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을 꿈꾸는 배우 임창정
‘시네마 천국’을 꿈꾸는 배우 임창정
  • 유성희
  • 승인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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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내 연기의 힘”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배우 임창정이 바쁘다. 6년여 만에 가수로 돌아와 노래를 부르고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로 브라운관을 누비는가 싶더니, 한 쪽에서는 뮤지컬 <빨래> 연습에 한창이다. 본업인 연기는 물론 노래와 춤까지 선보일 생각에 신바람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영화계 불황으로 배우들이 주춤하는 이 때, 그는 노래 부르고 연기하던 전성기 때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기세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후로 일의 소중함을 느끼며 가족의 파워를 실감하는 중이라는 임창정과 마주했다.



목소리가 많이 잠긴 것 같다.

가수활동과 뮤지컬 연습으로 매일 잠겨 있다. 아침 되면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온다.(웃음)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인가.

16년 전 <에비타> <마의 태자> <동숭동 연가> 등 세 편의 뮤지컬에 출연했었다. 무명일 당시 큰 배역을 맡았었는데, 그때가 아무것도 모르고 무대에 섰다면 지금은 가수 활동하며 어느 정도 무대를 알아와서인지 이 공간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안다. 반면에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도 이제는 알게 됐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서인지 무척 흥분되고,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뮤지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지난해 뮤지컬 <빨래>를 보게 됐는데 근래 봤던 모든 작품 중 최고였다. 제작자가 잘 아는 형이었는데 언젠가 작품을 같이 하자고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의리도 의리였지만 아빠가게에서 파는 떡이라도 맛이 없으면 옆집가게에서 사먹는 게 내 신조다. 그만큼 작품 하나만 보고 선택을 했다. 도중에 작품이 엎어질 뻔한 위기에 처했을 때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때에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을 꼭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에 임하는 현재가 너무 행복하다.


노래를 했으니 그동안 뮤지컬 제의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그런데도 뮤지컬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뮤지컬을 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였다. 뮤지컬이 팀워크가 중요한 작업인데 나 혼자 바쁜 스케줄을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좋은 작품이 있다면 자주 해보려 한다.


옛날 얘기 좀 해보자. 가수로서 데뷔곡 <이미 나에게로>와 영화 <비트>로 이름을 알리기 이전 어렸을 때부터 이미 혼자 촬영장을 찾아다니면서 오랜 무명시절을 보낸 것으로 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주일에 세 번씩 여의도에 있는 연기학원을 다녔다. 더 어렸을때는 마음속으로 늘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될 거다’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내가 노래도 잘하고, 재밌으니까 으레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우연히 연기학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테스트도 받고 심사도 하기에 나는 연기학원에 등록만 하면 탤런트가 되는 줄 알았다. 하하. 1년간 연기학원을 수료하고 그 해에 영화 <남부군>에 캐스팅 되었다.


어릴 적 텔레비전을 보며 꿈꿨던 인물은 누구인가?

연기는 드니 라방처럼 하고 싶었다.(웃음) 어릴 때 봤던 영화중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굉장히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시네마 천국>을 보면서 연기와 음악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을 처음 접했는데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는 앞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는데 있어 나의 롤 모델이다. 음악을 하고 영화도 만들려면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처음 주목을 받은 간 영화 <비트>였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길거리 지나가는데 ‘꺄악’소리를 처음 들었다.(웃음) 당시 음반활동도 병행해서 정신없이 너무 바빴다. 그 이후로 5~6년은 정신없이 살았다.


언젠가 본인의 영화 중 <스카우트>를 특별히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가벼운 이미지가 아닌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작품이 <스카우트> 였고, 내가 의도한 바대로 성공 했다고 본다.


흥행면에서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냈는데.

<스카우트>가 개봉하던 해에 4편의 영화가 개봉을 했다. 임창정의 영화가 연이어 쏟아지니 관객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공들인 작품이었던 만큼 흥행적인 부분에서는 서운한 점도 있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건 흥행까지 포함한다는 걸 알게 했던, 약이 됐던 작품이다.


<스카우트>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신인상을 받은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감회가 어땠나.

<스카우트>는 촬영에 들어가기 이전에 김현석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의 의향을 인지하고 있어서 많은 부분이 나에게 맡겨진 채로 촬영에 임했는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코믹적인 요소보다는 극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인물을 연기하는데 몰두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연기하기는 편했고,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서는 ‘참 내 모습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엄지원씨가 중년이 돼서 선동열 선수가 나오는 야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옛일을 회상하던 장면에서는 정말 펑펑 눈물을 쏟았다.


당신 특유의 코믹 연기가 있다.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넘어지거나 도망가는 장면 하나가 큰 웃음을 주고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다.

코믹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나는 즉흥적인 편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대화를 나눌 때는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순간순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포인트를 찾을 수 있지만, 연기는 스크린을 통해 한번 걸러진 후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즉흥적이지 않고 만들어진 거라면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기가 힘들어진다. 여러 번 반복해 촬영하기도 하는데 처음 연기했던 장면이 제일 재밌다. 우리가 개그 프로그램을 두 번 이상 안보지 않나. 처음 보는 상황이 가장 재밌는 거다.



