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우울증 명의 이민수 박사
‘마음의 감기’ 우울증 명의 이민수 박사
  • 김우성
  • 승인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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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생긴 쓰레기 버리는 것이 중요”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세계보건기구(WHO)와 하버드대가 공동 진행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우울증을 '심장질환' '교통사고'와 함께 가까운 미래 인류를 괴롭힐 3대 질병으로 경고하고 있다. 반드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은 삶 속 깊이 파고들어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큰데,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인들은 우울증을 그저 정신질환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병의 진단과 치료율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흡하던 90년대 초반에 이미 고대 안암병원 내에 우울증센터를 개소, 직접 소장을 맡아오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줬다. 우울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그는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정신작용약물유전체센터> 소장과 <우울증임상연구센터> '한국인 우울증 표준치료지침개발'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이 교수는 우울증을 '감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치료할 것을 주문한다. 우울증은 반드시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역설하며 한국인에 맞는 맞춤치료 개발에 주력 중인 이 교수를 만나 우울증에 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우울증의 범주를 어디까지 봐야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을 진단하는 기준이 뭔가요.

살다보면 수시로 슬프고 울적한 기분 상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기분만 느끼는 건 '우울감'이고요. 우울증, 정확히 말해 우울장애는 그러한 기분이 정도를 넘어 신체와 생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자신의 역할수행이 불가능하게 된 때를 말합니다. 하루 나빴다가 또 괜찮은 식으로 2주가 아니라 연속해서 2주말이죠. 학자 개인과 진단기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2주입니다.

 

우울증에도 자각증상이 있나요?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는 우울증 척도로도 손쉽게 체크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우울한 사람들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그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만사가 귀찮은 거죠. 우울증의 일반적인 자각증상은 우선 '나의 생활이 달라진다. 하루하루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입니다. 더 부지런해지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고 친구 만나는 것도 싫어지는 식으로 일상리듬이 흐트러지는 게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평소 내가 좋아하던 게 싫어집니다. 그 다음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증상이 있다면 우울증이 시작된 겁니다. 중요한 것은, 만약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환자가 병이 심각하지 않을 때는 병원을 찾지만 병이 심각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에도 못가고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게 우울증과 관련이 있나요?

OECD 자살률 1위가 우리나라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24.6명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이는 우리의 관대한 술문화와 무관치 않습니다. 우리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헝가리였는데요. 여기서 주목할 점이 헝가리의 술 소비량이 굉장히 높았다는 겁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보통 술을 마시라고들 하죠? 하지만 술을 마시면 억제력과 조정력이 떨어져서 더욱 더 자살을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헝가리에서 술 소비량을 줄였더니 오히려 자살률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 괴롭다고 하면 왜 그런지 들어주기에 앞서 '야 나가서 소주 한잔하자' 하는 문화입니다. 이는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더 확대시켜주는 꼴이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들의 음주문화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마음의 병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이 적지 않은데 '몸의 병'으로 봐야하는 의학적 근거는 뭔가요.

아무런 이유 없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대상으로 뇌를 비롯한 여러 가지 데이터를 분석을 해보니 우리 몸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 그 중에서도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이 감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함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병이 아니라 생화학적인 뇌질환이라고 봐야하는 거죠. 음식으로 치면 조미료를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몸에서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조미료가 자동으로 나와서 맛도 느끼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부족해지면서 삶이 싱겁고 맛없어지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요인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지만, 심리적 요인을 받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뇌를 측정해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뇌의 활동이 저하된다는 게 증명 됐으므로 우울증을 몸의 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겠네요.

확진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증상이 제일 많은지 살펴보니까 불면증, 요통, 두통, 흉통, 소화불량 등이었습니다. '슬프다 괴롭다' 하는 증상은 일곱 번째였어요. 그만큼 신체적 증상이 상당히 수반됩니다. 만약 허리를 다쳐서 아픈 환자가 있다고 할 때 정형외과에서는 이론적으로 1이나 2정도의 강도로 아픈 게 정상인데, 환자는 8까지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서입니다. 새끼줄에 기름이 묻어있을 때는 툭툭 건드려도 까칠하지 않지만,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한 환자는 그게 말라있으니 조금만 건드려도 고통을 느끼게 되는 이치입니다. 이렇듯 우울증은 고통을 더 크게 느끼도록 원인을 제공합니다. 우울증 환자를 정형외과 마인드에서만 보면 꾀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신경과 정신과적으로 면밀히 관찰하고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어려운 것입니다. 단순히 슬프고 눈물 나고 괴롭다고 한다면 어려울 게 없는데 그게 아니기 때문이죠.

