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가야금 만드는 원조 전통 악기장 김광주
[그때 그 인터뷰] 가야금 만드는 원조 전통 악기장 김광주
  • 김두호
  • 승인 20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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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지아비 섬기고 남자는 뜻을 섬긴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우리 민족의 신비로운 혼과 한을 가락에 싣고 전래된 가야금과 거문고. 조상대대로 전통 국악기를 만들어 온 장인 김광주 선생은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다. 기자가 1981년 인터뷰를 할 때 75세였으니 살아계신다면 올해 103세가 되신다. 당시 서울 숭인동 57번지의 조그마한 한옥을 공방삼아 세 명의 후계자와 함께 전통 장인의 숨결을 12현 가얏고에 불어넣고 있었다.

인터뷰 자리에 있었던 전수 후계자 최세춘(당시 37세/ 현재 65세), 고흥곤(59세), 최태귀(55세) 씨가 모두 10년 이상 김광주 악기장(樂器匠) 곁에서 공방일을 도우며 제작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지금 어디선가 맥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선대의 길 따라 전통 장인으로 일생을 바친 20세기의 인물 김광주 악기장과 나눈 대화를 21세기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젠 힘들지 않으세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 가지 뜻이 있어야지요. 큰 뜻이든 작은 뜻이든 품은 뜻은 흔들리지 않아야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거요. 여자는 지아비를 섬기고 남자는 뜻을 섬기며 사는 게 당연한데 내가 뭘 자랑할 게 있겠소.


만드신 거문고나 가야금은 어디로 갑니까?

내다 팔기도 하지만 주로 주문을 받아서 만들지요. 주문을 해오는 사람 중에는 모양을 다르게 만들어달라는 사람도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주문대로 만들 수는 없습니까?

허 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악기를 만들어서 팔아먹고 살기는 하오만 만드는 법도를 바꾸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난 어른들에게 배운 그대로 만들고 있어요. 다른 길로는 못 가게 배웠어요. 싫다면 안사가면 될 것 아니겠소.


그렇게 가르쳐 주신 분은 어떤 분들입니까?

나는 전주 완산동에서 악기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살아오신 김명칠 어른(1947년 타계) 밑에서 전주 상생보통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기술을 배웠어요.


그 어른이 어떤 분입니까?

우리 아버지라오. 아버지는 아쟁(牙箏) 양금(洋琴)도 만드시고 가야금 거문고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주문하는 사람들은 떠돌이 광대패나 기방(妓房) 사람들이었지요.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늘 말씀하셨지요. 지금은 왜놈 세상이지만 세월이 가면 필경 우리 세상이 온다면서 당신은 기력이 쇠하셨으니 재주를 제대로 익혀두라고 말씀하셨지요.


재주(기술)가 뛰어난 분이었겠군요.

그렇고말고요. 소문이 퍼지자 왜놈순사(경찰)가 일본 천황정신이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붙잡아다가 두들겨 팬 일도 있었지요. 2차대전 때는 집 앞에 땅굴을 파서 그 안에 가마니를 깔고 악기를 만드셨어요. 아버지 별세하신 후 6.25 때는 뺄갱이들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악기를 모조리 밟아 부셔 내가 항의를 했다가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았지요.



언제 서울로 오셨습니까?

1961년에 서울 삼청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악기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서울사람들이라 내가 집사람(최점순)과 두 딸을 데리고 서울로 왔어요.


악기도 가격 차이가 많은데 어떤 악기가 좋은 악기입니까?

수변석상작오동(水邊石上作梧桐)이란 말이 있어요. 물가의 바위 위에서 수백 년을 살다가 명을 다하고 죽은 오동나무를 뜻하는 말이지요. 내 평생 그런 재목을 구하려고 명산대천을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마음에 쏙 드는 재목을 구하지 못했지요.

