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을 모시는 ‘서번트 리더십’ 하철경 예총회장
예술인들을 모시는 ‘서번트 리더십’ 하철경 예총회장
  • 신일하
  • 승인 201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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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 예술인들의 처우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

【인터뷰365 신일하】임농(林農) 하철경 화백은 맑고 담백한 묵운(墨韻) 속에 기운생동(氣韻生動)함이 내재된 산수경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국화가다. 이러한 하철경 화백이 존경하는 스승도 많고 사랑하는 제자가 많다. 주변에 가까운 동료와 지인, 수시로 교분을 나누는 후배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다 지난 2월29일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 26대 회장에 당선, 전국 130만 명 예술인의 수장이 되며 두터운 인맥을 형성해 놓았다. 이처럼 풍요로운 인맥 쌓기는 하철경 화백의 남다른 집념 인생을 추구해온 결과로 이뤄졌다. 현대미술을 천착키 위해 뒤늦게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 만학의 열정을 태운 삶을 살았는가 하면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연 4회 특선 기록과 입선 6회, 무둥미술대전 등 30여 회 큰 상을 수상했고 개인전 46회 기록 보유자다. 하 화백의 이색적 인맥 포진과 함께 전남 예총, 미술협회를 통한 경청, 신뢰, 신의, 공감 등 덕목을 베푸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줘 성취가 가능했다. 깨알 같은 글씨로 꽉 채워진 그의 수첩 속에 성공한 예술인이 되는 비결도 들어 있었다.


‘산불’의 극작가 고 차범석(1924-2006) 선생이 생존하였을 때 각별한 사이였던 것 같다. 도록에서 “임농의 그림이 산과 나무와 물과 숲과 호수에서 그 소재를 얻었을지언정 그것은 모사가 아니라 화가 자신의 성품과 자연과의 동화이다”며 호평해주었는데.

선생님이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으로 생존하셨을 때 자주 만나 뵈었다. 개인전이 있으면 꼭 와주시고 총애를 해주다시피 했다. 동향(호남) 출신에다 선생님은 문학, 연극 나는 그림을 하는 같은 예술인이다 보니 서로 친해졌고 멘토 역할도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이 표현해준 ‘자연과의 동화’란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말한 거로 (내가) 자연을 보고 그릴 때 산만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산과 나와 교감을 통해 심상에 나타나는 걸 끌어내 재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꽃바람 송광사
공평 아트센터 김상철관장은 “남종 산수의 전통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그의 작업에는 여전히 그 기운들이 오롯하다. 하 화백의 산수 세계는 서정적인 시취(詩趣)가 가득하다”며 작품을 비평해주었다. 이러한 작품세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승들을 모시었는데 어떤 분들이 있나
남농 허건, 도촌 신영복, 일초 이철주, 전정 박항환 등의 스승이 있다. 모두 대가들이시고 사사를 받으며 그분들한테 배운 걸 잊지 못한다. 남농 허건 선생님을 만나 문하생이 된 건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남농의 도제식 학습은 훈련과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했지만 문하생 입문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였나?
스승의 화업을 계승하기 위해 정말 혹독하게 지도하셨다. 일주일에 한 장 그리기도 힘든 100호 짜리 그림을 하루 한 장씩 주문하셨다. 먹그림만 그리는 거였지만 완성해 가져가면 선생님이 먹으로 까맣게 그슬리고 다시 그려 오라고 했다. 당시 스파르타 교육을 받으며 인내한 결과 아무리 큰 대작도 겁내지 않은 채 요즘도 단숨에 끝낸다. 제자 20여명이 있었지만 모두 도망가고 혼자 버티었는데 6개월이 되는 날 선생님이 화실에 기거를 하면서 공부하라고 허락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방과 화장실 등을 청소하고 정원의 화단에 60 바퀴 물주기도 내 하루의 일과였다. 선생님이 수석을 좋아하셔서 1천200 점이 넘었는데 매일 관리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화실에서 함께 밤 12시-1시까지 있다 보니 선생님과 아침, 저녁 식사를 겸상하였는데 사모님도 겸상을 못하는 걸 유일하게 내가 그 행운을 누리었다.

