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혁적 중도주의” 백낙청 교수 관훈포럼
“나는 변혁적 중도주의” 백낙청 교수 관훈포럼
  • 김다인
  • 승인 200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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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비상시국 맞아 거국체제 구성 제안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대한민국 진보지식인의 좌장인 백낙청(70)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한 경제위기를 넘어 국가적인 비상시국에 처해 있다”며 현 시국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18일 12시부터 2시간 30분여 동안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포럼에서 백 교수는 ‘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국민통합의 길’이라는 제목 하에 이같은 주제의 강연을 했으며 이어 참석한 언론인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번 강연은 관훈클럽이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백낙청 교수와 이문열 작가를 각각 초청해 18, 19일 이틀 동안 현재 국내외 상황, 남북 및 한미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이뤄졌다.

강연에서 백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며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있는 진보가 협력해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하면서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일종의 거국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념적으로 자신은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표현했다.

인터뷰365에서는 이날 진행된 백 교수의 강연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 전재하며 아울러 언론인들과의 질문과 답도 게재한다. 또한 19일에 있을 이문열 작가 초청 포럼 역시 독자들에게 현장 녹음중계할 것을 알려드린다.

 

 

 

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국민통합의 길(부분발췌)

 

 

국민통합에 대해

정치하는 분들은 국민통합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전제하고 발언하기 일쑤입니다. 언론에서도 대체로 그런 경향이고요.

하지만 완전한 국민통합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한 목표도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을 모두 따돌리고 한국 국민들끼리만 똘똘 뭉쳐 통합하는 게 한국인들 자신에게조차 이로운 일일까요? 더구나 시대는 우리에게 세계시민이 되고 동아시아의 지역시민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부로 한정하더라도 이 땅에는 국적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끼리만 단결해서 그들을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길을 가서는 곤란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분단국가입니다. 현시점에서 이들과 함께 가는 국민통합이란 허상에 불과한데, 그렇다고 이들을 도외시한 남한만의 국민통합은 법리상 헌법위반일 뿐 아니라 국민으로서나 민족으로서나 분열과 기형성(奇形性)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국민통합’은 많은 함정이 따르는 개념입니다. 그때그때 어떤 성격 어떤 수준의 통합이 상대적으로 바람직한가를 판단해서 추구할 목표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시대건 분단시대건 또는 다문화사회이건 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일정한 수준의 국민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겠지요. 더구나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국민통합의 현황

경제위기는 평상시에 갈라졌던 국민들을 뭉치게 만드는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1997년 IMF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을 때가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여러가지 성찰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어쨌든 보기 드문 국민통합의 사례였고 IMF사태의 ‘단기 졸업’에 크게 기여한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경제위기는 여론의 대통령 지지도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취임 1주년도 안된 정부에는 경제위기가 정치적 플러스 요인이 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위기가 더 지속되고 살림살이가 더욱 비참해졌을 때 어떻게 될지는 별개문제지만요.

그런데 이런 플러스 요인이 가세하고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 지지가 반대를 훨씬 밑돌며 국민통합이 잘 되고 있다고 아무도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책임이 어느 한사람에게, 또는 어느 일방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 권한을 쥔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지난 1년간 이명박정부의 정책과 행태가 국민통합을 저해한 바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국민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한 일련의 인사결정이 그렇고,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기보다 확대하는 방향의 경제․사회 정책들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위기에 처한 국민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점은 대통령 자신의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수시로 말이 바뀌는 가운데도 일관된 주장은 자기는 잘못한 게 없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남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국경제가 나쁘고 세계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야당과 일부 불순세력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그리고 국민들이 너무 몰라주고 너무 말을 안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대통령의 실정을 열거하며 규탄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현실이 이러한 마당에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할까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국민이라야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주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 잘못은 외면하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통령더러만 반성하라고 다그친다면 우리 또한 통합에 아무런 기여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켰습니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이명박 후보를 찍은 사람들에게 한정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책임은 단순히 대통령당선의 합법성에서 오는 것만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명박 후보는 대다수 국민의 욕망을 대변한 면이 많습니다. 그의 지지자들뿐 아니라 반대자들의 마음속에도 자리잡은 묻지마식 ‘성공’의 꿈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욕망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명박정부와 똑같은 ‘남의 탓’ 습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당장에는 어떻게 해야 이런 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의 책임을 다하는 길일까요?

