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메신저 등대지기 최중기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메신저 등대지기 최중기
  • 유성희
  • 승인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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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서이말 등대에서 만난 등대장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 고단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래도 밝아올 새해는 올해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희망으로, 거제도 동남쪽 끝에 있는 서이말 등대를 찾았다. 등대는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희망의 길잡이 아니던가.

기암괴석과 천연해식동굴의 절경을 자랑하는 서이말 등대에는 30여 년 간 선박의 길라잡이로 일을 하고 있는 등대지기 최중기(55) 씨가 있다. 그는 3명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는 유인등대의 등대장을 맡고 있다.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다란 숲길을 한참 내달려 두 번의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지나니 사방이 탁 트인 서이말 등대가 보였다. 그리고 최중기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등대가 대부분 흰색의 원통형식으로 세워진 것이 인상적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주간에도 등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암초 같은 곳에 세운 등대라든지 무인등대 중에는 홍색, 녹색 등 다양한 색으로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등대는 탑처럼 높이 솟을수록 식별이 용이하지요. 서이말 등대의 경우는 높이가 10.2m입니다.
 

등대지기라면 흔히 낭만적인 직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등대가 위치한 곳이 보통 선박에서 식별이 용이한 절벽 위와 같은 전망 좋은 곳에 있는데다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해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직업이거든요. 1일 3교대로 8시간씩 근무를 하는데 하루 5회에 걸쳐 통영기상대에 관할 해상의 기상 통보를 하고, 각 장비들에 이상이 없는지 수시로 점검을 합니다. 야간에는 광파표지(야간에 등화를 이용하여 위치를 표시 하는 항로표지)로 역할을 하기 위해 등대 불을 점등하게 되지요.

 

서이말 등대에서만 계속 근무를 하신 건가요?

그렇지는 않고요.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순환근무를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홍도, 소매물도에서 근무를 했었지요. 그러다가 96년 10월부터 홍도 등대가 무인등대가 되면서 소매물도와 서이말 두 군데에서만 번갈아 가며 근무를 하고 있어요. 서이말 등대는 금년 4월부터 다시 오게 되었어요.

 

등대지기로서 일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보람 있는 일들이 있다면?

아무래도 주변이 바다이다 보니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때가 가끔 있어요. 낚시를 하다 파도로 인해 갯바위에 갇힌 분들을 구하기도 했고, 침몰된 배에서 등대까지 헤엄쳐 와 의식을 잃었던 분을 이틀 동안 보살펴 도와드린 적도 있고요. 그런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지요.

 

 

 

 

언제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1981년 11월에 입사해 홍도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하게 됐어요. 홍도는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3개월씩 근무를 하고, 한 달 동안 육지에 나가 있었어요. 며칠, 몇 달씩 항해를 하는 선원들만 외로운 게 아니라 실은 등대지기도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근무 환경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장비와 시설물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요. 20년 전만 하더라도 장비들이 수동식이다 보니 일출 직전에 소등을 하고, 일몰에는 직접 불을 켜야만 했어요. 자동화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었어요. 당시는 난방 때문에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됐지요.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서이말의 경우에는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 비해 어려움이 적어요. 선박으로만 이동이 가능한 섬 등대에 근무를 하게 되면 집안의 큰일이 생기거나 심지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황에서도 기상 때문에 섬을 나가지 못하는 수도 있어요. 제 경우에는 17년 전 소매물도에서 근무할 때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아 이틀 후에나 배를 타고 겨우 섬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죠.

 

차량의 네비게이션처럼 지금은 배들마다 항해를 도와주는 항법장치가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큰 선박들의 경우에는 전파표지를 장착하여 목적지까지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등대 없이도 항해를 할 수도 있지만 연안항해, 소형선박에는 항해장비가 부족하여 아직도 등대를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등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혼동이 오지 않을까요. 어떤 설문조사에서 선장님들이 항법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등대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다수가 응답을 했다더군요. 전파표지에 나타나는 위경도는 단순한 숫자에 불구하기 때문에 실제 항해에 있어 최종확인을 위해 등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등대가 있는 서이말의 지명은 땅 끝의 형국이 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쥐귀끝’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1944년에 세워진 서이말 등대는 20초마다 1번씩 37km 밖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어 거제도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항로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중기 등대장의 안내로 등탑에 올랐다. 맑은 하늘, 푸른 바다. 하늘과 바다가 분간이 가지 않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왼편으로는 부산, 오른편으로 홍도, 정면에는 대마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등탑에는 언제 올라오시나요?

매일 올라와 상황을 체크합니다. 불빛이 맑아야 멀리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매번 깨끗이 닦아서 관리를 하고, 밤에는 초시계를 갖고 20초에 한 번씩 비추고 있는지 체크를 해요.

 

밤이 되어 이곳에 올라오면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나요?

처음 입사해서는 굉장히 외롭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외롭다고 생각하면 이곳에서 생활하기가 참 힘들어요. 이곳은 그래도 담하나 사이에 군부대가 있기 때문에 외로움이 덜해요. 밤바다가 굉장히 아름다운데 오히려 나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홍도에서 근무할 때 새 박사로 잘 알려진 윤무부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생태계 연구를 하러 오신 적이 있었어요. 3개월 정도 같이 한 방에서 지내며 라면도 같이 끓여먹고 지냈는데 떠날 때 되어서는 말할 수 없이 서운했어요.(웃음). 저는 평소 괭이갈매기를 텃새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때 윤 교수님 덕분에 철새라는 걸 알았어요. 괭이갈매기 발목에 수신기를 장착해서 날려 보내니까 일본열도를 따라 시베리아 캄차카반도까지 날아가는 겁니다. 그곳에서 한 해를 나고 3월 일본열도를 따라서 홍도로 다시 날아오는 것이었지요.

 

댁은 어디인가요. 가족들을 자주 못 보는 만큼 집에서 많이 서운해 하지는 않나요?

마산에 아내와 아들 둘이 살고 있어요. 큰 애가 4살까지는 함께 살았는데 워낙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저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을 잘 못하고 그래요.(웃음)

 

최근에 언제 집에 다녀오셨나요. 아버지의 일에 대해 자녀분들과 말씀 나누신 적은 없나요?

12월 23일에 잠깐 다녀와 아내가 챙겨준 부식을 가져왔어요. 언젠가 애한테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던 최선을 다하는 걸 알기 때문에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직업에 대한 보람과 함께 흐뭇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녀석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등대가 어두운 밤에 뱃길을 밝히듯 어려운 때일수록 저마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면 언젠가 밝은 빛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등대지기로서 개인적으로 외롭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등불을 밝히는 시간만큼은 항해하는 선박들이 목적지까지 아무런 사고도 없이 안전하게 도착했으면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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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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