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간 사랑을 배달해 온 산타 집배원 최선환
30년 간 사랑을 배달해 온 산타 집배원 최선환
  • 김우성
  • 승인 200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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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아이들의 천사, 연로한 주민들의 심부름꾼 / 김우성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소리 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세요. 도시락 못 싸오는 학생들도 후원해주고... 원체 좀 바쁜 분이예요. 우편물 배달하다가도 노인들 장작 팰 거, 소여물 줄 거 있으면 그냥 못 지나쳐요. 우체국에도 새벽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청소 다 하시고, 가장 늦게 들어가시지요.”





[인터뷰365 김우성] 동료 직원을 통해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는 바람에 연신 부탁을 하며 무작정 강원도로 달려갔다. 30년 간 오로지 집배원으로 근무했다는 이력도 대단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선행을 해왔다는 주변의 전언에 더욱 길을 재촉했다.


강원도 화천우체국 최선환(53세)씨의 선행은 여기저기서 전해오는 주민들의 입소문으로 뒤늦게 알려질 뿐, 동료들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른다는 격언이 딱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의지할 곳 없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매월 일정액의 사비를 털어 지원해준다는 것. 그리고 근무 시간 외에도 시간을 쪼개 농촌의 노인들을 돕고 있다는 것 정도다.


집배실에서 걸어 나오며 멋쩍어하던 그의 모습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간혹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선한 인상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배원으로 근무한 지가 얼마나 된 거죠?

79년부터 자전거 타고 근무를 시작해서... 이제 30년 쯤 되었겠네요.


도로 여건도 지금처럼 좋았던 때가 아니라서 더 힘들었겠습니다.

그때는 힘들긴 해도 함께하는 동료가 많았는데, 집배원 업무가 기동화되면서 그만큼 인원도 줄었어요. 그러다보니 집집마다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던 것이 이제는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인사도 못 드리는 경우가 많아요. 일 도와드릴 시간도 부족해졌고요.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예전이 좋았지요.


그런 것 말고도 달라진 게 많겠지요?

아무래도 건설 같은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자연환경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편지도 많이 줄었을 테고요.

정다운 편지는 이제 거의 없고 공과금 고지서나 초청장 같은 우편물이 대부분이에요. 특히 돈과 관련된 우편물이 많다보니 요즘 배달을 가면 ‘뭐 낼 걸 또 그렇게 많이 가져왔냐’고들 하세요.(웃음)





주 근무지가 정확히 어디인가요?

화천군 하남면에서 계속 일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굴을 알아보는 주민들이 많을 텐데, 응원도 많이 해주시겠어요.

물 한 잔 주셔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데 형편이 어려우신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우체국에서 보험이나 저축 등을 들어주시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우편으로 연금 수령하는 어느 퇴역군인은 제가 찾아갈 때마다 항상 장 봐서 따뜻한 밥을 차려 놓고 기다리세요. 당연히 전해드려야 하는 건데...


선행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던데요.

저 역시 환경이 어려웠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갖고 있던 생각을 조금 실행했을 뿐이에요. (더 이상의 답변이 없어 재차 묻자) 그냥 학교에서 점심 굶는 아이들 도와준 거 하고, 형편 어려운 다문화가정에 옷가지 조금 전해주고 그랬어요. 도와줬던 아이들이 나중에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해서 찾아올 때는 정말 기쁘고 뿌듯해요.


요즘 같은 날씨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춥지 않으세요?

추운 건 괜찮은데 눈이나 비가 오면 다니는데 애를 먹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다쳐서 입원한 적은 없으니 그저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웃음)


예전에는 빨간색 자전거였죠?

그렇습니다. 자전거 타고 마을 가면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하루는 비오는 날 그걸 타고 지나가는데, 힘들어 보였는지 직행버스 운전기사 분이 승객들 양해를 구해서 자전거와 함께 저를 버스에 태워주신 적도 있어요. 새벽 두 시에 전보 전하러 갈 때는 ‘삼판차’라고 해서 벌목 운반용 화물차를 얻어 타고 다니기도 했지요.


근무하면서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우편물 배달 갈 때마다 저를 아들 삼겠다며 반겨주시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자녀들이 돌보지 않고 쓸쓸하게 운명하시게 되었죠. 그런데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까지 뗀 후에 다시 살아나셨어요. 오히려 장례를 이야기하던 며느리가 며칠 후 세상을 떠난 기막힌 일이 있었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최 집배원의 자제들이 모두 훌륭하게 장성했다며 지나가던 직원이 귀띔한다)

딸만 넷을 두었어요. 큰 아이는 호주에서 공부 중이고, 둘째는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선생님 되려고 교대에 재학 중이고요. 막내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 서울로 갔습니다. 딸 넷 키우며 힘들지 않느냐고 말씀들을 하시는데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도록 잘 자라주어 고맙고 대견합니다.


가족들하고 여행도 좀 다니고 하시나요?

작년에 아내와 제주도에 가본 게 처음이에요. 부모님 두 분 다 원래 장애가 있으셔서 어디 다닐 생각을 못해봤어요. 아무런 불평 없이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봉양해 준 아내에게 평생 감사하고 있습니다.


집배원이라고 하면 단순히 우편물 전달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특별한 인연은 없었나요?

도회지에 살다가 와서 정을 붙일 곳이 없던 분에게 제가 농사법도 가르쳐주고, 대화도 많이 하게 됐는데 지금은 과수원 운영하면서 잘 정착했어요. 연령으로는 후배라도 좋은 벗이 됐죠. 또 타지에 있던 한 가정의 아이들 아빠가 수감되면서, 엄마가 이곳까지 와서 매몰차게 아이들을 버리고 간 일이 있어요. 그 아이들을 도와줬는데 아이 아빠가 나중에 출소해서 저를 찾아와 한참동안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을 텐데, 옛 기억에 마음이 허전해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떠나가는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아팠어요. 전에는 쌀농사만 해도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힘들어요. 열심히 살았는데도 빚이 생겨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이 많아요.


30년 집배원 생활을 돌이켜 본다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연도 보고, 사람 살아가는 것도 보며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는 이 일이 저에겐 천직이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못 도와준 게 아쉽고요.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남은 근무기간 돈을 떠나서 봉사하며 살고 싶고요. 퇴직하면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 한목숨 바치고 싶습니다. 남들 학교갈 때 멀리서 지켜보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재산은 남겨야 헛일이잖아요. 가르쳐주는 게 큰 재산입니다.




그가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달렸을 울퉁불퉁 흙길 위에는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가 놓였고, 그 길 너머 콩이며 옥수수며 일구고 살던 화전민들은 간데없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3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길을 수없이 오가며 하나하나 눈에 담아두었다. 추억을 담았고. 정을 담았다.

그때 마을 어귀로 뛰어나와 깡충깡충 뛰며 반기던 아이들은 어디에선가 여전히 마음속으로 빨간 자전거 탄 진짜 산타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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