<비트> <색즉시공> <위대한 유산> <시실리 2km> <스카우트>에서 임창정은 페이소스 짙은 루저의 얼굴을 담아냈다. ‘민’(정우성)의 주먹 한방으로 나가 떨어져 친구가 된 ‘환규’(비트), 짝사랑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엽기적인 차력쇼를 선보이던 ‘은식’(색즉시공), 귀신을 보고 놀라는 어리숙한 건달 ‘양이’(시실리 2km)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고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 하기위해 고군분투하는 ‘호창’은(스카우트)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보여주는 무고한 시민을 연기해냈다.


임창정이라는 배우는 단번에 캐릭터가 떠오르는 배우다.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기대치가 늘 똑같다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연기에 대해 단점으로 인식하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연기 변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변화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지금과는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슬럼프는 없었나?

슬럼프가 어느 순간 길게 찾아오는 게 아니라 매 작품마다 짧게짧게 찾아온다. 20초짜리 한 컷을 마흔 여덟 번 NG내고, 집중 안 되어 3일 동안 단 한 컷 찍은 적도 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안 되는 날이 있다. 너무 속상해서 혼자 울기도 하고, ‘내가 진짜 연기를 못하는 구나’하면서 자책도 한다. 그럴 땐 엄청난 자괴감이 밀려온다.


가수 은퇴는 왜 했었나.

바쁜 스케줄에 정신없이 살면서 연습도 못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 한다는 자체가 너무 속상했다. 일을 일처럼 받아들이면서 하다 보니 이러다간 정말 불량품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본업인 연기에 좀 더 충실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가벼운 코믹적인 이미지들을 벗어나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비록 결과는 그렇지 못했지만.(웃음) 연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반면에 자신의 연기를 보면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아, 내 연기이지만 참 잘했다’ 싶은 장면이 있다. 그렇게 좋은 장면을 찍어준 감독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근데 내가 감탄한 장면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 하하.


어떤 장면인가?

<스카우트> 마지막 부분에 맞는 장면이었다. 경찰에게 맞고 끌려가는 장면인데 내가 보기엔 너무 잘했는데 불쌍하게만 보시더라. NG없이 한번에 갔는데 너무 맞아서 다음날 앓아누웠다.




나이가 들면 어떤 연기를 하고 있을까?

카리스마 있는 보스의 모습은 어떤가. 웃기지는 않고.(웃음) 재밌는 캐릭터도 연기하겠지만 다른 영역의 변화된 모습도 보여주게 될 것 같다.


본인의 연기관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

난 지금도 누가 날 쳐다보고 있고, 카메라 앞에 서있다고 상상한다. 그런데 영화 촬영현장에 가면 오히려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연기란 나에게 생활 그 자체이고 일상이다. 그래서인지 인위적인 것을 싫어한다. 사람이 처해진 상황에서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행위, 할 수 있는 말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따진다. 내 연기는 이러한 보편적 정서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내 스스로 ‘아트’를 한다는 개념보다는 대중성을 쫓아가고 지향하는 편이다. 나 자신이 대중성 안에 있다. 노래도 연기도 나에게 대중적이지 않은 것은 내게 맞는 옷이 아닌 것 같다.

영화감독의 꿈도 늘 밝혀왔는데 연출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

완성된 시나리오가 세 작품이 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재미가 있다면 모를까.. 영화감독을 계속 할 건 아니다. 연출이라는 작업이 그렇게 즐거울 것 같지만은 않다.(웃음) 고통의 작업이지 않나. 내가 배우로 살면서 경험했던 감성들을 한번쯤은 필름에 담아보고 싶었기에 영화감독을 꿈꾸는 것이다.


촬영현장이 곧 연출수업의 현장이기도 하겠다.

작품이 잘 나오기 위해서 의견을 많이 이야기 하고, 제안도 많이 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배우로써 다소 지나치게 관여한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먹는 욕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시나리오는 언제 쓴 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심심할 때 주로 썼다. 10년 전에 첫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이후 꾸준히 써왔다. 두 편은 휴먼드라마, 하나는 판타지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감독으로서 나의 롤 모델은 <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이다. <말레나>도 참 좋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달라진 인생관이 있다면?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아기사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애들이 다 똑같은데 뭘 그리 자랑하는지... 근데 지금은 내가 그런다.(웃음) 가정이 내 인생을 많이 바꿔놓았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악역을 맡더라도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이 있는 역할을 선택할 것 같다. 내가 출연한 영화들은 우리 아이들이 봐도 좋을 영화이니 다행이다. 색즉시공은 나중에 봐야겠지만.


앞으로 계획은?

두 달 동안 뮤지컬 공연을 하면서 후속곡 활동도 열심히 할 계획이다. 5월 중순에 영화촬영에 들어가고, 가을에는 처음으로 드라마 한 편을 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참 다르다. 혼자일 때는 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하다. 가족의 힘이 대단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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