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누가됩니까?'
'대통령,누가됩니까?'
  • 김두호
  • 승인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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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안청시 교수에게 물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대통령자리를 두고 우리 세상이 온통 어수선 하고 시끄럽다. ‘나도 대통령 한다’고 출정을 선언한 사람이 여야 도합 십여 명을 헤아린다. 점입가경이다. 국민들은 지난번 선거를 통해, 그리고 그날 이후 오늘까지의 상황을 보며 ‘대통령 자리는 누구나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꾀나 신나는 일로 바라 보았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은 아무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뼈아프게 느끼고들 있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일 때는 사사로운 감정 없이 냉정하게 세상과 인간의 허실을 가려내주는 혜안의 현자(賢者)가 그립다. 서울대 정치학과의 안청시(安淸市 63) 교수. 자신의 이름처럼 맑고 투명한 대학 교정에서 한평생 한눈 팔지 않고 선비의 도를 지키며 이 시대의 정치 엘리트를 키워낸 분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안교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나는 그의 외길을 부러워했던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안교수는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소백산 골짜기에 있는 그의 주말 안식처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길을 물었다. 어느 길이 우리가 선택하고 가야할 길이며 누굴 만나야 우리가 행복해 지는가, 어디에 우리 젊은이들의 행복과 꿈이 있는지를 물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는 어느 정도 사이인가?

우린 생각이 같고 환경이 비슷한 처지라 대학에 입학(서울대 외교학과 63학번)하면서부터 마음이 통했다. 그는 충주(忠州) 나는 상주(尙州), 다같이 ‘주(州)’자 고을 출신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꿈도 애초에는 유엔사무총장으로 같았다.


언제부터 두 사람이 유엔사무총장을 꿈꿨다는 건가?

아마도 우리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던 평화의 해결사 함마슐드 유엔사무총장이 (196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는 모든 젊은이들의 우상이었으므로 그와 나만의 꿈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곧 나는 그 꿈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엔의 회원국 가입도 요원했던 한국인이 이해관계가 복잡한 5대 상임이사국의 지지를 받는 것부터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반 총장과 ‘외교관 해봤자 총장은 틀렸어’라고 나눈 말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는 재학 중 군복무를 하고 외무고시를 택해 외교관의 길을 갔고 나는 대학원 재학 중 해군장교시험을 거쳐 해군대학에서 교수요원으로 복무하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길을 바꾼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는가?

길을 바꾼 것이라기보다 대학, 대학원을 거치면서 공부하는 것이 내 적성에 더 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학동문회에서 마련한 반 총장 취임 축하연에서 나는 친구대표로 이렇게 말했었다. 유엔사무총장이란 당시로는 넘보기 힘들었던 꿈을 쫒는 것 보다 학문의 길로 들어 선 내가 대학시절에는 반 총장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초지일관 자신의 길을 걸어 꿈을 현실로 바꾼 그가 훨씬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평생 교수로 살아온 나의 길은 내가 천직이라고 말할 만큼 내가 만족하고 후회 없는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한때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던 꿈을 이루어준 그가 더욱더 고맙고, 자랑스럽고 위대해 보인다고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대선을 앞두고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사회 그리고 정치와 국민의 의식문화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는가?

20여년 안팎의 민주주의의 역사로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당당한 일원이며, 비슷한 수준의 또래국가들 중 우등생 등급의 꽤나 잘 나가는 국가다. 경제발전 수준에서 도로 교통망, 거리 정돈과 치안, 상하수도 등 생활 질서 문제에까지 민주주의 국가의 품과 격에서 크게 뒤떨어 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만족감과 프라이드를 느끼느냐에 이르면 또래국가들보다 한 층 못한 중 하류 사회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불만, 소외와 비판주의가 팽대하여 언제 또 폭력과 난동이 거리를 넘쳐나거나 쿠데타, 혁명 같은 상황이 재현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몰려올 정도다. 그 책임을 전적으로 정치에 돌릴 수는 없지만 중요한 부문은 좋은 품격의 지도자들을 아직 못 만난 탓이 크다. 역사변혁의 회오리가 진정되고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너무 조급하게 보는 것도 탈이지만 세계가 급변하고 주위의 경쟁 국가들이 급속히 치받아 올라오는 기세로 보아 우리의 사회문화적 불안요인들과 정치 지도력 결손현상은 하루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시급한 과제들임이 틀림없다.



