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웃긴 개그맨 김진수의 후반전
안 웃긴 개그맨 김진수의 후반전
  • 조현진
  • 승인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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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대, 2막은 오른다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겨울비가 오는 날이었다. 분당 율동공원 옆으로 나있는 2차선 도로에도 추적추적 빗물이 고여 있었다. 개그맨 김진수와 작사가인 그의 아내 양재선이 얼마 전 오픈한 태국음식점은 그 길 끝에 있었다. 비오는 날의 태국음식점이라... 도착도 하기 전에 벌써 향신료의 냄새가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라는 간판을 찾았지만 이곳이 맞는지 잠깐 머뭇거렸다. 태국음식점이라고 하면 반드시 있을 법한 살라(태국 건축물에 있는 독특한 지붕)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오는 김진수를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온 것을 알았다.



태국음식점이 아니라 카페 같다.

오픈 한지 몇 일 안 되는데 그런 말 많이 들었다. 태국음식점 맞다. 단지 방콕에 있는 태국 음식점이 아니라 뉴욕에 있는 태국식당처럼 만들려고 한 거다. 태국 음식 이란게 향이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몇 번 냄새와 모습에 질리고, 싫어하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질리니까 그렇게 하지 말자하고 모던하게 꾸민거다. 공간마다 컨셉트를 달리했더니 손님들이 재밌어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 그래도 태국인 주방장이 직접 만드는 요리는 정통이다.


음식점 준비하느라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건가?

그럴 리가. 얼마 전부터 SBS의 <천일야화>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 복귀했다. 사실 이렇게 오래 놀 줄은 몰랐는데 2년 넘게 방송을 쉰 꼴이 됐다. 그 사이에 영화를 한편 찍었다. 여고괴담 4탄을 만들었던 최익환 감독이 연출한 <그녀는 예뻤다>라는 영화다. 강성진, 김수로, 박예진이랑 같이 했는데 영화를 찍고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리터치를 해서 만화처럼 나오는 거다. 관객이 보면 우리라는 걸 아는데 실제로는 만화 같은 거지. 쉽게 말해서 <폴라 익스프레스>같은 영화다. 이걸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이라고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촬영이 작년4월에 끝났는데 후반작업이 얼마 전에 끝났다. 실험적인 영화인 셈이지.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 터닝포인트를 가지고 싶었다. 그 작품으로 이전까지와는 좀 다른 김진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MC던 연기자던 일을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올 초에 개봉했어야 하는 영화가 늦어진 거다.



터닝 포인트? 어떤?

개그맨이나 MC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다. 사실 자기 재능을 소진시키는 직업이니까. 배우들은 작품한편 하고 좀 쉬다가 외모나 연기 톤을 변신해서 다시 나타날 기회가 주어지는데 MC는 많이 할 땐 일주일에 대여섯 프로그램, 적게 해도 일주일에 한 두개 방송에선 얼굴을 비춰야 하니까 변신을 한다는 게 사실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만큼 생명이 짧은 거지. 나는 좀 쉬어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게 이 일을 오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개봉하면서 방송하자 생각했는데 이게 길어지니까 처음엔 섭외가 와도 ‘조금 있다가 하겠습니다.’ 하던 것이 몇 번 거절하면서 시간이 길어지니까 ‘아, 얘가 방송 안할라나 부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늘어났던 것 같다.


결과적으론 어떤가? 좋은 휴식이었나? 아니면 작전 미스인가?

당연히 좋은 휴식이었지. 쉬면서 내가 정확한 게 없는, 치열함이 없는 사람인데 운으로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었다. 내가 정확해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일정이 좀 틀어지긴 했지만 귀한 시간이었다. 나도 이제 40을 바라보는데 인생 전반전 열심히 뛰었으니 하프타임을 얻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금전적이나 정신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돈 대신 시간을 얻은 거니까. 그래서 지금은 아주 좋다. 조급함도 사라졌고. 어차피 김진수는 다시 후반전 뛰어야 하니까.


김진수의 후반전. 그래. 그 이야길 해보자. 당신의 전반전은 개그맨이었다. 후반전은 무엇인가?

