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글, MS 무릎 꿇린 재미 사업가 쏘틸 황
[인터뷰] 구글, MS 무릎 꿇린 재미 사업가 쏘틸 황
  • 김다인
  • 승인 200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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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찌르는 인파이터 기질이 사업 성공의 열쇠”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지난 1월 말 미주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에는 ‘라스베이거스 시 지도 한인이 만든다’라는 제하에 국내 기술로 만든 3D 맵인 오니온맵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 온라인 공식 지도로 선정됐음을 기사화했다.

기사에는 구글, 야후, AOL, MS 등 쟁쟁한 세계적 업체들을 제치고 오니온맵이 미국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 공식 맵으로 지정된 것은 한국 IT 기술이 이룬 쾌거라고 표현했다.

이 일을 해낸 주인공은 재미교포 사업가 쏘틸 황 회장(URI 창업자)과 김영웅 Qriocity 대표다. 쏘틸 황 회장이 투자한 국내 기업 Qriocity에서 김 대표가 세련되고 감성적인 3D 맵을 완성했고 이것을 가지고 쏘틸 황이 3년여 만에 미국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쏘틸 황 회장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가 근거를 두고 일하는 미국 LA에서는 이미 독특한 사업 아이디어로 성공한, 백인 주류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비즈니스 우먼이다. 80년대 초 맨몸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근 3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여러 비즈니스를 해왔고, 특히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광고회사 URI를 창업해 국내 대기업 임원들 가운데는 한동안 쏘틸 황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패스포드’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동안 국내 매체와는 전혀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쏘틸 황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해 말. 오니온맵 일 때문에 귀국했을 때였다. 당시 인터뷰를 했지만 쏘틸 황은 라스베이거스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기사화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는 사이 몇 달이 흘렀고, 이 인터뷰는 최근 다시 오니온맵 일로 일시 귀국한 쏘틸 황 회장과 다시 한번 자리를 가진 후에 마무리한 것이다.





이번에 라스베이거스 공식 도시 맵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오니온맵이 선정됐다. 우선 그 얘기를 자세히 해달라.

2년 가까운 긴 여정이어서 이 이야기만 해도 인터뷰가 끝날 것 같다. 야후, 구글, MS, AOL 등 미국 최강 5개 메이저 업체와 경쟁한 끝에 선정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다 무모한 싸움이라고 했지만 난 자신 있었다. 우리가 개발한 오니온맵이 지도 자체의 우수성과 더불어 도시 마케팅에 대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잘했기 때문이다. 오니온맵 자체가 공간분석이나 비주얼에서 경쟁사에 비해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라스베이거스 시가 원하는 글로벌 온라인 오프라인 사업을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기나긴 도전 끝에 올 1월 최종적으로 라스베이거스 도시 맵으로 선정됐고, 이어 텍사스주의 알링턴 및 댈러스시로부터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달라는 독점적 제안을 받았다. 또한 뉴욕의 JFK를 비롯한 공항들과 버스, 기차 터미널, 공공병원들을 오니온맵으로 구성하는 협의도 긍정적인 검토를 마쳤다. 다음달에는 워싱턴DC와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일로 빠른 시간 내에 미국시장을 확장할 수 있게 됐으며 글로벌 시장 진입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미 유럽 모나코를 비롯 중국 13개 도시와 베트남 필리핀, 피지 등과도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구체적인 협의중이다.


구글 어스 등은 아는데 정작 오니온맵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어떤 특징을 가진 지도인가.

오니온맵은 지도를 공간으로 본 ‘데스티네이션 도시 사이트’다. 레저 및 비즈니스 목적으로 여행을 하거나, 관심이 있거나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해 정보를 얻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즈니스 글로벌네트워크를 만드는 커뮤니티의 도시 공간이다. 개인이나 기업을 프로모션 하거나 그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상품의 구매,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글로벌 도시 33개를 온라인 안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첫째, 오니온맵은 키워드 중심이 아닌 비주얼 중심의 검색이 가능한 지도이고, 위치나 거리를 알려주는 전통적인 지도가 아닌 인터액티브 공간으로서의 맵을 의미한다. 세컨드 라이프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이버 라이프가 아니고 온라인상의 리얼 라이프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둘째, 온라인의 플랫폼을 제공한다. 윈윈 전략을 바탕으로 서로가 함께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인 라스베이거스 시가 다른 큰 경쟁사들에 비해 채택하기 가장 좋은 비즈니스 모델로 판정한 것이다.

