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이세은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
여배우 이세은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
  • 조현진
  • 승인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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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의 향기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사실 그녀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는 어느 영화 주간지 때문이었다. 그 지면에 2주일에 한번 씩 연재되는 그녀의 칼럼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최소한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 이상의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적어 내려가는 그녀의 글 덕분에 어쩐지 그녀가 화면이란 벽 뒤에 서있는 요정이 아니라, 극장 옆자리에 앉아서 나와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기분을 가지고 28살의 여배우, 이세은을 만났다.


"나 <인터뷰365> 알고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는다."

그래? 나도 당신이 영화잡지에 연재하는 칼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정말? 다른 분들은 쟁쟁한 필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내 글만 초등학생이 쓴 거 같아서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잘 쓴다. 어지간한 기자들 글보다 훨씬 좋던 걸.

.

이세은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그녀의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28살. 스무살에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했으니 어느새 데뷔한지 8년이나 되었다. 그런 그녀는 올해 춘사영화제에서 영화 <그해 여름>으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벌써 한달 이상 지났지만, 신인여우상 축하한다.

고맙다. 난 그 상이 정말로 기뻤다. 그 상을 받고난 후, 함께 드라마를 하는 송옥숙 선배님에게 축하한다고 소리를 듣는데 너무 좋았다. 그런 대선배님의 축하를 받으니 나 정말로 배우가 되었나 보구나 하는 기쁨이 몰려왔다.


데뷔한지 8년만에 신인여우상을 받은건데 너무 늦게 받았다는 생각은 안 들었고?

전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이 내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룬거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면, 어렸을 적부터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꼭 배우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죤 휴스턴이 만든 <애니>라는 뮤지컬 영화를 아주 좋아했다. 그걸 보면서 영화라는 장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크면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오빠가 두명 있는데 오빠들도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 입장권, 전단지 같은 것을 같이 모으곤 했었다. 그게 변하지 않고 계속된 것이다. 대학도 영화과를 간 거고. 배우되기 전에 학교에서 단편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고 그런거다.


그럼 지금 영화계에 나와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겠다.

그럼. 그래서 이제 점점 든든해진다. 이젠 그 친구들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다. 사실 난 연예인 친구들보다 그런 비 연예인 친구가 훨씬 많고, 더 자주 만난다. 물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의 영역들이 분명해지도 보니 확실히 어릴 때와 같은 공통적 일치감을 발견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일종의 직업적인 영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뭐 그렇다.



그 이야기를 한번 자세히 나눠보자. 지난 8년간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28살 여자의 이야기 말이다. 그 여배우의 8년을 어땠는지, 그리고 오늘은 어떻고, 앞으로는 어떨건지가 궁금하다.

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어릴적부터 ‘영화’말고는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배우가 된 것도 뭐 알려지고 싶은 욕심이나, 돈을 벌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지난 8년간 배우로써의 내 과정이 그 이전에 학교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들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역에서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날 개발해 온 과정이었지. 그리고 감사하게도 8년 만에 신인여배우상 받으며 ‘아, 내가 지난 8년간 허송세월 한 건 아니구나. 과정중 하나를 밟았구나.’하는 성취감으로 기쁜거고.


그래도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물론이다. 배우의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는 직업이다. 아니 선택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말이 옳겠다. 다른 직업에 비해서 굴곡도 심하고, 내 생각과 다르게 왜곡되어 내가 보여지기도 한다. 특히나 어린 여배우는 그런 일을 통해 상처받기 십상이다. 남들보다 더 힘이 들었는지, 수월했는지 비교할 순 없지만 나도 그런 과정을 겪은 것 갔다. 사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이세은을 ‘완성된 작품’으로 만나게 되지만 나는 그 작품에 나오기 위해 무수한 오디션을 감당해야 했고 다른 배우들처럼 뽑힌 적보다 떨어진 때가 더 많았다. 그런 일은 사람을 참 속상하게 만든다. 좌절감도 밀려오고. 그러면서도 다음 작품, 다음 작품을 찾아 도전하며 온 거다.


