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독 안에 달빛을 담는 귀농부부 채희백 김종례
된장독 안에 달빛을 담는 귀농부부 채희백 김종례
  • 김두호
  • 승인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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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없지만 남편은 회장하고 아내는 사장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당신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물은 끊임없이 흐르건만 강은 여전히 출렁이는 물이요, 달은 날마다 둥글다 이지러지건만 끝내 커지거나 사라지지 않네. 변하는 쪽에서 보면 천지도 한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그 변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되면 만물은 우리와 함께 영원하거늘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천지간의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는 법이니 내 것이 아니면 털끝 하나라도 취해선 안될 일이지만 오직 강위의 맑은 바람과 산위의 밝은 달은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가 준 한없는 보물이므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것들이네.”
경북 봉화군 물야면 압동마을에서 300여개의 장독을 마련해 전통 손맛으로 재래식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그며 사는 채희백(63) 김종례(60) 부부는 서울에서 한 때 큼직한 생산 공장을 운영하다가 미련없이 사업체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산골로 이주한 귀농가족이다. 앞의 한시는 송나라 소동파 시인이 남긴 <적벽부>의 일부 내용인데 인터뷰를 요청하자 채희백 귀농인은 그 시를 먼저 암송했다.

삶이 덧없는 것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의 <적벽부>가 자신의 후반인생에 여전히 마음을 보듬고 위안을 주고 있다는 얘기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곁에는 24시간을 거의 함께 보내는 ‘김종례 순재래식 된장’의 사업주인 김종례 사장이 있었다. 그러니까 된장 식품 사업체의 사장이 부인이고 남편은 회장님이지만 이 회사는 종업원이 없으므로 부부가 허드렛일까지 하는 종업원을 겸하고 있다.
농촌 사람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산다. 부부는 비가 온 후 금방 무성하게 자란 텃밭의 잡초를 캐며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마다 부부는 내용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 번갈아 가며 대답했다.


소동파의 시는 언제부터 좋아했는가?
아주 젊을 때부터 암송해온 시다. 나는 중국 고전을 좋아한다. 소동파의 영향을 받은 임어당 문집도 모두 즐겨 읽었다. 지금도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또 읽는다.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 언제쯤인가?
1999년 봄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빈집으로 남아 있는 토담집 서너 채를 포함해 텃밭까지 5백여 평을 사두었다. 언젠가는 시골로 갈 생각을 하며 살았다.



이곳이 고향인가?
아니다. 나의 고향은 경북 문경이다. 서울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회사 직원이 먼저 이곳으로 이사와 살면서 소개를 했다. 집 뒤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첫 눈에 내가 정착할 곳이 이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과 땅의 만남도 연(緣)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기록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노인부부가 사는 동네도 여기서 20분 거리에 있다. 또 부석사와 축서사, 오전약수터가 가까이 있어서 틈나는 대로 순례를 한다.

그러나 막연히 낭만적으로만 생각하고 산촌으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외로움이나 생활의 불편함으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그런 고비는 없었는가?
있었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가족이 함께 서울과 대구로 이사해 살았던 나에게 시골생활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부여와 공주 사이에 있는 조용한 마을로 집을 옮겼다. 농가를 임대해 버섯재배나 할 생각으로 갔지만 오래 견디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여기에서 다시 부인 김종례 씨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집에서 무서운 일을 겪고 난 뒤 서둘러 떠났다. 어느 날 깊은 밤에 목이 말라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부엌 한켠에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으로 볼 수 없는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기절할 듯이 놀란 나는 뒷걸음질 치며 방으로 들어가 무서움에 떨며 밤을 보낸 뒤 동네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분의 인상착의를 말하고 혹시 그런 분이 사느냐고 물었다. 놀라운 일은 오래전 화재로 불행하게 별세한 그 집의 주인 할머니가 분명하다는 얘기였다. 무서워 그 집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얘기 같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간 분들이 어쩌다 다시 귀농을 한 것인가?
그때가 1992년이었다. 반드시 그 사건 때문은 아니지만 버섯재배에 대한 기술도 부족하고 농촌생활에 쉽게 적응을 못해 6개월만에 서울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서울을 떠나 있었다. IMF가 터지면서 시골에 대한 향수가 한층 북받쳐 올랐고 서울에 살며 미리 물색해 둔 봉화 산골을 향해 다시 이삿짐을 쌌다.

부부가 된장 식품사업을 시작한 것은 귀농 직후인가?
텃밭에서 콩을 수확하며 생각한 것이 우리 부부가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식품이 된장 간장 고추장 등 토속 식품이라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우리의 장맛은 좋은 콩도 있어야 하지만 좋은 물과 맑은 공기와 햇볕, 기후(통풍)와 적절한 온도로 숙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하고 친지들의 집을 돌며 빈 장독을 수거해 된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김종례 씨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12남매의 자식을 낳아 키우신 시어머님께서 생전에 보여주신 솜씨가 교본이다. 나물반찬 한 접시도 온 정성으로 준비하는 분인데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그실 때면 대대로 내려온 전통적인 절차에서 털끝만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껏 준비하셨다. 식품은 마음과 손끝에서 나오는 정성으로 만들지 기술이나 요령을 피우면 안된다는 분이었다. 12남매 가정의 막내아들과 결혼한 나는 며느리가 아니라 손녀같이 귀여움을 받으며 찬바람이 불면 시어머님을 도와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어 그것으로 장을 담그는 일을 익혔다.

