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고려나전’ 부활 꿈꾸는 명장 김규장
‘명품 고려나전’ 부활 꿈꾸는 명장 김규장
  • 김우성
  • 승인 200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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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색상에 서양화가들도 감탄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 있어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은 또 하나의 외교전으로 일컬어진다. 우리의 국력과 문화를 적절히 반영해야 하면서도 상대국 상황까지 배려해야 하니 의전관계자들로서는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게 아니다. 그 상대가 ‘50년 넘게 총을 겨눈 같은 민족 국가’ 정상이었다면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는 ‘나전칠기 12장생도 병풍’을 북측에 건넸다. 그 이전 APEC 정상회담에서 해운대 누리마루를 장식한 나전칠기 벽화가 20개국 정상들로부터 이미 검증받았던 터라 큰 고민 없이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두 작품 모두 김규장(金奎章 54) 명장의 손에서 태어났다.

 

김 명장의 나전칠기 작품은 80년대부터 이미 일본 황실에 전해졌고, 최근에는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 부인에게도 선물로 전달됐다. 주 고객 중에는 아랍에미리트 왕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지난해 12장생도 장롱의 경우 내놓자마자 1억원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김 명장 작품의 매력은 다채로운 색감에 있다. 칠기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조개껍데기뿐 아니라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하고 응용한다. 또한 그림이 칸칸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그림이 서랍의 경계선을 넘지 않게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그는 장롱 전체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출해낸다.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려운 기술로 통한다.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김 명장의 전시장부터 찾았다. 나전칠기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필자가 봐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각각의 작품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재료 하나하나가 자연 그대로에서 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안내를 하던 김 명장이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올 때 봤으면 더욱 놀랐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김 명장은 천연 조가비를 접시 삼아 다과를 내놓으며 고려나전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금 고려나전이 열 세점 정도 남아있는데 거의 다 외국 보물로 진열되어 있어서 이제는 함 한 개만 사려해도 1개 기업을 팔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국내 굴지 그룹 창업주가 고려나전을 한 점 구입하려다가 영영 못했다고도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려청자만 비싸고 명품인 줄 아는데 고려나전은 그 이상 가는 명품입니다. 고려나전의 명성이 덜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아서입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반짝이지 않는 작품이 인상적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처음 봤습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때 ‘정상들 사진 촬영해야 하는데 자개벽화가 번쩍거려서 괜찮겠냐’고 관계자들이 좀 걱정을 하더라고요. 무광으로 처리를 했는데 후에 어떻게 그렇게 사진이 잘 나왔냐며 다들 좋아했습니다.(웃음)

 

나전칠기라고 하면 패턴이 단조로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색감의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서양화하는 분들이 오셔서는 ‘이렇게 자유자재로 표현할 줄 몰랐다. 그림물감 수준에 가깝다. 우리가 졌다’고 감탄하고 돌아가요. 예전에는 그저 돈 많은 분들이 주 고객이었다면 지금은 나전칠기의 미술적 가치를 알아주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나전’과 ‘칠기’라고 하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나전’은 조개껍데기, ‘칠기’는 옻칠을 뜻합니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옥충’이라 부르는 비단벌레도 재료로 사용했고요. 금과 은도 사용했어요. 고려나전은 또 유명했던 게 거북이 등껍질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유럽에서는 거북이 등껍질을 최고의 공예품이라고 해요. 부딪혔을 때 쇠보다 단단하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코끼리상아도 재료로 쓸 수 있고, 모든 아름다운 색을 내는 건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전 나비날개도 써봤고 골고루 다 시도해봅니다. 그런데 나비날개나 코끼리상아 같은 경우 휘는 성질이 있어서 작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죠. 초기 작업은 많은 실패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무재질 비슷한 오래된 안경집을 가리키며) 이건 뭐죠?

철갑상어로 만든 안경집인데 그것 역시 재료가 됩니다. 골동품점을 돌며 구해온 거죠. 이제는 구하기 쉽지 않아요. 소재를 많이 구비해 놓고 있다보니 배우는 학생들이나 대학 측에서 견학하러 많이 옵니다. 이런 재료로 만드는 지조차 몰랐다고들 해요.

 

 

 

 

세계에서 한국 나전칠기가 어느 정도로 인정받고 있나요?