사실 전반전을 개그맨으로 뛸 수 있던 것도 우연이었지. 난 원래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간 이후부터 이 꿈은 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연히 대학생 개그프로 나갔다가 MBC특채로 뽑혔다. 나도 내가 개그맨으로 이렇게 오래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2년쯤 무명으로 고생했는데 그래도 출연료도 받고 부모님께 돈을 벌어다 드리는 아들이 되니까 그게 참 좋더라고. 그래서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 이름을 좀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열심히 했고. 그러다가 조금 유명해졌고. 물론 적당할 만큼의 아쉬움과 후회를 늘 가지고 살았지.



김진수란 사람이 개그맨으로 고정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렇다. 그런데 좀 쉬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그게 내 힘과 능력으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란 걸 안거다. 처음엔 내가 날 개그맨으로 만들었지만, 오랫 동안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주변 분들이나, 시청자들이 날 개그맨으로 받아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은 다른 분들의 밀어주는 힘으로 내 인생의 언덕 하나를 올라갔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삶이 그렇지 않나? 오르막도 만나고 내리막도 만나는 거지. 내가 잘 되고 있던 20대 때 황정민, 유승룡 같은 내 서울예대 친구들은 한참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그 역경을 지나서 온 친구들은 지금 잘 된다. 결국 누구의 인생이나 다가오는 기회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같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난 어쩌면 진짜 고생이 시작되는 걸지도. 그래서 하프타임이 필요한 거다. 멋모르고 시작한 전반전과 같으면 안되니까.


확실히 다르겠지. 그럼 후반전을 뛰는 김진수의 지향점은 연기자인가?

연기자는 언제나 내 꿈이고 로망이다. 게다가 요즘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같은 코미디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젊은 쪽으로만 가니까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가면 나도 어색하지만 보는 시청자들도 어색할 거 아닌가? 그래서 뭐 난 꼭 연기만 한다... 이런게 아니라 내 나이, 내 상황에 맞게 차근차근 내게 맞는 일을 찾아 가려고 하는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편하게 당신이 나를 인터뷰 하듯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도 하고 싶고. 하지만 지금 나이의 나는 연기자로써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김진수는 ‘고지식함’이 자신의 불치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산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 문을 두드린다. 박중훈이라는 (그는 김진수의 연극반 4년 직속선배다.)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용산고등학교 연극반은 사고뭉치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공부하기 싫어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매일 선배들의 매질이 이어지던 곳이기도 했다. 김진수는 그 연극반에 유일한 모범생이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연습실인 학교 강당을 혼자 대걸레로 닦았다. 강당 뒤편에서 문제 학생들이 모여 담배라도 피면 그는 선배건 후배건 가릴 것 없이 덤벼들었었다. 그때부터 무대는 그의 신앙이었고, 우상이었다. 무대를 향한 그의 열정은 김진수를 ‘재능있는 미래의 배우’로 인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드라마센터가 매년 개최하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동랑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서울예대에 연극과에 입학하게 된다. 우연히 개그맨이 되었지만 그의 그런 우직함은 방송에서도 그대로 보여졌었다.




그래서 방송 또한 나에게는 무대와 동일한 개념이다. 무대가 그렇듯 난 방송이 거짓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코미디 연극도 연극이듯,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MBC <게릴라 콘서트>할 땐 정말로 게스트들과 먼저 대기실에서 입 맞추고 연습하고 이런 거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그대로에 나를 집어넣은 거다. 그러니까 100명도 모으지 못할 것 같던 가수가 3,000명을 모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나고 그랬던 거다.


나도 기억난다. 그 <게릴라 콘서트>덕분에 김진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청자들이 많아진 것일 텐데.

분명히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옳았던 걸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사실 방송은 그걸 보는 시청자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누굴 만나도 그게 내가 감동받거나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즐겁고, 눈물 나고, 감동을 받도록 난 전달해야 하는 사람인데 내가 먼저 흥분 했던 거 아닌가... 뭐 이런 의심도 해보는 거지. 이게 잘했던건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선 분명히 진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건 관객들에겐 별 문제가 아니었다. 관객은 김진수를 통해 감동 받았으니까. 그런데 김진수에게는 문제일 수 있다. 왜냐면 관객은 감동을 받았지만 당신이 가진 ‘웃기는 개그맨으로써의 이미지’는 추락하는 것이었으니까. 개그맨이긴 한데 웃기지 않는다... 아이러니인데.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그때 당시 프로그램들이 그랬다. IMF시대였으니 무작정 웃음을 주기보다는 웃음 속에서도 뭔가 희망하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팽배해 있을 때다. 당신이 이런 질문을 했기에 돌이켜 생각하니까 사실 그 덕을 나는 참 많이 본거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거고, 다른 분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많이들 김진수를 막연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셨고.



