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강사로 새 인생 개척하는 신궁(神宮) 김수녕
전문강사로 새 인생 개척하는 신궁(神宮) 김수녕
  • 유성희
  • 승인 200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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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쏘는 순간에는 욕심을 버려야 해요”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88서울올림픽’ 한국 여자양궁은 금ㆍ은ㆍ동메달을 휩쓸었다. 당시 17살의 나이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김수녕(39세)은 여자 단체전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올림픽 최초 2관왕에 올랐다. 이후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인전 은메달, 은퇴 후 7년 만에 복귀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통합 금메달4, 은메달1, 동메달1개로 역대 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새겼다.


김수녕은 지난해 가을부터 일반인 및 기업체를 상대로 ‘마인드컨트롤’을 강연하는 전문강사가 되었다. 15년 동안의 선수생활에서 터득한 위기상황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김수녕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셈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해설가로도 활약하며 여전히 양궁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만났다.


88년 서울올림픽 ‘여고생 김수녕’을 기억해보면 야무지고 단단한 모습 사이로 수줍음 가득한 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한 모습으로 나타나 스스럼없는 그의 배려에 첫 만남의 낯설음이 금세 사라졌다.



조용한 성격일거라고 짐작했어요.

다들 제가 조용할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원래는 굉장히 조용했어요. 근데 제가 과묵하게 있으면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때부터는 편하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면서 대화를 하는 편이예요.(웃음)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양궁 해설가로 활약하셨는데, 선수출신의 이점을 살린 해설이 인상적이었어요.

오히려 제가 선수출신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전문적인 해설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해설에 대한 반응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어서 부족한 점은 귀담아 듣고 있어요.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후배들에게 남겼던 눈물해설이 인상적이었는데...

좀 창피해요.(웃음) 감정을 자제하고 해설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후배들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제가 경기장에 서 있을 때보다 더 떨려요. 후배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운 감정이 드는데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해설을 할 때 조금 감정적이 되는 것 같아요.


여자 개인전 경기는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큰데요. 기록은 언제고 깨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6연패의 기록 때문인지 참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해설을 마치고 시상식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죠. 박성현 선수가 선배들에게 죄송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선배인 우리가 잘해준 게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더 미안했어요. 기록은 잘 깨져요. 그동안 우리가 잘 지켜냈던 것 같아요.



은퇴하고 가정주부로 지내오다가 전문강사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끝나고, 틈틈이 특강요청이 들어왔어요. 본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이 계속 들어오니까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림픽 해설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신뢰감이 형성된 것도 있고요.


강연할 때 긴장되지는 않으세요?

긴장돼요. 말도 끊어먹고.(웃음) 다 끝나고 나서 중요한 얘기를 빼먹은 것도 나중에 생각나기도 하고요. 훌륭하지는 않지만 제가 알고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말씀드리는 거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인데 조바심 내지 않고 하고 있어요.


어떤 내용의 강연이죠?

제 얘기를 주로 해요.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했던 이야기부터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출전할 때 마음가짐 이라던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을 이야기해요. 강의할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드리는 말씀은 양궁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 부리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씀 드려요. 각자가 위기상황을 헤쳐 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제 선수생활의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이기 때문에 더 많이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큰애가 15살, 작은애가 12살인데 아이들 키우면서 잘 지냈어요. 나가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잘 못하고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크다보니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고, 저 또한 필요한 부분은 조금씩 배워나가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겠다 깨달은 거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주변의 엄마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아이들이 하나 둘 크고, 막상 일을 시작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일을 하려고 밖에 나와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한국 여자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서향순 선수를 시작으로 김수녕(1988년 서울), 조윤정(1992년 바르셀로나), 김경욱(1996년 애틀랜타), 윤미진(2000년 시드니), 박성현(2004 아테네)이 금메달을 거머쥐며 개인전 6연패의 기록을 달성했다. 7연패를 눈 앞에 둔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중국의 장주안주안에게 금메달을 내주며 기록달성에 실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올림픽 경기와 각종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은 세계정상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으며 ‘하면된다’는 표상을 만들어주었다. 김수녕의 올림픽 최초 2관왕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 US오픈 우승 박세리 등을 넘어서는 당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렇듯 스포츠 영웅들의 등장은 국위선양 뿐 아니라 자국의 국민들에게 무언의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래도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겠죠?

88서울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영광스러웠죠.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한껏 자부심으로 가득차 운동했으니까요.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제가 개인전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금메달이 우리나라 선수였기 때문에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어요. 그래서인지 내가 금메달을 딴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았어요.


은퇴 후 7년의 공백을 깨고, 활을 다시 잡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우리나라 활 브랜드 중에 ‘삼익스포츠’와 ‘윈앤윈’이 있어요. 99년도에 국제대회에 나가 ‘삼익스포츠’ 활을 사용하면서 홍보역할을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안 받으면서부터 활을 다시 잡게 된거예요. 국내에 비해 외국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가볍게 생각하고 수락했는데 국가대표까지 돼서 올림픽에 출전했으니 아주 운이 좋았죠.


국가대표가 되리라곤 예상 못했을 것 같아요.