우리가 뽑은 책임이 있으니까 다음 선거 때까지 꾹 참는 게 도리라는 주장은 극도의 무책임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당장에 정권을 갈아치우자는 주장도 무책임합니다. 정권교체의 구체적 절차를 규정하는 헌법에 동의했던 국민의 경우 봉기를 통한 초헌법적인 정권교체는 삼가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 문제를 떠나서, 당장에 대통령을 끌어내릴 실력이 있느냐, 또 끌어내리더라도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없는 이상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명박 OUT’의 구호를 외치기는 했지만 정권퇴진운동까지는 안 가고 정권에 대한 엄중한 경고에 멈추면서 주권자들의 한바탕 축제를 벌인 작년의 촛불시위는 이명박정부 출범 벽두의 시점에서 국민들이 자기 책임을 이행하는 적절한 수준과 창의적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올해입니다. 원래 지난 여름 같은 축제는 ‘리바이벌’을 해서는 제 맛이 안 나거니와, 올해는 상황이 달라진 만큼 국민이 책임지는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2009년의 비상시국

작년 여름과 달라진 2009년의 상황에 관해 저는 주로 세 가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사이 경제위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업부도와 정리해고가 속출하면서 기업이나 정규직의 경우보다 훨씬 취약한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새내기 대졸자를 포함한 미취업인구들의 빈민화가 급속히 진행될 때, 작년처럼 유쾌하고 비교적 온순한 촛불군중의 시위주도권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폭발의 위험이 날로 증대하고 있습니다.

둘째, 남북 당국간의 단절이 국내 위기의 일부라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편이지만 위기극복의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리라 봅니다. 굳이 북측이 군사충돌을 일으켜 한국경제의 국제신인도에 타격을 주지 않더라도, 남북관계의 단절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만이 손에 쥔 희귀한 카드를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당장에 남북교류가 부진해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손해를 보느냐는 계산을 넘어, 치명적인 ‘기회비용’을 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무엇보다 불행한 점은 이명박정부가 지난해 ‘촛불’의 엄중하지만 평화적인 경고를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엇나가기로 작심했지요. 그러한 역주행이 곳곳에서 접촉사고와 인사사고를 유발하고 있는데도 달라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앞으로 시민들이 설혹 축제 분위기의 촛불집회를 선택하더라도 정부가 강경진압으로 나올 게 분명합니다. 한층 절박해진 시위군중과 정부의 강경책이 맞부딪칠 때 ‘용산 참사’의 연쇄발생과 대형화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분노를 삭이며 물러서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 국민과 한국의 현대사를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동시에 정부가 자진해서 바뀔 공산도 현재로서는 희박합니다. 결과는 최악의 교착상태이며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 체계의 붕괴에 다름아니겠지요.

저는 이런 위기를 기존의 틀 안에서 수습할 길은 없다고 판단합니다.

위기국면에서의 전통적 수습책으로는 거국내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금은 답이 못된다고 봅니다.

읽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지난연말 창비주간논평으로 발표한 <거버넌스에 관하여>라는 시론은 저의 이러한 현실인식과 문제의식의 표현이었습니다. 일부 언론보도에는 제가 ‘올봄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고 예측 내지 선동한 것으로 비쳐졌습니다만, 저로서는 올해 국내정세가 악화될 때 우리가 무엇을 할 거냐를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고민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진보개혁세력에 속한다는 사람들도 정부를 규탄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습관화된 대응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있는 진보가 협력하여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하면서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일종의 거국체제를 구성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아슬아슬한 상생의 길

그렇다면 거버넌스 개편을 위한 여러 층위, 여러 범위의 노력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요? 큰 방향은 시민사회가 국민통합의 경륜을 갖추고 동참하는 일종의 거국체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너무도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리지요. 실제로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해간다는 원칙에 비추어 본질상 막연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거국체제 건설을 위한 동력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동력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이 문제에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비상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경제난을 넘어 국난(國難)이라 불러 마땅한 비상시국입니다. 이런 때야말로 또 한번의 비약을 이룩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비상한 처방이 아니고는 넘길 수 없는 고비에 왔다는 인식은 어차피 확산될 것입니다.