경제는 어렵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다들 살기가 갈수록 어렵다고 한다. 군사정권이 끝난 후 바뀐 민주 정부의 세 대통령 중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정치학자의 시각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이 나와야 정치 불신이 해소되고 경제도 도약할 수 있다고 보는가?

우선 국민의 불만 불평 요소를 끌어안아 존경과 신뢰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지난 반세기동안 대통령이 자주 바뀌었지만 비정상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집권자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이 세계 최빈국가에서 40여 년 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는가. 사막도 옥토로 일구어 낸 강인하고 끈질긴 민족이 한국인 아닌가. 유대인 뺨치는 근면 검소한 민족이 한국인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만족과 총체적 위기의식을 다시 한 번 이 난국을 돌파하는 권력자원으로 결집시켜 21세기형 새 나라의 틀을 만들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고 추락하는 경제도 부흥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기대된다. 이웃 아시아의 필리핀이나 스리랑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은 과거에 잘나가다가 정치 불안 사회 불안으로 뒤쳐진 나라들이다. 반면 이들과 비슷한 수준에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지금 일등국가로 면모를 바꾸었는데 모두 정치사회적 안정과 개혁이 그 바탕이 됐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면?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기간의 초기 이행과 조정과정을 거친 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은 ‘진통을 동반한 모색과정’으로 10년을 흘려 보냈다. 경제위기의 후유증 극복에 이어 대북관계와 북핵문제에 매달려 우리 국민들은 그간 ‘고난의 10년’을 살아 온 셈이다. 경제적 활력 및 경쟁력 소진과 남남갈등의 깊어진 골이 이 10년의 고난기간 동안 우리에게 안겨진 숙제로 남았다. 중요한 것은 단언컨대 앞으로의 5년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다시 기를 모아 일어서느냐, 아니면 더 한층 깊은 위기의 심연으로 가라앉느냐가 앞으로 5년 안에 판가름 나는 기로선상에 우리는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북한 문제나 북핵문제는 여전히 불안 요소로 보는가? 도대체 지금 십여 명에 이르는 대선 후보 중에 이상적인 품격의 지도자는 누구로 보는가?

지금 거론되고 있는 후보자 중 누가 품격을 갖춘 지도자냐, 또 누가 당선될 것이냐를 정치현장이 아닌 학교에 있는 내가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는 앞으로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고... 궁금한 당사자들은 정치학자나 선거전문가가 아니라 점술가들에게 물어보는 편이 더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소견은 금년 대선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남북한관계와 북핵 해결 문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우리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북한은 반드시 필요한 파트너다. 예컨대, 북의 노동력과 남의 기술 자본력이 상승적으로 뭉치면 한국은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할 경제 기적과 정치적 돌파를 연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하루속히 평화와 비폭력 원칙에 기반하여 상생적, 상승적 파트너십을 이끌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사의 지상 명제이며, 리더십의 최대 과제다. 유권자들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잘 못 이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 현재 상황은 매일 뉴스를 접하는 게 싫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들이 해 내야할 과업과 일거리를 국민 앞에 제시하고, 이것은 어떤 방법과 재원으로 꼭 성취하겠다는 구체적 전략 구상과 로드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갈 길은 험하고 날은 금방 저물어갈 기색인데 우왕좌왕 서로 죽이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몰두해 있는 것 같은 품위 없는 작태가 빨리 진정되어야 국민의 관심과 자원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혼자 산을 오르면서 석가래로 쓸 나무들만 잔뜩 눈앞에 쌓아놓고 아무리 잘 고르고 손질해 보아야 대들보에 앉혀놓을 재목으로 쓸모가 되살아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석가래를 잘 못 골라 집이 무너지면 메뚜기떼, 다람쥐, 도둑고양이들은 잽싸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억울한 민초들만 깔리고 죽어나지 않겠는가.



그래도 안 교수가 보는 당선 유력주자는 있을 것 아닌가?

