파하는 홍천 ‘마리소리골’ 작곡가 이병욱
  • 김철
  • 승인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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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시원찮은 나라가 흥하는 법은 없어” / 김철




[인터뷰365 김철] 9일 저녁 홍천문화예술회관에서 홍천 예술인들의 종합예술제가 열렸다. 서울에서 늦게 도착한 일행이 공연장에 막 입장했을 때 마침 서원대 작곡가 이병욱 교수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와 자작곡 ‘오 금강산’을 열창하고 있었다. 3분이 조금 넘는 축하공연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는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의 최신 음악에 비해 국악은 느리고 어쩐지 ‘노땅’들이나 즐기는 진부한 음악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오래 전부터 있다.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 형성되는 해묵은 음악관이다. 그러나 작곡가이자 연주가이면서 타고 난 소리꾼이기도 한 음악가 이 교수의 국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명이 난다. 묘한 매력으로 그만의 음악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 교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대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국악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한 애정이 남다른 탓이다. 그의 주요 활동무대이자 음악 산실은 홍천이다. 읍내에서 승용차로 50여분을 더 가야 하는 서석면 첩첩산중에 있는 ‘마리소리골’이라는 곳이다. 14년 전에 사재를 털어 국악인들을 위해 마련한 전용 공간이다. 2년 전에는 홍천군에서 그곳에 악기박물관을 건립했다. 박물관에는 국내외의 진기한 악기들이 전시되고 있다. 야외 음악당도 있다. ‘마리소리골’과 악기박물관은 지금 홍천의 명소가 되고 있다.
그날 공연을 마친 이 교수와 일행은 홍천의 맛집으로 이름난 화로숯불구이집으로 자리를 옮겨 조촐한 뒤풀이를 했다. 여기서도 이 교수는 일행의 주문을 마다하지 않고 뒤풀이가 끝날 무렵 즉석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자작곡을 열창했다. 그의 음악세계는 사실 국악에 국한하지 않는다. 가곡을 비롯해 동서양의 음악을 모두 아우른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이 1천여 곡이나 된다. 음반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보통 음악가들이 흉내를 내기 힘든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일찌감치 ‘이병욱과 어울림’이란 실내악단을 창단하고 가족으로 구성된 악단까지 만들어 공연장을 누빈다. 음악과 교수로서 단순히 제자들을 양성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 그의 음악세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수님의 공연에는 기타가 빠지지 않는다. 보통 국악연주라면 우리의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게 당연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기타를 들고 공연장에 나타나면 다들 놀란다. 가야금이나 장구 같은 악기라면 몰라도 국악을 한다면서 웬 기타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기타는 서양악기이지만 가장 대중적이면서 동서양 고전음악은 물론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무슨 곡이든 다 연주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악기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베토벤이 기타를 가리켜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중앙대 음대 작곡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헤 음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서도 작곡을 전공했지만 부전공은 기타 연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음악에서 기타는 빼놓을 수 없는 악기라고 할 수 있다.



국악과 친숙해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신세대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대학 다닐 때는 김민기 노래에 심취하는 등 국악을 멀리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음악관은 독일에 유학할 당시 변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작고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심취한 것이 계기이다. 그분의 음악은 독일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나는 그 분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그분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독일로 유학을 갔을 정도였다. 물론 그 분을 뵙고 용기를 얻었다. 그 분의 음악은 한국적인 혼을 서양음악에 접목시켜 특출한 음악세계를 창조했다. 나는 국악을 현대화시키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적이면서 누구나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동서양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악이라고 하지만 용어가 일제의 잔재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음악이나 우리음악 또는 우리소리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한다.