남농의 문하생이 될 때 소개해준 분은 누구이고 어릴 적에 그림을 하게 된 동기는.
집안의 친척이고 국전심사위원 출신 서예 대가였던 장전 고 하남호 선배 소개로 들어갔다. 진도의 초등학생일 때 바느질 하는 어머니 곁에서 그린 만화를 보고 삼촌 등이 칭찬해 줘 고무되기도 하고 각종 상을 휩쓸어 그림을 좋아했고 중학을 졸업한 후 원광고등학교에 특기(미술)장학생으로 스카우트되어 갔다. 하지만 서울대 2번, 홍대 2번 서양학과 지원했다가 낙방하는 바람에 입대를 해버렸다. 제대 후 우연히 하남호 형님 댁을 찾았다가 서예보다 그림을 계속 하라고 하시며 남농 선생님을 소개해 주어 서양화가 아닌 한국화로 인생 전환이 이뤄진 거다.


화실에서 산수화 작업 중인 임농 하철경 화백


31살의 만학을 위해 목포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원에서 일초 이철주 교수를 만나면서 하 화백은 여러 고비를 넘기고 탄탄대로의 인생을 걷게 되었다.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았으나 목포대학 1학년 일 때는 B급 장학생이라 좀 힘들었다. 하지만 2학년에 올라가며 열심히 했더니 전액 장학생이 되어 4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일초 이철주 교수의 지도가 엄청나 눈물이 뚝뚝 나올 정도로 호된 학습을 받았다. 선생님은 인물화의 대가였는데 나를 보고 산수화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승들의 화풍을 계승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게 아니니 모방하지 말고 너의 독자성을 길러야한다’고 여러 번 충고해주었다. 다음날 화첩과 화판을 들고 야외 나가 사색하면서 진경산수의 화폭 담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때까지 국전 6회 입선하였는데 이철주 교수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남농 못지않게 엄해서 1주일에 100호 짜리 그림을 2-3점 완성해 감수 받아야 했다. 보광사, 송광사 등 유명 사찰을 순회하며 사찰 테마 작품을 준비해서 국전에 출품했더니 88년, 89년, 90년 그리고 92년 연 4회 특선을 하여 화단에선 ‘기와집 작가’로 정평이 나기도 했다. 이어 도촌 신영복 , 전정 박항환 스승을 모시고 화업을 닦으며 화풍을 이어받았지만 이제는 독자적인 일탈한 상태에서 하철경 스타일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예술가는 독자적 보이스 컬러를 갖지 않으면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어머니의 땅