중국하면 도자기가 아예 국가브랜드로 되어있죠. 일본은 옻칠을 상징하고요. ‘한국은 나전칠기’ 하는데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자개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요. 그런데 이걸 활용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방을 찾는 분들도 주로 외국인들이 많아요. 중국문헌을 보더라도 고려시대부터 우리의 나전칠기가 월등했어요. 이게 왕실이나 사찰에서 사용하다가 조선시대에 일반인들이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품질이 떨어졌어요. 조선말에 가서는 완전히 나빠지고. 해방 이후 더 나빠지고...

 

일반인들이 사용하면서 품질이 떨어졌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나전칠기가 원래는 귀족공예였는데 일반인들이 갖고 싶어 하다보니 얼렁뚱땅 흉내만 낸 작품들을 양산한 거예요. 실제 나전칠기의 매력은 간데없고 값싸게 쓰고 버릴 제품들을 만들다보니 저질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예전에 자개 공장만 가면 돈을 번다고 해서 죄다 자개를 했어요. 소비자들이 잘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내놓으면 됐던 거죠. 당시 자개공장에서 일하면 국회의원 월급의 3배를 벌었대요. 한 집 건너 이 일을 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죠. 일본 관광객 1백 명이 남대문시장에 오면 자개 올려놓은 상태에서 순식간에 딱지 1백 개가 붙었대요. 예약을 하는 거예요. 그걸 3개월 안에 만들려다보니 어떤 작품이 나왔겠습니까. 기능인은 부족하고 수요는 많으니까 만들다 만 거 보내고 했답니다. 하하. 그러다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나전칠기라 하면 장식이나 떨어지는, 할머니들이 쓰는 가구 정도로 폄하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나전칠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겠습니다.

확실히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1억 짜리 장롱도 그 이전 같았으면 안 팔렸을 거예요.

 

선물로 보낸 ‘12장생도 병풍’을 원래는 가보로 남기려했다죠?

그게 한 2년 걸린 작업이예요. 만들게 된 사연이 있는데요. 코끼리 상아로 작업을 하면 예쁘다는 걸 알고 수입금지 이전인 80년대 초반에 상아 60개를 그때 돈으로 무려 1억원 가까이 주고 사놨었어요. 그런데 막상 사용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안식구하고 말다툼도 많이 했죠. 그러던 중 아이들에게 물려줄 겸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접을 수 있어야 물려주기가 용이해서 병풍으로 만들었던 게 북한에 가려고 했는지 그렇게 됐어요.(웃음) 제안을 받고도 처음엔 절대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자손들에게 유물로 남기고자 마음먹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는데요. 그런데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북한에 가면 금수산 궁전 박물관에 영구보존 될 거라고 말이죠. 그 말에 흔쾌히 보냈습니다.

 

APEC 회담 벽화 이후의 일이죠?

맞습니다. APEC때 반응이 너무 좋아서 또 제 작품이 선택됐어요. 우리의 전통공예를 북한에서도 하는데요. 제가 보낸 작품이 기법상 칠기백화점이라 할 수 있어요. 주름질, 끊음질, 채화 등 골고루 모든 기법을 조금씩 다 넣었죠. 그러면 북한에서 봤을 때 ‘아 남한에서는 칠기를 이렇게 하고 있구나’ 라고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잘 한 결정인 것 같아요.

 

 

 

 

처음 입문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저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큰형님이 이 일을 하셨어요. 그러다보니 가족들이 전부 조금씩 도왔었죠. 정식으로 형님 밑으로 들어간 건 73년도 4월인가였지만, 사실 언제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말 하는 게 정확해요. 자연스럽게 들어섰죠. 그러다가 1977년에 일찍 자립을 했습니다.

 

형님이 허락을 하시던가요?

당연히 말리셨어요. 아직 좀 더 내 밑에서 있어보지 않겠냐면서요. 그런데 제가 망할 게 있어야 망하죠. 하하.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립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아이디어도 많았어요. 왜 남이 시키면 보완이라든지 창작에 제약이 따르잖아요. 제가 새롭게 해보고 싶더라고요. 사슴털이나 초가집은 자개로 노란색을 못 내니까 금을 접목시키기도 했고, 자립을 해서 크게 히트했었어요. 어린나이에 창업을 했는데 일찍 성공을 한 셈이죠.