 

다양한 구상과 활발한 토론을

거버넌스 개편이 막연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선, 국회의 기능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조를 통해 약간이나마 소생한 것처럼 거버넌스 개편을 위한 범사회적 노력이 확산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민주정치의 전통적인 장치들이 다시 활성화되게 마련입니다. 앞서 열거한 삼권분립과 ‘제4부’로서의 언론의 기능이 그럴 것이고, 독립적 국가기관이나 전문성이 중시되는 공공기관과 연구기관들에 대한 무력화 내지 어용화 압력도 한결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은 이루고 들어가는 겁니다.

일정한 권한을 갖는 국가기구이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구의 예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나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노사정위원회는 민간기구이면서도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민관협치에 더욱 어울리는 모델일지 모릅니다. 또, 한시적으로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에 민간이 동참한 예로는 (결국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단으로 끝났습니다만) 김대중 정부 때 새만금간척사업의 타당성을 재조사한 민관합동위원회도 있었습니다.

저는 향후 더 많은 토론을 위해 몇가지 시안을 던져보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우선, 나라 다스리기 체계의 개편 문제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소통하며 원칙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이 긴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합법적인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이들의 결정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고 그러려고 해도 안되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런 임의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이들의 합의는 오로지 그 내용의 합리성과 국민의 지지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모임의 경우에는 국제외교기술의 산물인 베이징 6자회담이 오히려 참고가 될 듯합니다. 6자회담은 전원이 합의하지 않고는 아무런 결정도 못하는 ‘회담’에 불과하다는 뚜렷한 한계를 지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6자회담의 매력이고 강점이기도 합니다. 전원 합의가 없이는 진전도 없지만 전원이 합의하지 않고는 구성원 각자가 하는 일을 막지도 못하기 때문에 부담없는 참여가 가능하고 누구도 이걸 꼭 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담이 간헐적으로나마 진행되다보면 그 틀 안에서 다양한 쌍무적 접촉과 3자 또는 4자의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핵심 당사자들 간에 합의가 되면 나머지 참여자의 견해를 참작하여 합의문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런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합의도달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물론 6자회담 모형이 국내 거버넌스 개편 논의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 지도급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6자회담식’의 느슨한 모임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은 없을 것입니다. 참가정당의 범위는 거버넌스 개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당으로 하되 그 수는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야겠지요.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소통하는 모임이 6자회담과 구별되는 또 한 가지는, 모임의 층위에 따라 참가 범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원로급 회동에 안 들어가는 정당이 중견급의 만남에는 참여할 수 있고, 모임이 거듭되다보면 다양한 실무회의--6자회담으로 치면 분야별 Working Group--를 수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에 남북관계처럼 본디 초당적인 추진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조금 더 응집력있는 기구가 바람직합니다. 남북화해와 통일문제를 정부의 일방통행과 여야간 정쟁의 영역에서 끌어내어 시민사회의 중도적 양식과 정치권 및 관료사회의 책임있는 역량이 결합하는 심의기구 내지 합의기구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일종의 시국회의 형식으로 출발하더라도 어느 단계에는 노사정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상설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4대강 정비사업이라든가 한반도대운하 계획처럼 한국 및 한반도의 총체적 공간전략을 좌우하며 자손만대에 영향을 미칠 사업은 비록 한시적이지만 상당기간 존속하면서 각계각층의 심도있는 토론과 검증을 주관하고 그 결과의 국민적 수용을 담보해줄 민관합동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밖에도 경제문제와 사회정책 등 사안에 따라, 그리고 그때그때 정황에 따라 ‘민’의 국정참여를 확대할 공식․비공식 통로들은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추진할 국민적 동력은 여전히 문제입니다. 하지만 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동력도 증대할 것인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특히 영향력있는 언론매체에서 활발하고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는 일이 시급합니다.