당선 가능성? 그건 국민이 최종적으로 내리는 심판이 될 텐데... 과거, 특히 지난 대선의 예로 보아서나 우리나라의 현행 대통령 선거법규, 그리고 우리 유권자들의 선거정서에 비추어 보아도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장담 못하는 게 우리의 대선 결과이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씨가 당선된 것만 해도 그렇다. 차라리 점쟁이라면 몰라도 정치학자라면 이론과 논리로는 풀 수 없는게 우리 대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각주를 하나 부친다면, 지금까지 거론되는 모든 후보자들에게 골고루 해당되는 말이지만, 지금껏 보여준 선거운동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선거정국에서 펼쳐 보여줄 퍼포먼스가 당락을 더 크게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이루면 행복해진다’ 강영훈 노재봉 이홍구 이헌재 등 전 국무총리들이 모두 안교수의 스승이었거나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이며, 작고한 이한기, 이용희, 이한빈등 저명 교수들이 그에게 학문과 삶의 길을 열어주며 총애를 했던 조언자(助言者(mentor))들 이었다.


그는 그들의 뒤를 따라 캠퍼스를 나서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고 지켜가도록 꾸준히 도와 준 사람들로 꼽았다. ‘어떻게 꿈을 이룰 것인가’라는 전제 앞에 고민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첫마디를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바로 스승이든 선배든 친구든 자신의 이상과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언자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 정치활동을 하는 손봉숙 국회의원(민주당)의 부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에는 여전히 거리를 두며, 관심과 흥미의 바깥 범주에 두고 정치학 강의가 없는 날이면 직접 차를 몰거나 버스 편으로 영주시 순흥면의 시골집에 내려가 산다.


어머니의 품속 같다는 소백산 죽계9곡을 오르내리고 안향, 퇴계선생의 발길이 지나간 산책길에서 책속의 길 만으로는 풀 수 없는 삶의 화두를 쫒고 있다. 놀라운 일은 우리가 만나기 바로 전 주말 산삼골 산행에서 직접 캔 3뿌리의 산삼을 보물처럼 술병에 담아 두고 있었다. 고희연 때나 동행한 이들과 함께 개봉할까 해서 산주허락을 받아 얻어왔다는 소박한 그의 눈동자에 외길 선비의 평온하고 깨끗한 동심이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을 낸다.



대학 밖에서 활동할 기회나 유혹도 많았을 텐데 굳이 외면해온 가장 큰 이유라면?

우선 사람은 스스로의 특성과 분수를 지키는 것이 세상을 즐겁게 사는 방법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어떤 특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이 성공할 수 있는 두뇌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 특출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 안한다. 자신의 장기를 모르고 살거나 발견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일찍 찾아내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반드시 뜻을 이룬다. 그런데 자신의 길을 걷다가 속화주의에 빠지거나 분수를 모르고 딴 길로 가면 모든 게 거품이 되는 거지. 그게 삶의 이치 아닌가.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탐욕을 버려야지. 내 타고난 본업은 평생 선생인데 무슨 욕심을 더 가지겠는가.


국회의원인 부인에게 정치학자인 부군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우리는 일과 직업에 있어서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 하고자 노력한다. 정치를 시작할 때 저런 국회의원도 있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4년 후에 당당하게 훌훌 떨고 나올 수 있는 깨끗한 정치인의 모델이 되어 주기만 부탁했지 아내가 무슨 당이든 어떤 정치활동을 하든지 그건 관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켜왔다. 대학강의를 하다 시민운동 쪽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에 입문한 이후 비교적 소신있게 처신해 온 사람이라 조언이 필요치 않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깨끗한 정치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증거가 바로 후원금 모금액수가 매년 꼴찌 축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부터 이곳(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을 찾았는가?

3년 전 쯤 된다. 태어나 자란 곳은 상주지만 우리 조상의 관향(순흥안씨)이 이곳이다. 젊었을 때는 설악산을 찾고 중년기에는 지리산을 좋아했으나 이젠 소백산이다. 가까운 곳에 명찰이 많고 삼국시대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소수서원 등 유교와 선비문화의 전통들도 풍성하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해 살 곳을 정한 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마음 놓을 수 있는 편한 곳이 있는가 감탄하며 지낸다. 이제 나는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에서 저마다 독특한 향취를 겨루며 살아가는 수목들의 변화를 접하며 자연의 정령과 이야기를 나눌 줄 안다. 그들은 매일 변하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어제와 달라진 모습을 요술 보여주듯이 한다. 저 녀석들과 더 일찍 사귀었다면 힘들고 지쳐 있을 때 큰 위안을 받았을 거라는 후회도 한다.



