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빈 메타와 ‘고춧가루 친구’인 성악가 조수미
주빈 메타와 ‘고춧가루 친구’인 성악가 조수미
  • 김선
  • 승인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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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여자로서 행복 누리고 싶어” / 김선




[인터뷰365 김선] 성악가 조수미는 밝고 쾌활하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까탈스럽고 도도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의 모습을 기대했던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그의 경쾌한 하이톤의 목소리와 특유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면 기분까지 좋아지니 말이다.

조수미는 오는 9월 한국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빈 메타와 최초로 함께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그 첫 무대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몇 년 간의 연주 일정이 꽉 차여 있을 정도로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되는 그는 365일에 300일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다. 1주일간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되는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에 참여 의지를 밝혀 왔을 만큼 고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나타냈다.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여자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싶다는 그지만, 지금 음악을 해서 행복하고, 음악을 하지 않는 1분 1초가 아깝다는 조수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들어봤다.



이번 공연에 음악팬들의 관심이 특별하다. 본인도 기대감이 클 것 같다.

빈 필하모닉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격스럽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공연이 될 것 같다. 160여년의 전통을 가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명 오케스트라다. 이들을 직접 만나고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굉장한 일이다.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와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니 벌써 가슴이 뛴다. 인도계인 주빈 메타와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많은 추억이 있다. 우리는 동양계로서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세계무대에 더 많이 소개하고 아시아의 높은 음악 수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항상 함께 고민한다. 이번 내한도 아시안의 파워, 한국의 파워를 보여줄 수 있어서 더욱 설렌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842년 창단된 후 약 160년 동안 정통성과 보수성을 지켜온 오케스트라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빈 필하모닉은 악단 자체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해 1933년 이후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전통이 있다. 대신 단원들이 민주적인 결정으로 지휘자를 초청한다. 때문에 매년 지휘봉을 잡는 음악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는데, 올해 빈 필하모닉의 초청 지휘자는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가 확정됐다. 주빈 메타는 2001년 빈 필의 '명예 지휘자'로 선정돼 빈 필하모닉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연 결정에 따른 과정과 뒷얘기가 궁금하다.

내 연주 스케줄은 이미 짜여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이번 한국 공연 제안에 시간을 비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연에 내가 빠지면 안 될 것 같더라. 빈 필하모닉과 주빈 메타가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께 해야 되지 않겠는가. 특히 빈 필하모닉과 그동안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고, 함께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었던 터라 이번에는 꼭 함께 무대에 서고 싶었다.

9월 26일 프랑스 파리 공연이 있고 28일 한국에 입국해 29일 공연을 한 후 다음날 미국으로 떠나 10월 3일 뉴욕 공연을 하게 된다.

1주일간 3개의 대륙을 여행하는 셈인데.

일주일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정말 피곤한 일정이다. 보통 1년에 300일 이상을 연주 투어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많은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곤 하지만, 정작 관광을 할 시간은 없다. 타이트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선 입국하자마자 공연 전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 오히려 공연장이나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관광지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진을 찍는 그런 여유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휴식의 틈이 없는 연주 투어가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할 때는 없는가?

음악가에겐 컨디션이 중요하다. 다른 대륙을 이동하다보면 시차로 고생을 많이 한다. 또한 연주 여행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불상사나 믿지 못할 일들이 주변에서 발생하곤 한다. 얼마 전 추락한 비행기사고(6월 1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가던 중 대서양 상공에서 추락된 사고)를 보고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그 비행기가 2달 전 내가 탔던 동일한 비행기더라. 매니저와 애완견 신디와 함께 이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서 리우 데 자네이루까지 오고 갔었다. 사고 소식을 들으니 너무 소름이 끼쳤다. 7월에 또 이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걱정이 앞선다. 기도 좀 해달라.


연주 여행 속에 살고 있어서 그런 공포감은 갖는 것에 이해가 간다.

몇 년 전 로마행 인도네시아 가루다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탄 후 3일 후에 그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결혼해 아이들과 조용히 집에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하하.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하는 게 내 삶이기에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음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현실에 불만이나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변화를 생각하기도 한다. 혹시 좌절감에 빠진 일은 없는가?

