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생애 최고의 순간에 만난 허정무
[그때 그 인터뷰] 생애 최고의 순간에 만난 허정무
  • 김두호
  • 승인 2009.01.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녀스타와 결혼하고 유럽 명문팀 스카우트 겹경사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축구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치고, 유럽 명문구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시기에 인기 절정의 스타 MC 최미나와 결혼식을 올린 26살 허정무의 1980년은 그의 생애 최고의 해였다.

1954년생으로 2009년 1월 13일이 그의 만 55세 생일이다. 올해도 언제나 따뜻한 반려자로 곁을 떠나지 않은 최미나가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주고 자녀들과 함께 축하 노래를 불러줄 것이다.

국가대표선수였던 그는 이제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오는 2월 11일 이란전을 시작으로 월드컵 본선진출을 향한 열전에 돌입한다. 올해는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승부와 기대도 걸려 있다.


태양빛이 작열하던 그때 그해 한여름,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유럽 프로 축구팀 입단을 위해 출국을 준비하던 허정무는 말했다.

“여자가 없어도 축구공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기분에 살았어요. 최미나와 연애를 하면서도 장가갈 생각은 안했지요. 그러다가 난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축구선수는 슈팅한 볼이 골대 안으로 깊숙이 꽂히는 순간에 지상 최대의 희열을 맛본다. 국가대표팀 화랑의 기둥공격수였던 허정무. 스물여섯 젊음이 물오른 나이로 새로운 인생의 골게이트를 향해 드리볼을 시작한 그의 그때 그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첫날밤은 어디에서 보냈나?

출국준비로 틈이 없어서 신혼여행을 뒤로 미루었다.


신부가 서운해할텐데.

도고온천쯤 가서 하루 묵고 오자고 했는데 오히려 미스최가 시간을 무리하게 쪼개면 건강에도 안좋을 거라면서 위로를 했다.


연애시절도 그렇게 배려가 깊었는가? 2년3개월간 소문 안나게 연애를 했다는데 생긴 일도 많았을 거 같다.

내가 화를 내면 겁이 나고 가슴이 철렁한다면서 곧잘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한번도 변명이나 자기 잘못을 합리화한 적이 없다. 나의 짜증도 관용과 이해로 받아주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눈물 흘리고 변명할 일들이 무엇인가?

나는 약속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 미스최도 일부러 시간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워낙 바쁘고 변화가 많은 방송 스케줄로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 내가 화를 내곤 했다.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됐다는데?

아니다. 우리 누님과 미스 최의 언니가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두 사람이 여고 동기동창 관계였다. 난 솔직히 연예인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은근히 거리를 두고 만나다가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됐고 지난봄에 내가 청혼을 했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끼리 3년을 두고 어디서 그렇게 소리없이 데이트를 할 수 있었나?

주로 밤에 만나서 태릉선수촌 부근의 한적한 도로를 드라이브했다. 그래도 아슬아슬한 때가 많았다. 언젠가 후배선수가 우리를 발견하고 나중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최미나 같다고 말해 시치미를 뗐는데 결혼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호되게 항의를 받았다.

서로 사랑한다면 왜 당당하게 데이트를 하지 않았는가?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다 같이 상처를 받는 것 아닌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의 고충일 것이다.


현재 입단을 제의해온 유럽의 프로팀은?

네덜란드의 필립스구단, 스페인의 바르셀로나팀, 프랑스의 래이싱 스트라우스부르크팀, 서독의 알미니아 비레헬트팀과 오펜바흐 키커스팀 등 4개국 5개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늦어도 한달 내에 현지 테스트에 응해달라는 곳도 있다.


어느 팀으로 결정을 했나?

