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의 ‘씁쓸’하고 ‘희희낙락’한 개그인생 10년
김준호의 ‘씁쓸’하고 ‘희희낙락’한 개그인생 10년
  • 김우성
  • 승인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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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이치> 같은 영화 출연이 꿈”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금요일 저녁 개그맨 김준호가 진행하는 토크쇼를 처음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기라성같은 게스트를 앉혀놓고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던지는가 싶더니, 되받는 마디마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KBS2TV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한 코너인 '김준호쇼'는 기존 토크쇼 방송분량에 김준호의 사후 녹화를 더해 만들어지는 황당무계 토크쇼다. 소스는 <한국 한국인> <박중훈 쇼> 등에서 얻어오는데, 편집의 묘미 앞에 배우 이순재는 핑클 팬클럽 회장, 김태희는 싸움꾼, 소녀시대는 전문사채조직으로 탈바꿈한다. 이쯤 되면 우려와 항의가 빗발칠 법도한데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스타들의 색다른 변신이 마냥 친근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개그콘서트 원년멤버로 시작해 꾸준히 활동해온 김준호는 유독 영상물에서 착안한 코너를 많이 선보였다. <집으로> <하류인생> <달콤한 인생> <타짜> 등이 지금껏 그가 개그소재로 패러디한 영화들이다. 정극 연기자를 꿈꾸며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했던 이력과 무관치 않아 보이지만, 맡아온 역할은 대게 폼만 잡다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캐릭터가 주를 이뤘다. 뱀에 물리고도 애써 비장한 표정을 지어내던 '쿵푸 허슬'의 주성치가 연상되는 캐릭터인데, 본인은 씁쓸하다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엔돌핀은 솟구친다.


경쟁이 치열한 개그계에서 꼬박 10년을 내달려온 김준호가 잠시 한숨을 돌리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인터뷰가 시작되어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사진촬영은 가급적 가슴 위쪽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이유를 물으니 뱃살 때문이란다.



개그콘서트가 벌써 10년을 맞이했습니다. 간단한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처음 시작할 때 제가 '남자 막내'였는데 지금은 왕고참이 되어있으니까 감회가 남달라요. 무엇보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거의 의무적(?)으로 봐주시는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코너가 뭔가요.

음.. 패러디콩트를 많이 했어요. <집으로> <하류인생> <씁쓸한 인생> 모두 패러디인데, 어떻게 보면 공개코미디 무대에서 콩트코미디를 한 셈이죠. 그 와중에 나름대로 '개그'라고 해본 게 <같기도>예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여.(웃음) 오히려 그 코너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한 6개월 밖에 안했는데 그때 참 재밌었어요. 말도 안 되는 앨범도 내고. 하하. (박)성호형이랑 홍인규, 이상구, 쌍둥이 등 형동생들과 작업 자체를 재밌게 했죠. 돌이켜 보면 제가 하는 코너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과 항상 같이 했던 것 같아요. <집으로>에서 (김)대희형, 빡구 윤성호, <씁쓸한 인생> 유상무, 이승윤, 송병철, 또 쌍둥이 이런 친구들 말이죠. 그래서 저는 개그를 참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크게 뜨는 코너도 없었고요. 하하. 이슈가 되기보다는 시청자들께서 그냥 편안하게 웃어주셨어요. 그나마 가장 이슈가 됐던 게 <타짱>하고 최근의 <김준호쇼>인데. <김준호쇼> 같은 경우에는 웃음 코드가 좀 새로워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개그콘서트를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코너는 <타짱>이예요. 제가 하드코어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요즘 김준호쇼 반응이 대단하던데요.

얼마 전 방송에서 김준호쇼가 불방됐어요. 청룡영화제를 방구대상 시상식으로 합성했더니 KBS측에서 이건 너무 독하다 해서 방송에 못 나갔죠. 솔직히 좀 독하긴 했어요. 이영애씨 손예진씨 등이 다 방구쟁이로 나오니까. 하하. 엄청나게 웃기거든요. 보여드리고 싶은데 안타깝네요. 대한민국 방송은 욕설, 배설, 성(性) 표현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웃긴 게 그 세 가지인데 그걸 교묘히 피해서 하는 게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이예요. 심야코미디인 <코미디 쇼 희희낙락>은 그나마 좀 선을 넘어서 어떻게든 수위를 높여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저작권, 초상권, 우리 양심까지 따져가면서 해야 하니까... 지금 김준호쇼도 재밌는 거 몇 개를 녹화해 두었는데 여기저기서 제동을 걸어서 방송에 못나가는 게 있어요. 영화코미디에서는 리얼리티를 살려야 웃기잖아요. 총으로 쏘고 피가 튀고 그러다가 반전이 나오면 관객들이 자지러지는데 우리(방송)는 총을 사람에게 겨눌 수도 없는 등 소재제한이 너무 힘들어요.