모든 예술가들은 예술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가끔 전환의 시기가 나타나는 것 같다. 전환의 시기는 기쁨이 될 수도, 좌절의 순간이 될 수 있다. 23년간 음악가로서 경력을 쌓는 동안 걸어온 내 길을 돌아보면 좌절보다는 기뻤던 순간이, 힘들었던 순간보다 내 스스로 자랑스럽고 최선을 다했던 순간이 더 많았다. 나에게도 물론 힘든 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거린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고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소를 잃지 않으려 살아왔다. 음악인에게 가장 중요한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름다움을 내 목소리에 담아내려고 무단히 애썼다.

독신생활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한층 외롭지 않는가?

힘들고 외로울 때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호텔 방에 있다가 추적추적 비라도 오는 날엔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가족은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존재다.


너무 바쁘게 살아 한번쯤은 푹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겠다.

신이 나에게 준 사명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과 떨어져 1분 1초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깝다. 쉬고 싶다가도 정신이 바짝 나서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죽은 후에는 딴 세상에서 쉴 수 있을 텐데 그때 충분히 쉬면되지 않나. 기회가 있을 때, 내가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많이 베풀고 싶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을 공부하고 공연이나 음반활동도 더 많이 하고 싶은 욕심뿐이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인들에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면서 바쁘게 살고 싶다.




언제나 한국 공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공연은 바로 한국 공연이다. 처음 시도하는 곡이나 가장 힘든 노래는 꼭 한국에서 먼저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한국인들에게 잘 안 알려진 곡도 소개시켜 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지난 5월 한국에서 세계 3대 바리톤으로 알려진 러시아 음악가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와 함께 한 공연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고난도의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조리의 노래>의 경우 14년 전 런던 심포니와 함께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 했을 때 굉장히 고생을 해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후회를 했다. 그 이후에는 부르지 않다가 다시 도전하게 됐는데 성공적으로 끝나 다행이다. 하하하.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와 함께한 듀엣 공연 당시 조수미는 한국 초연으로 다니엘 오베르의 오페라 <검은 망토> 중 <아름다운 이네스>를 들려줬으며, 14년 만에 펠리시앵 다비드의 오페라 <브라질의 질주> 중 <미조리의 노래>를 다시 불러 화제가 됐다. 이곡은 유럽에서 조차 악보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좀처럼 접하기 힘든 곡으로, 워낙 어려워 웬만한 소프라노 성악가들도 잘 부르지 않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빈 필하모닉과 공연은 어떤 레파토리로 구성됐는가.

내가 부르고 싶어 했던 곡보다는 주빈 메타의 추천곡으로 구성됐다. 주빈은 내 화려한 기교나 소프라노의 영역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프랑스 풍의 왈츠 곡이나 빈 특유의 곡 등을 부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앙코르 곡으로 <아베마리아>와 월드컵 송으로 불렀던 <챔피언>등을 들려드릴 예정이다.


빈 필하모닉은 그동안 접했던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어떤 느낌인가.

비엔나에서 마에스트로 카라얀과 일하면서 빈 필하모닉을 사랑하게 됐다. 오스트리아인들의 특유의 낭만이 연주를 하면서 품어져 나온다. 빈 필하모닉은 마치 마술에 걸린 음악을 풀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나 할까. 오스트리아인들은 소박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한 민족이다. 때문에 빈 필하모닉은 인간적이면서도 예술가의 기질이 강한 음악가들로 구성돼 있는 듯하다.

사실 빈 필하모닉과 함께 노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연습에 들어가기 전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치(기본음)를 맞추는데 각 오케스트라마다 그 음의 높낮이가 틀리다. 그런데 빈 필하모닉은 그 피치가 가장 높다. 나 같이 평소에 높은 음을 내는 성악가에게(조수미는 고음 F를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화려한 기교의 콜로라투라다) 피치까지 높아져 버리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도 해왔고, 내 스스로 무대체질이라고 생각하지만 빈 필하모닉과 함께 할 때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만큼 떨린다. 굉장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삶의 기쁨이다.