한국축구선수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범근이 형의 활약과 영향 덕분인 것 같다. 서독에는 범근이 형이 있으니까 우선 네덜란드로 가서 테스트에 응할 생각이다. 대우나 입단 조건도 그쪽이 마음에 든다.(그는 생각대로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팀에 들어가 활약했다)


같은 선수의 입장에서 차범근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축구에 쏟는 범근이 형의 열의는 본받을만하다. 재능도 뛰어나고 가정을 보살피는 태도라든지 모두가 훌륭한 축구인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신혼생활도 못하고 해외로 떠나 신부가 서운하겠다. 함께 떠나는 건 아닌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생활기반이 갖춰지면 곧 합류할 생각이다. 해외 활동도 4,5년 정도 잡고 있다. 축구선수로 마지막 기회라는 결심으로 간다.


4,5년 뒤는?

시골을 여행하다가 보면 빈터나 운동장에서 열심히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들 가운데는 장래성이 있는 소년들도 많았다. 귀국해서 그런 유망 청소년들을 찾아내고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태어났다. 어버지는 진도의동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시고 내가 6남매 중 둘째다. 축구를 시작한 것은 성무팀 감독으로 계시는 삼촌(허윤정 씨)의 권유를 받고부터였다. 재능이 보인다고 아버지를 설득해 목포중학 때 서울 영도중으로 옮겨 공을 차기 시작했다.

아마 삼촌이 아니었다면 나도 시골 운동장에서 축구놀이를 즐기는 아마추어 선수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에 축구유학을 오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외롭거나 고향생각이 나거나 울적하면 혼자서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미친듯이 공을 찼다. 스트레스를 푸는 길이 축구공을 차는 일이었다.

명절 때 남들이 고향을 가면 빈 합숙소에 남아 밤에도 공을 차며 외로움을 달랬다. 다른 사람 눈으로는 달밤에 체조하는 식이었다.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메르데카전 때 이라크와 경기도중 고환이 찢어진 일이 있다. 그때 4바늘을 꿰매고 결승전까지 뛰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가장 괴롭고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겪었다.

영등포공고를 거쳐 연세대에 진학했을 때는 수업일수 부족으로 잠시 대표팀에서 탈락했을 때도 괴로웠다. 그땐 축구를 집어치울 고민도 했었다.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했지만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장가가고 해외로 떠나는 일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다시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신부가 장차 어떤 아내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나?

나는 가정에 대해서는 아주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녀평등 사회를 외치는 세상에 그럴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아내는 언제나 남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아내가 남편에게 큰소리 치고 따지고 덤비는 건 죽어도 못 봐준다. 물론 남편도 존경받을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럼 아내의 사회활동은 환영하지 않는 쪽인가?

그것과는 다르다. 아내가 직업을 가지는 것을 반대할 의사는 없다. 다만 가정에서는 언제나 아내와 여자라는 입장을 생각하며 이해 깊고 따뜻한 모성애로 가정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청혼하고 결혼을 한 건가?

그렇다. 미스최의 매력은 진실하고 깊은 여자의 심성을 가진 점이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나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해주는 모습은 누님 같이 느껴진다. 애써 얌전을 떨려하지도 않고 생활도 검소하며 소박하다. 결혼 첫날부터 직접 빨래하고 청소한다. 연예활동을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최미나는 결혼 뒤 연예계를 정말 떠났고, 한번도 언저리에도 기웃거린 적이 없다.

허정무는 1985년 멕시코월드컵 본선 진출을 두고 벌어진 한일 2차전에서 후반 16분에 극적인 결승골을 밀어넣는 모습을 끝으로 그라운드에서 차츰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 국내 프로 축구팀의 지도자로 진로를 바꾸었고 1998년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으나 시드니올림픽 8강 진출 실패와 함께 물러났다가 2007년 10여년 만에 제자리로 복귀했다.

그의 운명은 이번 월드컵 본선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의 승패에 따라 또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변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의 아내 최미나 씨의 소리없는 내조와 사랑일 것이다.



[관련기사]
국가대표 축구선수 허정무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관심가는 이야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terview365@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