 

환자가 실제 느끼는 고통이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불면증이 있는 환자는 잠을 아무리 많이 잔다고 해도 피곤이 안 풀어지고 졸릴 수 있습니다. 검사해보면 잠을 못 잤다고 얘기하는데 보호자가 하는 말은 또 달라요.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푹 잤다는 거죠. 그렇다고 환자에게 "잠 잘 자놓고 왜 그러냐"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잠의 질적 수준이 안 좋다는 건데요. 객관적 데이터나 전문가의 측정도 중요하겠지만, 잠을 충분히 자놓고도 불쾌하고 피곤하다면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주관적으로 얼마나 아프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증의 발병 원인이 궁금합니다. 무언가의 계기에 의해서 걸릴 수 있는지, 유전적 요인은 없는지 말이죠.

부모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자녀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구보다 3배쯤 높습니다. 또한 일란성쌍생아가 이란성쌍생아보다 다른 쪽에 우울증이 걸릴 확률이 많습니다. 따라서 유전성은 있다고 판단되지만 그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앞서 말씀드렸듯 뇌의 신경생화학적인 변화이고요. 심리적으로 큰 요인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상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무언가에 대한 상실 말이죠. 그것도 자연적인 상실이 아니라 인위적인 상실일 때 우리는 분노감을 느낍니다. 분노감이 승화되면 남을 이해하지만, 승화되지 못하면 남을 죽이거나 내가 죽는 경우가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요인이 굉장히 많죠. 옛날에는 그냥 직장생활만 잘하면 됐지만 이제는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상황이 수없이 많아지다 보니 따라가기 벅찬 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인간수명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암에 노출될 수도 있고 노인이 되었다고 우울해질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우울증 발병 확률이 높아지겠습니다.

물론 옛날보다 지금이 암이나 에이즈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많이 발생하기에 마음이 기쁠 수 없겠죠. 그렇지만 엄밀히 따져서 옛날에는 우울증을 몰랐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최근 겨울철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겨울에만 우울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없었을까요. 겨울에 날씨는 춥고 먹을 건 없는데, 만약 자식 많이 낳고 식욕까지 왕성하다면 모두 다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을 거란 말이죠. 그러면 우울증에 빠지는 겁니다. 먹기도 싫고 사랑도 싫고 잠만 자는 식으로 행동이 줄어드니 오히려 겨울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예나 지금이나 역학은 같습니다. 지금은 발견하는 것뿐입니다.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이유는 뭔가요?

남성에게는 갑상선 장애가 별로 없는데 여성에게는 갑산선 장애가 많죠. 사람의 생각을 정리하는 총본부를 머리라고 할 때 마음을 정리하는 총본부는 갑상선입니다. 본부가 자꾸 고장 나니까 우울증에 자주 걸리는 겁니다. 또 여성에게는 출산이 있지요. 대개 14세부터 47세까지 삼십 년 이상 매달 월경도 있습니다. 그때는 호르몬이 변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남성보다 우울증에 취약한 시기가 온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남성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교육을 받지만, 여성들은 회피해가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합니다. 남성들은 그런 상황에서 무너지면 심하게 잘못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한번 이겨낸 사람은 이겨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여성에겐 그런 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자주 걸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울증이 다른 질병에 비해 특히 무서운 점이 뭐가 있을까요.

앞으로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 인류를 가장 괴롭히는, 정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질병 1위 내지 2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말해 상당히 흔하다는 위험성이 있고요. 두 번째가 전파성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대여섯 명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처럼, 가정주부가 우울증에 걸리면 남편이나 자녀들을 챙겨주지 못하니까 가족구성원들의 마음도 상당히 우울해지고 가라앉게 되는 것이죠. 또한 우울증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될 경우 '나만 없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현재가 너무 괴로운 나머지 현재에서 영원히 떠나가려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선진국 비해 치료율이 낮은 이유는 뭐죠?