그런 부분들이 자유로워지면 의외로 두각을 나타내는 개그맨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럼요. 지금 예능에서는 이경규, 김구라, 지상렬 씨 등 독한 캐릭터들이 잘되고 있잖아요. 콩트도 마찬가지 같아요. 그게 비하까지 가면 안되겠지만 시청자들 생각의 틀을 깨려면 일단 독해야 하고 만약 그게 허용된다면 분명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묻혀있는, 쉬고 있는 개그맨들이 많아요.



데뷔 초창기 얘기 해보죠. SBS공채로 시작했죠?

SBS 심현섭 지상렬 강성범 씨 동기였는데 당시 SBS가 코미디 왕국이었어요. <웃으며 삽시다> <좋은 친구들> <이주일 투나잇쇼> <기쁜 우리 토요일> <코미디 펀치펀치> <코미디 전망대> 등등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러던 게 우리가 들어간 직후부터 하나둘 폐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 동기 중 SBS에서 스타가 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다 뿔뿔이 흩어졌죠. 저는 <이주일 투나잇쇼>에서 현섭이형하고 IMF개그를 하다가 군대에 갔어요. 돌아와서 집에 있으면서 '학교를 마저 다녀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때 현섭이형하고 (김)미화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하는데 와서 오디션을 보면 어떻겠냐고요. 그 이후에 이렇게 10년 동안이나 할 줄은 몰랐죠. 하하.


'사바나의 아침'(개그콘서트 초기 코너)에 출연할 무렵에는 거의 다 선배들이었겠어요.

그렇죠. 제가 SBS 5기인데, 김한국 선배님이 KBS에서 다시 살아가라고 '14기' 기수를 주셨어요. 14기면 99년도에 데뷔한 기수이니까 기수를 3년 강등당한 셈이죠. 흐흐. 그래서 김대희 김영철씨와 동기가 됐어요. 제가 초창기 때 입지가 많이 없었어요. 연기하면 '백재현' 개인기는 '심현섭 김영철' 생긴 건 '김대희'였는데, 전 아예 없더라고요. 그때 독한 마음먹고 트레이닝을 잘한 것 같아요. 재현이형한테 기획이나 아이디어 짜는 구성력을 많이 배웠고, 개인기라든지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순간 캐치하는 법은 심현섭 씨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역할이 이장이었죠.


10년 동안 가장 도움을 줬던 사람으로 누구를 꼽고 싶습니까.

대희형이죠. 예전에 저희가 <웃찾사>로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넘어갔다느니 SBS에서 큰돈을 받고 갔다느니 소문이 무성했는데, 당시 저와 대희형은 SBS 출연료가 KBS보다 적었어요. 또 그때 제가 '언저리뉴스' 만들어서 8회까지 잘 방송하고 있던 상황이라 굳이 옮겨갈 이유도 없었어요. 단지 의리 때문에 간 거죠. 아니, 가기 이전에 쉬었던 거예요. 형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에 다같이 좀 쉬자 했었는데 우리가 아이템을 짜고 기획을 하기도 전에, 매니지먼트에서 SBS와 '딜'을 한 거예요. 그렇게 KBS의 내로라하는 개그맨들이 다 왔는데 아이템 부족으로 할 게 없었어요. 그래서 <웃찾사> 3, 4회 만에 그만두고 1년 정도 대희형하고 쉬었어요. 그때 서로 힘이 많이 됐죠.


그때가 슬럼프였나요?

슬럼프... 슬럼프라면 슬럼프겠죠. 제가 개그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작년에 방송된 '타짱'이라는 코너도 그때 대희형이랑 고민해서 짰던 거거든요. 버라이어티 아이템을 많이 짜놨었어요. 형이랑 나랑은 나중에 30대 후반이 되어서 형이 MC를 하든 내가 하든 그때 써먹을 아이템을 짜놓자...(웃음) 그런 얘기하면서 많이 짜놨거든요. 그게 슬럼프일까? 근데 그 당시 힘들었던 건 사실이예요. 아이템을 짜도 설 무대가 없었으니까요. 정체기였는데 매일 대희형과 함께 있었어요.


