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전계현 <미워도 다시 한번>의 추억
원로배우 전계현 <미워도 다시 한번>의 추억
  • 김두호
  • 승인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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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아폴로 박사’ 조경철 박사는 하루도 생각 안나는 날이 없어”

【인터뷰365 김두호】1968년 정소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우리 영화사에서 대표적인 멜로영화로 많은 일화와 기록을 남긴 작품이다. 국내 최초의 TV연기자로 출발한 원로배우 전계현 여사(76)는 기품이 있는 준수한 용모, 현대적인 표준형 미인으로 은막에 스카우트 된 뒤 우리 영화 황금기의 인기를 풍미한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주연배우였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은 홍콩과 대만 등지에 수출되어 동남아 영화시장에서도 떠들썩하게 바람을 일으킨 한류의 뿌리이며 원조가 된 작품이다. 한 남자가 두 여자, 두 가정을 둔 사례가 많았던 그 시대 가족사회의 단면을 증오나 질시보다 따뜻한 삼각관계로 풀어내 관객들의 눈물을 쏟게 한 본처역의 그 주연배우를 만났다.

전계현 여사는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남길 때 TV중계해설자로 유명해지면서 ‘아폴로 박사’란 닉네임이 붙은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와 결혼해 더욱 화제가 됐지만 부군은 2년 전 타계했다. 독신으로 살지만 누구보다 화려했던 여배우 시절의 눈부신 추억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해준 아폴로 박사와의 로맨스가 아직도 그의 가슴과 체온을 식지 않고 외롭지 않게 데워주고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의 추억

'여배우 전계현‘하면 1960년대 영화관객들의 머릿속에는 정소영 감독이 시리즈로 연출한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에서 바람둥이 남편 한신호(신영균 연기)의 품위 있고 고아(高雅)한 용모의 아내(본처)를 먼저 떠올립니다. 화제를 그 시절로 돌려 보시지요.
영화가 개봉되는 날부터 표를 사기 위해 늘어선 인파가 서울 을지로 4가에 있는 국도극장(지금의 국도호텔) 매표창구에서 을지로 3가 네거리를 돌아 명보극장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을 보니 남자들까지 손수건을 들고 훌쩍거리더라구요.

왜 그렇게들 눈물을 짜냈다고 생각하세요?
남편에게 아이까지 둔 젊은 여자가 있다고 본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눈앞에 나타나면 그걸 그냥 머리끄댕이를 잡고 길바닥에 후련하게 내동댕이를 쳐야 분통이 풀리는 건데 그 영화는 본처가 분노를 억누르며 젊은 나이로 남의 첩이 되고 아이까지 낳은 입장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데 있었던 것 같아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데 복판에 낀 아역의 김정훈이 워낙 어른들을 애절하게 만들었어요.

그 시절의 사회는 좀 살만한 남자 분들이 두 여자, 두 가정을 둔 경우가 많아 더욱 화제의 바람을 일으킨 것도 같습니다.
그런 점도 있어요. 사실 시나리오를 받아보고는 감동을 못받았어요. 수십 번을 읽었지만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 없었는데 감독의 연출력과 연기자들의 호홉이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또 남자들이 울고 나오는 영화라고 소문이 나서 더 극장 매표구가 불이 났었지요.

영화 기록에는 모두 다섯 편의 속편이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소영 감독의 첫 작품이 크게 히트하게 되자 다른 영화사에서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와 두 회사에서 속편을 만들게 됐어요. 신영균 씨와 나는 다른 회사 작품의 출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소영 감독 작품만을 출연하게 됐는데 우리 작품만 흥행이 이어졌으나 4편째는 열기가 식어 그것으로 마감이 됐어요.

남진 씨가 부른 주제곡도 대박이 났었지요?
말도 마세요. 그 해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세상이었어요. 홍콩과 대만으로 팔려나가 그곳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나중에 내가 그곳을 방문했는데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고 쫓아다녀요.
그 영화가 한류의 원조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부인 혜영(문희 연기)의 딸로 나온 꼬마 김정훈은 결국 자신을 끔찍이 좋아하던 대만 팬들을 생각하다가 대만으로 가서 유학생활을 해 운명이 바뀌었지요.