사실 당신이 주목받기 시작한 드라마는 김두한의 일생을 그린 <야인시대>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장금>이 크게 터졌지.

그 두 편 모두 오디션을 통해 역할을 받은 거다. 좋은 배역을 욕심만으로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야인시대>의 ‘나미꼬’는 오디션 전에 대본으로 읽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하고야 만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준비했었다. 결국 그 배역을 받았고, 정말 감격에 취해서 연기한 것 같다. <대장금>도 그렇고. 그런걸 보면 나는 연출가와 작가 복이 있는 배우다. 아, 그리고 좋은 상대배우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연개소문>에서 유동근 선생님과 함께 연기하면서는 그 흥분감 때문에 잠을 설칠 정도 였으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새로 발견한 느낌이 하나있는데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물론.


그건 이세은이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다수의 관객들은 당신에게서 ‘악녀’혹은 ‘아주 차가운 여자’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는데 말이다.

나 차가운 여자 아니다. 하하. ‘차가운 악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신인상을 받은 영화 <그해 여름>에선 착한 여자 연기를 했는데...그건 많이들 기억 못하시더라. 사실 연기자가 되면서 ‘악녀’가 내 캐릭터가 될지는 상상도 못했었다. 처음 MBC공채 탈렌트로 선발되어 교육을 받는데 교육시키던 연출자 한 분이 날 보면서 ‘넌 너무 유약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엔 잘 몰랐는데 이 말씀이 무의식중에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사실 당신 말대로 난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다. 아버지가 기자 생활을 하셨기에 어릴 때 부터 아버지가 쓰시던 원고지 뒷장에다가 글 쓰면서 노는게 취미였던 아이다. 그런 성장 환경이 나를 감싸고 있는데, 배우란 직업을 선택한 순간에 그런 내 모습이 ‘유약’으로 비춰지니까 참 감당하기 어렵더라. 다행이 노련한 작가와 연출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을 통해 매력적인 배역을 받았기에 유약한 모습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도리어 차갑다는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그런 이미지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다.



시인 최승자는 <삼십세>라는 시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썼었다. 20대의 전부를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이세은은 이제 28살이 되었다. 그녀에게 서른살은 금방 다가올 내일이 된다. 이 기로의 나이에서 여배우로써, 또 한사람의 여성으로써 그녀는 이 나이를 어떻게 넘어가고 있을까?


어떤가? 스물여덟의 이세은은?

그러게. 요즘 나도 부쩍 내 나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너무 빨리 20대를 보낸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서른이라는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 염려도 되고. 분명한건 나에게도 어떤 선택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 일거다.


그럼,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에겐 인생과 배우로써의 성공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나는 내 삶이 더 중요하다. 행복한 서른, 행복한 마흔 살 말이다. 가족도 나에겐 꼭 필요하다. 남편도 자식도 있어야 하겠지. 나는 화려한 싱글이 될 마음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행복한 삶 위에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라기보다는 영화와 관련된 일들. 행복한 가정의 기초위에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꿈... 허황된건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8년쯤 배우란 직업으로 살다보니 이 안에 갇혀있는 것 만으론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우란 일은 굴곡도 심하고,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내겐 이 이 일이 절망스러워지지 않도록 하는 안정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진 그것이 내 가족, 내 부모였던 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내 가정이 되어야겠지.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안정이 있어야 좋은 일 생기면 더 힘을 얻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위로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배우로 살기위해 가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배우로 살면서 힘든 경우도 많았겠지?

