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의 맥을 이어가는 도예가 김용윤
분청사기의 맥을 이어가는 도예가 김용윤
  • 김두호
  • 승인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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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도 운명이 있고 팔자가 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김용윤(59) 도예가는 경기도 와부읍 월문리 산골에서 31년째 가마에 불을 지피며 창작활동을 해온 분청도예의 대표적인 도공이며 작가다. 분청사기는 고려자기 시대가 조선 백자시대로 넘어가는 중간과정에서 유래된 우리의 전통 도자기이다. 청자와 백자가 귀족티의 우아함을 간직했다면 분청은 소박하면서 다소 투박한 서민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도예가도 분청을 닮아 있었다. 그를 두고 그의 지인 한사람이 ‘밖으로 조금도 포장하지 않고 안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바위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표정도 말도 꾸미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다. 손으로 조형한 흙덩이를 섭씨 1250도의 장작불에 구워 작품을 만들어 온 그는 “흙을 빚으며 세월을 보낸다. 흙과 손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흙이 나이고 내가 흙이다”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삶을 정의했다.


그는 전문과정을 제대로 밟은 정통 도예가다. 서울공업고 시절부터 요업을 공부해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했고 국전을 통해 작가로 출발해 지난 30여년간 개인전 20회를 포함해 국내외 초대전 그룹전까지 60여회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과 러시아 페름박물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미술관, LA이민역사기념관 등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한층 정력적인 이력은 서울대미대에서 5년, 한남대에서 9년반, 서울산업대에서 11년간 강의를 쉬지 않고 해온 점이다.


그는 과거보다 횟수를 줄여 근래에는 1년에 두 차례 6개의 가마에 불을 피운다. 가마에 불이 들어가는 날은 ‘도예가 김용윤 선생 장작 가마축제’라는 행사가 열린다. 그를 알고 있는 문화예술계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가마 앞에 무대를 만들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아침부터 타기 시작하는 불은 하오 5시면 흙이 녹을 정도의 불가마로 변하고 그 시간에 열정적인 노래 축제도 절정에 오른다. 김용윤 도예가의 새로운 작품은 그렇게 젊은이들의 흥겨운 축제가 끝나고 자정쯤에 불길이 멎은 뒤 가마 밖으로 나와 윤기나는 각종 형상의 분청도예 작품으로 세상과 만난다.


부인 신금옥 여사(55)와 두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집도 가마와 한울타리에 있다. 분청사기로 벽장식을 한 2층 주택에는 전시실과 작업실, 연구소도 모여 있다. “아까 전화한, 인터뷰365에서 오셨는가요?”라는 첫 인사말을 하고 더 이상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그는 참으로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사방이 청산입니다. 언제부터 이곳에 사셨습니까?

1978년에 왔으니 31년 됐습니다.


전에는 어디에 사셨습니까?

원래 우리 집이 서울 흑석동에 있었지요. 태어나기는 6.25 전쟁 나던 해 11월 피난 간 전북 여산의 어머니 외가에서였지요. 그곳이 고향이신 가람 이병기 선생(시조시인)이 어머니의 외삼촌입니다.


도예를 하시는 분 중에는 가업을 계승한 분이 많은데 집안 어른과는 관계가 없었군요.

아버님은 은행에 다니셨어요. 내가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아 아버님이 공업계열에 꿈을 갖도록 권하셨고 마침 우리 동네에 서울공업고가 있어서 지망을 했지요. 요업과를 선택해 도자기와 연을 맺은 것이 16살 때인 고1 때지요. 홍익대 도예과를 졸업한 것도 정해 둔 길이었어요.


한눈을 팔지 않고 살아오셨군요.

대학 졸업 후 1년간 선배가 운영하는 도자기 공장 일을 한 것 말고는 줄곧 내가 만든 가마 곁에서 살았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가마들도 무너지면 흙을 쌓아 다시 만들면서 모든 것을 내손으로 직접 했어요.

도예가 예술이지만 노동예술입니다. 손에 흙을 묻혀 살고 장작 패고 불 지피고 무거운 도자기 운반하고... 총각으로 들어와 4년을 보내다가 도예공부를 하러오는 처녀(지금의 부인 신금옥 여사)를 만나 결혼도 하고. 처가댁은 서대문인데 어른들이 딸을 산골로 시집 안보내려고 반대도 했어요.


도자기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굳이 분청도예에 집착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가장 자연에 가까운 도예가 분청입니다. 영국에서 온 분이 그러더군요. 본차이나 등 다른 비싼 자기들이 있는 방에 분청 하나를 갖다 놓았더니 다른 것들의 빛깔이 흐려지고 분청밖에 안보이더라고. 분청은 세련미와 기교보다 소박하고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도자기입니다. 표면도 투박하고 거칠지만 깊은 데서 울어나는 멋은 곱고 반짝이는 백자 청자보다 정감이 깊어요.


작품세계가 단순한 전통의 모방차원을 넘어서 우리 것에 대한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조형적 작업과 함께 생활용기로 활용이 가능한 작업을 동시에 보여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자기 공예는 생활용기에서 출발하는 전통적인 실용성을 외면할 수 없으며 여기에 순수 조형예술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조형미에만 테마를 두면 실용성을 외면할 수 있지만 오르지 작품표현에 집착한 것이 아니면 쓰임이 가능한 창작세계가 소중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창작을 해도 전통의 본줄기를 훼손하는 것은 조심해야합니다.