셋째, 온 앤드 오프 시너지 극대화를 목표로 두고 개발됐다. 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가 오니온맵 공간 안에서 통합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온 앤드 오프의 협력모델 구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출판사라면 오니온맵 콘텐츠를 이용하여 출판을 할 수도 있고 호텔예약회사는 오니온 맵에서 지도기반의 예약 사업을 펼칠 수도 있다. 실제 전 세계호텔을 오니온맵 기반에서 예약할 수 있는 오니온 호텔 (www.onionhotel.com)은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스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을 따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

라스베이거스 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철저히 분석했고 제안했으며 열정과 전문성을 투자했다. 새로운 컨셉의 진취적인 사업 모형이라 일일이 알려주며 설득을 해야 했다. 정부 일이라서 오픈 경쟁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2년 동안 숱한 관문을 통과해야 할 때는 정말 울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미국에서 사업을 한 그간의 좋은 경력도 선정 과정에서 한 몫을 했다고 들었다.


자랑을 한 김에, 좀더 해보자.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일들을 해왔나.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약 10년에 걸쳐 미국 유럽 중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공부하면서 사업을 병행했다. 미국 대학 재학 중 전세 항공기 사업을 했고, 히스패닉 커뮤니티 신문을 스페인어로, 패션 트레이드 잡지를 영어로 발행했다. 그 후 미국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지역 신사업개발 일을 했고, 글로벌 마케팅 전문 URI사를 차려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기업 및 정부의 크로스오버 글로벌 전략 수립 및 브랜드/ 홍보/ 인터액티브/ 미디어 사업을 했다. 1996년에서 2000년 초반까지 한국의 주요 대기업은 거의가 URI를 통해 해외마케팅을 했다고 봐도 된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나.

아테네 올림픽 당시 LG전자의 엠부시(Ambush)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해낸 일이 있다. 올림픽이나 FIFA월드컵의 경우 공식스폰서가 광고시장에서 가장 큰 몫을 챙기는 구조다. 조직위에 돈을 대고 시장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이벤트에 있어 공식스폰서는 정규군에 비할 수 있고, 뼈도 국물도 모두 정규군이 가져가게 된다. 이런 시장을 교묘히 파고드는 기법이 바로 Ambush(매복) 마케팅인데 정규군에 대응하여 게릴라전이라고 보면 된다. 마케팅이나 광고하는 사람 중에 기법으로서의 엠부시 마케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용이 문제지. 아테네에서 우리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NO ESCAPE’라는 미션 하에 움직이는 모든 것에 LG 로고를 노출시켰다. 섬들을 오가는 유람선과 아테네시 전철의 한 노선을 아예 LG전자로 도배해버렸다. 올림픽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은 교통편으로서 전철을 이용하니까.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해외 관련 기업 일 등을 했다면 다른 성공한 재미교포들처럼 국내 매스컴을 탔을 텐데, 이 인터뷰가 처음 아닌가. 그동안 왜 노출을 안했나.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유명해지면 자기만의 시간을 잃어버리기 쉽다.


마음을 바꿔줘 고맙다. 얘기를 처음으로 돌려보자.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가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의촌 의사셨는데 라이프지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가 새로 나올 때마다 사다 주셨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늘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비슷한 또래의 선진국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대학을 마치고 나서는 한국을 떠날 시간이구나 여기고 미국, 일본, 독일을 두고 집중 검토했다. 마침내 독일로 장학금을 받고 떠나기로 하고,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입양아 셋을 데리고 가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교육 중 유럽의 양부모한테 넘겨줄 때 애들이 헤어지지 않으려고 슬피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 출국 일을 미루던 중, 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미국으로 가게 됐다. 나만의 세상을 세우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편도를 끊어서 갔다.




그 당시만 해도 외국 나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웠지만 가서 견뎌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에 가서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나.

다른 유학생들처럼 샌드위치 가게에서 양파껍질을 벗기고 자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도 힘들었지만 가치관의 혼돈을 많이 겪었다. 시각의 차이, 평가기준의 차이에서 오는 혼돈이었다. 한국에서 유난히 튄다고 여겨졌던 내 성격, 외모, 재능 모두가 미국사회에서는 완벽한 장점으로 대접 받았다. 헷갈리는 시절이었다고나 할까.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청바지 모델 제의를 받았는데 시간당 버는 돈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받는 것보다 10배나 됐다. 하지만 당시 지적 허영심이 좀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모델 일이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당시로서는 원하는 삶의 방향이 아니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한 번 해볼걸 그랬나, 후회하는 과거 중 하나다. 그 시절엔 유연하게 사고하지 못했다.