당연히. 그런데 지금까진 잘 즐기고 극복한 것 같다. 처음 영화를 한 것이 <해변으로 가다>라는 공포영화였다. 이젠 다 스타가 된 양동근, 이정진, 김민선이랑 같이 어렸을 때 했었는데...그땐 지방 촬영하면서 콘도에서 한달 이상 여배우 셋이서 같은 방 쓰면서 돌아가며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뭐 그랬었다. ‘내가 배운데’하는 생각하면 못할 일이지만 즐기다 보니 그런 것도 재밌는 거다. 얼마 전에 양동근씨 만났는데 그 옛날이야기 하면서 한참 웃었다.



정말 어려운 적도 물론 있었다. 공유씨와 <베스트극장>을 찍을땐데 도무지 감정이 잡히질 않았었다. 그래서 그 날, 정말 나 하나 때문에 촬영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고, 나 스스로도 너무 한심해서 감당이 안되더라. 그래서 내 연기선생님인 이재용 선생님 (야인시대에 ‘미와경부’로 출연)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 분이 부산분인데 지금 바로 기차타고 내려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나를 바닷가로 데려가시더니 그냥 다른 생각하지 말고 바다만 보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신기하지? 맨발로 앉아서 한참 바다를 보고 있는데 그냥 막 눈물이 솟구쳤다. 감정조절도 되지 않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엉엉 울었다. 그 날, 그 바닷가에서 나는 연기자로써 한 두 계단을 올라갔다고 믿는다. 이게 사실 배우 아닌 사람들한테는 잘 이해 안 되는 말이지만.


마치 신명(神明)을 경험한 것 같은?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물론 아직 나는 좋은 배우가 되기에는 배울 것도 많고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 날의 경험은 아주 강렬했다. 그래서 요즘도 연기하다가 막히면 바닷가를 자주 찾는데...그 날 처럼 큰 체험은 잘 안나온다. 하하.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하나?

좋아하지.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시간 날 때 마다 바다를 많이 찾는다. 힘들 때 마다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거는 주문이 있는데 그건 ‘지금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안 좋을 때란다.’라는 것이다. 바다에 가서 이런 주문을 한참 외우다가 돌아온다. 그런데 이게 참 많이 도움이 된다. 그 순간에 ‘그래. 내일은 지금보단 좋을 거야.’라고 믿게 되고... 한참이 지나서 또 힘든 일을 겪으면 ‘그래도 지난번 보다는 낳잖아.’하는 생각도 드니까.


얼마 전, 이세은은 자신의 칼럼을 연재하던 영화주간지에 ‘마지막 원고’를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연개소문>을 촬영하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글을 쓸 때는 늘 마감시간에 쫓겨 부담스러웠는데 마지막원고를 보내니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원고는 영화 <라디오스타>에 관한 것이었다.

<라디오스타>라...맞다. 오늘의 인터뷰를 통해 최소한 이세은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열광하는 여성이 아니라는 것은 설명되어질 것 같다.

정말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재밌겐 봤는데 두 번은 못 보겠더라. <라디오스타>는 내가 영화잡지에 칼럼을 쓰면서 정말로 ‘마지막에 꼭 쓰겠다.’고 결심한 영화였다. 나에게는 두 말 할 나위없는 완벽한 영화였다. 영화를 많이 봤었지만 나를 그렇게까지 몰입시키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 작품은 <라디오스타>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내게 최고의 영화였던 <이터널 선 샤인>을 2등으로 끌어내린 영화니까. 어쩌면 이 영화들이 나의 20대가 변해가는 모습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엔 <이터널 선샤인>같은 ‘사랑의 무게’가, 그리고 이제는 <라디오스타>같은 ‘사람의 무게’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건지도.




‘괜찮은 여배우’ 이세은을 만났다. 사랑의 무게에서 사람의 무게로 중심을 옮기고 있는 28살의 여배우와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시인 최승자가 염려했던 ‘서른살’을 최소한 이세은은 잘 돌파하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세은은 ‘좀 더 과감해지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 인사로 했다.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인기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삶과 사람을 통해 깊이 있는 안정을 파놓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가을날. 삼청각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은 이세은처럼 아주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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