‘마리소리골’은 10여 년 전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한 번 가본 사람이라면 다시 찾고 싶은 기막힌 음악당이다. 그런 인적 없는 곳에 토굴을 만들어 음악당을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는가. 서원대가 있는 청주와는 한참 거리가 먼데.. 그런 산중에 소리꾼들을 위해 둥지를 튼다는 것이 여간 용기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서산 출신으로 홍천과는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이 아닌가.
도공들이 첩첩산중 시골에 터를 잡듯이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차에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그곳을 방문해 땅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교통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지금도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산간오지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땅을 구입하면서 혼자서 즐기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경사진 산에 굴을 파서 제자들과 소리꾼들의 득음을 위한 소리굴부터 만들었다. 평당 1만5천원에 구입한 땅이다. 지금은 인근의 시세가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교수님의 음악은 국악이 주류이면서 특히 내 경우는 명상음악이 심금을 울린다. 악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시간과 분위기 등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감흥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으나 시인 화가 조각가 등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만족하지 못해 재차 수정하고 보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베토벤이 달을 보면서 달이 사라질 때까지 작곡을 했다는 말이 있다. 장소와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내 경우는 시를 감상하면 악상이 잘 떠오르는 수가 있다. 예술은 서로 추구하는 것과 장르가 다르다 해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것 아닌가. 악상은 시골 농가의 외양간 옆에서도 나오고 여행을 하면서 묵는 집에서도 떠오른다. 물론 1천여 곡의 자작곡 가운데는 마리소리골에서 작곡한 것이 많다. 작곡을 한다고 해서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수정 보완하는 곡들도 있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들 가운데 명상음악은 하나같이 애착이 간다. 어울림 시리즈로 나온 음반도 모두 엄선한 곡이기 때문에 애정이 가는 음악이다.



동서양 음악을 모두 아우르면서 작곡을 하다보면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른바 퓨전음악 같은 것들 말이다.
음악은 인간과 자연과 소리의 어울림으로 무형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병욱과 어울림’이라는 명칭으로 실내악단을 창단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음악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음악이 시원찮은 나라가 흥하는 법은 없다. 음악을 실생활에 잘 적용시켜 생활화한다면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얻기 쉬운 정신적인 고통까지 자연스럽고 흥겹게 치유가 가능해진다. 우리 소리를 변질시켜서는 물론 안 된다. 내 경우는 행사곡은 물론 동요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를 다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곡가가 아니라 잡곡가인 셈이다.(웃음) 쌀밥만 먹는 것보다 잡곡밥이 건강에 좋은 것 아닌가. 음악은 이데올로기와 인종 국경 등을 초월하면서도 나라마다 정체성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도 이 같은 선상에서 한국의 혼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동안 제자도 많이 배출하지 않았나. 수제자들도 많을 텐데..
스승이 제자를 하나같이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치와 다를 게 없다. 내가 독일 유학을 다녀왔을 때 작곡을 가르친 유영욱(33)은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천재 음악소년이었다.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연세대 음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예대 초빙교수로 있는 정동희 작곡가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서 일하고 있는 이정면 작곡가 등 많은 후진을 양성했다. 다들 관심 있게 지켜 봐 주시면 고맙겠다.

가족이 모두 음악가이다. 가족 실내악단을 창단해 활동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하겠다. 예술은 천부적으로 타고 나야 한다지만 노력 또한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안사람이 무용을 전공했고 대금과 작곡을 전공한 아들(영섭 31)은 바이날로그 실내악단 리더로 활동하고 며느리는 거문고를 전공했다. 가야금을 전공한 장녀(은기 30)는 장구를 전공한 사위(이석종)와 함께 경기도립국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족 6명이 함께 ‘둥지’라는 실내악단을 만든 것이다. 가족이 모두 음악과 친숙하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탓이 아니겠는가. 예술은 억지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끼도 있어야 하고 다들 음악을 전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가족이 형성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병욱과 어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어울사랑’(http://cafe.daum.net/marisori)의 회원이 수백 명이나 된다. 다들 이 교수님의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그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음악이란 한 길만 걸어왔다. 신라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결 선생이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흉내 내며 부인을 위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 않은가. 나 역시 기타로 연주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제자들이 있고 카페 회원들이 나를 사랑하는 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관련 동영상]


[인터뷰이 나우] (사)마리소리음악연구원을 이끌어 가는 음악인 이병욱 교수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있는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033-430-2437)에서 2013년 여름 음악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8월 15일까지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 대표이기도 한 이병욱 교수는 해마다 홍천 두메산골에 있는 악기박물관에서 전통음악과 현대 음악을 아우르는 음악축제를 개최해 왔다.


올해는 그룹사운드 바이날로그, 어쿠스틱 앙상블 재비, 이병욱과 어울림, 전통타악그룹 광개토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백순재, 테너 강진모, 바리톤 임휘영, 소프라노 임수영, 팝페라듀오 AIM이 참가하는 음악 프로그램과 함께 이무송 화백의 시화전, 나종영 생활기체조 선무도, 2인무 신무경과 박승우, 안병관 생태목각인형 체험, 석관식 사물놀이 체험 행사를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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