청바지 모델이라니. 어떤 브랜드였나.

캘빈 클라인 청바지였다. 내가 70년대 한국에서는 키도 몸도 커서 걸리버처럼 눈에 띄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동양적인 매력에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으로 비쳐진 모양이다. 후에 비즈니스를 할 때 타고난 미모(?)가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물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정말 큰 걸림돌이었다. 그게 싫어서 일부러 체중을 불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여자로 안보니 너무너무 좋다. 뭐든지 다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미국서 대학 재학중에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사업을 했다는 말인가.

학교는 당시 순수예술로는 최고로 치던 샌프란시스코파인아트인스티튜트를 다녔다. 전공은 예술로서의 영화였는데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났다. 돈을 벌면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30일 동안 밤마다 그레이하운드에서 자면서 미국 전역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녔다. 그레이하운드는 에어컨 성능이 좋아 밤마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모른다. 30일 여행 끝에 공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은 LA에서 하기로 결심을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업이 의외로 너무 잘됐다. 공부와 사업 사이의 선택에서 깊이 고민하다가 결국 사업을 선택했다. 지금 같았으면 계속 둘 다 했을 거다. 학업을 포기하고 많이 방황했다.


어떤 사업을 했나.

미국에는 쿠바 난민이 많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잘산다. 모두 갑작스레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라 늘 고향 남은 가족들에 대해 궁금해 했고 쿠바에 남은 가족들에게 돈이나 생필품을 보내고 싶어 했다. 여기에 착안했다. 파트너 중 두 명의 쿠바인이 제안한 쿠바로 돈과 물건을 보내는 대행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업은 번창했고 전세 비행기를 얻어 하바나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됐다. 번 돈을 모두 광고에 쏟아 부었는데 전화벨이 정말 미친듯이 울리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중남미시장을 석권했다. 아마 당시로서는 한국 교포들이 일군 기업 중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뒀을 거다.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큰 규모의 사업이었으니까. 회사는 LA에, 학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어 600km가 넘는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통학을 했다. 일등석 비행기로 통학을 한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거다.


그 사업을 왜 접게 됐나.

쿠바 첫 방문단이 떠나기 하루 전 전 갑자기 워싱턴으로부터 쿠바 방문은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이미 예약이 폭발적이고 선불을 다 받은 상태라 파트너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손해가 너무 커지니까 받은 돈을 4명이 나누어 가지고 뉴욕으로 도망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난 다음날 아침 모든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선불 받은 돈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미국은 수표를 먼저 발행하고 은행에서 결재를 한다. 은행 직원이 수표 금액의 모자란 1달러를 보태 마지막 수표가 부도나지 않게 막아주었다. 그 마이너스 1달러에서 다시 제1의 예금주가 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3년간은 하루에17시간씩 주 7일 일했다.



미국 이름이 쏘틸(Xochitl)이다. 발음도 쉽지 않은 독특한 이름이다. 무슨 뜻인가.

마야 아즈텍의 문명에 영향을 준 똘텍 (Toltec) 이라는 문명이 있다. 그 문명의 특징은 영향을 준 후에는 다른 문명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문명의 촉매자와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 그 왕국에 평민 출신으로 세 가지 재앙을 물리치고 공주가 된 쏘틸(Xochitl)이라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그 역사 속에서 톨텍의 쏘틸 공주는 이미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삼았다. 쏘틸은 아즈텍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캐릭터인데,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게 됐나, 자기 안에 비즈니스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건 언제인가.

감성적인 사람들은 눈 앞의 셈에 약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다. 왜냐면 독창적이고 좋은 사업 모델들이 그런 마음들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비즈니스를 과학적 예술이라고 보는데, 감성적이지 않으면 큰 사업은 어렵다고 본다. 주변에서 나더러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사업적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재능을 가지고 있다손치더라도 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면부지 나라에서 어린 외국 여자로서 사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밤마다 울기도 많이 했다.


묻기 좀 그렇지만, 결혼은...?

못했다.


왜 못했나.