기자는 별빛이 쏟아지는 안교수의 집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듣고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찍 잠이 깼다. 늦잠을 우려했지만 공기가 맑아 일찍 깬다는 주인의 말은 참말이었다. 주인이 손수차려 주는 쑥떡과 감자에 마늘 한쪽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그가 즐겨 찾는 죽계9곡이 있는 달밭골(행정명칭은 月田里)로 따라 나섰다. 이름대로 낙엽이 쌓인 계곡 길섶은 산죽이 우거져 있고 흐르는 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벽계수였다.



늘 혼자서 산행을 하는가?

아내와 함께 할 때도 많다. 그도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 내려온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가면 ‘철학자의 길’이라는 유서 깊은 산책로가 있다. 10여 년 전에 그길 찾아가 봤지만 지금 이곳만 못하다. 나는 속으로 내가 다니는 이 길을 ‘학자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수백 수천년 흐르는 물에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인 저쪽의 금당반석에서 나는 중용과 관용이라는 화두를 되새긴다. 인생의 진리는 저 자연의 섭리와 행태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혼자 걷다가 사람이 그리우면 절을 찾아 스님과 선문답도 좀 하고 산속 외딴집에 사는 산사람들에게 소주 한 병 건네주면 금새 세상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벗이 되어 준다.


이제 반은 산신령이 된 건데 그래서 서울 가면 일에 감이 안 잡힐 수도 있겠는데.

하하하. 산신령이 아니고 자연 숭배자가 된 거다. 졸업한 제자들이 나를 만나면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보다 이곳에서 자연학습 받은 일을 먼저 기억해 주는 것이 즐겁다. 종강을 앞두면 가끔 학생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내가 매번 다니는 자연 공부길을 한 바퀴 돌며 인생과 자연을 논하고 있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는데 성장과정을 들려달라.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의 노랫말 같은 동네가 바로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 동네다. 그 노래처럼 꿈엔들 잊지 못하고 살았다. 자식 많고 가난한 농가출신으로 고등학교(김천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소꼴 뜯고 농사일도 도우며 살았다. 과외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그날그날 공부를 열심히 익히니 칭찬을 받았고 그래서 대학은 서울로 가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투박한 사투리에 초라한 촌놈 행색으로 두리번거리며 당시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학 교문을 들어 선 내 자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저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엉덩이를 부치고 앉아있는데 익숙해져 책을 붙잡고 살았고 첫 성적표를 받고부터 특별시에 사는 친구들이 나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빽’도 돈도 없었지만 책상의자에 엉덩이 부치고 오래 견딜 수 있는 경쟁력 하나만 믿고 살다보니 장학금으로 학비와 생활문제까지 해결이 되더라. 하와이대로 유학을 가서도 나는 국제 촌뜨기였지만 학문 세계에는 차별이 없었다. 말 그대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작은 산골 동네에서 자라나 대학교 선생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분을 지켜야지 라고 생각하며 산다. 이제 정년도 2년 남짓하다. 간혹 자연으로 돌아갈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내 삶의 한 부분을 다른 생명을 위해 기증하거나 몇 줌의 가루로 나누어 내가 다니던 저 숲 길에 뿌려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인간이 오만해서는 안된다. 자연은 평등하게 언젠가 모든 생명들을 한줌의 거름으로 받아들인다.



대선이 다가오자 많은 학자들이 이쪽저쪽 몰려다니며 편들기, 줄서기로 정신을 팔고 있지만 평생 정치학자이면서도 현실정치와는 초연하게 살아온 안청시 교수는 요즘 자연 속에서 세상과 인생사의 새로운 탐구여정을 찾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나 진정한 자신의 이상을 흔들리지 않고 성취해온 그의 삶의 궤적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체험으로 일깨워 주는 ‘지혜롭게 사는 방식’이며 교본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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