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 4강이 아니다" 한국축구연구소 박병주 고문
"우리는 세계 4강이 아니다" 한국축구연구소 박병주 고문
  • 조현진
  • 승인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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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축구를 묻다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지난 토요일 (17일) 축구 올림픽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를 본 축구팬이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축구 큰일 났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라고 자청하는, 그리고 누가 뭐래도 2002년 월드컵 4강 위업에 빛나는 한국축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인터뷰365>는 이 질문에 대답을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들을 찾았다. <한국 축구연구소>에서 현재 젊은 축구인들에게 큰 어른으로 존경하는 박병주 고문(전 안양LG감독)을 만났다.



요즘 한국축구 보면 참 답답하다. 한국축구 어떻게 된 건가?

그렇다. 한사람의 축구인으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예견되지 않았던 사태는 아니다. 변명 같지만 충분히 올 법한 문제가 요 근래 붉어지는 거다. 2002년에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이루다보니 그것이 마치 한국축구의 현실인양 착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축구의 현주소를 모르고 다들 아시아 최고다... 조금만 더 하면 세계 정상권이다가 하며 과장하고 착각하고 있는 거다. 천만에 말씀이다.


그럼 한국 축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기형적으로 머리통만 큰 ‘가분수’가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몇몇 선수의 기량이나 역량이 세계수준까지 접근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축구의 전부는 아니다. 그 수준에 걸 맞는 축구의 밑받침이 우리에게 없다. 머리통만 비대하게 큰 녀석이 뛴다고 생각해봐라. 조금은 뛰겠지만 얼마 못가 머리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빠진다. 사상누각(砂上樓閣)이란 거다. 이게 지금 한국 축구다. 국가대표 11명이 한국축구의 전부가 아니다. 전체적인 시스템, 축구기반조직과 인프라 같은 선진 축구의 기반이 전혀 없다. 오로지 대표팀만 생각하고 가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하면 새로워진다고 보는가?

옆 나라 일본처럼이라도 해야 한다. 일본은 <축구 100년 계획>이란 것이 있다. 그 계획에 맞춰 십 몇 년 째 지금 해 온 거다. 그것도 걔네들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유럽, 남미의 선진 축구시스템으로 따라가는 거다. 그런데 일본은 그걸 완벽히 따라간다. 우리나라 선수들에겐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자질이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시스템인거다. 그것만 해결되면 한국은 언제나 아시아 정상에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정상을 노릴 수 있는 아시아 최초의 나라가 분명히 될 수 있다. 월드컵 이후 이젠 축구장 같은 하드웨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우리는 그게 너무 취약한 거다.


좀 더 현실적으로 묻자. 우즈베키스탄과 경기 도중에 붉은악마가 ‘정신차려. 한국축구!’라는 구호까지 내 뱉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렸는데.

모든 것이 최악인 경기였다. 선수들의 경기력만 문제가 있던것이 아니라, 작전도 뭐도 없던 경기다. 하지만 그 일을 박성화 감독이나 선수들만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 박성화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을 맡는 일 부터가 순리에 어긋난 것 아니었나? 그런 의미에서 붉은악마가 ‘정신차려. 한국축구!’라고 외친 것은 경기장에 있던 선수나 코칭스탭에게만 쏟는 비난이 아니다. 올림픽에 못가더라도 정확하게 한국축구의 방향을 이젠 좀 잡으라고 하는 질책인 것이다. 튼튼한 밑바탕을 가진 단단한 대표팀을 만들라는 말인 거다.


박성화 감독에 대해서, 그리고 여전히 난항중인 A팀 감독선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히딩크 이후에 한국축구는 제대로 된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코엘류는 훌륭한 감독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히딩크와 너무 비교를 받았다. 본 프레레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한국축구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퇴진 시킨거다. 베어백도 마찬가지 였다. 베어벡으로 된다 안된다를 떠나서 애당초 그가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질만한 유일한 대안이었나? 애초에 잘못 끼어진 단추였었다는 거다. 그만큼 대표팀 감독 자리는 중요하다. 원칙을 가지고 선발해야 하고, 분명한 비젼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맡아야 하는 자리다. 축구협회에 대표팀 감독을 선발하는 전담기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기술위원회가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고, 그를 토대로 감독을 뽑는 것이 아닌 축구협회 회장단의 독단으로 자기들 코드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는 상황인 거다. 그러다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바꾸면서 여론을 식힌다는 식의 행보가 반복되어지는 거다.



결국 정몽준 회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와 대한축구협회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말인데.

그렇다. 개혁되어야 한다. 이사라는 사람들은 모두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이사회에 정회장은 제대로 참석조차 안하면서 말이다. 대한축구협회를 시작으로 축구계 전반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하는 시기다. 한국 축구는 지금 감독하나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 상태까지 와 있다. 한국축구의 목표를 2008년 북경올림픽이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를 거는 어린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봐라. 대부분 프로구단 소속 들이다. 다들 중학교 때부터 프로구단에서 발견해 키워온 선수들이다. 그런데 그 선수들로 끝이다. 지역연고제 없이 완전 드레프트 제도로 바뀐 현재의 체제에선 그런 아이들을 찾아서 구단이 투자 못한다. 다들 고등학교, 대학가서 축구 할 텐데 그런 발전을 기대할 수 있나? 안 된다. 그 선수들이 마지막이다. 한국축구는 더 절망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지난 번 아시안컵을 생각해봐라. 바레인 대표팀은 내가 안양LG감독할 때 프로팀 선수들 데리고 전지 훈련 가서도 4:0 5:0으로 이기던 나라다. 그런데 이제 우리 대표팀이 걔네들한테 졌다. 우리는 일본보다 프로리그를 십 수년 빨리 시작했지만 이젠 일본에 한참 뒤쳐졌다. 이러다간 베트남, 태국한테도 밀린다. 그 나라는 새미프로지만 우리보다 훨씬 시스템이 체계화 되어있다. 국민은행 사태를 봐라. 이게 어디 프로리그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가? 대표팀만 가지고 자위하고 있으면 안 된다. 한국축구는 더 이상 월드컵 4강이 아니다. 우린 약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주소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계속 더 약해진다. 그러지 않으려면 변화해야 한다. 공차는 선수들만이 변하는 게 아니라 운동장자체, 시스템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평생을 축구인으로 살아온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어두웠다. 요즘의 ‘못 이기는 한국축구’는 단순한 헤프닝이 아닌 곪을만큼 곪은 종기에서 돋아난 고름이다. 아파도 째내야만 한다. 이 사태는 어쩌면 11명의 대표팀이 축구의 전부인양 집중했던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다가 한국축구는 박병주 고문의 말처럼 아시아의 맹주는 커녕 아시아의 동네북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한국축구는 이미 동네북이 되어버렸다. 한국축구, 정말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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