거문고나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듭니다. 가야금은 오동나무 바탕의 공명반(共鳴盤) 위에다 명주실로 된 12줄을 세로로 매고 기러기발로 부르는 안족(雁足)을 버티 세웁니다. 첫째 줄이 가장 굵고 차차 가늘어집니다.

거문고는 뒤판을 밤나무로 쓰기도 하는데 앞판은 오동나무로 속이 비게 짜서 그 3,4줄에 얇은 괘 16개를 세우고 그 위에 줄을 얹어요. 가야금과 달리 거문고는 6줄(絃)로 가락을 냅니다. 이런 악기는 같은 사람이 같은 솜씨로 규격이 같게 만들지만 신기하게도 소리는 똑같지 않습니다. 한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가 모두 다르고 삼라만상이 같은 게 없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재료로 만들어서 소리가 맑고 선명하게 울리는 악기가 최상품이지요.


재료도 좋아야 하지만 서양의 바이올린처럼 누가 만든 것인지 장인의 기술과 명성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거야 사는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거지요. 만드는 사람에게는 한 나무에서 잘라낸 것도 서로 결이 다르고 속이 다른 재료이니 같이 만들어도 가격을 다르게 받을 수 있지요. 깨끗한 산속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소리도 맑아요. 그걸 만드는 사람도 깨끗한 정성으로 만들어야 명품이 나오지요.

나는 시간이 생기면 명산대천을 찾아가요. 주로 지리산에 많이 갑니다. 나무를 찾으면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사계절을 건조시키는데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뎌낸 후에 사용해야 좋은 재료가 됩니다.


모두 손이 가야 이루어지는 작업이군요.

가야금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데에는 보통 10일이 걸립니다. 손으로 갈고 닦고 구멍을 뚫어야지 전기 모터로 잘못 건드리면 붙어 있어야할 먼지만한 나뭇결도 상하게 됩니다.


연주도 잘하시는지요?

하하하. 그럼 이 짓하고 있습니까? 난 음악을 잘 모르지만 악기의 소리는 고장난 소리인지 맑은 소리인지 귀신같이 구분해냅니다. 한번 퉁겨서 나오는 소리만 듣고도 성능과 악기의 값어치를 알아요. 가야금이 암컷소리라면 거문고는 수컷소리지요.

가야금은 애절하면서 슬프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신비해요. 가을밤에 여인의 고운 손이 금선(琴線)을 뜯게 되면 그 소리에 녹아나지 않을 대장부가 없지요. 거문고는 소리가 가야금보다 다소 굵고 무게가 있어요.


전통 국악기는 규격이 정해져 있습니까?

거문고는 길이 160cm에 폭 22cm, 가야금은 길이 145cm에 폭 22cm로 전해오는데 우리 아이들(전수자)은 자를 사용하지만 나는 아직도 손맛이나 눈대중으로 해요. 잰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들 해요. 밤에 불이 없어도 만들 수 있고 눈을 감고도 똑같이 만들 수 있으니 자가 필요 없지요.




기술을 물려주실 자녀분이 있으신지요?

아들이 없고 딸만 둘 있어서 다른 집 아이들이 10년 15년 배우며 일하고 있어요. 최세춘 고흥곤 최태귀 군인데 아주 잘하고 있어요. 내가 워낙 왕고집이라 고생들 하지요. 딸 하나가 미국서 사는데 자꾸 그곳으로 오라네요. 초청 여권인가 뭔가 나왔는데도 갈 생각이 없어서 치워버렸다오. 미국에 한 번 가봤는데 텅 비어 있는 나라 같아서 혼자 살지라도 내 나라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적어도 2천여 년 전에 태어난 우리 고유의 전통 악기들이다. 격랑의 역사가 흐르고 또 흘렀지만 장인들의 기능은 대를 두고 이어졌다. 김광주 장인의 손끝까지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이 곱게 전수되어 왔고, 그의 후계자들이 지금 어디선가 열심히 가야금을 만들고 거문고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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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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