 

금을 접목하는 게 전통적 방식은 아니란 말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통일신라시대에도 금을 썼어요. ‘금은평탈’이라고 해서 금과 은을 썼던 예가 있어요. 박물관에 다니면서 눈 여겨 봐뒀다가 응용을 했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좋은 칠기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전세계 어디든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한 번 몰두하면 몇 시간이나 작업을 지속하나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면 작업하다가 잠들었다가 또 깨서 다시 하고 그래요. 하기 싫은 작품, 즉 생계를 위해 아쉬워서 만드는 작품은 아무래도 흥이 안 나요. 좋아서 하는 작품은 언제 잠을 잤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그런데 소비자도 그렇더라고요. 어떤 분은 제 작품을 하나를 보고 간 후로 잠을 못 이뤘다고 해요. 혹시나 누가 가져갈까봐서요. 저는 같은 작품을 여러 개 만들지 않아요. 옷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똑같은 옷 입은 사람 보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같은 디자인은 절대 다섯 개 이상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전칠기를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요.

거의 모든 것에 다 가능해요. (만년필을 꺼내며) 이것 좀 보세요. 어느 분이 사용하던 건데 제가 자개를 넣을 수 있다고 하니까 즉시 빼서 주시더라고요. 저희 공방에서 나전을 배워간 일본 사람들이 프랑스의 발주를 받아서 나전을 만년필에 응용했는데, 1백 개 한정판으로 제작해서 5천 만원 이하로는 안 판다더라고요.

 

나전칠기 관련 특허가 있다면서요?

자개를 사용하고 나면 버리게 되는 조개껍데기 파편이 많아요. 그 조각을 빻아서 타일을 만들고 문양을 붙여서 만드는 원리예요. 종이에 접착제를 놓고 가루를 붙인 후 다시 종이를 갈아내면 종이는 떨어져 나가서 순수하게 가루로만 이루어진 완성품이 나와요. 버리는 가루를 재활용하는 거죠. 조개껍질 파편이 색이 무척 예뻐요. 닦으면 알갱이마다 반짝반짝해요. 자개에서 못내는 색도 낼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건 문화상품에 필요한 거고, 우리 전통작품에 필요한 건 아닙니다.

 

30년 넘는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APEC 벽화를 작업하며 ‘이렇게 작업을 할 거고 내 이름은 이런 식으로 들어갈 거다’하고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이름을 빼라고 하더라고요. 글자가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서요. 영종도 공항 벽화도 그렇고 선례가 없다는 거예요. 며칠간 작업을 중단하고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아무리 일반공예인이 했다고 해도 내 작품에 내 이름도 못 넣고는 못하겠다고 했죠. 내가 만약 유명한 학자였더라도 이름을 못 넣게 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웠어요. 위약금을 물더라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몇 천년이 지나도 ‘누구가 만든 것이구나’ 하고 후대에서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거든요. 관계자들을 설득해서 결국 관철시켰어요. 나중에 벽화를 걸기 위해 누리마루에 갔더니 고집 센 장인양반 오셨다고 더 반기더라고요.(웃음)

 

나전칠기 공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멀리 봐야 해요. 예전에 나전 인구가 5만이었고 안방가구 제조하는 공장만 천 군데가 넘었어요. 그랬던 것이 지금은 겨우 다섯 군데 남았으려나... 함부로, 마구잡이로 만들었던 결과죠. 나전칠기는 겉으로만 좋아보여서는 안돼요. 닦을수록 광이 나는 게 나전이예요. 1백년이고 1천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진품을 만들어야 자기도 살고 후손도 삽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내후년부터 기능경기대회에서 나전이 없어져요. 세계대회에 종목이 없어서 그렇대요. 나전이나 자수와 같은 우리의 공예를 기능경기대회서 뺀다는 건 말이 안돼요. 아버지 없는 자식이 없듯,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있나요.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에도 그 대회를 해왔는데. 몇 천년에 걸쳐온 우리 공예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할 이때에 오히려 있는 것도 없앤다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지금 세계의 귀족들이 나전칠기를 주목하고 있어요. 국가브랜드로 키워야 해요. 몇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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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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