상생의 길은 역시 아슬아슬합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명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저력있는 국민이요 민족이며 시운(時運)을 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비상시국을 타개할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데 끝내 성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언론인들과의 질의 응답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머슴이라며 머슴에 대한 꾸중과 증오보다는 주인인 시민의식 시민단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 보면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미비하고, 시민단체들이 양극화되거나 정치성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촛불집회 경우에 일반 보수여론에서 시민단체들이 개입함으로써 촛불집회의 순수성이나 진정성이 많이 실패하고 왜곡됐다는 얘기도 있다. 백 교수가 주장하는 거버넌스는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상생의 길이 가능한지? 거버넌스란 것이 너무 이상적인거나 구호에 그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제가 국민의 역할을 말할 때 시민단체만을 염두해 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존의 시민단체들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시민없는 시민단체라는 말은 일면의 진실도 있지만 시민운동을 그냥 불신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말하는 면도 있다. 어쨌든 시민운동 하는 단체들이 그동안의 영향력에 비해서 내실을 제대로 갖추기 못한 면이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와서 여러가지 시련을 겪는 것이 그분들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어느 대학 가서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열공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 양극화에 대해서는 저는 보수와 진보시민단체들이 양쪽에 병렬해서 제대로 대립하고 서로 비판하는 구도가 됐으면 좋겠다. 참여정부 안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기고 시민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분들의 노선에는 동의를 안했지만, 크게 봐서 우리 사회가 진보, 발전하는 하나의 증표라고 생각하고 일정한 기대를 걸었다. 왜 진보라고 생각하느냐면 그전에는 보수진영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든가 논리를 전개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들 마음에 안맞는 사람들은 그냥 불순분자로 몰아가지고 잡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런데 보수진영도 시민운동을 할 필요성을 느끼고 논리의 개발을 느끼는구나 했다.

그런데 그 논리를 개발한 분들이 보수진영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분이라기보다는 좌파운동 그것도 상당히 극렬한, 저같은 사람은 따라가기도 어려운 철저한 좌파운동을 하던 분들이 변신한 것이다. 이분들이 좌파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셈이고, 그 다음에 자기들 입장을 바꿔놓은 가운데 여러 가지 고민을 하지 않았겠나. 사색을 하고 고민을 해서 상당한 이론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이게 잘 가면 우리나라에도 우익적인 시민단체 보수당론이 제대로 발달하겠구나 기대를 했는데.

진보적 단체를 위해서 이명박정부의 출범이 오히려 공부할 기회가 된다고 한다면 우파보수단체를 위해서는 이명박정부의 집권이 거의 재앙이 되지 않았는가, 저는 그렇게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세력이 지난 세월에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잃어버린 사태가 지금 보수단체들의 경우에 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시민운동이 정치권과 거리 두기 문제에서는 두 가지 병폐가 있다.

하나는 지금 지적하신 의미의 정치권 거리 두기의 실패, 다시 말해서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쉽게 버리고 좋은 자리를 옮겨 간다던가 정치권과 밀착해서 프로젝트 받는 식으로 독립성을 상실하는 것이 하나의 병폐다. 또 하나는 무조건 정치권하고 거리를 둬야지 시민단체의 순수성이 확보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제가 말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소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소통이다. 나쁜 의미의 밀착을 경계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그러나 정치권과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어른스럽게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결벽증을 느끼지 않는 것을 뜻한다.