그런데 ‘좋은 사람’ 이란 거 되게 부담스럽다. 그때 성적이 안 좋은 고등학생 친구들 데리고 성적향상 시키는 <꼴지 탈출>이란 프로그램을 했는데, 원래 개그맨들에겐 야간 업소에서 일하자는 제의가 많이 온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까 큰 유혹이지. 그런데 난 그걸 못하겠더라고. 애들 공부 가리키면서 그런 걸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걸 안했더니 그 다음엔 학습지 CF가 들어오더군. 그런데 그것도 못 하겠는 거다. 애들 이용해서 내가 돈 번다고 생각되니까.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은... 좋게 말하면 우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지. 이게 대범한 건지, 예민한 건지. 하하.


그런 상황이 연속되다 보면 고민이 쌓이게 되었을 텐데.

그렇지. 그런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상황과 내 고지식함이 충돌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방송이 너무 하기 싫어졌다. 하고 싶은 게 따로 있고, 쉬고도 싶은데...그런데 그때 아내(작사가 양재선)를 만났고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고민의 폭이 더 커졌다.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코미디 계속해야 하나? 업소라도 나가야 하나? 했는데 아내가 나에게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오빠가 하고 싶은 일 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요, 쉬고 싶으면 쉬어도 돼요. 아무걱정 말고 편안하게 해요.’ 하면서 용기를 준거다. 결혼하면서 아내가 날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교회 나가게 되면서 아주 편해졌다. 그때까진 내가 일을 놓으면 난 끝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 단계를 넘어섰다. 꼭 해야 할 일과 무조건 하면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걸 안 거다. 내 인생,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정리하자면 ‘웃음이 아닌 감동을 주었던 개그맨’,‘허구적 재미가 아닌 진실을 보여줬던 개그맨’ 이것이 김진수의 전반전 성적표이다. 이 부조리한 개념을 들고도 그는 우직하게 전반전을 뛰었다. 어쩌면 그러기에 연기자로써의 그의 후반전은 더 기대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김진수를 보며, 웃는 것이 아닌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진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후반전 선언을 해도. 하루아침에 개그맨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는 없을지 모른다.

잘 알고 있다. 난 치열하게 개그맨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개그맨이다. 내가 연기자예요. 해도 사람들이 날 연기자로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못 받아주는 거다.


게다가 ‘내가 연기자예요’하는 말을 김진수가 하면 사람들이 심각하게들 받아들이고.

으허허허. 당신과 인터뷰가 마치 <무릎팍 도사> 하는 것 같다. 그러게. 다른 개그맨은 무슨 말 하면 95%를 농담으로 받는데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95%를 진담으로 들으니까. 얼마나 감사한가?




마침 오늘은 김진수와 4살 어린 그의 아내 앙재선의 결혼기념일 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 아이가 없다. 김진수는 내년에는 아이를 가지려고 둘이 몸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고 그의 아내 양재선은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양재선이 쓰고 신승훈이 부른 노래 ‘I Believe' 가사처럼 ‘난 그대여야만 해요.’라는 듯 둘은 손을 마주잡은 채로 서 있었다.


김진수의 후반전은 시작되었다. 지난 2년간 TV에서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좋은 연기자, 좋은 남편, 그리고 이제 경험하게 될 좋은 아빠라는 대본을 충실히 읽어왔다. 음식점까지 차렸으니 배가 고파서 중간에 포기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김진수는 오늘 나를 처음 웃겼다. 이제 김진수를 위한 무대는 인터미션을 끝내고 2막이 오를 것이다. 그 무대 위로 김진수는 뚜벅뚜벅 걸어간다. ‘안 웃기는 개그맨’이 되었던 전반전처럼 그의 후반전, 그의 새 무대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공연의 주인공은 당연히 김진수다. 그는 연기도하고, 웃음도 주고, 아내가 쓴 가사에 맞춰 노래도 할 것이다. 많은 등장인물들과 다시 관계하면서. 무대 가장 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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