99년 8월에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11월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참여한 대회에서 10위를 했어요. 성적이 나쁘지 않아 겨울동안 열심히 했는데 2000년 첫 대회에서 제가 1등을 해버린 거예요. 주변에서는 ‘김수녕이 저러다 올림픽 가겠구나’ 생각했겠죠. 저 또한 후배들과 겨뤄 실력이 된다면 올림픽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요.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점은 없었나요?

주변에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는 있었겠지만, 오히려 마음을 비우니까 부담스러운 마음은 없었어요. 그리고 또 그만큼 열심히 운동했고요.


이런 일이 또 있을까요? 7년의 공백을 둔 운동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돼 메달을 따는 일이...

제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굉장히 놀라운 일이기는 한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했을 뿐이에요.(웃음)


슬럼프는 없었나요?

사실 별로 없었어요. 누구나 운동하면서 결심했던 마음이 하루하루 변하고, 오전오후 컨디션이 다른 정도는 있었지만, 양궁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해야 하는 만큼 이런 저런 핑계를 댈 겨를이 없었어요.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난일은 금방 잊어버려서 그런지 별로 힘들어 하지 않았고요.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 보셨어요?

그 당시 김경욱 선수가 개인전 금메달을 땄는데 김 선수는 88년부터 국가대표 선발을 준비해 96년에 선발된 거였어요. 88년부터 96년이면 거의 10년의 시간의 걸린셈인데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김경욱 선수가 과녘 정중앙에 설치된 카메라를 두 번이나 깼는데 그게 다 전 줄 아시더라고요.(웃음)


아닌가요?

아니예요. 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김수녕이 제일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민망하죠. 저는 마지막 화살을 쏠 때 10점을 확실히 쏴서 시원한 승부를 보여준 적은 별로 없어요. 반대로 말하면 미리미리 여유있게 이기고 있었던 셈이죠.



활 쏘는 찰나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나요?

활 쏘는 순간에는 생각을 잘 안하죠. 쏘기 전에는 ‘몇 점을 쏴야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계산은 하는데 8점이나 9점을 쏴도 무방한데 10점을 쏴야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아요.


양궁은 특히나 욕심을 부리면 안될 것 같아요.

아유, 적당히 쏘면 돼요.(웃음) 모든일이 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양궁에 유독 강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우리나라 여자들이 잘해요.(웃음) 양궁이 체력을 요하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정적인 여성성이 강한 운동의 특성상 아무래도 여자 선수들이 강한 것 같아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관찰해보면 남자아이들은 부산스러운 반면, 여자아이들은 눈빛도 다르고 야무지게 잘하는 게 보여요.


매번 아쉽게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남자 개인전은 항상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이 잘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건 능력은 되는데 실력이 안되는 거예요. 조금 냉정한 말처럼 들릴수도 있는데 결승전 경기장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일종의 실력이거든요. 여자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내는 실력이 있는 것이고, 남자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낼 충분한 능력은 되지만 아직 실력이 안되는 거죠.


양궁은 세계대회보다 국내 경쟁이 더욱 치열해서 우리나라를 견제하려고 경기 룰도 많이 바꿨잖아요. 최근 슬럼프를 겪고 다시 복귀한 윤미진 선수는 김수녕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물론 선수들이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양궁경기를 볼 때 지켜보는 사람이나 활을 쏘는 선수나 경기결과에 대해 예측을 하게 돼요. 물론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마지막 화살을 쏘기 전까지 경기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미리 결과를 예측해놓고 방심해선 안된다는 걸 우리 선수들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자녀들이 엄마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건 다 알죠?

네. 올림픽 시기가 되면 옛날 자료화면들 보여주잖아요. 그리고 2004, 2008년 올림픽에는 해설로 참여했으니 특별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알게 됐어요.


아이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웃음)


바빠진 아내를 위해 집에서는 많은 지원을 해주나요?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제가 대학원 다니고 일과 약속으로 집을 비우게 되는 상황이 오면 남편이 아이들 밥도 챙겨주고, 잘해줘요. 요즘은 바빠서 밥을 잘 못 챙겨 주기도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커요.


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선수 중에 교류를 나누는 분이 있나요?

유남규, 현정화 선수는 자주 얼굴을 봐요. 현정화씨는 남편들끼리 친하기도 하고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다른 사람들은 10년 전에 할일을 저는 아이들 키우고, 아줌마로 지내다가 늦게 시작하는 사회생활이잖아요. 아직은 후배들을 지도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서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스포츠산업경영) 열심히 다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나중에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수녕의 화려한 전적에 빛나는 무용담(武勇談)을 기대했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포장하는 일체의 과장 없이 소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여전히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김수녕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을 낮췄다. 욕심 없이 활을 던졌다던 그의 모습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이 나우]
한국을 대표하는 여궁사 김수녕이 양궁 행정가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김수녕은 선수 시절 서울올림픽 2관왕을 비롯, 올림픽 4개의 금메달을 따낸 바 있는 ‘금빛 과녁’의 주인공이다.

현역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김수녕은 가정주부로 또 강사로 바쁜 날들을 보내다가 얼마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양궁연맹 직원으로 일하며 회원국에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벌써 1년 넘게 근무하면서 이제는 업무에도 익숙해졌고 홈페이지에 자신의 코너를 운영하며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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