인지도 차이입니다. 우울증 개념이 없으면 병으로 취급도 안하고 약도 없습니다. 우울증이 뭐라는 걸 잘 모르기 때문에 치료를 안 하게 되고, 치료를 안 하니까 환자가 자살해도 그걸 병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렇다. 경제가 그렇다. 가족갈등이 그렇다'하면서 우울증의 본질을 자연스레 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진단받는 환자가 전체 우울증 환자의 4분의 1이고, 진단받은 환자 중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환자가 5분의 1입니다. 한 마디로 실제 우울증 환자 중 95%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죠. '우울증은 정신병이니까 낫지 않아'라는 식의 편견이 없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계몽이 절실합니다.

 

일본에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우울증 환자나 자살 사고가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관련당국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보는지요.

우리나라도 2004년에 국가의 지원으로 <우울증임상연구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배우 이은주씨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입니다.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우울증의 심각성은 인정하는데... 그게 민족성의 차이 같습니다. 일본은 어떤 프로젝트 하나가 정해지면 관련 위원회가 10년이고 20년이고 끈질기게 연구를 해나갑니다. 그래서 자살 문제가 터지면 오래 전 만들어진 자살위원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차후를 예방하는 식인데 우리는 그때뿐일 수 있다는 거죠. 우울증이 치료됨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인지 지자체나 학교교육 등을 통해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가 해소됐을 때의 이득을 부각시키는 게 효과적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능력발휘가 안 되듯이 우울감 있는 사람, 우울증 걸린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면 자기 능력의 20퍼센트 밖에 발휘를 못합니다.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면 경제성은 말할 수 없이 높아지죠. 또한 우울증 환자가 치료됨으로 인해 가족구성원이 상당히 즐거워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우울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아? 나이 들면 관절도 아프고 귀찮으니까 집에 있어야 돼. 소화가 안돼서 식사를 못해...' 이건 아니라는 거죠. 나이 들었다고 우울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병으로 인식하고 조화롭게 해결하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집니다.

 

우울증센터가 개소된 지 얼마나 됐죠?

우울증센터를 만든 건 1993년이고 공식적으로 국가의 지원이 시작된 건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3년입니다. 처음 만들었을 당시에는 병원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어요. 우울증센터라는 '간판'을 붙이는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죠. 우울증이 병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누구나 우울해지지 않아?'라며 우울증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5~6년 전부터 우울증이 어떤 것이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이 약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창피하세요? 바이러스 때문에 그런 거니까 전혀 창피할 게 없잖아요. 우울증도 똑같습니다. 신경생화학적인 변화 때문에 운이 나빠 걸린 것이지, 창피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울증센터에 국가의 지원이 시작됐다는 2003년만 하더라도 보건복지부 지정 <우울증임상연구센터>보다 앞섰던 건데 1993년이면 상당히 빠른 거네요.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당뇨병, 고혈압, 전염병 등 국가에서 더 중요시하는 과제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울증 발병이 많다는 걸 감안해 정부가 더 바빠져야겠죠.

 

 

 

 

우울증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한국인의 문화적, 인종적 차이를 감안한 ‘한국인의 우울증 척도'를 정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던 백척도 해밀턴척도 몽고메리척도 같은 것들은 한국인에 대한 전반적 양상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우울증은 신체증상이 많이 따르는데 백척도 해밀턴척도 등에는 신체증상에 대한 문항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우울할 때 가장 잘 나타내는 증상을 모아서 문항을 만들었죠. 그걸 가지고 백척도와 비교해 봤는데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우울증센터에 오시는 분들께 적용해 봐도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그 척도를 토대로 적절한 약물을 선택하는 ‘맞춤치료'도 개발 중이라고요?