가마에는 언제 작품과 불을 넣습니까?

과거 IMF 전에는 수시로 불을 지폈지만 지금은 1년에 두 차례, 봄 가을에 가마를 달굽니다. 최근에는 지난 4월말에 불을 넣었어요. 축제도 함께 마련했지요.


축제라면?

나를 알고 있는 주변의 젊은이나 제자들이 한 100명쯤 몰려와 음악공연도 하고 돼지고기 숯불구이에 술잔을 나누며 즐거운 만남의 자리를 만듭니다. 이경오 한승기 등 가수들도 와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정까지 불을 지피는데 행사는 가마가 달아오른 하오 5시 무렵에 시작됩니다.


한 번 가마를 지피면 몇 작품이 나옵니까?

6개의 요(가마) 중 2개는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소금만을 사용합니다. 한차례 보통 4백여 점을 구워내죠.


가열 온도가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금은 어떤 작용을 합니까?

섭씨 1250도의 가마에 들어간 소금은 화학작용으로 분해되어 염소가 날아가고 나트륨만 기물에 남아 자연스레 유약이 형성됩니다. 소금가마의 표면처리는 내 나름의 창작기법입니다. 보통 분청사기는 대부분 투명유약을 발라 굽기 때문에 속살까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옛 도공들은 유약을 자연에서 채취해 청자 같은 고운 빛을 냈다지요.

고사리재나 떡갈나무재 등으로 유약을 만들어 빛깔을 냈다고도 합니다. 전통적인 재현기법이 제대로 전해오지도 않지만 지금은 유약처리에서 좋은 재료가 많아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특히 분청사기는 표면처리나 표현기법이 워낙 다양해요.


실패한 작품도 많이 나온다는데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유약처리나 가마의 온도 유지 등 다양한 기술들이 활용되겠군요.

사용하는 유약이 같아도 불을 잘못 관리하면 의도한 빛깔과 모양의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무의 질과 수분 함유정도까지 작품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약은 불에 녹는 광물질입니다.


같은 모양을 같은 조건에서 구워도 나올 때는 느낌이 서로 다르고 버려야하는 작품도 많다지요?

장작가마는 작품의 절반을 건지기가 힘들어요. 나는 조금 모자란 놈이 애착이 가요. 태어난 도자기도 인간처럼 운명이 있고 팔자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임자를 만나면 오래오래 호강을 하는 녀석도 있고 팔자가 기구하면 임자를 만나도 버림을 받거나 깨어져 일찍 명을 다하는 녀석도 있는 거고.


불을 넣기 전 지금도 돼지머리 상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냅니까?

지낼 때도 있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때도 있어요. 요즘은 축제가 고사를 대신해줍니다.

도예 작업을 해오면서 어떤 때가 힘들고 반대로 행복을 느끼세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도예 평론가 한분이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해서 직접 가져간 적이 있어요. 그는 작품을 보고 어떻게 똑같이 생겼느냐며 웃더군요.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작가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한 계기가 됐지요. 물레를 돌리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들이 흩어지고 오로지 흙을 다듬는 두 손에 정신이 저절로 몰입됩니다. 거기에서 도(道)와 예(藝)를 찾고 꿈이 피고 따뜻한 흙의 정감도 느껴집니다.

돌아가는 물레와 더불어 세월과 내 삶도 함께 돌아가는 것이지요. 생일이나 혼사, 각종 기념일을 맞이한 분들에게 내손으로 빚은 작품을 선물로 많이 보냅니다. 내 작품에 반해 당당하게 구입하는 사람을 만나도 보람이 있지만 대가 없이 선물을 보내줄 때도 즐거움을 느낍니다.


곁에 둔 제자나 후계자는 없습니까?

두 딸 가운데 둘째 딸(김민영 / 25)이 서울산업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내 일을 돕고 있어요. 스스로 선택한 일이어서 든든하게 느껴져요. 이곳이 시골이지만 우리 딸들이 다닌 동네 월문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20명인데 한 학년 20명이 입학하면 6학년까지 그대로 올라간다고 해요. 자식들 교육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좋은 도자기 작품을 감별하고 고르는 방법이 있는지요?

도자기는 고르는 사람의 느낌과 시각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물건입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도 자꾸 보면 싫증이 날 수도 있지만 첫 눈에 반한 것이 제일 좋은 도자기로 봐야지요. 나는 그림이나 무늬에 신경을 쓰지만 오히려 그런 것을 절제하는 쪽을 좋아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요란한 무늬보다 없는 것이 더 맛이 깊어요.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어느 때였습니까? 그리고 꿈이 있으시다면?

1999년 4월 성곡미술관이 ‘한국미술작가상’을 받은 이듬해 기념 기획 초대전을 마련해주었어요. 그곳 미술관에서 개최된 도예전으로는 처음이었다는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모았던 점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그동안 분청만 해왔지만 기회가 오면 백자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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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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