목포대학 등 교수 생활을 하면서 제자도 많이 배출해오다 1996년 전남 예총 회장 선거에 출마, 44살의 최연소 예총회장에 당선해 화가, 교수, 회장 등 1인3역으로 참여예술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16년의 최장수 예총 지역회장을 하며 쌓은 공로도 많은데.
회장에 선출되자마자 그해 4월 공약대로 전남예총 기금마련 개인전을 가졌다. 회원자녀들의 장학금과 예술인회 예총상을 주기위한 행사를 주최해 팔린 그림의 액수가 7천만원였지만 경비를 제외한 5천만원을 기금으로 내놓았다. 그 후 광주, 전남 작가들 협찬을 받아 합동기획전을 열며 반응이 좋아 해마다 행사를 열어 기금 3억원을 마련해놓았다. 16년 동안 어려운 회원들 장학금으로 1억8천원을 지불하였고 현재 1억2천만원이 적립되어 있는데 이는 지역 예총에서 전무후무한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일이다. 이로 인해 중앙 예총 수석부회장을 4년간 했고 금년 2월29일 한국예총 사상 처음 경선 없이 만장일치 추대로 회장에 당선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천운사의 꽃비
전남 예총 회장의 직책을 가지고 2004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겸직하며 하철경 회장의 열정이 담긴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한 것 같다. 신뢰, 신의, 공감, 배려를 바탕으로 2만여 미술협회 회원을 거느리느라 남다른 열정을 불태워야 했을 것 같은데.
미협 회원이 2만4천이었고 지금은 2만9천으로 증가되었다. 회원들의 일이라면 전국의 현장을 찾아 뛰어다니며 거들다 보니 회원 동정을 거의 파악하는 수준이다. 전남예총 회장을 하며 회원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다보니 습관이 되어 미협 이사장이 된 후에도 이어졌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미술협회전, 개인전 등 행사를 통해 축사 등을 해주면서 만나 인사하다보니 회원들과 소통이 쉬워졌다. 행사 스케줄은 사무국에서 챙겨주는 적도 있지만 회원 행사의 축사를 부탁해 올 때면 모든 걸 직접 처리한다. 수 십 년 동안 개인전 등 각종 행사의 축사를 남에게 맡기는 게 아니고 직접 쓰고 해주어 회원들이 고마워하는 것 같다.
미협 이사장이 된 후에도 기금마련에 매진했더니 10억8천만원의 기금을 조성해 놓고 그만두었다. 이는 미술대전에 쓰라고 조성한 기금으로 유례없었던 일이다. 국제대회 때 없어졌던 대통령상도 부활해 놓았다. 그런데 미협 이사장에 뽑힌 후 체크해 보니 협회 장학사업으로 1년에 겨우 240만원 주었고 그것도 (회원)회비를 걷어 지불한 거였다. 기금마련을 위한 개인전 등을 열어 선거공약 대로 2년 간 3천만원씩 두 번 그리고 임기 마지막 해는 1천200만원 등 모두 7천200만원을 회원 자녀들 장학금으로 해주고 그만 두었다. 선거 공약한 사항을 철저히 지키며 일하다 보니 회원들의 신임을 얻었고 신뢰가 누적되어 올해 예총 회장까지 선거전도 없이 당선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거미줄처럼 짜진 스케줄을 어떻게 알고 움직일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알람 역을 누가해주는 것은 아닌지 물었더니 하철경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을 실천할까 알 수 없어 비결이 있는지 재차 물으니 옷걸이에 걸어놓았던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왔다. 지난 1월1일부터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수첩에 까맣게 적혀있었다. 하루 일정을 일일이 메모해놓고 챙긴다는 것이다. 인터뷰365의 미팅도 기록되어 있는 수첩을 한 장씩 넘겨주어 촬영해도 될지 물었다. 쾌히 기자의 스마트 폰 촬영에 응해 주었다. 수첩은 하철경 화백 삶의 동맥과 같은 핏줄이고 자서전이었다.)

예총 회장실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거미줄 같은 스케줄이 적혀 있는 수첩을 보여주는 하 회장
한국예총이 ‘대학로 예총’에서 ‘목동 예총’의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51년의 역사와 회원 130만 명의 최대 규모 예술단체인데 회장 권한으로 이끌러나갈 구상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만든 예술, 문화 21세기를 이끈다’ 등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지난해 말 준공 한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 ‘영재아카데미’를 개설하고 ‘다문화 예술 아카데미’ ‘명인 예술, 문화 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 예술인센터 건평이 1만2천여평인데 한국 문화예술활동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 정부의 연간 예산지원을 보면 현행 창작 쪽 지원은 0.3% 밖에 안 되는 실정이라 문화예술진흥법 등을 개정,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 사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인의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 하겠다. 비단옷 입고 밤길 걸어가는 모습이라 안타깝다. 예술인들의 처우가 세계수준과 비교하면 너무 낮아 소수의 예술인을 제외하고 어려운 생활이다. 예술의 메카인 목동 시대에 걸 맞는 수익창출의 사업을 펼쳐 130만 회원들 삶의 질 향상이 예총 목표이다. 그리고 예술에 경영 기법을 도입하여 변화와 경쟁력을 제고하는 예총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인터뷰이 나우] 한국화가인 임농 하철경 한국예총회장의 개인전이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로도 재직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 그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회갑을 맞은 아버지의 깊게 패인 주름살을 바라보며 속이 상해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 자신이 아버지 나이가 되어 아버지를 생각하며 전시회를 마련하는 소회를 팸플릿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단체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그동안 개인전만 47회를 기록한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전통회화인 수묵화의 기법을 지키면서 다양한 표현을 이끌어내는 대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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