그 영화의 스토리를 한번 들려주시지요.
남자 주인공 한신호(신영균 연기)는 10년간 혼자 살며 사업으로 성공해 유치원 선생 혜영을 만나 아이까지 두게 되는데 고향에는 아내(전계현)와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이지요. 어느 날 상경한 아내에 의해 그들의 달콤한 불륜이 들통 나면서 겪는 갈등 얘기예요.

배우 전성기 시절 전계현

이어서 출연하신 다른 작품은?

역시 신영균 씨와 출연한 정소영 감독의 <잊혀진 여인>도 히트했는데 그것도 애정 멜로물이었어요.

풍기는 이미지 때문인지 많은 작품에서 아내의 속을 썩이는 바람둥이 남자의 정숙한 본처역을 하셨지요?
하하하. 그게 영화에서의 한동안 내 팔자였던가 봐요. 돌아가신 김기영 감독의 <화녀>에서도 그랬고 추적 당하는 빨치산 얘기를 다룬 김수용 감독의 <산불>에서도 비슷한 역을 맡았었지요.

선교 뮤지컬 제작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화인 모임이나 종교단체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도 있고 마음이 편안한 친지를 만나면 세상 이야기, 사람 이야기 나누며 살아요.

신심이 깊은 크리스찬이시지요?
학생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은 잊고 살다가 결혼 후 다시 교회를 찾았어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면서 교회 신도수가 10만명을 넘어서기까지 성장을 지켜보며 함께 했어요. 나중에 연예인 초교파 모임에 참여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연예인 선교 10주년 기념행사로 뮤지컬 <건너가게 하소서>를 제작해 전국 순회공연을 했었지요.

선교 뮤지컬이군요.
유대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자신은 건너가지 못하고 눈을 감은 모세의 생애를 담은 성극이죠. 1992년 호암아트홀, 국립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진주 부산 지역을 돌며 대성황을 이루어 배우활동을 그만둔 후 내가 해낸 큰 사업이어서 지금도 의미 있게 생각해요.

그 때 연예인으로 어떤 분들이 참여했어요?
지금은 목사로 계시는 임동진 씨가 모세역으로 출연했고 무대에 오른 출연진만 80명의 대작이었어요. 연예인 선교모임이 30여개쯤 될 때 우리 모임이 큰 모임 중의 하나였는데 가수 윤복희, 현미, 연기자로 한인수 씨 등 많았어요. 타계한 남정임 문오장 씨 등도 모두 헌신적으로 참여한 선교모임의 멤버들입니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영화인은 어떤 분들입니까?
오래전 함께 활동하던 배우들이 하이얏트에서 모여 정기적으로 만나 친목을 나누자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최은희 태현실 이빈화 남정임 엄앵란 최지희 문희 고은아 씨 등 1960년대를 세상에서 제일 바쁘게 보낸 배우들인데 그중에 먼저 떠난 분도 생기고 하니까 만남이 뜸해졌지만 이런저런 모임에서 얼굴을 보며 옛날 얘기하며 지냅니다.

내 남자 ‘아폴로 박사’

공주사범학교를 다니셨는데 어떻게 배우가 되셨어요?
아버님이 공직에 계셨지만 선대부터 집안이 공주의 소문난 지주 가문으로 성장기는 평탄하고 엄격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토지개혁으로 재산이 줄고 가족도 서울로 이사와 나도 새로운 일자리를 필요로 했어요. 당시 교통부 산하의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3년간 근무했었지요. 그 무렵 강의를 듣기 위해 양주동 박사를 자주 뵈었는데 그 분이 자주 찾던 명동의 갈채다방에서 차범석 오사랑 씨 등 연극인들을 소개 받았어요. 양주동 박사가 자신의 제자라며 소개를 해 주셨는데 틈틈이 실험극장의 연극무대에도 오르다가 1957년 HLKA 대북방송으로 인기를 모았던 오사랑 연출의 <김삿갓 북한방랑기>에 출연하게 되면서 방송국에 발을 들여 놓았어요.
이어서 최초의 TV방송국인 HLKZ가 개국되어 첫 드라마 <청춘기상도>를 제작할 때 TV연기자 1호로 선발되어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영화보다 TV연기를 먼저 시작하셨군요. 최초의 탤런트라면 초기 TV방송의 비화도 많이 기억하고 계시겠군요.
프로듀서 1호로 꼽히는 최창봉 씨가 편성국장을 하셨고 영화감독이 된 장일호 감독도 동료 연기자였어요. 이순재 씨는 학생이었지요. TV가 귀해서 다방에 가야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이 커피보다 TV드라마를 보기 위해 다방에 몰려 있던 시절이지요.