남자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다. 하하. 시간이 없었으니까. 수십 번씩 저녁을 초대한 남자가 있었는데 당시 내가 하던 사업의 데드라인을 맞추느라 늘 미루게 되더라. 이제는 일도 잘하고 시간도 많은데...


결혼은 안했어도 사랑은 해봤을 터. 사랑이 쉽나 일이 쉽나, 사랑과 비즈니스의 같은 점이나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을 비즈니스처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비즈니스를 사랑처럼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랑과 일에 자신을 다 거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도 일도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도 사랑도 솜씨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체로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일도 잘하는 것 같다.


일에 대해 상당히 열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건가.

복싱에 견주어 말한다면 난 전형적인 인파이터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두드리면 열린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든다. 창조적인 인파이터라 할까. 덮어놓고 들어가서 주먹을 날리면 오히려 얻어터질 수밖에 없다. 목표를 정확히 노려보면 반격을 당하거나 헛손질을 안할 수 있다.


아무리 인파이터라도, 한국 여성으로 미국에서 비즈니스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미국인 여자 사업가가 나더러 미국 여자로서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도 엄청 힘들다고 하더라. 하하하. 어디서건 젊은 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사업의 상대방으로부터 이성으로서 대시를 받을 경우 대개 일은 날아가 버리고 만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니 시간 낭비도 엄청 하게 되고.

늘 미국 주류사회에서, 최상층 골드컬러 스타일의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거라 몇 곱절 힘이 들었다. 이방인으로서 언어, 제도, 네트워크, 법률, 자본 등 모든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모든 게 난관이었다. 블랙코미디 같은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드라마 20편 정도는 쉽게 될 것 같다.

예를 들자면, 국제업무가 많아 일년의 1/3을 비행기나 호텔에서 보내는데, 공항에 도착하면 대부분 ‘웰컴 미스터 쏘틸 황’ 이라는 사인보드를 들고 마중 나와 있다. 내가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미팅에 들어가면 늘 당신의 보스는 언제 오냐고 묻기가 일쑤였고, 남자 직원을 데리고 가면 그 직원이 사장인 줄 알고 대우하고 난 찬밥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회의가 끝날 때까지 직원인 척 잠자코 있던 적도 있었다.


네트워크가 약할 수밖에 없는 미국에서 어떻게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했나.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트레이드쇼와 파티를 이용했다. 미국은 파티 애니멀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파티문화가 발달돼 있다. 그래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관련된 비즈니스 트레이드 쇼에 꼭 갔다. 그곳에 가면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시장에 나온 관련된 업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티는 보통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주최하는 경우는 베벌리힐스의 호텔이나 마라나델레이 바닷가에서 배를 빌려서 한다. 특히 배에서 하는 경우, 육지로부터 멀어지면 사람들이 돌아갈 수도 없으니 서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3시간 동안의 근사한 포로수용이라고 할까?


당신에게 미국인들과 다른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마디로 ‘Out of Box’ thinking 정신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기득권 없이 홀로 서야 하는 이방의 사업가로서는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국인과 미국인을 다 상대해서 비즈니스를 했다. 어떤 점이 다른가.

첫째, 미국인은 실리를 중심으로, 한국인은 이고(Ego) 중심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고 중심으로 간다는 말은 실리보다는 자신의 감정 명분 등을 더 중요시 한다는 거다. 냉정하다기보다는 뜨겁다는 말이다. 둘째, 미국이 개인 중심의 독창적인 솔루션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인은 관계 위주의 보편적 솔루션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셋째, 미국은 장기목표 하에 단계별 실행을 해나간다면 한국사회는 단기적 목표에 급급하다. 또한 한국의 사업관행이 대면 위주(Face to face}라면 미국은 문서 위주(Paper to paper)로 진행되는 성향이 강하다.


미국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할 점을 꼽는다면.

첫째, 미국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나 주마다 법이나 생활양식, 문화 등이 다양해서 한 나라가 아닌 50개의 서로 다른 나라로 보아야 한다.

둘째,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플랜이 필요하다. 철저한 리서치와 자기 사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오니온맵은 3년 동안 리서치와 영업준비를 했다.

셋째,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과정을 아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그들의 스텝 바이 스텝의 프로세스가 급한 성격의 한국인에게는 불리한 면이 많다. 미국 안에서 독일 기업과 프랑스 기업이 아주 현격하게 다른 결과를 내는 걸 보는 것이 좋은 예다.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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