12남매의 가정이라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가정이다. 한자리에 모일 때도 있는가?
국회의장을 지낸 채문식 씨가 우리 집안 어른이다. 형님 중에는 동경 유학 다녀온 분도 있고 공직생활을 하신 분도 있지만 두 형님은 6.25 전쟁 때 실종되셨다. 지금은 아들 열에 딸 둘 가운데 나와 누님 한 분만 살아계신다.



두 사람이 3백여 개의 장독을 어떻게 채우는가?
처음에는 콩 다섯 가마(한가마 100kg)로 시작했다. 그것을 봉화에서 개최되는 가을 송이축제와 여름 은어축제 때 선을 보였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좋은 반응이 나타나면서 군행정기관에서도 지원을 해주었다. 지금은 연간 30가마를 담그고 있다. 메주를 만들 때만 일손이 모자라 대여섯 명의 일손을 필요로 하지만 그밖에는 두 사람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감당한다.

좋은 장맛을 내는 된장 만들기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추수가 끝나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콩 농가를 찾아다니며 좋은 콩을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12월 중순께 찬바람이 불면 그 콩을 깨끗한 물로 씻어 재래식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5,6시간을 끓인다. 적절하게 삶은 콩을 성형틀에 넣어 다져서 메주로 만들게 된다. 그것을 황토방에 달아놓고 60일 정도 건조시키는 과정에 또 세심한 정성이 따라야한다. 평균 30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통풍이 적절해야 검은 곰팡이가 아닌 깨끗하고 뽀얀 곰팡이가 핀 메주덩이로 숙성이 된다.

장맛은 염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물론이다. 우선 바탕 재료인 메주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은 간수를 뺀 서해안 천일염으로 염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방식이 재래식이지만 염도를 맞출 때는 혀에 의존하지 않고 염도계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장맛을 내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최선의 정성을 바치면 자연이 만들어준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맑은 공기와 햇볕, 맑은 물과 기후가 맛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밤하늘에 둥실 떠오른 달빛도 장독 안에 떨어져 구수한 장맛을 내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된다고 믿는다.

농촌생활은 땀을 흘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있다. 노동을 하는 것이 힘들어 보람을 찾지 못하는 귀농인도 많은데 당신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는 귀농인들이 주변에 얼마나 있는가?
귀농은 노동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행하게 된다. 부근에 정말 열심히 땀 흘려 터전을 잡은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집을 직접 짓고 식당운영이나 과수원, 특용작물을 재배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두 채의 집을 내손으로 직접 지었다. 물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별장삼아 농촌생활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고향이 아닌 지역에 귀농을 하면 우선 지역 원주민과 화합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별장삼아 호화주택을 짓고 산다면 위화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지역에 귀농을 하면 반드시 그런 고충을 겪게 되고 그것을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 나는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 때도 있었지만 열여섯 식구가 한집에 살며 끼니를 굶던 피난시절의 고생을 경험해 힘들게 사는 분들 앞에 절대로 오만해서는 안된다는 자세를 지켜왔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온 건방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초기에는 진심이 전달되지 않아 마음고생도 있었다. 나는 손재주가 있어서 지금도 마을사람들의 농기계나 가전제품의 고장 난 것을 고쳐주는 봉사로 친분을 쌓아가고 있다.

이 산골에서 어떤 경로로 된장이나 고추장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가?
지금은 온라인에 택배시대 아닌가. 군에서 만들어 준 홈페이지(www.jangdok.pe.kr)를 통해 주문을 받고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그러나 단골 고객의 소개나 입소문으로 주문받는 경우가 더 많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우리 부부는 된장을 팔아 부자될 생각은 안한다. 그냥 농사지을 땅이 없으니 우리가 놀지 않고 열심히 일해 먹고 살 만한 정도의 수입이 되면 더 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장독이 늘었지만 더 이상 큰 욕심이 없다. 가까운 축서사의 된장을 우리가 담아주는 것도 마음을 비우며 살기 위한 노력이다.



신앙은 불교인가?
그렇다. 매일 아침 108배를 올리고 일과를 시작한다.

이곳에 살고 있는 가족은 부부 뿐인가?
아들 형제는 직업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김종례 순재래식 된장’의 회장은 집 뒷산에 올라가 순식간에 야생 더덕 몇 뿌리를 캐왔다. 사장은 또 자신의 손맛이 닿은 된장과 고추장을 가져와 즉석에서 맛을 보게 했다. 된장에 푹 찍은 산더덕 한 뿌리를 한입에 물자 진한 향기와 짜릿한 물기가 혀끝을 파고들었다. 더덕에도 된장에도 청정한 산촌의 흙냄새가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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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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