지휘자 주빈 메타와 절친한 친구 같이 다정한 관계로 보인다.

아시안계인 주빈 메타와 나는 항상 고춧가루를 갖고 다니며 뿌려먹는 친구다. 하하하. 그는 언제나 인도 레스토랑에서 인도 음식만 먹자고 하는 분이다. 인도 음식을 잘 소화 못하는 음악가들에겐 곤욕일 수밖에 없지만 주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그가 인도 음식을 먹으며 힘을 내는 것처럼, 나도 세계 어디에나 한국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니 말이다.

주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도를 사랑하는 세계적인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나 이탈리아에서 함께 공연도 하고 음반 녹음도 함께 한 적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내 음악가적 커리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분이 됐다. 이번 공연에서 그와의 오랜 우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주빈 메타는 어떤 사람인가.

주빈은 음악가가 아닌 인간적인 면에서도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분을 만나면 항상 인도 사랑, 인도 국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연주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인도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다급하게 주빈에게 오더니 자식이 부당한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며 대신 전화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주빈은 그날 모든 공연일정을 취소하고 몇 시간 동안 비엔나 경찰과 씨름하면서 그 사건을 해결했다. 그 자리가 귀빈들이 모여 있어 좀처럼 떠나기 힘든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을 사랑하는 그의 행동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계에서 함께 활동하는 아시안계로서 공감대도 많이 느낄 것 같다.

물론이다. 주빈과 아시아에 대한 정치나 문화 등을 이야기를 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만큼 통하는 게 많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일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아시아인으로서 또한 음악적 성향도 주빈과 정말 비슷하다. 그는 지휘자로서 무게를 잡는 것보다 항상 청중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한다. 모든 청중의 귀를 들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다고 할까. 내가 추구하는 음악 방향과도 일치하다. 이런저런 점에서 너무 꿍짝이 잘 맞는 지휘자다.


1962년 서울에서 2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난 조수미는 성악가가 꿈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조수미를 임신했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 음반이나 유명 오페라 성악가들의 노래만 들었다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조수미의 성악가로서의 길은 정해졌던 셈이다.

피아노와 성악에 재능이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의 어머니는 조수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조수미는 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음악 훈련을 받게 된다. 조수미 8살때 방에 틀어 박혀 8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에 매달렸다. 왜 이렇게 연습을 해야 되는지 몰랐던 어린 그에겐 늘 불만이었고, 음악은 같이 하고 싶지 않은 동반자일 정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만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사는 성악가가 되길 원했던 그의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조수미의 노력은 그의 재능과 맞물려 빛을 발했고 선화예고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최고 성적으로 입학했다.
조수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애틋함을 전한다. 그는 "어머니의 교육 덕분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음악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운인지 모른다"며 "항상 감사하신 분"이란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는 2003년 문화관광부로 부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 상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장한 어머니에게 주는 상이다.




1982년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낙제 과목이 생길정도로 첫사랑과 열렬한 사랑을 하기도 했지만 1년 후 이탈리아로 유학한 후 그녀에게는 오르지 음악만이 삶의 전부가 됐다.

1983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한 그는 불과 2년 만에 나폴리에서 개최된 존타 국제 콩쿠르를 석권했고, 시칠리 엔나 국제 콩쿠르, 스페인 바로셀로나 비냐스 국제 콩쿠르 등 유명 콩쿠르에서 주목받았다.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조수미는 세계적인 성악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1988년 자신의 오페라 인생을 세계 정상의 무대로 이끌어 올리는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만남이다. 오디션에 초청돼 게오르그 솔티경이 지휘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베르디 오페라 <가면 무도회>의 오스카역으로 출연하게 된 후 성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후 조수미는 라 스칼라,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 하우스에 올라 벨 칸토의 진수를 선보이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조수미의 대표적인 작품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과 베르디의 오페라<리골레토>의 <질다>. 특히 조수미는 유럽과 미국 언론들에게 이탈리아 정통 벨칸토 테크닉으로 <밤의 여왕>을 완벽하게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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