그게 몇 년도죠?

2003년도일 거예요. 거의 매일 회의하긴 했는데 뭐가 웃긴지도 몰랐어요. 둘만 봐서. 흐흐. 그래서 실험해보려고 컬투형들 무대에 간적이 있어요. '뜬금개그'라고, 예를 들어서 "안녕하세요 여기 국회의사당이 어디예요?"하면 "아, 제가 국회의사당이예요" "아 그러세요 저는 양화대교입니다" 이게 우리끼리 짜면서 너무 웃긴 거예요. 이걸 가지고 컬투 공연 때 우리가 완전히 망쳤어요. 하하. 왜 국회의사당인지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예요. 대희형이랑 언젠가 시대가 알아줄 거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 코드를 공연장에서 하니까 재밌어 하시더라고요.



개그콘서트 하면서 '정말 웃기다' 싶은 동료가 누군가요?

개그맨을 웃기는 '분장실 개그맨'이 제가 아는 선배님 중에서는 최형만 선배님, 서승만 선배님, 심현섭 선배 그리고 우리 후배 중에는 (안)영미, (김)병만이가 웃겨요. 솔직히 우리끼리 있으면 다해요. 희극인들 MT나 체육대회 가면 전세계에서 제일 웃길 걸요? 소재 제한이 없으니까 우리끼리는 독하게 하려고 별 짓을 다하지. 하하.


가장 마음에 맞는 친구는 누구죠?

대희형하고 마인드가 맞아요. 둘이 코미디연기자 마인드가 있어서 예전에는 버라이어티를 하지 말자고 했었어요. 우린 연기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멀티로 하자고 바뀌었죠. 하하. 돈과 타협하기 싫었는데 결혼도 하면서 점점 타협을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직도 형이랑 나의 꿈은 작품성 있는 코미디영화를 직접 쓰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거예요.


할리우드에서는 로빈 윌리엄스처럼 코미디언들이 큰 배우가 된 예가 많죠.

네 맞아요. 로빈 윌리엄스, 빌머레이. 한국에도 임하룡 선배님도 충무로에 계시고. 심형래 선배님도 제작을 하고 있는데 짐캐리, 주성치 같은 사람은 아직 한국에 없다고 봐요. '언젠가는 우리가 할거다'라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앞으로 나오겠죠.


비공개 코미디를 하면서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나요. 개인적으로는 테이블에 모여서 즉흥적인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재밌던데.

지금 버라이어티 MC급에서 살아남은 정형돈, 신봉선, 유세윤 같은 친구들은 정말 타고난 혀를 갖고 있어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버라이어티에 가면 무인도에 던져놓은 거랑 똑같을 거란 말이죠. 반면에 지금 희희낙락은 모든 출연진이 다 친하니까 대본이 필요 없어요. 그만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 편하죠. 지금 개그콘서트가 시청률도 높고 한 번 출연하면 행사에 CF에, 부가가치가 굉장해요. 그런데도 우리 개그맨들이 코미디 쇼 희희낙락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올인'하고 있어요. 이걸 살려야 저는 물론 후배들이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공중파 3사에 코미디 프로가 3개 밖에 없잖아요. 탤런트와 개그맨 수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스무 개가 넘어요. 그러니까 희희낙락 하나 터지면 다른 공중파에도 비공개 코미디가 생길 테고 그러다보면 코미디언 위주의 시트콤이 하나 생기던지 하는 식으로 넓혀가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코미디 페스티벌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아도 재작년에 컬투형들이 3사 코미디언의 밤 행사를 갖자고 제안했었어요. 일단 뭉치지 못했어요. 그 시상식을 하면 각 방송사 시상식들이 무색해진다는 이유로 윗선에서 반대를 했죠. 하지만 의지가 있으면 언젠가는 우리들의 축제가 만들어질 거예요. 3사 희극인실이 뭉쳐서 상도 주고 한바탕 축제를 하는 거죠. 출연정지 가처분상, 진상 등등 상이름까지 만들어 놨었어요. 흐흐.



학창시절 때 배우 유지태씨와 같이 살았다죠?