혈액마다 혈액형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하나의 유전적 소인을 나타내는 스닙(SNP)이 있습니다. 그걸 검토해서 '이러이러한 특성이 있을 땐 A약이 잘 맞고, 이런 특성에는 B약, C약...이 잘 맞는다'는 식으로 데이터베이스화가 이뤄집니다. 그러면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을 때 이약 저약 쓰기에 앞서 그런 (한국형)척도나 혈액을 중심으로 최적의 약물을 찾아내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직 전체 환자는 아니지만 일부환자에게는 맞춤치료를 시작하고 있고요. 향후 정신과 뿐 아니라 모든 과에서 맞춤치료가 보편타당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진단도 중요하지만 환자 개개인에 있어 서로 다른 환경과 증상을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관건이니까요. 치료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워지겠지만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바라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죠.

 

저서에서 우울증을 가장 빨리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약물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은 병원에서 지나치게 약물에만 의존하도록 처방한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우울증 치료에는 약물치료뿐 아니라 정신치료, 집단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하지만 시간과 효율 면에서 약물치료를 따라올 만한 방법이 없기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겁니다. 사실 약물치료나 정신치료가 지향하는 방향은 다르지 않습니다만, 심한 우울증에 빠졌을 때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어느 길을 가야하는데 잡초가 우거져 길이 안 보이는 겁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는 몰라요. 막 다니다 보면 헤매기만 하고 더 괴로워요. 잡초 때문에 자기 길이 안 보이는 거죠. 그때 환자에게 "저쪽으로 가면 길이 있으니까 버스타고 가면 돼"라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 환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할 때는 약물로써 잡초나 갈대를 없애서 길을 보이게 하는 겁니다. 그런 이후에라야 정신치료, 즉 어느 길이 좋은지 얘기할 수 있지요.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지 않은 환자는 시간이 지났을 때 잡초가 다시 자랄 수 있습니다. 물론 약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건 정신과에서도 원하는 게 아닙니다.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 약이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얘기해주고 또 환자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죠.

 

우울증 연구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정신분열병과 같은 다른 질환은 병의 개념이 뚜렷하면서도 치료가 잘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울증은 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치료도 안하는데, 막상 치료를 하면 상당히 효율이 좋아서 가장 치료율이 좋았어요. 그렇다면 가장 흔하기도 한 이 병을 공부해서 치료함으로써 사회를 밝게 하자는 생각이 첫 번째 시작이었습니다.

 

환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유달리 챙기는 부분은 뭔가요.

환자분들은 상당히 마음이 괴롭고 절망스러우며 고립감을 느끼기 때문에 저에게 화를 낼 수도 있고 공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환자분들과 대화하며 속으로는 '이 환자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그렇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해줘야 되겠다'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환자는 마음에 생긴 쓰레기를 어디든 쏟아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자꾸 어떤 얘기를 해주다 보면 그 환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굿스피커가 아니라 굿리스너라가 필요하다는 거죠. 무조건 잘 들어주는 것. 환자로 하여금 '내가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고 나의 아픈 부분을 얘기하면 들어준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치료의 첫 시작이고,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의 실체와 무서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본인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물론 나의 일에 만족하는 게 첫 번째이지만, 저의 경우 혼자 할 수 있으면서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걷는 걸 좋아합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은 3시간 이상을 걷는데요. 너무 바쁘고 피곤할 때는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럴 때 일수록 더 걷게 되면 충전이 되고, 살아있는 이유를 느낍니다.(웃음) 꼭 환자가 아니더라도 슬프고 괴로운 감정에 직면하면 '내가 왜 이럴까'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밖으로 나가서 움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이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 전문가를 찾는 것입니다. 고민하지 말고 조금만 움직여서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근본적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살아가면서 늘 스트레스가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자꾸 스트레스를 없애려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친구로 삼아야 해요. 어느 가정이나 생활하다보면 생활쓰레기가 생기죠. 쓰레기가 싫어서 하루에 알약 하나씩 먹고 살아간다면 삶이 과연 재미있을까요? 스트레스나 여러 가지 괴로움들은 나를 강하게도 하고 약하게도 하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적敵은 아님을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쓰레기를 줄일지언정 굳이 없애려하지 않는다면 더불어서 친구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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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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