거버넌스에 대한 저의 전반적인 구상이 너무 이상적이 아닌가 하는데, 저 스스로 아직 충분한 동력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앞길이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저의 논지 중 하나는 지금 비상시국이 심화되고 있고 국민들 가운데 거버넌스 개편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넓어져 있기 때문에, 지금 동력이 생기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지금 진보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도 1987년 이후에 분열되면서 정치적인 당파성이 강화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에 상당수가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갔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후보단일화 문제로 백 교수께서도 대선에 일부 참여했다. 시민사회 당파성이 이렇게 강화되면 방금 전 말씀처럼 기존 제도를 뒤엎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진보진영 내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시민운동을 하는 개개인이 자기 나름의 소신과 능력이 있어 정치권에 들어가는 자체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실제로 시민단체들의 역량이 줄어드는 데 있고, 더 문제는 정치권에 본인이 시민운동을 하면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치우친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파성이라는 문제는, 당리당략 차원에서 어느 당을 위해서 또는 정부와 밀착해서 움직이는 당파성은 곤란하지만, 어떤 일정한 견해를 갖는 것 자체를 당파성이라고 한다면 저는 당파성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올바른 시국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제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행사하려다가 실패했다.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사회 각계인사들 중 한 명이었다. 어느 특정인을 지지한다기보다 그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도덕성이라던가 여러 문제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곤란하지 않느냐 하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그러니까 나머지 후보 중에서 누가 제일 나은가. 그 사람으로 단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화를 해서라도 이런 사태는 막아야지 않느냐 입장이었다. 그런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 여러분이 판단해주시면 될 것이다.

시민사회 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있느냐 또 누가 대표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게 참 문제다. 하지만 상당히 넓은 사람들간의 요구가 공유되면 해결이 된다고 본다. 그렇게 해결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최근 북한의 태도와 발언이 심상치 않다. 일부에서는 이명박정부의 무대응 정책, 무시 때문이라고 하지만, 극단적인 분들은 김대중정부의 햇빛정책이나 백 교수의 북한 껴안기 등이 북한의 어리광을 키웠다는 주장도 한다. 이번에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상임대표를 마치면서 북한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 국민이나 정부에게 할 이야기가 듣고 싶다.

지금 쉽게 풀 수 없는 묘안이 없는 것 같다. 정부의 경우는 이명박대통령이나 주변인사들이 지난 정부의 햇빛정책이나 포용정책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그걸 완전히 부정하자는 이념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본다. 너무 뭘 모른 것 같다. 그 진영에 전문가가 없는 것 같다. 심지어는 지난번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조차도, 통일분야 전문가가 아니었다. 이념적으로 치우친 면과 너무 몰라서 그런 양면이 있다고 본다.

이명박정부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북에 대해서 도발적인 발언을 많이 했지만 북한 쪽에서 놀라울 정도로 참았다. 저는 왜 그렇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뭘 기대하고 참았는지... 이후 상생공영 정책이 정리되고 바로 총공세를 시작했다.

정부에서 조금씩 알아차리면서 돌려놓으려는 노력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교묘하게 사건이 터졌다. 작년 7월 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대통령이 미흡하지만 꽤 전향적인 연설을 했다. 그날 금강산 사건(관광객 피살사건)이 터졌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저는 모르겠다. 그전까지는 전 원칙적으로 우리 정부가 6.15공동성명과 10.4선언을 실천하겠다고 발표하면 쉽게 풀릴 거다 말을 했는데, 이제는 우리 정부가 그런 말을 하면 굴복하는 것처럼 돼서 말하기 어려워졌고, 북에서도 그 말 못믿겠다고 하면서 사태가 악화될 염려가 있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사태가 더 악화돼서 이건 안되겠다는 깨닫게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전에 알 걸 알아서 미리 처리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인데. 지금도 상당히 악화된 거 아닌가. 더 악화되고 나서 고비를 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하게 된다.

미국이 부시정부 6년 동안에 사실은 이명박정부 같은 정권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오바마정부는 이명박정부의 태도가 탐탁치 않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한미간에 조율이 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저로서는 별 대책이 없다.

 

지금 같은 남북관계 긴장의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남북 긴장은 분단현실에서는 늘 있어온 불가피한 상황이고. 근본적으로는 분단문제를 해소하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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