하하하. 대학동기예요. 1년 동안 같이 살았죠. 지태가 햄릿오디션 볼 때 "죽느냐 사느냐"하면 여선배들이 "워~"하고, 제가 "죽느냐 사느냐"하면 웃었어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실기시험을 보러 갔는데 저는 기지바지에 가죽잠바를 입고 통키타를 치려고 준비했었어요. 그런데 바로 앞에 키가 엄청나게 큰 친구가 타이즈 입고 서있는 거예요. 현대 무용을 하더라고요. 그에 비해 제 특기는 너무 허접스럽게 느껴졌어요. 하하. 학교 오리엔테이션 갈 때 그 친구가 있기에 제가 먼저 말 걸면서 친해졌어요. 제가 앉은키가 큰데요. 입학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태랑 버스 뒷좌석에 탄 적이 있는데, 동기 여학생들이 뒷좌석에 킹카 두 명이 있다고 수근거렸어요. 그런데 휴게소에 내리자마자 저한테 짜증을 막 내더라고요. 하하.


자취방이 굉장히 지저분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흐흐흐. 일단 안에 소주병 20개 밖에 30개, 팔아서 라면 한 박스 살 정도로 완전히 술방이었어요. 지태랑만 산 게 아니고 배우 여민구, 김세환 이렇게 네 명이 살았거든요. 제가 유일하게 출연한 영화가 <양아치어조> <뚝방전설> 감독인 범구형의 단편영화인데요. 그 형 영화에 지태, 민구, 세환이가 다 출연해요. 제가 신인 때는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서로 바빠져서 어쩌다 통화만 합니다.(웃음)


연기자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뭔가요.

제가 원래 학창시절 수학여행 가서 사회를 도맡아 하는 등 까부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충남고 개교 30주년 행사에 연극을 올리자고 학교에 공고가 붙었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네가 연극부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셔서 준비한 게 '봉숭아학당'이었어요. 그 공연이 대박 났죠. 미팅주선이 사방에서 들어오니까 당시 제가 '야 이거 연예인 해야겠구나'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하하. 내가 만든 작품에 사람들이 웃고 엄청난 호응을 보내주니까 뭔가 이쪽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게다가 선생님이 칭찬까지 해주시니까 어린 마음에 “이거다!” 싶었죠.


본인이 출연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던 작품이 있는지.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요. 진지한 가운데에도 슬랩스틱 코미디는 물론 여러 가지 코믹요소가 총망라된 작품인 것 같아요. 레퍼토리가 다 나오거든요. 칼 빼면서 옆에 베이는 거라든지 삼지창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 등. 특히 좋았던 점은 후반부 장면 하나 살리려고 인물의 캐릭터를 구성지게 잘 짰다는 거예요. 철저하게 계산해서 복선을 깔아놓았죠. 마지막에 파티도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 내가 언젠가 코미디 영화를 찍게 되어도 마지막 크레딧 올라갈 때 우리끼리 술 마시고 파티하는 걸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향하는 게 완전히 코믹적인 것보다는 진지함 속에 내포된 유머인가봐요.

저는 최대한 진지함 속에서 틀을 깨는 게 웃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자토이치>가 저에게 맞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영화에서 갱으로 나오면 가벼워 보이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신인 때부터 코미디언들이 영화에 나오면 작품 무너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영화계에서는 코미디언을 그저 카메오로 여기지만 우리 집단에서는 그런 걸 좀 바꿔보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족 소개 좀 해주세요.

어머니가 아직 일을 하고 계세요. 아버지 편찮으시니까 나라도 같이 일을 해야지 하시며 논산에서 옷가게를 하시는데요. 몇 년 있다가는 네 형이랑 너랑 먹여 살리라고 하세요.(웃음) 사실 형이 있기 때문에 제가 연예인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의 꿈이 보통사람이었거든요. 난 평생 보통사람 할 거라고 했어요. 하하. 지금 대기업 다니고 있는데 형이 든든하게 버텨주니까 제가 어려서부터 사고도 많이 치고 어떻게 보면 가족을 좀 등한시 했던 것 같아요. 위로는 형이 있고 여동생은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예요.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전에 '개식스'라고... 그 프로그램이 다시 부활할 것 같아요. 재작년 최악의 프로에 선정되기도 했었는데. 하하. 그 모체가 MTV에서 제작한 잭에스였어요. 우리는 욕을 먹어도 좋으니 웃긴 걸 하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다 맞추다보면 우리 스스로 재미가 없거든요. 전 의미를 심는 개그, 시사 가족 풍자개그 이런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무런 의미를 부여 안 해도 일단 웃기는 걸 하고 싶어요. 정극연기는 지금 전설의 고향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제가 지금까지 드라마 네 편에 출연을 했어요. 당시 감독님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면서도 드라마랑 코미디를 병행하려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더라고요. 하하. 내년까지는 코미디에 치중할 계획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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