영화로 옮긴 계기는요?
1958년 중앙영화사의 오의겸 사장이 찾아와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니 믿어달라며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간청을 해요. 김성민 감독의 <어디로 갈까>란 작품에서 김석훈 씨와 공연을 하면서 충무로 사람이 됐어요. 이듬해 권영순 감독의 <가는 봄 오는 봄>이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 없는 별들> <단종애사> <갯마을> <귀로> <파문> < 천사의 눈물> 등의 출연 작품을 남겼어요. 주로 부드럽고 선한 배역이 많아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김기영 감독의 <화녀>와 달리 <충녀>에서는 역시 본처역이지만 매우 괴기스러운 캐릭터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해 화제거리가 됐던 기억이 납니다.


(좌) 남편인 아폴로 박사 고 조경철씨와 함께
(우) 김지미, 태현실 등 함께 활동하던 여배우들과 함께

이제 대중 연예 매체의 지면을 수시로 도배했던 “아폴로 박사‘와의 로맨스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작고하셨는데 마음을 무겁게 해드릴 것도 같지만 전 여사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니. 어떻게 인연이 되셨어요?
그 양반은 박정희 대통령 때 해외 과학자 유치 선발대로 귀국하신 분인데 <미워도 다시 한 번> 개봉 후 방송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어느 날 동아방송 프로듀서가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프로에 출연을 요청해 왔어요.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요청해 초대 손님으로 나갔어요. 그 프로는 내가 평소 존경하고 강의도 들었던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와 아폴로 달 착륙 중계해설자로 스타가 된 연세대 천문학교수 조경철 박사가 패널로 입담을 나누는 자리였지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호감을 나누신 건가요?
그건 아니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 조 박사가 프로듀서에게 나를 초대 손님으로 출연시켜달라고 졸라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지요. 첫날은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알려주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철야 촬영을 하고 내가 살던 서울의 최초 아파트인 세운상가 9층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조 박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바로 밑에 와 있다며 잠깐 방문하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그럼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했지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커피를 끓여 드렸을 때 마침 프림이 떨어져 맨 커피를 들고 가셨어요. 그후 그 때는 구하기 힘든 프림을 선물해 주시고 이어서 내가 출연한 영화 <잊혀진 여인>의 포스터를 보고 나의 출연 장면을 50호짜리 유화로 그려와 선물하셨지요.

단계적으로 호감을 전달하셨군요.
그림을 받는 순간 감동을 느껴 안 만날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지요. 그 후 대만을 다녀올 때 김포공항까지 나와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이어서 아현동에 있는 미군부대 안의 클럽을 찾아 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시작한 것이지요.

떠나신 후 힘드셨지요?
내년 3월이 3주기인데 둘이 살다가 먼저 가셨으니 하루도 생각 안 나는 날이 없지요. 병상에 계실 때 그 양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의사의 지시로 드리지 못했을 때가 자꾸 떠올라 그게 가슴 아파요. 그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원하시는 것 다 드렸을 텐데요.

어디로 모셨어요?
실향민들이 함께 잠든 파주 통일동산에 모셨어요. 고향이 평안북도 선천인데 그곳이 그나마 고향과 가장 가까운 땅이지요.

전계현 여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제는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 부군에 대한 사모의 정을 잠시 참지 못한 듯이 느껴졌다. 1971년 여덟 살 연상인 아폴로 박사의 짝사랑을 받아들여 그의 아내가 됐지만 부군은 4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첫사랑의 초심을 버리지 않고 아내를 위해 순정을 베풀고 떠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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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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